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터스 제국은 이나니스 대양(공허 대양)에 고래신과 세투스의 미래와 구원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음으로, 해군과 건함 시장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감행한다. 세터스 제국은 더 많은 함선을 건조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남부 코르부스를 침공해가면서까지 건함경제를 지속했으며, 이는 결국 남부 코르부스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세터스 제국은 국가산업으로 우체국을 운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09년에 창설된 포르마에서 가장 초기적인 특수부대 중 하나이다. 주로 전선 돌파를 주로 맡으며, 상황에 따라 산악보병/해병대로도 작전이 가능하도록 훈련받은 정예군 집단이다. 비록 훈련과정이 혹독하여 3개 사단밖에 운용하지 않지만, 엄청난 전장 적응능력과 개개인의 전투능력을 바탕으로 센타우라 전쟁 당시 대부분의 전장의 선봉장으로 나섰다.
코르부스인들은 전사가 죽으면 까마귀 신의 일부가 된다고 믿는 풍습이 있었으며, 패자를 처형하는건 패자에게 배풀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일이라고 믿었다. 세터스 제국의 몰락 이후, 이 문화는 많은 세터스 포로들을 강제노동시킬때 가장 효율적으로 쓰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파스케이션에도 금기사항이 있는데, 절대로 전사가 아닌 비전투 인원들과 아이들, 약자들을 파스케이션 해서는 안된다. 무분별한 파스케이션은 엄청난 불명예로 취급하되며, 일례로 한 세터스인 여자아이를 파스케이션 했다가 광인으로 낙인찍히고 사회에서 격리당하는 신세가 된 워렌(Warren)이 있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아퀼라에서 급작스럽게 창설해 전투에 투입한 인력들. 대부분이 아퀼라 소속임을 나타내는 국기가 그려진 암 밴드를 맨 민간인이었으며, 장비는 전황이 불리해짐에 따라 제식 M99 소총이 아닌 구형 단발 볼트액션, 민수용 산탄총 등등의 구식장비를 지급받았으며, 큰 사상자를 내며 패배하게 된다.
본래 그루사 왕국의 일부였던 베가 왕정은 1600년대에 그루사 왕국에게서 독립하게 된다. 그루사 왕국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베가는 그루사와는 다른 개별적인 문화와 언어를 개발한다. 베가의 대부분의 산업은 요식업과 광업이었다. 남부 센타우라식 페스츄리는 대부분 베가가 원조.
베가가 그루사에서 독립한 이후, 베가는 그루사의 합병 시도에 대비하여 더욱 강력한 육군력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루사의 육군 규모는 남부 센타우라에서 3위를 차지했으며, 40세 미만의 모든 성인 남성은 군대에서 2년 동안 복무해야 했다(비전투 인원의 경우 더 길어질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중엽부터, 베가 왕립군의 전략은 방어에서 재탈환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베가의 고원과 국경의 콜룸바 산맥에서 고되게 채광을 한 베가는 여유분의 철강이 생겼고, 이 철강들은 베가의 기갑 차량들을 강화하는데 쓰였으며, 병사들에게 팔/다리, 흉부, 머리를 보호할 수 있는 철갑을 지급했다.
방호 시스템(Sistema de Abrigo)이라고 불리던 강력하게 요새화된,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지어진 이 벙커들은 지하로 보급을 받았기에 입구를 작게 만들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으며, 장갑을 두른, 사람이 겨우 들아갈 만한 정문과 야포로 보호되는 25개의 벙커는 중요 통신 거점, 최고 사령부 본부, 중요 탄약고 거점으로 쓰였으며, 보급로마다 전략적으로 건설되었으며, 경우에 따라 참호선이 벙커의 주위에 따라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요새들은 안타레스군에게 큰 사상자를 내도록 강요했으나, 각 벙커는 전차와 같은 직사병기와 안타레스의 물량전으로 돌파당하나, 안타레스군에게 잔혹한 CQB(근접전)를 강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