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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비에라/클럽 경력/아스날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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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비에라
1995-2006
파일:clwuv8nigph91.jpg
▲ 1996년 계약 당시
소속팀 <colbgcolor=#ffffff,#1c1d1f>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등번호 4
기록
파일:프리미어 리그 로고 (92-07).svg
279경기
28득점 32도움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가로형 화이트).svg
57경기
2득점 2도움
파일:UEFA컵 로고 (1997-2005).svg
11경기
2도움
파일:FA컵(잉글랜드)로고(화이트).svg
47경기
2득점 8도움
파일:칼링컵 로고.svg
7경기
1도움
파일:crR1Bvv.png
4경기
합산 성적
405경기
32득점 45도움
1. 개요2. 이적3. 1996-97 시즌4. 1997-98 시즌5. 1998-99 시즌6. 1999-00 시즌7. 2000-01 시즌8. 2001-02 시즌9. 2002-03 시즌10. 2003-04 시즌11. 2004-05 시즌12. 총평

[clearfix]

1. 개요

파트리크 비에라아스날 FC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

2. 이적

AC 밀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비에라를 본 아스날이 비에라 영입전에 참전했다. 아스날 이전에 먼저 아약스가 접촉했지만 비에이라와 개인 협상에서 실패했고 결국 아스날에 35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입단했다. 비에이라가 추후에 밝히길 아스날에 입단한 큰 이유는 차기 감독으로 벵거가 올 것을 알게되어 였다고 밝혔다.

3. 1996-97 시즌

9월 16일 셰필드 웬즈데이전에서 교체로 투입되어 공식적으로 아스날에서 데뷔했다. 첫 시즌인데도 불구하고 바로 팀에 주전을 차지했다. 바로 훌륭한 활약을 보였기에 비에이라는 바로 아스날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총 38경기에 출전했고 아쉽게도 리그는 3위를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하지 못했다.

1996-97 시즌: 38경기(선발 37경기) 2골 4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1 30 1 2 4
UEFA컵 1 1 0 0 0
FA컵 3 3 0 0 0
코카콜라컵 3 3 0 0 0
합계 38 37 1 2 4

4. 1997-98 시즌

아스날에서 맞이하는 두번째 시즌 비에이라의 파트너로 에마뉘엘 프티가 영입되었다. 그 둘은 우월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막강한 중원 장악력을 보여주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에서 골을 기록했지만 무릎 부상으로 결장하게 되었다. 한 달 정도 부상으로 소화하지 못했고 곧바로 12월에 복귀했다. 비에이라는 훌륭한 활약을 바탕으로 프리미어리그와 FA컵 더블을 이루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1997-98 시즌: 46경기(선발 43경기) 2골 6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3 31 2 2 4
UEFA컵 2 2 0 0 0
FA컵 9 8 1 0 2
코카콜라컵 2 2 0 0 0
합계 46 43 3 2 6

5. 1998-99 시즌

비에이라는 여전히 훌륭한 활약을 계속해서 보였고 리그는 아쉽게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내주었지만 비에이라는 파트너였던 프티와 함께 PFA 올해의 팀을 수상했다.

1998-99 시즌: 42경기(선발 42경기) 3골 4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4 34 0 3 3
챔피언스 리그 3 3 0 0 1
FA컵 4 4 0 0 0
채리티 실드 1 1 0 0 0
합계 42 42 0 3 4

6. 1999-00 시즌

99-00 시즌 비에이라는 웨스트 햄과의 경기에서 디 카니오에게 거친 반칙으로 퇴장 당했는데 퇴장을 당하는 과정에서 상대 팀 선수였던 닐 러독에게 침을 뱉었고 이 행위로 인해 6경기 출장 정지 징계와 45,000 파운드의 벌금을 선고 받았다. 비에이라와 아스날에게 실망스러웠던 시즌이었는데 리그 우승을 차지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무려 18점 차로 2위를 기록했다. 그래도 비에이라의 활약은 훌륭해서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1999-00 시즌: 39경기(선발 38경기) 2골 3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0 29 1 2 3
챔피언스 리그 6 6 0 0 0
FA컵 2 2 0 0 0
채리티 실드 1 1 0 0 0
합계 39 38 1 2 3

