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패트릭 5세 드 던바 Patrick V de Dunbar | |
생몰년도 | 1285년 ~ 1369년 | |
출생지 | 스코틀랜드 왕국 마치 백작령 | |
사망지 | 스코틀랜드 왕국 마치 백작령 | |
아버지 | 패트릭 4세 드 던바 | |
어머니 | 마조리 코민 | |
형제 | 존, 조지, 세실리, 이사벨라 | |
아내 | 엠렌가르드, 아그네스 랜돌프 | |
자녀 | 패트릭, 존 | |
직위 | 제9대 마치 백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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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 시기에 잉글랜드군에 맞서 싸웠다.2. 생애
이스트 로디언에 위치하고 던바와 마치[1]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마치 백작령은 노섬브리아의 영토에 속했다. 이 지역을 지배하는 던바 가문은 노섬브리아 백작의 한 가문으로, 스코틀랜드 왕족의 혈통을 물려받기도 했다. 아버지 패트릭 4세 드 던바는 본래 스코틀랜드 국왕이 되기 위해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아예 지배하려 들자 1297년부터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지도자 윌리엄 월레스의 편에 섰다. 그는 그런 아버지와 함께 전장에 섰고, 1300년에는 캐러버록 성 공방전에 아버지와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어머니 마조리 코민은 뷰컨 백작 알락산더르 코민의 딸이다. 형제로 존[2], 조지[3], 세실리, 그리고 이사벨라[4]가 있었다.1309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24세의 나이에 제9대 마치 백작이 되었으며, 로버트 1세에게 등을 돌리고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2세를 지지했다. 1314년 배넉번 전투에서 잉글랜드 편에 섰다가 잉글랜드군이 참패하자 에드워드 2세에게 던바 성에 피신할 수 있게 해줬으며, 에드워드 2세가 어선을 타고 런던으로 피신하도록 해줬다. 그 후 로버트 1세와 화해했고, 1315년 4월 26일 에어 의회에 참석해 로버트 1세를 스코틀랜드 국왕으로 받들었다. 13138년 로디언의 보안관으로서 베릭어폰트위드 요새를 잉글랜드로부터 탈환하는 데 기여했다. 1320년 교황청에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인정해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에 서명한 스코틀랜드 귀족들 중 한 사람이기도 했다.
1329년 로버트 1세가 사망한 뒤 5살된 데이비드 2세가 스코틀랜드의 새 국왕이 되었다. 제1대 머레이 백작 토머스 랜돌프가 섭정을 맡았지만 1332년에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그는 퍼스 의회에 의해 왕국의 호국경 중 한 명으로 서명했다. 이후 에드워드 발리올이 잉글랜드 귀족들의 지원을 받으며 스코틀랜드 왕위를 얻기 위해 쳐들어오자 이에 맞서 싸웠으며, 1333년 1월 베릭어폰트위드 성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1333년 7월 할리든 힐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에게 패배한 뒤 항복해야 했고, 다른 스코틀랜드 귀족들과 함께 에드워드 발리올 왕에게 경의를 표했다.
1334년 2월 에드워드 발리올이 주관한 에딘버러 의회에 참석한 그는 발리올이 베릭어폰트위드, 던바, 록스버그, 에딘버러 성을 비롯한 스코틀랜드 남부 카운티 전체를 잉글랜드에 양도한다고 선언하자 반감을 품고 던바 성을 파괴했다. 이에 에드워드 3세는 그에게 던바 요새를 자비로 재건하고 잉글랜드군과 함께 수비하도록 강요했다. 1335년 에드워드 3세와 에드워드 발리올이 스코틀랜드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진군했을 때, 그는 잠자코 있다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귀환하는 잉글랜드군의 후미를 차단하고 제3대 머레이 백작 존 랜돌프를 도와 에딘버러 인근의 버로우뮤어 전투에서 나무르 백작 기 2세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을 격파했다.
1338년, 패트릭 5세가 다른 곳에서 군사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초대 솔즈베리 백작 윌리엄 몬타구가 지휘하는 잉글랜드군이 던바 성을 포위했다. 하지만 패트릭 5세의 아내 아그네스 랜돌프가 항전 끝에 물리쳤다.
1339년 스코틀랜드 고위 청지기를 맡고 있던 로버트 스튜어트를 도와 퍼스를 함락시켰으며, 그곳에서 스코틀랜드군 제2사단을 이끌었다. 1340년 제5대 서덜랜드 백작 윌리엄 드 모라비아와 함께 잉글랜드 국경을 공격했으나 록스버그 성의 잉글랜드 수비대의 지원을 받은 토머스 그레이와 로버트 매너스의 적군에 패퇴했다. 1346년 10월 데이비드 2세가 12,000명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잉글랜드 북부를 침공했을 때 동행했고, 네빌스 크로스 전투에서 좌익을 이끌었으나 참패를 면치 못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이때 전사한 이 중에는 그의 처남이었던 제3대 머레이 백작 존 랜돌프도 있었다.
1355년 초 잉글랜드군이 자신의 영지를 약탈하자, 이에 보복하기 위해 그해 8월 초대 더글러스 백작 윌리엄 더글러스와 함께 노럼 성주인 히턴의 토머스 그레이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을 유인한 뒤 네스빗 무어 숲에서 기습 공격해 섬멸했다.(네스빗 무어 전투) 이후 프랑스군의 지원에 힘입어 노섬벌랜드를 수시로 침공했고 12월 베릭 공방전을 벌였다.
1357년 네빌스 크로스 전투에서 생포된 이래 런던 탑에 갇혀 있던 데이비드 2세의 석방을 논의하기 위해 베릭에서 잉글랜드 사절단과 협상했으며, 이후 스코틀랜드로 돌아간 데이비드 2세가 몸값을 마련할 때까지 잉글랜드로 넘겨진 인질 중 한 사람이었다. 그 직후 던바 마을은 왕실 도시의 지위를 받았다. 1366년 캔터베리 에 있는 성 토마스 베켓의 성지를 순례했다. 1368년 6월 , 데이비드 2세는 스콘 의회에 던바 백작과 더글러스 백작이 동부 국경의 안보를 전담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1369년경에 사망했을 때 살아있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조카인 조지 1세 드 던바가 마치 백작위를 계승했다.
3. 가족
- 엠렌가르드: 출신이 알려지지 않았다.
- 패트릭 드 던바(? ~ 1351년 9월 이전)
- 존 드 던바(? ~ 1368년 7월 이전)
- 아그네스 랜돌프(1312 ~ 1369): 초대 모레이 백작 토머스 랜돌프의 딸. 잉글랜드 장성 윌리엄 몬타구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에 맞서 1338년 1월부터 7월까지 던바 성을 끝까지 사수한 여성으로 유명하다.
[1] 잉글랜드에도 마치 백작령이 있었기 때문에, 소위 '스코티시 마치'로 일컬어진다.[2] 돈캐스터 및 버니사이드의 영주. 제10대 마치 백작 조지 1세 드 던바의 아버지[3] 목룸의 영주[4] 제4대 클래버링 남작 로저 피츠존의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