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바커 인스브루크 | |
FC Wacker Innsbruck | |
<colbgcolor=#086c3b><colcolor=#fff> 정식 명칭 | Fußballclub Wacker Innsbruck |
별칭 | Die Schwarz-Grün(검정-초록) |
창단 | 1915년 2월 5일 ([age(1915-02-05)]주년)[1][2] |
소속 리그 | 티롤러 리가 (Tiroler Liga) |
연고지 | 티롤 주 인스브루크 (Innsbruck) |
홈구장 | 티볼리 슈타디온 티롤 (Tivoli Stadion Tirol) (16,008명 수용) |
회장 | 게르하르트 스토커 (Gerhard Stocker) |
감독 | 제바스티안 질러 (Sebastian Siller) |
역대 한국인 선수 | 서종민 (2022) |
공식 웹사이트 | |
우승 기록 | |
분데스리가 (1부) (10회) | 1970-71, 1971-72, 1972-73, 1974-75, 1976-77, 1988-89, 1989-90, 1999-2000, 2000-01, 2001-02 |
2. 리가 (2부) (4회) | 1980-81, 2003-04, 2009-10, 2017-18 |
ÖFB컵 (7회) | 1969-70, 1972-73, 1974-75, 1977-78, 1978-79, 1988-89, 1992-93 |
미트로파컵 (2회) | 1974-75, 1975-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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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를 연고로 하는 구단이다.2. 역사
1915년 야콥 한스페터(Jakob Hanspeter), 베네딕트 호스프 (Benedikt Hosp), 요제프 라이트너 (Josef Leitner), 요제프 알브레흐트(Josef Albrecht) 이 4명에 의해 창단된 바커 인스브루크는 이때부터 팀의 컬러를 초록과 검정으로 정했다.1971년, 이름을 SSW 인스브루크로 바꿨으며[3], 특히 이 당시 1970년대가 이 팀의 전성기였다. 1974-75 시즌에는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4], ÖFB컵, 미트로파컵을 석권하면서 트레블을 이룩하였다.
1975-76 시즌에는 유러피언컵에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게 종합 스코어 7-2로 대패하며 1라운드만에 대패했고 FK 아우스트리아 빈에게 밀려 2연패에는 실패하는등 주춤했지만, 그 다음 시즌에 다시 리그 우승에 성공하였고, 이듬해 1977-78시즌에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한 유러피언컵에서 FC 바젤, 셀틱 FC를 연달아 꺾고, 8강까지 진출, 당시 유럽의 강호였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홈에서 3-1로 잡아내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비록 원정에서 0-2로 패하며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떨어졌지만, 이는 빈 SC, SK 라피트 빈에 이는 오스트리아 구단의 3번째 8강 진출이었다. 그러나 재정난으로 침체하여 스와로브스키가 팀을 인수하였고, 명칭도 이에 따라 FC 스와로브스키 티롤로 변경되었다. 이 시기에 에른스트 하펠을 감독으로 데려와 두번째 전성기를 열었다.
1992-93 시즌에는 FC 바커 인스브루크와 FC 티롤 인스브루크로 분리가 되었는데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라이센스를 분리되어 나온 티롤 인스브루크에게 양도하고 아마추어로 전환하여 4부리그에서 뛰게되었다. 그 후 1999년 FC 바커 인스브루크는 해산되었고, FC 티롤 인스브루크가 역사를 계승하게 되었다. 그러나 FC 티롤 또 재정난으로 2002년 해산된다. 그리고 동년에 다시 재창단하여 만들어진 FC 바커 티롤이 현재의 바커 인스브루크이며, 예전처럼 재정난에 시달리지 않고 있다.
바커 인스브루크가 중위권으로 마감한 2021-22 시즌 이후, 클럽은 다음 시즌에 대한 라이선스를 신청하지 않았고, 상설중재재판소는 제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클럽은 최하위가 되었고, 4부 리그인 란데스리가(티롤러 리가)로 강등되었다.
[1] #[2] 2002년 6월 21일/재창단[3] 합병에 의한 팀명 변경인데 당시 FC 바커 인스브루크를 합병했던 팀이... 따라서 이 팀의 역사가 해당팀의 역사와 겹치는 내용이 많다. 다만 바커 인스브루크의 유스팀 역할을 하였다.[4] 오스트리아 1부 리그가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로 새로 출범한 시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