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7 04:31:06

홍콩 사대천왕

1. 개요2. 구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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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0년대를 풍미한 전설로 남은 홍콩의 톱스타인 네 명의 가수를 뜻하는 말이다. 1992년 미스홍콩선발대회에 1990년대 스타가수인 장학우, 유덕화, 여명, 그리고 당시 기준 스타가 될 가능성이 높은 곽부성이 하객으로 참여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었는데, 사대천왕은 이 자리 이후에 등장한 개념이다. 홍콩에서 가요계의 사대천왕의 개념이 성립된 후에 제5대 천왕의 후보로 주화건, 이극근, 정이건 등이 거론되었으나 이들까지 정식으로 가요계의 천왕으로 포함된 적이 없었다.

대만에서는 제진, 주화건, 왕걸, 동안격이 1990년대 대만 가요계의 사대천왕으로 불렸다.참고 링크 소유붕, 오기륭, 금성무, 임지영(한국에서 임지령으로 알려졌지만, 임지영이 맞는 표기)[1]이 대만 가요계의 사소천왕[2]으로 불렸다. 홍콩 사대천왕으로 불린 네 명이 배우로도 활동하기 때문에 한국인 중에서 일부가 '홍콩 사대천왕'이라는 호칭을 홍콩 영화계의 사대천왕을 지칭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사대천왕은 홍콩 대중 가수 영역에서 비롯된 표현이지 홍콩 영화계와는 관련없는 호칭이라고 한다.

참고로 사대천왕보다 먼저 가요계에서 인기를 얻었던 1980년대 알란탐, 장국영, 매염방은 '무적 3인방'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당시 영화계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홍콩 박스오피스를 휩쓸었던 주윤발, 주성치, 성룡을 쌍주일성(雙周一成)이라고 불렀다. 이후 주윤발, 성룡이 할리우드 진출을 하면서 견고했던 쌍주일성 체제가 무너지고 곽부성, 정이건 주연의 풍운, 정이건, 진소춘 주연의 고혹자 시리즈가 홍콩 박스오피스의 왕좌를 차지하게 된다.

이 홍콩 사대천왕이라는 표현은 원래 홍콩 미디어에서 먼저 썼던 표현이지만, 한국으로 그대로 수입되어 1990년대 초반 한국 연예 미디어[3]를 달구었다. 그리고 한국에도 이 표현이 관용적으로 남아서 '~의 사대천왕'이라 불리고 있다. 사대천왕 문서 참조.

2. 구성원

홍콩 사대천왕
장학우 유덕화 곽부성 여명

장학우, 여명은 가수로 데뷔하여 배우 활동을 겸하고 있다. 유덕화는 1981년에 배우로 먼저 데뷔했으며 1985년부터 가수 활동을 겸하고 있다. 댄서로 데뷔하여 배우 활동도 해온 곽부성은 1990년부터 가수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국내에선 홍콩영화가 인기였던만큼 이들 중 유덕화가 가장 유명했고[4], 다음으로 여명이 유명했다. 유덕화는 한국에서 장국영에 이어 투유 초콜릿 광고에도 출연했으며 본인 생애 첫 콘서트를 한국에서 할 정도였고, 앨범과 영화 홍보차 내한해서 한국의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여명 역시 1990년대 한국에서 한국어 노래[5]와 영어 노래로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


[1] 영을 령의 두음법칙 변화로 생각하고 과도교정을 한 것 같은데, 穎자는 원래 음이 영이다. 임지령은 대만의 다른 여성 연예인인 린즈링의 한국어 발음이다.[2] 한국의 일부 언론 기관은 대만의 사소천왕을 대만의 신 사대천왕으로 소개한 적이 있었다. 대만에서는 주걸륜, 왕리훙, 임준걸이 대만 신 사대천왕으로 불리며, 나머지 한 명은 나지상으로 언급한 곳도 있고 도철(陶喆)이나 반위백(潘瑋柏)으로 언급한 곳도 있다.[3] 방송보다는 스포츠신문과 주간지에서 많이 사용했다.[4] 물론 홍콩배우 전체로 치면 성룡, 주윤발, 장국영 등에 비해 인지도가 밀리나, 유덕화는 출연한 영화도 많아서 한국에서 홍콩 연예인 인지도 선두권은 됐다.[5] 물론 발음은 21세기 K팝 외국인 가수들처럼 철저하게 배우진 못했는지 많이 어설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