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8 20:56:21

황해도 평산 신라 발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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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3. 외부 링크

1. 개요

1935년, 황해도 평산군에 위치한 신라 고분에서 출토되어 다음해인 1936년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이관된 9세기~10세기 경 통일신라시대의 발걸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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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통일신라)

높이 24.4cm, 입지름 16.2cm, 입지름 16.9cm, 길이 18.5cm.

철제은장금은상감호등(鐵製銀張金銀象嵌壺鐙), 철제금은입사호등 등으로도 불린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1층 통일신라실에 전시되어 있는 한국의 발걸이로, 1935년에 황해도 평산군 일대의 신라인 고분에서 최초 발견하였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 : 쇼와(昭和) 10년도 매장물 관계 > 쇼와(昭和) 10년도 황해도 평산군 발견 철제은장금은상감호등(鐵製銀張金銀象嵌壺鐙) 발견 다음해인 1936년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에서 정식 입수하였고, 일제강점기가 종식된 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되어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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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통일신라 '발걸이' 유물

호등(壺鐙)이란 말을 탈 때 사용하는 등자(발걸이)의 일종으로, 한국 역사학계와 고고학계에서는 황남대총 비단벌레 장식 금동 발걸이와 같은 고리형 등자를 윤등(輪鐙), 덮개 혹은 주머니가 부착된 청동 옻칠 발걸이와 같은 형태의 등자를 호등이라 구별한다. 또한 이 호등은 주머니부분(壺部)의 모양에 따라 다시 앞코의 형태가 강조된 삼각추형(三角錐形) 호등과 표주박 형태로 둥근 모양에 깊이가 있는 표자형(瓢子形) 호등으로 구분된다.

이 표자형 호등 유물의 표면에는 ''이나 '기린', '천마'로 추정되는 '서수(瑞獸)'가 상감기법으로 장식되어 있어 그 화려함을 더하고 있으며, 현재 주로 남아있는 조선 후기의 등자 발걸이들보다도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예를 들어 이 곳에서 같은 호등인 고려 12~13세기의 '철제금은입사등자'와 조선 15~17세기의 '철제은입사도금운용문호등'과 모습을 비교해볼 수 있는데, 별다른 설명 없이 보면 이 신라의 것이 가장 최근의 것으로 보일 정도로 그 화려함이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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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김세린의 전통공예 이야기 ] 2. 입사마구의 세계

지금으로부터 1,100여년 전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시기의 발걸이 한쌍으로, 당시 한국의 기마문화 및 상감입사 공예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사이버박물관 홈페이지에 이 유물을 위한 별도의 페이지를 구축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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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