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포에니 전쟁의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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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차 포에니 전쟁 시기인 기원전 255년 위기에 몰린 북아프리카 원정군을 구원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향한 로마 해군을 카르타고 해군이 저지하면서 벌어진 해전이다.2. 상세
기원전 255년 초,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크산티푸스가 이끄는 카르타고군에게 바그라다스 전투에서 완패했다. 레굴루스는 500여 명의 장병 및 장교들과 함께 생포되었고, 전투 중 적의 우익 부대를 격퇴한 로마군 좌익의 2,000명만이 전장을 빠져나왔다. 그 후 그들은 해안 도시인 아스피스 시로 도주한 뒤 그곳에서 수적으로 우월한 카르타고군의 포위 공격을 받았다.이 소식을 접한 두 집정관 세르비우스 풀비우스 파이티누스 노빌리오르와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는 생존한 패잔병들을 구하기 위해 350척의 퀸퀘레메(quinquereme: 5개의 노를 갖춘 갤리선)와 300척 이상의 수송선을 이끌고 북아프리카 해안으로 출진했다. 그들은 도중에 코수라 섬[1]을 점령한 뒤 아스피스로 향했다. 카르타고 해군은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200척의 퀸퀘레메를 동원했다.
양측은 아스피스 북쪽의 헤르마이움 곶 앞바다에서 맞붙었다. 해전의 양상은 거의 전해지지 않으나, 카르타고 함대가 해안에 몰린 뒤 로마군이 코르부스를 통해 적선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 후 단숨에 올라타서 제압했다는 이야기는 전해진다.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카르타고 전선 16척이 침몰하고, 114척이 노획되었다고 한다. 로마군의 손실은 거의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학계에서는 카르타고 해군이 에크노무스 해전의 참상으로 인해 경험 많은 선원들을 많이 잃어서 로마군을 저지하기는 역부족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노빌리오르와 파울루스는 카르타고 해군을 격파하고 아스피스에 도착하여 생존한 패잔병들과 합류한 뒤 인근 일대를 대거 약탈하여 식량을 확보한 후 이탈리아로 귀환했다. 그러나 그 해 7월 중순 카마리나와 시칠리아 섬 남동쪽 모퉁이인 파사로 곶 사이의 해상에서 폭풍을 만났다.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두 집정관은 폭풍이 밀어닥치는 상황에 겁을 집어먹고, 전 함대에 해안가로 어서 이동하라고 명령했다. 경험많은 선원들은 이런 상황에서는 해안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안전하다고 주장했지만 집정관들이 이를 묵살해버렸고, 결국 수많은 배들이 암초에 걸려 가라앉았다고 한다(카마리나 해상 사고).
폴리비오스의 기록에 따르면 총 464척의 전선 중 384척이 침몰했으며, 300척의 수송선도 손실되었고, 무려 100,000명 이상의 인력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두 집정관은 목숨을 건져 얼마 남지 않은 생존병과 함께 귀환한 뒤 헤르마이움 해전 당시 확보한 카르타고 함선의 뱃머리를 전리품으로 삼아 기원전 254년 1월 개선식을 거행했다. 일부 학자들은 당시 원로원이 카마리나 참사를 두 집정관의 오판보다는 자연재해로 간주했기에 개선식을 허락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또한 이후로 코르부스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볼 때, 코르부스 때문에 피해가 더 많이 났다고 판단한 로마군이 코르부스를 더이상 쓰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군은 레굴루스의 북아프리카 원정으로 인해 막대한 인력과 전선을 상실했지만, 전쟁을 꿋꿋이 이어가기로 마음먹고 220척의 새로운 선박을 추가로 편성한 뒤 기원전 254년 수륙 협공을 통해 시칠리아 섬의 카르타고 주요 거점인 파노르무스(현재 팔레르모)를 공략했다. 그러나 기원전 253년 북아프리카 해안을 습격하고 귀환하던 로마 함대가 또다시 폭풍을 만나 150척이 침몰하는 파이누르 해상 사고가 벌어졌다.[2] 연이은 참사로 인해 로마군의 전의는 꺾였고, 그 사이에 카르타고군이 대대적인 반격에 착수하면서 파노르무스 전투의 막이 올랐다.
[1] 현재의 판탈레리아 섬. 시칠리아 섬에서 남서쪽으로 100km 떨어져 있고, 튀니지 해안에서 동쪽으로 60km 떨어진 섬이다.[2] 폴리비오스는 이 대함대가 침몰한 장소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파울루스 오로시우스는 루키니아 지방의 서쪽 해안에 있는 파이누르 곶 앞바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