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4 17:26:05

폴타 니그레 섬멸전

폴타 니그레 섬멸전
ポルタ・ニグレ掃滅戦
날짜
2190년 5월 29일 ~ 7월 4일
장소
프린스 해럴드령 남극대륙 코틀랜드 평원 ~ 폴타 니그레 협곡
교전 당사자 부에노스 존데 프린스 해럴드
지휘관 에곤 라우드루프 카렐 슈터밋
유리 크루건
휘트니
병력 부에노스 존데 군
공격 헬리콥터 2,400기
전차, 장병 불명
프린스 해럴드 군
전차 6천 량
장병 24,000명 이상
피해 규모 궤멸
공격 헬리콥터 전멸
전차 5119량 이상
장병 15,707명 이상 전사
결과
프린스 해럴드 군의 승리
1. 개요2. 주요 인물3. 배경4. 전개
4.1. 부에노스 존데의 공격 준비4.2. 프린스 해럴드의 방어 준비4.3. 상륙4.4. 코틀랜드 평원 전투4.5. 폴타 니그레 섬멸전
5.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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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도시 이야기의 에피소드
북극해 전선 폴타 니그레 섬멸전 페루 해협 공방전

1. 개요

다나카 요시키의 장편소설 <일곱 도시 이야기>의 전투.

2. 주요 인물

3. 배경

부에노스 시는 2188년부터 집정관 에곤 라우드루프가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대담하고, 유능하고, 젊고, 군부를 장악했기 때문에 입법의회와 민중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라우드루프는 민중의 지지를 토대로 부에노스 존데의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으며, 일족을 요직에 등용하고 언론을 장악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장차 전 세계를 자신의 발 아래 두고자 했다.

2190년, 그는 취임 2주년 기념집회 석상에서 세력 확장을 위한 군사력 행사를 시사했다. 이는 군사력에 의한 외교적 과제의 해결을 엄격히 금하고 있는 시의 기본법을 어기는 행위였다. 반대파의 추궁에 라우드루프는 '선제적 자위권'을 들어 전쟁을 정당화했다.
"미래 시점에 있어서의 국가적 위기가 지근거리이자 특정방향으로부터의 것이며 그 존재가 명백한 이상, 선제적 자위권을 확립해 그것을 배제하는 것은 위정자의 중대한 책임이며 시민의 신성한 의무이다. 보다 안전하며 행동의 자유가 확보된 미래, 그것이야말로 자손에게 전해야 할 최고의 유산이 아닌가."
"집정관이 말씀하시는 '지근거리이자 특정방향으로부터의 국가적 위기'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질문자의 상상력 부족에는 탄식할 수밖에 없군. 다른 여섯 도시가 더러운 욕망에 휩싸여 동맹을 맺고 부에노스 존데의 독립과 권익을 침해하려 한다면 거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오직 필요최소한의 군사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다나카 요시키, <일곱 도시 이야기>, 손진성, 비채(2011), p.90
물론 '선제적 자위권'이라는 개념은 그저 라우드루프의 독점욕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수사(修辭)에 불과했다. 그리고 라우드루프의 눈에 들어온 도시가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진 남극대륙의 프린스 해럴드 시였다. 그는 프린스 해럴드 시를 공략할 계획을 수립했으며, 그해 5월 두 도시 세력권의 경계점인 드레이크 해협에서 어선의 충돌사고로 부에노스 존데 시민 여섯 명이 익사하자 이를 빌미로 배상을 요구했고 프린스 해럴드 시가 즉답하지 않자 5월 29일 프린스 해럴드 시에 선전포고했다.

전쟁이 벌어지고 라우드루프가 직접 군대를 지휘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반대파들은 라우드루프가 나폴레옹이라도 될 생각이냐고 비판했다.[1]

4. 전개

4.1. 부에노스 존데의 공격 준비

프린스 해럴드 침략을 결정한 에곤 라우드루프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취임 때 부터 고도 500m 이하를 비행하는 공격헬기로 구성된 공중공격사단을 육성했는데, 개전 당시 공중공격사단의 전력은 공격 헬리콥터 2400기에 달했다. 란체스터 법칙에 의하면 프린스 해럴드 군의 전차 6000량이 궤멸해도 헬리콥터는 1470기나 남는다는 계산이 나온다.[2] 그는 이 공중공격사단을 믿고 직접 지휘에 나서 프린스 해럴드로 출격했다.

