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5-25 00:09:53

하야사카 케이스케

이름 하야사카 케이스케(早坂圭介/Keisuke Hayasaka)
생년월일 1984년 6월 19일
출신지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시
포지션 유격수, 2루수, 중견수
투타 우투양타
학력 요코하마소가쿠칸고교
프로입단 2002년 NPB 드래프트 8라운드 지명
소속팀 치바 롯데 마린즈 (2003~2015)
등장곡 Will Smith - Switch[1]
응원가 ARTS - Go! Ska Go![2]
일본시리즈 우승 반지
2005
1. 소개2. 아마추어 시절3. 프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여담

1. 소개

치바 롯데 마린즈소속 야구선수.

2. 아마추어 시절

고등학교가 일본프로야구 선수를 단 한명도 배출 못한 약체 팀이었기 때문에 고시엔에 한번도 올라가지 못했다. 3학년때 지역대회 8강에서 패했으니 고시엔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던 선수. 카나가와현의 고시엔 단골 출전학교는 마쓰자카 다이스케, 나루세 요시히사, 와쿠이 히데아키를 배출한 요코하마(橫浜)고등학교와 하라 다쓰노리, 스가노 도모유키의 모교 토카이대학 부속 사가미(東海大相模)고등학교다.

그래도 어찌어찌 치바 롯데 마린즈의 8라운드 지명을 받고 프로팀에 입단했다.[3] 모교 최초의 프로야구 선수라고 한다.[4]

3. 프로 경력

2003년에는 2군에서 도루왕을 차지하였고, 2004년에는 2군 도루 2위를, 2005년에는 2군 도루왕을 차지하며 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3년 동안 2003년에 14경기 뛴 것 외에는 1군에 올라가지를 못했다. 그나마 2005년에는 2군에서의 활약 덕분에 플레이오프와 2005년 일본시리즈 엔트리에는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대타로 나와 내야안타를 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일본시리즈에서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그 후 2006년에는 2군 도루 3위, 2007년에는 또 2군 도루왕을 차지했다. 그러나 2년 합쳐서 20경기도 1군에서 못 뛴 게 함정. 2008년에서는 1군에서 17경기밖에 못 뛰었지만 2군에서는 또 도루 3위를 찍었다.

2009년에는 외야수 병행에 성공하여 주전 중견수 자리를 차지하는데 성공, 중견수와 유격수 자리를 왔다갔다하면서 데뷔 이후 처음으로 1군에서 풀시즌을 보냈다. 이때 팀 도루 2위를 기록했으며 데뷔 첫 홈런도 쳤다.

그러나 그 후로 다시 1군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대주자나 대수비 요원으로 가끔 1군에 올라오는 것의 그쳤다. 심지어 2005년 신인 시절에도 일본시리즈 엔트리에 들어갔는데 2010년에는 예비 엔트리조차 못 들어갔으니... 이런 기록의 끝판왕은 2012년으로 68경기에서 13타석이라는(...) 아스트랄한 기록을 남겼다. 심지어 이 해에는 1군 타율 .000, 2군 타율 .000으로 한 시즌 내내 1,2군 합쳐서 단 한 개의 안타도 못 쳤다! 시즌 내내 1군에 있엇는데, 대수비나 대주자로만 나와서 타석에 설 일이 없었고, 시즌 내내 1군에 있다 보니 2군 경기를 2경기밖에 못 뛰었다고 한다.

2015년에는 아예 1군에도 올라오지 못했다. 결국 시즌 종료 이후 방출되었다. 결국 은퇴.

4. 플레이 스타일

2군에서 도루왕만 3번이나 찍었고, 2군에서 20도루 이상을 기록한 시즌도 6시즌이나 되는 등 굉장히 빠른 발을 소유하고 있었다. 수비력도 그래서 나쁘지는 않았으나 통산 타율이 1할대일 정도로 극악의 타격이 문제였다. 그럭저럭 준주전으로 뛴 2009년 기록을 보면 OPS가 5할 대에 그칠 정도로 똑딱질만 열심히 했다. 거기다가 16볼넷 44삼진으로 볼삼비도 좋지 못했다. 거기다가 그 해에 12도루를 성공했는데 도루자를 7개나 기록했다. 또한 통산 도루가 26개인데 통산 도루자가 12개이다.

즉 발만 빠르고 타격도 선구안도 주루능력도 좋지 못한 전형적인 대주자/대수비 요원인 셈이다. 한국으로 치면 유재신, 황목치승, 송주호와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하다. 앞의 둘은 그나마 통산 타율이 .240은 나온다. 유재신, 황목치승에 대한 모독

5. 여담


[1] 특이하게도 2011년 때 2PM의 Hands up을 등장곡으로 썼다. 그러나 그 시즌에 30경기도 못 나왔기 때문에 들을 일은...[2] 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 하야사카 GO! 하야사카 GO! 하야사카 GO! 하야사카 붓치기레[3] 치바 롯데의 그 해 드래프트 최후의 지명자였다. 그러나 다른 팀에서는 12라운드까지 지명했다.[4] 이후 하야사카의 모교는 고시엔엔 못나가도 지역 내에서 어느정도 실력을 인정받는 학교로 성장하며 아키야마 쇼고 등의 프로선수들을 추가로 배출했다. 다만 아키야마는 하야사카와는 달리 대학을 거쳐서 프로에 입단했다.[5] 니시오카는 2005 시즌 1군 도루왕, 하야사카는 2005 시즌 2군 도루왕이었다. 그 무임승차범은 하필 최악의 상대를 만난 것이다.택시운전사 따돌린 줄 알고 좋아했는데 프로야구 1군 도루왕과 2군 도루왕이 동시에 뛰어오는 걸 보고 그 무임승차범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6] 早坂는 본인의 성 하야사카. 즉 자신의 이름을 바에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