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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 필사본 중 풍랑가 원문 |
1. 개요
風浪歌박창화의 화랑세기 필사본에서 신라시대 향가라고 기록한 작품. 송출정가(送出征歌), 송사다함가(送斯多含歌)라고도 한다. 다만 현대 학계에서는 '화랑세기 필사본'이 박창화가 창작한 위서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며, 풍랑가 자체도 '~다고(如久)'[1]와 '~뇨(奴)'처럼 중세 이후에야 발달한 문법적 요소가 나타나기 때문에 정말 신라시대의 작품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화랑세기 필사본에는 진흥왕 시절 신라의 대표적인 화랑인 김사다함의 탄생 배경 및 미실과의 야담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를 삼국사기에 실린 사다함의 역사적 행적과 결합하면 아래와 같다.
사다함은 내물 마립간의 7대손으로 급찬 김구리지(金仇梨知)와 제 1세 풍월주(風月主) 위화감의 딸 금진(金珍)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15~16세가 되던 해 562년, 소년 화랑으로 종군해 대가야 정벌에 큰 공을 세우고, 진흥왕으로부터 논밭과 포로 200명을 하사받았으나, 이를 모두 사양하고 알천(閼川)주변의 황무지만을 받았다고 한다.[2]
이때 사다함은 지소태후[3]와 진흥왕의 왕후 사도왕후의 갈등에 의해 강제로 궁에서 출궁당한 미실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미실은 이찬 김세종(金世宗)[4]과 혼인하였는데, 김세종은 지소태후의 세 번째 재혼인 이사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5] 이 때 지소부인은 진골 출신이 아닌 진흥왕의 왕후 사도왕후를 사사건건 견제하여 쫓아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미실이 이를 미리 알고 진흥왕에게 먼저 알리자. 지소부인이 이에 크게 노하여 결국 미실을 궁에서 강제로 내보낸다. 미실이 사다함과 깊게 사랑에 빠졌을 때, 사다함이 대가야 정벌을 위해 멀리 출정하자,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실이 지은 향가가 풍랑가라고 전한다.
그러나 김세종은 미실을 잃어버리자 깊이 상사병에 빠져 괴로워하였고, 결국 보다못한 지소태후는 미실을 다시 김세종의 부인으로 돌아오게 했다. 사다함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미실이 자신의 연인이 될 수 없었고, 이후 사다함은 점차 시름시름 앓다가 벗인 무관랑마저 죽자 결국 17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사다함이 이 때에 미실에 대한 그리운 심정을 담은 향가를 지었다고 하는데, 한역시 답가 청조가(靑鳥歌)로 전한다.
2. 원문
참고3. 해석
4. 김완진의 해석
ᄇᆞᄅᆞ미 부루다
오래 都郞 앞피 불디 말고
믌겨리 티다
오래 都郞 앞 티디 말고
일일 도라오라
다시 맛나 안고 보고
이 됴ᄒᆞᆫ 郞야 자ᄇᆞ몬 소ᄂᆞᆯ
ᄎᆞ마 들리려노
바람이 불다
오래 都郞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치다
오래 都郞 앞에 치지 말고
일찍일찍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 보고
이 좋은 郞이여 잡은 손을
차마 돌리려뇨
오래 都郞 앞피 불디 말고
믌겨리 티다
오래 都郞 앞 티디 말고
일일 도라오라
다시 맛나 안고 보고
이 됴ᄒᆞᆫ 郞야 자ᄇᆞ몬 소ᄂᆞᆯ
ᄎᆞ마 들리려노
바람이 불다
오래 都郞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치다
오래 都郞 앞에 치지 말고
일찍일찍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 보고
이 좋은 郞이여 잡은 손을
차마 돌리려뇨
5. 유창균의 해석
ᄇᆞᄅᆞᆷ 키 불로다
오래 ᄃᆞᄫᆡ야도 郞 앏ᄒᆡ 불디 말고
믈결 키 티로다
오래 ᄃᆞᄫᆡ야도 郞 앏ᄒᆡ 티디 말고
일ᄌᆞᆨ 도라오라
다시 마좃나 안고 보고
이 고ᄫᅵᆯ 郞이야 주몬 손을
ᄎᆞ마 가ᄌᆞᆯ빌리라노
바람이 크게 불다
오래 되어도 郞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크게 치다
오래 되어도 郞 앞에 치지 말고
일찍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 보고
이 괼 郞이여 쥔 손을
차마 견주라뇨
오래 ᄃᆞᄫᆡ야도 郞 앏ᄒᆡ 불디 말고
믈결 키 티로다
오래 ᄃᆞᄫᆡ야도 郞 앏ᄒᆡ 티디 말고
일ᄌᆞᆨ 도라오라
다시 마좃나 안고 보고
이 고ᄫᅵᆯ 郞이야 주몬 손을
ᄎᆞ마 가ᄌᆞᆯ빌리라노
바람이 크게 불다
오래 되어도 郞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크게 치다