하지만 원정을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 중에는 에곤 라우드루프의 사촌형 안켈 라우드루프도 있었는데, 그는 독재자의 친족이라는 이유로 반라우드루프파에게 외면받았고, 일족에게도 이단자 취급을 받았다. 결국 안켈은 원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의회에서 제명되었고 반역죄, 국가원수 모욕죄, 정보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감되었고 정권의 나팔수가 된 언론은 안켈을 '라우드루프 가문의 망신'이라고 비판했다.

4.2. 프린스 해럴드의 방어 준비

부에노스 존데 시가 선전포고 한 지 이틀이 지난 5월 31일. 프린스 해럴드 국방군 총사령관 체자레 마렌초는 대장 승진 축하와 총사령부 막료 일동의 대면식을 겸해 자택에서 파티를 열었는데, 마렌초 부인이 만든 젤리 샐러드가 원인이 되어 그날 파티에 온 사람들은 모두 식중독에 걸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졸지에 군 수뇌부가 증발한 정부는 당장 쳐들어오는 부에노스 존데 군을 막기 위해 남아 있는 사관 중 가장 계급이 높았던 카렐 슈터밋 대령을 국방군 총사령관 대리로 임명하였다.[3] 카렐 슈터밋 대령은 참모장으로 유리 크루건 중령을 임명하였고, 유리 크루건 중령은 프린드 헤럴스 시로부터 340km 떨어진 협곡, 폴타 니그레에 함정을 파 부에노스 존데 군을 섬멸하기로 결정했다.

크루건 중령의 의견은 참모들의 의심을 샀다. 원래 그곳은 아무런 전략적 가치도 없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터밋 총사령관 대리는 전략적 가치는 지금부터 만든다며 폴타 니그레에 최대의 보급물자 집적 거점을 건설하고, 부에노스 존데 군의 보급로를 파괴해서 그들을 폴타 니그레로 유인한 뒤 섬멸한다고 설명했다.

4.3. 상륙

2190년 5월 30일, 부에노스 존데 군이 탑승한 상륙함과 수송용 호버크래프트드레이크 해협에 모습을 드러냈다. 프린스 해럴드 군은 적의 상륙을 저지하지 않고, 일부 기갑병력만 파견해 적이 남극에 상륙하고 교두보를 건설하는 것을 정찰한 뒤 귀환했다.

이 행위는 정치인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프린스 해럴드 군이 자랑하는 기갑군단이 활약하기 알맞은 코틀랜드 대평원에서 싸우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크루건 중령은 기갑군단을 모두 부에노스 존데 군을 안심시키기 위한 미끼로 쓰려고 했다. 그는 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허약한 프린스 해럴드 군이 지구전만으로 싸우면 이길 수 없었다고 생각했을 뿐더러, 시간을 끌면 다른 도시에서 조정이나 회담을 명목으로 개입해서 이권을 챙겨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두 도시의 전쟁에 다른 도시들도 하나 둘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산다라 시의 군무장관 요크 골드윈 중장은 군사 개입을 요청했으나 시장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반대했다. 타테메카 시는 6월 20일 프린스 해럴드 시로부터 망명, 또는 난민이 올 경우 인도적 견지에서 수용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4] 뉴 카멜롯과 아퀼로니아는 4월 초에 있었던 북극해 전선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군사 개입을 못했지만, "필요하겠다고 인정될 때는 군사적으로 필요한 행동을 취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4.4. 코틀랜드 평원 전투

6월 22일, 에곤 라우드루프가 이끄는 부에노스 존데 군은 진격 개시 2주 만에 2,500km를 돌파하여 코틀랜드 평원까지 진군했다. 그는 이곳에서 막료들에게 프린스 해럴드의 작전과 그를 깨부술 자신들의 작전을 설명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연설로 마무리했다.
"올림포스 시스템의 부당한 지배도 한 세기 반 후에는 끝난다. 그날이 왔을 때 지상을 지배할 자는 누구인가. 지상의 통일을 우주로 넓혀 갈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자손이다. 그들이야말로 새로운, 그리고 영원한 신들이 될 것이다."
다나카 요시키, <일곱 도시 이야기>, 손진성, 비채(2011), p.117

