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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조르주피코

<colbgcolor=#000><colcolor=#fff> 프랑수아 조르주피코
François Georges-Picot
파일:빈 정사각형 이미지.svg
본명 프랑수아 마리 드니 조르주피코
(François Marie Denis Georges-Picot)
출생 1870년 12월 21일
프랑스 파리
사망 1951년 6월 20일 (향년 80세)
프랑스 파리
배우자 마리 푸케
부모 父: 조르주 피코
母: 마르트 바샤송 드몽탈리베
형제 샤를 조르주피코
서훈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1. 개요2. 생애

1. 개요

프랑스의 외교관.

2. 생애

법학 학위를 취득한 후 189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1895년 외교관이 되었다.

1899년부터 1901년까지 코펜하겐 주재 프랑스 대사관 비서로 재임했다.

1903년부터 1905년까지 의화단의 난에서 희생된 프랑스인에 대한 보상위원회에서 비서관으로 활동했으며, 1909년부터 1912년까지 베이징 주재 프랑스 대사관 비서로 재임했다.

1914년 2월 베이루트 주재 프랑스 총영사로 임명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카이로로 향했고 레바논의 마론파와 교류했다가 1915년 파리로 소환되었다.

1916년 5월 영국의 중동 전문가 마크 사이크스와 비밀리에 회동하여 사이크스-피코 밀약을 맺었다.

1917년부터 1919년까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의 고등판무관을 지내다가 같은 해애 특명전권대사가 되었으며, 1920년 불가리아의 고등판무관, 1927년 주아르헨티나 프랑스 대사를 역임하다가 1928년 외교 경력에 마침표를 찍었다.

1940년 6월 25일부터 1941년 8월 2일까지 파리 제18구청장으로 재임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인 1951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프랑수아 조르주피코의 딸인 주느비에브 조르주피코는 자크 바르두와 결혼했으며,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 메이 바르두는 에드몽 지스카르데스탱과 결혼하여 프랑스 제20대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