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7-24 14:24:10

10cc


10cc
결성 1972년 영국 잉글랜드 그레이터맨체스터 스톡포트
장르 아트 팝, 아트 록, 팝 록, 소프트 록
클래식 라인업 에릭 스튜어트
그레이엄 굴드먼
케빈 고들리
롤 크렘
주요 레이블 UK 레코드, 머큐리 레코드
대표곡 "Donna", "Rubber Bullets",
"The Wall Street Shuffle", "I'm Not in Love",
"Art for Art's Sake", "The Things We Do for Love",
"Dreadlock Holiday"

1. 개요2. 결성 이전: 맨체스터의 직업 음악가들3. 밴드명의 유래4. 역사
4.1. UK 레코드 시절 (1972~1974)4.2. 머큐리 이적과 전성기 (1975~1976)4.3. 분열 (1976)4.4. 스튜어트-굴드먼 체제 (1977~1983)4.5. 해체 이후: 각자의 길4.6. 재결성과 현재
5. 음악적 특징
5.1. 패스티시와 풍자: '팝에 대한 팝'5.2. 두 개의 축5.3. 스튜디오라는 악기
6. I'm Not in Love7. 멤버
7.1. 클래식 라인업 (1972~1976)7.2. 주요 투어·후기 멤버
8. 디스코그래피9. 평가와 영향10. 여담

1. 개요

1972년 영국 잉글랜드 스톡포트에서 결성된 밴드. 클래식 라인업은 에릭 스튜어트(Eric Stewart), 그레이엄 굴드먼(Graham Gouldman), 케빈 고들리(Kevin Godley), 롤 크렘(Lol Creme)의 4인조다.

네 명 전원이 작곡, 리드 보컬, 멀티 악기 연주, 프로듀싱을 모두 소화하는 극히 드문 구성으로, 자체 소유 스튜디오에 기반한 정교한 사운드 공학과 팝 음악의 관습 자체를 소재로 삼는 풍자·패스티시 작법을 결합해 1970년대 영국 팝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Rubber Bullets", "I'm Not in Love", "Dreadlock Holiday"로 UK 싱글 차트 1위를 세 차례 기록했으며, 특히 "I'm Not in Love"는 팝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프로덕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통산 음반 판매량은 3천만 장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밴드의 정체성을 요약하는 핵심은 내부의 두 작곡 팀 사이의 긴장이다. 스튜어트-굴드먼 조가 멜로디와 상업적 완성도를, 고들리-크렘 조가 개념적 실험과 전위를 담당했는데, 1972~1976년의 걸작들은 이 긴장의 산물이었고 1976년의 분열은 그 긴장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2. 결성 이전: 맨체스터의 직업 음악가들

10cc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는 이들이 풋내기 밴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결성 시점에 네 사람은 이미 10년 가까이 영국 팝 산업의 안팎 — 히트곡 청부 작곡, 세션, 익명의 대필 녹음, 스튜디오 운영 — 을 두루 경험한 베테랑이었고, 바로 이 이력이 훗날 10cc 특유의 '팝에 대한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했다.

에릭 스튜어트(1945~)는 웨인 폰태나 & 더 마인드벤더스의 기타리스트로 "The Game of Love"(1965)의 미국 빌보드 핫 100 1위를 경험했고, 폰태나 탈퇴 후에는 마인드벤더스의 리드 보컬로 "A Groovy Kind of Love"(영·미 2위)를 불렀다. 1968년 밴드 해산 무렵 스톡포트의 한 녹음실 지분을 인수해 '스트로베리 스튜디오(Strawberry Studios)'로 개명했는데[1], 이 스튜디오 소유가 이후 10cc 미학의 물적 토대가 된다.

