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2b7f><colcolor=gold> 제3군 사령관 페트레 두미트레스쿠 Petre Dumitrescu | ||
출생 | 1882년 2월 18일 | |
루마니아 왕국 도브리도르 | ||
사망 | 1950년 1월 15일 (향년 67세) | |
루마니아 인민공화국 부쿠레슈티 | ||
국적 | [[루마니아 왕국| ]][[틀:국기| ]][[틀:국기| ]] | |
학력 | 육군사관학교 | |
직업 | 군인 | |
계급 | 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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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요
루마니아의 군인.2. 생애
두미트레스쿠는 1882년 티미쇼아라 남쪽에 있는 도브리도르라에서 태어났다. 1901년 포병과 공병학교에 입학하여 1903년에 졸업했다. 1913년 대위로 진급 후 부쿠레슈티에 있는 사관학교에서 추가 훈련을 받으라는 명령을 받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다.두미트레스쿠는 1917년 까지 프랑스와 벨기에 주재 대사관 군무관으로 지내다가 루마니아가 1차세계대전에 참전하자 소령이었던 두미트레스쿠는 제1군을 이끌었다.
1941년 3월 두미트레스쿠는 제3군의 지휘하게 됐다. 1941년 6월 히틀러가 이온 안토네스쿠에게 1940년 국경 이전으로 돌아가겠다고 설득했고, 안토네스쿠는 소련에게 선전포고한다. 바르바로사 작전의 일환으로 그는 북부 부코비나를 공격하고 체르니우치를 점령하여 소련이 점령 한 영토를 탈환했다. 그런 다음 베사라비아를 재탈환[1]하기 위해 베사라비아로 가서 소련군을 격퇴한 뒤 제3,4군을 이끌고 오데사로 가서 독일 제11군과 같이 오데사를 점령한다.
1941년 9월 크림 점령을 위해 만슈타인이 두미트레스쿠와 개인적으로 배치 문제를 조율하여 드니프로강을 넘어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후 아조프해 전투에서 참가하여 독일군의 전선을 루마니아군 제3군이 보충하게 하는 등 아조프해 전투에 기여했다. 이때까지 루마니아군은 42km이상 진군했으며 16,000명에 달하는 포로를 잡았다. 이후 타만 반도로도 진군하여 스탈린그라드로 향하는 독일군 보급로를 확보했다.
1941년 11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스탈린그라드 북쪽에서 루마니아 3군을 비롯한 이탈리아,헝가리군과 같은 동맹국들의 군대가 방어하고있었으나 루마니아 3군이 정찰을 통해 소련군이 전선 근처에서 병력을 모으자 동맹국들이 지원을 요청했지만 독일육군총사령부가 이를 거부하고 소련군이 루마니아 제3군을 돌파하여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 제6군이 포위되어 전멸했다.
이후 두미트레스쿠의 3군은 소련군의 천왕성 작전으로 퇴각했다.
이후 1944년 11월 두미트레스쿠는 소련군이 루마니아 국경 코앞까지 진격하자 소련군과의 교전을 피하고 부쿠레슈티로 퇴각하려 했으나 소련군을 만나 제3군의 병력 130,000명이 포로로 잡힌다. 이때 루마니아는 미하이 1세의 친위쿠데타로 인해 소련과 강화를 맺었으며, 두미트레스쿠도의 병력은 독일군과의 교전 중 4,500명의 독일군을 포로로 잡았다.
전후 1947년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전범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 받았으며 1950년 부쿠레슈티에서 자연사했다.
3. 미디어
- 스틸 디비전 2의 티라스폴 캠페인 추축군 플레이어 역로 등장한다.
[1] 독소전쟁이 일어나기 전 소련이 베사라비아 영토를 요구했기 때문에 베사라비아를 상실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