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 양춘일(揚春一, 楊春一) |
본관 | 청주 한씨[2] |
출생 | 1920년 8월 11일[3] |
함경남도 함흥군 남주동면 보고리 184번지 (現 함경남도 함흥시 당보일동) | |
사망 | 1980년 9월 3일 (향년 60세)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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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1920년 8월 11일 함경남도 함흥군 남주동면 보고리(現 함흥시 당보일동)에서 아버지 한제훈(韓濟壎, 1896. 2. 2 ~ 1928)과 어머니 청주 김씨(1893. 9. 18 ~ ?)[4] 사이의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부 한상린(韓尙麟, 1848. 6. 5 ~ 1914. 4. 12)[5]은 1900년(고종 37) 순릉(純陵) 참봉에 제수된 바 있다.토요대학 재학 중에 학도 특별지원병 제도에 의해 일본제국 육군 간부후보생으로 강제 징집되어 중국 파견부대에 배속되었다. 그러던 1944년 10월 일본군 진영을 탈영한 뒤 국민혁명군 중앙군과 함께 장사유격대(長沙遊擊隊)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공작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1945년 2월 호남성 계동현(桂東縣)[6]에서 한국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 본부대에 입대한 뒤 제1분대에 편입되어 활동하다가 8.15 광복을 맞았다.
이후 귀국해 여생을 보내다 1980년 9월 3일 별세했다. 200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