그레이엄 굴드먼(1946~)은 1960년대 중반 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청부 작곡가 중 한 명이었다. 야드버즈의 "For Your Love"와 "Heart Full of Soul", 홀리스의 "Bus Stop"과 "Look Through Any Window", 허먼스 허미츠의 "No Milk Today" 등이 그의 펜에서 나왔다. "For Your Love"의 노골적인 상업성에 반발해 순수 블루스를 고집하던 에릭 클랩튼이 야드버즈를 탈퇴한 일화는 유명하다. 1969년에는 뉴욕의 버블검 팝 히트 공장 캐서네츠-캐츠 프로덕션(Super K)에서 전속 작곡가로 일하며 컨베이어 벨트식 히트곡 제조를 몸으로 겪었는데, 본인은 이 시기를 소모적이었다고 회고했지만 역설적으로 이 경험이 팝 형식을 '신앙'이 아니라 '재료'로 다루는 10cc적 태도의 원천이 되었다.

케빈 고들리(1945~)와 롤 크렘(1947~)은 맨체스터 북부 유대계 커뮤니티에서 자란 소꿉친구로(굴드먼 역시 같은 지역의 유대계 출신이다), 둘 다 미술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아트 스쿨 세대다. 고들리는 굴드먼의 밴드 더 모킹버즈에서 드럼을 쳤고, 고들리와 크렘 두 사람은 1969년 프래브조이 앤드 런시블 스푼(Frabjoy and Runcible Spoon)이라는 기묘한 이름의 듀오로 음반을 내기도 했다. 이들의 개념미술적 감각은 10cc의 풍자성, 그리고 훗날 뮤직비디오 혁명의 뿌리가 된다.

네 사람은 1960년대 말부터 스트로베리 스튜디오를 근거지로 뭉쳤다. 굴드먼이 미국에서 받아 온 버블검 청부 물량을 나머지 셋과 함께 익명으로 처리했고[2], 닐 세다카의 재기작 Solitaire(1972)에서는 백밴드를 통째로 맡았다. 1970년에는 스튜어트·고들리·크렘이 드럼 사운드를 실험하다 만든 "Neanderthal Man"을 핫레그스(Hotlegs) 명의로 발표해 UK 2위에 오르고 세계적으로 약 200만 장을 팔며 밴드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1972년, 고들리와 크렘이 만든 1950년대 두왑 패러디 "Donna"를 들은 조너선 킹이 자신의 레이블 UK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이들에게 10cc라는 이름을 붙였다. "Donna"는 UK 2위에 올랐다.

3. 밴드명의 유래

공식 설명은 조너선 킹이 "10cc가 세계 최고의 밴드가 되었다"는 간판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훨씬 널리 퍼진 속설은 남성의 평균 사정량인 9cc에 1cc를 더해 '평균 이상'을 뜻한다는 것으로, 킹 본인은 부인했지만 멤버들이 인터뷰에서 이 속설을 재미 삼아 언급하곤 하면서 반쯤 공인된 전설로 굳어졌다. 어느 쪽이 진실이든, 저속한 농담과 세련된 음악 사이의 낙차 자체가 이 밴드를 잘 요약한다.

4. 역사

4.1. UK 레코드 시절 (1972~1974)

데뷔 앨범 10cc(1973)는 1950년대 미국 대중문화 — 두왑, 로큰롤, 할리우드 — 를 통째로 패러디의 재료로 삼았다. 교도소 폭동을 비치 보이스풍 하모니와 흥겨운 로큰롤에 실은 "Rubber Bullets"가 UK 1위에 올랐는데, 당시 북아일랜드 분쟁에서 실제로 고무탄이 사용되고 있었던 탓에 정치적인 곡으로 오해받아 방송가가 곤혹스러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밴드는 미국 감옥 영화의 패러디라고 해명했다.[3] "The Dean and I"도 UK 10위에 올랐다.

