최근 수정 시각 : 2025-04-10 21:41:55

LNER A1/A3

파일:Norton_Manor_-_60103_after_turning.jpg
1. 개요2. 상세3. 보존4. 투어5. 기타

1. 개요

1922년부터 1935년 동안 영국의 주요 사철이였던 런던 앤 노스이스턴 철도(LNER)에서 신조한 증기 기관차.

2. 상세

나이젤 그레슬리 경(Sir Nigel Gresley)[1]이 설계한 3실린더형[2] 4-6-2 텐더 기관차다. 최초 기종이 A1이며, 이후 개수받아 새로운 이름을 받은 것이 A3이다.
A1은 51대가 생산되어 해당 차량 전량이 A3로 개수되었으며, A3은 27대가 추가로 생산되었다.

후계기인 LNER A4에 묻혀서 그렇지, 이쪽도 대단한 기록을 세웠는데, 1934년 11월 30일, 세계최초로 시속 100 마일을 공식 돌파했다. 해당 차량은 플라잉 스코츠맨(Flying Scotsman).[3]

3. 보존

파일:LNER_60103_Flying_Scotsman_at_the_NRM.jpg
100 마일을 돌파했던 60103번[4] "플라잉 스코츠맨(Flying Scotsman) "이 보존 중이며, 영국 국립철도박물관 측에서 복원하여 본선에서 운행 중이다.
2023년에 있을 제작 100주년 기념을 준비하기 위해 2022년부터 잠시 퇴역한다.
또한 해당 기관차의 목업이 스타필드 고양에 전시되어있다.

파일:LNER_Class_A1_4-6-2_No60163_'Tornado'_(29903372180).jpg
페퍼콘이 재설계 후 제작했던 A1[5] 중 1대인 토네이도를 신규 제작하여 관광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파일:Green_Arrow_at_Toddington_1.jpg
Crewe Works의 그린 애로우가 Doncaster Museum and Art Gallery에 보존 중이다.

4. 투어

파일:LNER_4472_on_Jefferson_March_1972xRP_-_Flickr_-_drewj1946.jpg
1969~1972년에 미국 투어로 미국에서 운행된 적이 있다. 배장기와 경종 설치, 연결기 교체 등 대대적 수리를 하고 배편으로 미국으로 보내져 미국 투어를 했다. 1969년에 합의를 보고 보내졌다.

당시 영국은 60년대에 접어들어 철도 환경을 개선할 목적으로 당시 운용하던 증기 기관차를 폐차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영국 교통 위원회(British Transport Commission)의 동부 지부 근무자이자 철도 애호가였던 알랜 페글러(Alan Pegler)가 해럴드 윌슨 총리의 후원을 바탕으로 기관차를 매입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돈캐스터 정비소에서 복원 작업이 이루어지고, 윌슨 총리는 영국의 수출 활동 장려 및 지지 차원에서 미국 및 캐나다 투어에 자금 지원을 약속하고, 69년에 투어가 시작되었다. 추가로 객차 몇 대를 개조해서 전시장으로 만들기도 하여 투어에 객차가 동행되었다. 그러나 투어 시작 1년 만에 대선을 통해 에드워드 히스가 총리로 당선되었고, 히스 총리는 자금 지원을 철회했다고 한다.[6] 그 때부터 페글러는 사실상 미국에서 자금을 충당하며 72년까지 투어를 돌기로 결심했으나, 실상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미국 내 일부 주의 규정에 따라 증기 기관차가 직접 운행을 하지 못하는 곳이 있었는데,[7] 이로 인해 해당 지역에서는 디젤 기관차나 전기 기관차가 스코츠맨을 견인해야 했다. 문제는 이 견인 비용으로 생긴 빚만 해도 132,000 파운드였다는 것. 여기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전시회로 돈을 충당하기로 했으나 일이 예상 밖으로 흘러갔고[8], 결국 페글러는 파산 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스코츠맨을 압류당하기에 이른다.

일이 이렇게 되자 본국인 영국에서는 스코츠맨이 미국에 영원히 귀속되거나 폐차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때 Sir Robert McAlpine 이라는 건설 회사의 사장 윌리엄 맥알파인(William McAlpine)이 원예가이자 똑같이 철도 애호가였던 앨런 블룸(Alan Bloom)의 연락을 받고 일에 뛰어들었다. 이후 기관차에 걸려있던 부채를 청산하고 기관차를 입수하는 데 성공하고, 1년 6개월 전 기관차가 영국을 떠났던 장소인 리버풀 항구에 기관차가 드디어 도착했다.[9]

한편 파산 후 선박회사 P&O에서 근무하던 페글러는 1974년 파산 상태를 벗어나게 되었고, 배우 일을 하면서 헨리 8세를 연기하기도 하였다. 이후 잠시 철도 관련 일을 다시 하기도 했다.

페글러는 2012년 사망했으며, 2018년 고인의 생전 희망사항에 따라 유골이 런던 킹스 크로스 역에서 요크 역으로 가는 플라잉 스코츠맨의 화실에서 사실상 화장되어 연기가 되어 날아갔다.[10] 페글러는 이를 통해 그가 그토록 좋아하고 아끼던 열차를 통해 성불했다고 할 수 있겠다.

5. 기타

모형으로는 영국의 Hornby가 출시했다. 기관차 1대인 단품도 있고 객차, 레일까지 같이 있는 세트도 발매했다.
레고는 제품 번호 10194인 에메랄드 나이트로 발매했다.
마이크로소프트 트레인 시뮬레이터에서 등장한다.
토마스와 친구들에서 나오는 플라잉 스코츠맨[11]이 A3을 모티브로 했다.[12]
포르자 호라이즌 4에서 등장한다. 아리엘 노머드를 운전해 플라잉 스코츠맨을 상대로 경주를 하는 쇼케이스 이벤트가 있다.


[1] 후속 기종인 LNER A4의 설계자로 유명하며, A4 중 1대에도 그의 이름이 붙었다.[2] 외측에 2개를 장착하고 내측에 1개를 추가하는 방식. 이 방식을 devided drive라고도 하며, 일본의 C53형 증기 기관차와 동일한 방식이다.[3] 1904년,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에서 역시 그들의 시티 오브 트루로(City of Truro)가 플라잉 스코츠맨보다 먼저 100 마일을 돌파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공식 기록은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4] 구 4472번[5] 오리지널은 이미 1960년대에 다 폐기되었다.[6] 윌슨 총리는 노동당 소속이었으나 히스 총리는 반대파인 보수당 소속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7] 화기 엄금 품목으로 분류되었다는 모양이다.[8] 전시장 주변 해안가에 주차되었으나, 바다 풍경을 가린다는 주변 상업지구의 항의와 주차 문제를 호소한 사람들의 원성 끝에 도심 한가운데로 옮겨졌으나, 결국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전시 목적이 없어져 생각보다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9] 이 과정에서 재정 문제가 겹쳤는지, 같이 갔던 객차들은 끝내 입수하지 못했다. 다행히 이 중 몇 대는 훗날 어떻게든 영국에 돌아오긴 했다.[10] 이때의 열차 이름이 따로 존재했는데, 이름이 '잘 가, 페글러(Farewell, Pegler)'였다.[11] 국내판 그레이트 레이스에서는 날쌘돌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12] 플라잉 스코츠맨은 배장기가 없는 것을 제외하면 미국 투어 당시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