7. 2000-01 시즌

00-01 시즌 비에이라는 개막전 부터 퇴장을 당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경기였던 리버풀 전 또 퇴장을 당했다. 그리고 3번째 경기였던 찰턴 전 2골 1도움을 기록하여 맹활약했지만 비에이라는 이전 퇴장들로 인해 출장 정지 5경기 징게를 내렸다. 잉글랜드 언론은 비에이라를 강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벵거와 그의 동료 선수들은 그를 비호했으며 비에이라 또한 이러한 비판들로 인해 본인의 플레이 스타일을 바꿀 생각은 없다고 말했으며 아스날에서 계속 남아서 뛰고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또다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리그 우승을 내어주자 비에이라는 구단이 우승에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시즌 종료 후 비에이라는 이번 시즌 프티와 오베르마스를 바르셀로나에 매각 한 행위를 비판했으며 이러한 소동이 벌어지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비에이라의 영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비에이라는 아스날이 이러한 행보를 계속 보인다면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도 획득하지 못할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2000-01 시즌: 48경기(선발 45경기) 6골 5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0 28 2 5 4
챔피언스 리그 12 12 0 0 0
FA컵 6 5 1 1 1
합계 48 45 3 6 5

8. 2001-02 시즌

01-02 시즌 결국 비에이라는 팀에 잔류하기로 결정했으며 프리시즌을 소화했다. 비에이라는 토니 아담스가 말년이였던 2001년부터 부주장을 맡았고, 부주장이 된 첫 시즌인 2001-02 시즌에 또다시 리그와 FA컵을 거머쥐며 다시 더블을 달성한다.

2001-02 시즌: 54경기(선발 53경기) 3골 4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6 35 1 2 2
챔피언스 리그 11 11 0 1 1
FA컵 7 7 0 0 1
합계 54 53 1 3 4

9. 2002-03 시즌

02-03 시즌 토니 아담스가 은퇴하며 비에이라가 아스날의 주장을 맡았다. 비에이라는 " 내 어깨에 책임을 지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그 부담감은 나를 더 나은 사람, 선수로 만들어 줄 것이다." 라고 밝혔다. 리그를 소화하다 첼시 전에서 지안프랑코 졸라에게 태클을 시도하다가 퇴장당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레퀴프와의 인터뷰에서 온 몸이 아프고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벵거는 선수에게 그러한 특별 대우를 할 수는 없다며 거절했다.

실제로 이 시즌 동안 비에이라는 무릎 부상으로 신음했으며 지난 시즌들과는 다르게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다. 비에이라의 영향력은 팀 내에서도 상당했기에 그의 부재는 크게 느껴졌고 다시 리그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내주었다.

2002-03 시즌: 42경기(선발 42경기) 4골 5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4 24 0 3 3
챔피언스 리그 12 12 0 1 0
FA컵 5 5 0 0 2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42 42 1 4 5

10. 2003-04 시즌

2003년 여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첼시 등 여러 빅클럽들이 비에이라를 영입할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비에이라는 아스날에서 잔류를 선언하며 2007년까지 재계약을 맺었다. 이 시즌 지우베르투 시우바, 로베르 피레스 등과 함께 강력한 미드필더진을 형성하여 26승 12무 승점 90점으로 그 유명한 무패 우승을 달성한다.[1]

2003-04 시즌: 44경기(선발 43경기) 3골 6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9 29 0 3 4
챔피언스 리그 7 6 1 0 0
FA컵 5 5 0 0 1
칼링컵 2 2 0 0 1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44 43 1 3 6

11. 2004-05 시즌

04-05 시즌에도 레알 마드리드의 페레즈 회장이 비에이라의 영입을 추진했으나 비에이라는 잔류를 선언하며 아스날에 애정을 표시했다. 이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에서 유명한 키노게이트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새로 무리뉴의 첼시가 리그를 강력하게 휩쓸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밀리며 3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 후 에버튼 경기부터 무패를 기록하며 리그를 2위로 마무리했다. 그래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FA컵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며 FA컵 우승을 기록했다.