2집 Sheet Music(1974)은 지금까지도 평론가들이 10cc의 최고작으로 가장 자주 꼽는 앨범이다. 금융가를 풍자한 "The Wall Street Shuffle"(UK 10위), 스스로를 세계 최악의 밴드라 칭하는 자기풍자 곡 "The Worst Band in the World" 등, 곡 단위가 아니라 소절 단위로 장르가 전환되는 압축적이고 정보 밀도 높은 작법이 이 앨범에서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4.2. 머큐리 이적과 전성기 (1975~1976)

1975년 밴드는 머큐리(포노그램)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거액의 계약을 맺고[4] The Original Soundtrack(1975)을 발표한다. 앨범은 8분이 넘는 3부작 샹송풍 오페레타 "Une Nuit a Paris"로 문을 여는데, 몇 달 뒤 발표된 의 "Bohemian Rhapsody"와 다중 파트 구성이 유사해 자주 비교되며 영향을 주었다는 설도 회자되지만 확증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앨범에는 "I'm Not in Love"가 있었다. UK 1위, 미국 빌보드 2위에 오른 이 곡은 밴드를 단숨에 세계적 반열에 올렸다(상세는 후술). "Life Is a Minestrone"도 UK 7위를 기록했다.

4인조의 마지막 앨범이 된 How Dare You!(1976)는 힙노시스의 커버 아트로도 유명하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관용구를 돈 문제로 비틀어 예술의 상업화를 비꼰 "Art for Art's Sake"(UK 5위), 항공사 광고 캠페인 속 승무원에 대한 몽상을 그린 "I'm Mandy Fly Me"(UK 6위)가 히트했다.

4.3. 분열 (1976)

전성기의 정점에서 고들리와 크렘이 탈퇴한다. 직접적인 계기는 두 사람이 발명한 기타 장치 '기즈모(Gizmo)'였다. 모터로 회전하는 바퀴가 기타 현을 마찰시켜 현악 합주 같은 무한 서스테인을 내는 장치인데, 이를 시연하려고 시작한 녹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코미디언 피터 쿡과 재즈 보컬 세라 본까지 참여한 3장짜리 LP Consequences(1977)가 되었다. 야심작이었으나 상업적으로 참패했고(훗날 컬트적 재평가를 받는다), 기즈모의 상용화 시도 역시 좌초했다. 다만 지미 페이지레드 제플린In Through the Out Door에서 이 장치를 사용하는 등 흔적은 남겼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방향성 차이였다. 고들리와 크렘은 3분짜리 싱글의 세계에 흥미를 잃어 갔고, 스튜어트와 굴드먼은 밴드의 지속을 원했다. 상업성과 실험성의 균형이라는 10cc의 존재 조건 자체가 애초에 지속 불가능한 긴장이었던 셈이다.

4.4. 스튜어트-굴드먼 체제 (1977~1983)

남은 두 사람은 10cc라는 이름을 유지했고, Deceptive Bends(1977)의 "The Things We Do for Love"(UK 6위/US 5위)와 "Good Morning Judge"(UK 5위)로 2인 체제로도 상업적 건재를 입증했다. 이때부터 드러머 폴 버지스(1973년부터 투어 참여)가 정식 합류하고 기타리스트 릭 펜 등이 가세해 밴드 체제가 재편된다. 다만 실험성이 줄고 매끈한 소프트 록으로 기우는 경향에 대해 평단의 반응은 갈렸다.

Bloody Tourists(1978)의 레게 패스티시 "Dreadlock Holiday"는 밴드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UK 1위가 되었다. 자메이카를 여행하는 백인 관광객의 허세와 공포를 관광객 자신의 입을 빌려 풍자한 곡으로, 크리켓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사랑한다고 정정하는 후렴이 유명하다. 오늘날에는 문화적 전유 논쟁의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풍자의 표적이 자메이카가 아니라 관광객 쪽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1979년 1월 스튜어트가 심각한 교통사고로 두부 손상과 청력 이상을 입으면서 밴드는 동력을 잃는다. Look Hear?(1980), Ten Out of 10(1981), Windows in the Jungle(1983)이 연이어 상업적으로 하락했고, 1983년 사실상 해체한다. 여담으로 이 시기 굴드먼은 라몬즈Pleasant Dreams(1981)를 프로듀스하는 이색 경력을 남겼다. 스튜디오 완벽주의의 화신이 펑크의 아이콘을 만진 셈이다.