오래 되어도 郞 앞에 치지 말고
일찍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 보고
이 괼 郞이여 쥔 손을
차마 견주라뇨
6. 정연찬의 해석
ᄇᆞᄅᆞ미 블다고 ᄒᆞᄃᆡ
郞 앏ᄒᆡ 블디 말고
믌겨리 티다고 ᄒᆞᄃᆡ
郞 앏ᄒᆡ 티디 말고
일일 도라오라
다시 맞나 안고 보고
아흐 郞야 심혼 소ᄂᆞᆯ
ᄎᆞ마 믈리라뇨
바람이 분다고 하되
임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친다고 하되
임 앞에 치지 말고
빨리빨리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 보고
아흐 임이여 잡은 손을
차마 물리라뇨
郞 앏ᄒᆡ 블디 말고
믌겨리 티다고 ᄒᆞᄃᆡ
郞 앏ᄒᆡ 티디 말고
일일 도라오라
다시 맞나 안고 보고
아흐 郞야 심혼 소ᄂᆞᆯ
ᄎᆞ마 믈리라뇨
바람이 분다고 하되
임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친다고 하되
임 앞에 치지 말고
빨리빨리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 보고
아흐 임이여 잡은 손을
차마 물리라뇨
7. 신재홍의 해석
ᄇᆞᄅᆞ미 블로다구 ᄒᆡ도
郞 앏ᄒᆡ 블디 말고
믌겨리 티다구 ᄒᆡ도
郞 앏ᄒᆡ 티디 말고
일일 도라오아
다시 맛나 안고 보고
이호 郞야 우몬 소ᄂᆞᆯ
ᄎᆞ마 ᄀᆞ르려노
바람이 분다고 해도
郞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친다고 해도
郞 앞에 치지 말고
어서어서 돌아와
다시 만나 안고 보고
이렇게 郞이여 움킨 손을
차마 가르려뇨
郞 앏ᄒᆡ 블디 말고
믌겨리 티다구 ᄒᆡ도
郞 앏ᄒᆡ 티디 말고
일일 도라오아
다시 맛나 안고 보고
이호 郞야 우몬 소ᄂᆞᆯ
ᄎᆞ마 ᄀᆞ르려노
바람이 분다고 해도
郞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친다고 해도
郞 앞에 치지 말고
어서어서 돌아와
다시 만나 안고 보고
이렇게 郞이여 움킨 손을
차마 가르려뇨
8. 청조가
사다함의 답가.靑鳥靑鳥 彼雲上之靑鳥
胡爲乎 止我豆之田
靑鳥靑鳥 乃我豆田靑鳥
胡爲乎 更飛入雲上去
旣來不須去 又去爲何來
空令人淚雨 腸爛瘦死盡
吾死爲何鬼 吾死爲神兵
飛入殿主護護神
朝朝暮暮 保護殿君夫妻
萬年千年 不長滅
파랑새야 파랑새야 저 구름 위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내 콩밭에 머무는가
파랑새야 파랑새야 이 내 콩밭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다시 날아들어 구름 위로 가는가
이미 왔으면 가지 말지 또 갈 것을 어찌하여 왔는가
괜히 눈물짓게 하여 마음 여위어 죽게 하는가
나 죽어 귀신 될까 나 죽어 신병 되리
전주에게 날아가 호신하여
아침저녁 전군부처 보호하여
만년천년 죽지 아니하리
胡爲乎 止我豆之田
靑鳥靑鳥 乃我豆田靑鳥
胡爲乎 更飛入雲上去
旣來不須去 又去爲何來
空令人淚雨 腸爛瘦死盡
吾死爲何鬼 吾死爲神兵
飛入殿主護護神
朝朝暮暮 保護殿君夫妻
萬年千年 不長滅
파랑새야 파랑새야 저 구름 위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내 콩밭에 머무는가
파랑새야 파랑새야 이 내 콩밭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다시 날아들어 구름 위로 가는가
이미 왔으면 가지 말지 또 갈 것을 어찌하여 왔는가
괜히 눈물짓게 하여 마음 여위어 죽게 하는가
나 죽어 귀신 될까 나 죽어 신병 되리
전주에게 날아가 호신하여
아침저녁 전군부처 보호하여
만년천년 죽지 아니하리
[1] 18세기부터 나타난다.[2] 다만 이 시대에 개간할 수 있는 토지의 존재는 상당히 중요한 자산이므로 결코 일방적인 손해는 아니었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한다.[3] 법흥왕과 보도부인 김씨의 딸이자 진흥왕의 어머니이며, 법흥왕의 동생인 입종 갈문왕과 혼인하여 진흥왕을 낳았다.[4] 훈차로, 신라어 음독으로는 노리부(弩里夫)나 노종(奴宗) 등으로도 칭한다.[5] 그러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장남이자 김무력의 형으로 기록되어 있어, 김유신과는 큰조부 관계가 된다. 이는 화랑세기 필사본이 위작이라는 대표적인 증거로 거론된다.[6] 헌화가의 '執音乎手'와 같은 향찰이다. 여기서 '手'은 보통 몸의 손이 아닌 칭찬여래가의 '白孫'과 보개회향가의 '修孫'에도 쓰인 '-손'의 음차로 보며 '소(영탄법)'+'ㄴ(관형)'으로 여기고 '執音乎手'을 '잡은'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풍랑가는 '手'를 그대로 손의 뜻으로 쓰고 있는데, 이는 박창화가 참조했다 여기는 1929년 오구라 신페이의 향찰 풀이에서 '執音乎手'를 '잡은 손'이라 직역한 것과 같다. '-손'으로의 해석은 이후 1942년 양주동의 고가연구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