거의 같은 시각, 프린스 해럴드 군 총사령관 대리 카렐 슈터밋 대령은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우리들은 하늘을 아군으로 삼을 것이다. 오만불손한 올림포스의 신들을 인간의 도구로 이용하기로 하자. 우리들의 앞날은 그리 비관할 정도는 아니다."
다나카 요시키, <일곱 도시 이야기>, 손진성, 비채(2011), p.117

부에노스 존데 군은 후퇴를 개시했다. 그리고 150km 뒤에 프린스 해럴드 군의 기갑사단이 추격하고 있었다. 6월 25일 0시 30분, 두 군대의 거리가 30km까지 좁혀졌으나, 5시 45분 부에노스 존데 군의 공중장갑사단이 프린스 해럴드 군의 기갑사단을 공격했고 부에노스 존데 군은 프린스 해럴드 군을 포위한 뒤 일방적으로 화력을 퍼부었다. 거기에다 방산비리 때문에 프린스 해럴드 군 전차의 장갑판이 설계보다 약해서 부에노스 존데 군의 총알을 막아내지 못했다. 프린스 해럴드 군의 기갑사단은 필사적으로 반격했고 대공 유탄으로 부에노스 존데 군의 공중장갑사단에 어느 정도 피해를 주기는 했으나 결국 열세를 뒤엎지 못하고 참패했다.

서력 2190년 6월 25일 6시 40분, 프린스 해럴드 군이 자랑하는 기갑사단은 한낱 고철로 전락하고 말았다. 2만 4천 명 중 1만 5,707명이 전사했고, 6천 량의 전차 중 5119량의 전차가 파괴되었다. 반편 부에노스 존데 군은 전차 518량과[5] 장병 1,840명, 공격 헬리콥터 156기를 잃었을 뿐이었다.

4.5. 폴타 니그레 섬멸전

코틀랜드 평원 전투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프린스 해럴드 군은 더 이상 정면대결로 부에노스 존데 군과 싸울 능력을 상실하였다. 에곤 라우드루프는 벌써 전쟁에서 이긴 것이라 생각한 것인지 승리한 그날 전승기념식을 개최했고, 그 오만함은 서서히 비대해졌다. 그날 그의 비서관이 실각했는데, 이유는 에곤 라우드루프의 직함 "부에노스 존데의 제일시민, 시정평의회 의장, 국방위원장, 공안위원장, 국방군 최고사령관, 국가민주당 당수, 시립대학 명예철학박사, 일등십자훈장 수상자, 코틀랜드의 승리자인 에곤 라우드루프 원수 각하" 중 시립대학 명예철학박사, 일등십자훈장 수상자, 코틀랜드의 승리자를 빼먹었기 때문이었다. 라우드루프의 참모들은 그를 칭송했고 라우드루프는 장병들에게 장중한 연설을 했다.
"우리의 병사, 우리의 영웅들이여. 자네들은 역사의 창조자임과 동시에 우리의 위업에 대한 증인이 되었다. 고향도시에 귀환한 뒤, 자네들은 경력을 말할 때 그저 코틀랜드의 이름만을 꺼내면 될 것이다. 그러면 말하는 사람이 영웅이라는 사실을 어린아이들조차 이해하고 숭배의 눈길을 제군에게 향할 것이다."
다나카 요시키, <일곱 도시 이야기>, 손진성, 비채(2011), p.122[6]

그때 부에노스 존데 군에 흉보가 전달되었다. 해안 교두보와 코틀랜드와의 전선 사령부 사이에 있는 다섯 개의 보급기지 중 전선과 가까운 두 개의 보급기지가 프린스 해럴드의 별동대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로서 보급기지와 전선의 거리는 400km에서 1,200km로 세 배나 늘어났으나 라우드루프는 이미 주력이 궤멸한 시점에서 보급기지를 파괴해봤자 별 의미 없다고 무시했다.

한편 프린스 해럴드 군의 사령부는 침통해 있었다. 비록 계산된 패배이긴 했지만 무려 1만 5천 명이 넘는 장병들이 전사했다는 사실은 총사령관 슈터밋에게 충격을 준 것이다. 반면 유리 크루건은 별 감흥이 없었다.