4.5. 해체 이후: 각자의 길

고들리 & 크렘은 듀오로 "Under Your Thumb", "Wedding Bells", "Cry"(1985) 등을 히트시켰지만, 음악사보다 영상사에 더 큰 족적을 남겼다. 폴리스의 "Every Breath You Take", 듀란 듀란의 "Girls on Film", 허비 행콕의 "Rockit", 프랭키 고즈 투 할리우드의 "Two Tribes" 등 MTV 시대를 정의한 뮤직비디오들을 연출했고, 자신들의 곡 "Cry"의 비디오에서 선보인 얼굴 디졸브 기법은 디지털 모핑 이전의 아날로그 모핑 시도로 영상 기술사에 기록된다. 1988년 듀오 해산 후 고들리는 U2 등의 비디오 감독으로, 크렘은 트레버 혼 사단[5]에서 활동을 이어 갔다.

에릭 스튜어트폴 매카트니의 1980년대 작업(Tug of War 코러스, Press to Play 공동 작곡 등)에 깊이 관여했고, 그레이엄 굴드먼은 앤드루 골드와 결성한 왁스(Wax)로 "Bridge to Your Heart"(1987)를 히트시켰으며 2014년 미국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6. 재결성과 현재

1990년대 초 스튜어트와 굴드먼이 10cc를 재가동해 ...Meanwhile(1992)[6]Mirror Mirror(1995)를 냈으나 반향은 크지 않았고, 원년 4인의 완전한 재결합은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1999년부터는 굴드먼이 이끄는 투어 밴드로 존속하고 있다. 현재 라인업은 굴드먼과 릭 펜(1976년 합류)을 축으로 키스 헤이먼, 이언 호널, 벤 스톤으로 구성된다. 스튜어트는 라이브 활동에서 은퇴한 뒤 자신이 빠진 밴드명 사용에 아쉬움을 표한 바 있어 두 창립자의 관계는 다소 소원해졌다.

한편 2025년 2월에는 "I'm Not in Love" 발표 50주년을 맞아 굴드먼과 고들리가 GG25라는 이름으로 신곡 "Don't Want to Go to Heaven"을 발표했다.[7] 고들리는 2020년 크라우드소싱 방식으로 제작한 솔로 앨범 Muscle Memory를 내기도 했다. 2026년 현재 밴드는 'And Another Bloody Greatest Hits Tour'라는 자조 섞인 제목의 영국 투어를 진행 중이다.[8]

5. 음악적 특징

5.1. 패스티시와 풍자: '팝에 대한 팝'

록이 진정성(authenticity)을 최고의 가치로 떠받들던 1970년대에 10cc는 정반대의 길을 갔다. 두왑, 레게, 칼립소, 샹송, 컨트리, 비치 보이스풍 하모니 등 팝의 온갖 양식을 인용부호 안에 넣어 다루었고, 가사는 사랑 노래의 관습 대신 금융 자본, 예술의 상업화, 미디어, 재난 영화, 관광 산업 같은 소재를 겨냥했다. 청부 작곡과 익명의 대필 세션으로 잔뼈가 굵은 이들에게 팝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해부 가능한 '재료'였고, 여기에 고들리·크렘의 아트 스쿨식 개념주의가 결합하면서 훗날 포스트모던 팝이라 불릴 태도를 한참 앞서 선취했다. 비슷한 계보로 스팍스, 스틸리 댄, 프랭크 자파가 함께 거론되지만, 그중 10cc만큼 차트 최상위권과 실험을 동시에 장악한 사례는 드물다.

5.2. 두 개의 축

밴드 내부에는 성격이 뚜렷이 다른 두 작곡 팀이 있었다. 스튜어트-굴드먼 조는 멜로디와 송라이팅 구조의 장인이었고, 고들리-크렘 조는 개념과 실험의 담당이었다. 초기에는 조합이 유동적이어서 "Rubber Bullets"처럼 고들리-크렘-굴드먼의 3인 공작도 있었으나 점차 두 팀 체제로 굳어졌다. 네 명 전원이 리드 보컬과 작곡이 가능했기에 앨범은 곡마다 화자와 양식이 바뀌는 옴니버스적 성격을 띠었는데, 이 다성성이야말로 전성기 10cc의 매력이자 동시에 밴드를 쪼갠 원심력이었다.

