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6-24 19:13:07

하자용


河自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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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1. 개요

임진왜란 시기의 아전.

징비록에 등장하며, 경상우병영의 영리(營吏)였다.

2. 상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정에서는 1590년 조선통신사 부사(副使)로 왜국에 파견되었을 때 '왜적들이 쉽사리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해 인심을 해이하게 하고 나랏일을 그르치게 했다는 이유로 당시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있던 김성일을 파직하였고, 의금부 도사(都事:종5품)을 보내어 그를 체포하고 한성부로 소환하여 하옥시키려 했다.

이때 김성일은 사방으로 흩어진 군사를 소집하고, 경상우도 여러 고을에 격문(檄文)을 보내어 수습할 계책을 세우려고 했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에 경상우도 관찰사(종2품) 김수가 김성일이 잡혀간다는 말을 듣고 길에 나아가서 작별하였는데, 김성일은 자신이 붙잡혀 소환되어 가는 일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은 채, 오직 김수에게 있는 힘을 다하여 왜적들을 토멸하라고 격려하였다.

이것을 본 늙은 영리(營吏) 하자용(河自溶)이 감탄하면서 말하기를,
"자기가 죽는 것은 걱정하지 않고 오직 나랏일만 근심하니, 참으로 충신이다."
하였다.

이후 김성일은 가다가 충청도 직산현에 이르렀을 때, 류성룡 등의 계속된 변호에 힘입어 김성일이 경상도 백성들의 마음을 얻은 것을 알게 된 선조는 노여움은 가까스로 풀었다. 이에 김성일의 죄를 용서한 다음, 경상우도 초유사(招諭使)로 삼아 경상우도 도내의 인민을 효유해서 군사를 일으켜 왜적을 토멸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