자랑하던 기갑사단이 궤멸된 것을 보고 정치가들과 군수산업가는 일제히 군 수뇌부를 비난했다. 그 중에서 국방산업연맹의 이사이자 입법의회 의원인 말콤 월셔라는 사람이 가장 적극적이었는데, 직접 사령부까지 와서 알마릭 아스발과 비교하며 슈터밋을 비판하자 슈터밋은 맥퍼슨 대위를 불러 말콤 월셔를 현역 이등병으로 입대시켜 버렸다. 월셔가 강제로 입대당한 뒤 맥퍼슨 대위는 뒷일을 두려워했으나 슈터밋은 전쟁에서 이긴다면 전쟁 영웅이 되어 그간의 일들이 모두 승리의 요인으로 정당화 될 것이기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편 부에노스 존데 군은 보급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일방적인 승리였다고는 하나 2만 4천이 넘는 대군을 궤멸시키는 것은 부에노스 존데 군에게도 상당한 물자를 소모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연료가 부족해서 프린스 해럴드 시로 진군한다 해도 도착하기도 전에 연료 부족으로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후퇴해서 부대 재편과 보급을 받아야 했지만 전쟁이 길어지면 다른 도시가 개입할 거라는 불안감과 라우드루프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6월 26일, 한 정찰사관이 폴타 니그레 협곡에 프린스 해럴드 군의 대규모 보급기지가 건설된다는 정보를 전하자 에곤 라우드루프는 목표를 바꾸었다. 그는 도시를 공격하는 척 하면서 폴타 니그레의 보급기지를 공격해서 물자를 탈취하고, 그 물자로 프린스 해럴드를 함락한다는 작전을 짰다.

6월 29일, 에곤 라우드루프는 장병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성공의 조건은 적절한 시기와 지리적 이점과 인적자원의 조화, 이 세 가지이다. 시기로 말하자면 뉴 카멜롯, 아퀼로니아 양 시는 전후처리에 쫓기고 있고, 다른 도시는 소극적이어서 진취욕이 없다. 지리적 이점을 말하자면, 다른 모든 도시들은 남극대륙에서 멀어 실력 간섭을 할 수 없다. 인적자원의 조화를 말하자면, 우리 시의 사람들은 집단에 봉사하는 고귀함과 자기희생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다. 마지막 승리가 누구의 손에 들어갈지는 명백하다."
다나카 요시키, <일곱 도시 이야기>, 손진성, 비채(2011), p.127~128

부에노스 존데 군은 폴타 니그레로 진군했고, 이는 프린스 해럴드 군의 사령부에도 전달되었다.

7월 1일, 부에노스 존데 전군은 폴타 니그레 협곡을 진입하였다. 프린스 해럴드 군은 방어에 나섰으나 그 강도가 너무나도 미약해 부에노스 존데 군의 진격을 방해하지 못했다. 협곡에서 30km정도 전진한 부에노스 존데 군은 프린스 해럴드 군이 쌓아놓은 군수물자를 발견하였다. 이들은 너무 기뻐 군수물자를 챙기러 너도나도 달려들었다.

이때 큰 목소리와 함께 몇 발의 총탄이 날아왔다. 그러자 라우드루프는 장병들에게 "쓸어 버려!"라고 명령하였다. 그는 지휘전차에서 상반신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전속 카메라맨이 VTR 카메라로 그 모습을 촬영했다. 부에노스 존데 군은 보급기지 내로 진군했으나 발견한 것은 적군이 아니라 스피커와 자동 발사 장치 였다. 한편 분쇄된 장벽 위로 전차가 넘어가자 그 연기가 라우드루프의 얼굴을 가렸다. 전속 카메라맨은 중요한 순간 독재자의 얼굴을 가린 아군을 욕했다.