5.3. 스튜디오라는 악기

스트로베리 스튜디오의 소유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미학을 결정한 물적 조건이었다. 시간당 요금에 쫓기며 녹음하던 동시대 밴드들과 달리 10cc는 사실상 무제한의 스튜디오 시간을 가졌고, 수 주에 걸친 테이프 루프 합창("I'm Not in Love") 같은 실험은 그 조건 위에서만 가능했다. '스튜디오를 악기로' 쓰는 계보에서 후기 비틀즈와 브라이언 윌슨을 잇는 사례이며, 생산 수단의 소유가 예술의 형식을 규정한 흥미로운 사례 연구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스튜디오에서는 훗날 조이 디비전Unknown Pleasures(1979)가 녹음되는 등, 스트로베리는 맨체스터 음악사 전체에 걸친 유산을 남겼다.

6. I'm Not in Love

10cc의 이름을 영원히 남긴 곡이자 팝 프로덕션 역사의 분수령.

곡의 출발은 스튜어트의 사적인 대화였다. 아내가 왜 요즘은 사랑한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느냐고 묻자 반복하면 말의 가치가 닳는다고 답한 것이 발단이 되어, '사랑하지 않는다'고 우기는 화법으로만 쓰인 사랑 노래, 즉 화자가 부정하면 할수록 사랑이 드러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사랑 노래라는 형식 자체에 대한 해체이자, 10cc식 아이러니가 감상성과 완벽하게 결합한 드문 순간이다.

처음에는 보사노바 리듬으로 녹음했다가 밴드 스스로 폐기했는데, 스튜디오 직원들이 며칠씩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것을 보고 곡을 되살리기로 한다. 문제는 편곡이었다. 밴드는 '목소리로 된 벽'을 원했고, 이를 위해 멤버들이 반음계의 각 음을 열여섯 번씩 유니즌으로 겹쳐 부른 뒤(음 하나당 수십 겹의 목소리), 음별로 테이프 루프를 만들어 믹싱 콘솔의 페이더를 건반처럼 밀고 당기며 코드를 '연주'했다. 흔히 '256개의 목소리'로 회자되는 이 수공업적 공정은 페어라이트 CMI(1979) 같은 샘플러가 등장하기 몇 년 전에 손으로 구현한 보컬 신시사이저였던 셈이다. 곡 중간, 어른은 우는 게 아니라고 다독이는 그 유명한 속삭임은 스튜디오 접수 담당 직원이었던 캐시 레드펀의 목소리다.

6분이 넘는 러닝타임 탓에 레이블은 싱글 편집을 원했지만 밴드는 버텼고, 결과는 UK 1위·US 2위였다. 이후 수많은 커버와 샘플링의 대상이 되었으며,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의 오프닝에 쓰이면서 새로운 세대에게도 각인되었다. 몽롱한 보컬 패드가 만드는 이 곡의 질감은 이후 앰비언트 팝과 드림 팝이 도달할 지점을 예고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2025년 발표 50주년을 맞아 재발매되었다.

7. 멤버

7.1. 클래식 라인업 (1972~1976)

  • 에릭 스튜어트(1945~): 보컬, 기타, 키보드, 엔지니어링. 스트로베리 스튜디오 공동 소유주.
  • 그레이엄 굴드먼(1946~): 보컬, 베이스, 기타. 현재까지 밴드를 이끄는 유일한 원년 멤버.
  • 케빈 고들리(1945~): 보컬, 드럼, 퍼커션. 탈퇴 후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또 하나의 경력을 이룸.
  • 롤 크렘(1947~): 보컬, 기타, 키보드, 기즈모. 고들리의 평생 창작 파트너.

7.2. 주요 투어·후기 멤버

  • 폴 버지스(드럼): 1973년부터 투어 참여, 1977년 정식 합류.
  • 릭 펜(기타): 1976년 합류, 현재까지 재적 중인 최장수 멤버.
  • 키스 헤이먼, 이언 호널, 벤 스톤: 현행 투어 라인업.

8. 디스코그래피

정규 앨범 기준.
연도 앨범 비고
1973 10cc 데뷔 앨범
1974 Sheet Music 평단이 꼽는 대표작
1975 The Original Soundtrack "I'm Not in Love" 수록
1976 How Dare You! 4인조 마지막 앨범
1977 Deceptive Bends
1978 Bloody Tourists "Dreadlock Holiday" 수록
1980 Look Hear?
1981 Ten Out of 10
1983 Windows in the Jungle 해체 전 마지막 앨범
1992 ...Meanwhile 재결성 앨범
1995 Mirror Mirror 현재까지 마지막 정규 앨범

9. 평가와 영향

10cc에 대한 평가는 찬사와 유보가 뚜렷하게 공존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찬사의 축은 명확하다. 작법의 밀도와 위트, 프로덕션의 혁신성, 네 명의 멀티플레이어가 만들어 낸 다층적 사운드는 '뮤지션들이 존경하는 밴드'라는 평판을 만들었고, "I'm Not in Love"의 테이프 루프 합창은 샘플링 시대 이전에 그 발상을 수공업으로 선취한 기술사적 이정표로 인정받는다. 고들리 & 크렘의 뮤직비디오 작업까지 포함하면, 이 밴드의 유산은 절반이 음악사에, 절반이 영상사에 걸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비판의 축도 일관되게 존재해 왔다. '지나치게 영리하다'는 평, 즉 기교가 감정을 앞서고 풍자가 때로 냉소에 그치며 온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특히 1976년 이후 펑크가 폭발하자 영국 음악 저널리즘에서 10cc는 타도해야 할 '스튜디오 완벽주의'의 상징처럼 다뤄졌고, 미국 시장과 평단에서의 성공도 영국에 비해 단속적이었다. 또한 평가가 1973~1976년 4인조 시기의 앨범 4장에 집중되고 이후 시기와의 낙차가 크다는 것이 대체적인 중론이다.

장기적으로는 XTC, 스퀴즈, 블러 등으로 이어지는 영국식 풍자 팝의 전통, 샘플링과 스튜디오 중심의 팝 제작 문화, 그리고 뮤직비디오 미학의 계보 속에서 꾸준히 재조명되고 있다.

10. 여담

  • 밴드의 산실이었던 스톡포트의 스트로베리 스튜디오 건물에는 현재 그 역사를 기리는 명판이 붙어 있다.
  • 2025년, 밴드는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의 '레전드 슬롯' 출연 제안을 거절한 사실을 밝힌 바 있다.
  • 2026년에는 비치 보이스Pet Sounds 기념 영국 공연에 서포트로 이름을 올렸다.[9] 비치 보이스풍 하모니를 패러디하던 밴드가 원조의 무대를 여는 셈이라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 한국에서는 "I'm Not in Love"가 올드 팝 애청곡으로 특히 인지도가 높다.

[1] 스튜디오 이름은 비틀즈의 "Strawberry Fields Forever"에서 따온 것이다.[2] 예컨대 오하이오 익스프레스 명의로 발표된 "Sausalito"의 실제 리드 보컬은 굴드먼이다.[3] 엘비스 프레슬리의 "Jailhouse Rock" 류의 감옥 영화들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밝혔다.[4] 당시 약 100만 달러 규모로 보도되었다.[5] 아트 오브 노이즈 재결성 참여 등.[6] 프로듀서는 스틸리 댄의 명반들로 유명한 게리 카츠였다.[7]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음악으로는 2006년의 다운로드 전용 프로젝트 GG/06 이후 약 20년 만이다. #[8] #[9] 10cc 공식 사이트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