그때 라우드루프는 자신의 몸에 묻은 검은 가루가 탄진(석탄가루)임을 알고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뒤 철군을 명령했다. 하지만 좁은 길에서 차량을 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사정을 모르는 후속부대는 여전히 보급기지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 순간 폭발음과 함께 보급기지는 어마어마한 화염에 휩싸였다. 부에노스 존데 군은 화염에 삼켜졌고, 큰 혼란이 뒤따랐다. 장병들은 숭배하던 독재자도 내팽개치고 협곡의 입구로 도망쳤다. 이들은 전방에 프린스 해럴드 군이 나타나 입구를 막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협곡 입구에는 아무도 없었다. 장병들이 환호하며 협곡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그들의 뒤에서 중기관총과 대인 로켓포가 불을 뿜었다. 장병들은 뒤에서 제대로 얻어맞자 반격할 생각도 못하고 재빨리 협곡 밖으로 나가려다 대부분 전사했다.

한편 보급기지 위에서 대기하던 공중장갑사단은 갑작스런 폭발로 인한 불길과 상승기류를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이들은 최대한 상승하지 않으려 했으나 거센 상승기류 속에 밀어 올려졌고 고도 500m를 넘어가자 올림포스 시스템에 의해 하나 둘 격추되었다. 그렇다고 하강하면 불길에 휩싸이고, 고도를 유지하며 도망치려 하면 난기류에 휘말려 절벽에 부딪쳤으며 간신히 협곡을 탈출해도 대기하고 있던 프린스 해럴드 군의 대공포에 격추당했다. 간신히 격추를 면한 공격헬기 104대는 연료부족으로 불시착하여 프린스 해럴드 군에 노획되었다. 헬기에 탑승한 승무원 대부분은 포로가 되었고 극소수만이 도보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집정관이자 총사령관인 에곤 라우드루프는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쳤다. 그는 충실한 측근 수십 명을 잃은 후에야 겨우 폴타 니그레 협곡을 빠져나왔다.

이 전투의 패배로 부에노스 존데 군은 더 이상 싸울 여력을 상실하였고, 결국 고향도시로 철군했다.

5. 결과

폴타 니그레의 패전은 에곤 라우드루프의 위신에 큰 상처를 입혔다. 에곤 라우드루프를 지지했던 부에노스 존데의 정치꾼들은 앞으로의 거취를 고심했다. 7월 4일, 겨우 살아 돌아온 에곤 라우드루프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입법의회를 해산한 뒤, 다음 날 '시의 안정과 단결을 저해하는 위험분자'로서 1천 2백명의 의원, 저널리스트, 시민운동가를 체포, 투옥했다. 그 다음 날에는 60명의 정치범, 사상범을 처형했는데, 그 중에는 에곤 라우드루프의 사촌형 안켈 라우드루프도 있었다. 이후 부에노스 존데는 에곤 라우드루프의 철권통치에 놓이게 되고, 대의제 민주주의는 박살났다.

프린스 해럴드 시는 침략군을 격퇴했다는 기쁨에 휩싸여 있었다. 슈터밋은 영웅이 되었고 수많은 인터뷰가 쏟아졌다. 하지만 크루건은 이혼 조정을 받기 위해 가정재판소에 출두해야 했고, 충치도 치료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울릴 수 없었다.

한편 라우드루프가 '선제적 자위권'을 언급하며 예로 든 여섯 도시가 동맹을 맺고 부에노스 존데를 침공한다는 시나리오는 2년 뒤 현실로 다가왔다.
[1] 러시아에서 참패나폴레옹 1세스당에서 포로가 된 나폴레옹 3세를 라우드루프에 빗댄 것. 그리고 이는 권력 중추에 친족을 등용한 나폴레옹 1세를 통해 똑같이 친족을 등용한 라우드루프를 비판한 것이기도 하다.[2] [math(6000^{2}=(2400^{2} - X^{2})×10)][3] 마침 그날 슈터밋 대령의 아내가 출산 중이었기 때문에 화를 피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이 때 슈터밋 대령의 아내는 세 쌍둥이를 출산했고 딱히 아이를 싫어하는 것도 아닌 슈터밋 대령이었지만 이 업적에는 잠시 말을 잊었다고(...).[4] 그리고 이 발표가 아퀼로니아에서 이주해 온 원예가가 제안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5] 그 중 절반은 프린스 해럴드 군의 기동을 봉쇄하기 위해 고의로 파괴한 것이다.[6] 위엄찬 연설 같지만 사실 이 연설은 옛 사람이 했던 걸 표절했다고 한다. 아마도 나폴레옹이 아우스터리츠 전투 직후 했던 연설을 모방한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