2004-05 시즌: 44경기(선발 44경기) 7골 7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2 32 0 6 6
챔피언스 리그 6 6 0 0 0
FA컵 6 6 0 1 1
합계 44 44 0 7 7

12. 총평

당시 월드클래스 선수로 도배되다시피한 아스날인데다가 공격진에서 티에리 앙리, 데니스 베르캄프 조합이 쩔기도 해서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는 적지만 아스날에서 비에라의 존재감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라이벌이던 맨유의 공격적인 영입 정책과 달리 아스날은 소극적인 영입 정책을 펼쳤고 비에라는 항상 불만을 제기해왔다. 레알 마드리드가 매년 여름마다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은 유명한 일. 비에라도 레알로 갈 것처럼 행보를 보여오면서도 항상 아스날에는 꼬박꼬박 남았으나 피지컬적인 측면에서 점차 하향세가 오던 그에게 2004-05 시즌이 끝나고 유벤투스가 접근해왔고 비싼 값에 마지막으로 팔 수 있는 시점이라 여긴 벵거 감독이 그에게 새로운 도전을 허락해주었다. 다만 이것도 말이 좋아 새로운 도전이었지 사실상 내친 거나 다름없었다. 이적 이후 인터뷰에서 비에라는 이 당시 나갈 생각이 없었는데도 팀으로부터 재계약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슬프고 당황했다고 말했다. 유벤투스 이적 이후 밝혀진 비화에서는 벵거가 이제 세스크 파브레가스도 써야 하니 비에라에게 주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자극했다고 하는데, 지금이야 세스크가 월드클래스 미드필더 중 하나로 꼽히지만 당시엔 비에라는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였고 세스크는 아무리 미래가 촉망되는 탑 유망주라 한들 17살짜리 꼬맹이었다. 그런 선수를 기용하고자 은근히 밀어내는 모습을 보였으니 비에라 본인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을 일. 물론 비에라 본인도 챔스 트로피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장기적으로 팀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옮기는 데에 따른 소극적인 이적시장 정책을 계속해서 보일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결국 이적을 받아들이고 더 늦기전에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심하면서, 2004-05 시즌 FA컵 우승을 마지막으로 팀을 떠난다.

이후 벵거는 자기 자신이 아스날을 떠날 때까지 비에라의 완벽한 대체자를 구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비에라 수준의 퀄리티를 갖추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그런 퀄리티에 근접한 야야 투레는 유망주 시절 영입하고자 했고, 실제 합의까지 했으나 워크퍼밋 때문에 영입하지 못하고 여러 과정을 거져 결과적으로 맨시티가 가져가버렸다. 또한 그러한 선수를 영입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벵거의 스타일상 영건이 아니라면 무리해서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이기도 하고. 2016년 기준 다들 수준급 활약을 선보이는 아스널의 미드필더진이 가진 최대 약점 중 하나가 피지컬인데[2], 그나마 좀 괜찮은 편인 애런 램지 정도를 제외하면 메수트 외질, 산티 카솔라같은 선수들은 테크닉이나 패스 및 볼 전개 능력은 훌륭할지라도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중원장악력을 가졌다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나마 프랑시스 코클랭이 14-15 시즌에 수비적 역할을 잘 해주면서 역할을 해서 벵거에게 부족한 퍼즐을 하나 메웠고, 15-16 시즌에도 부상 전 까지 활약했으나 비에라의 퀄리티에 많이 모자라는 선수였던 것 역시 사실이다.

문제는 아스날과 경쟁하는 클래스들은 대부분 그러한 피지컬우위, 혹은 완벽한 피지컬적 우위가 아니더라도 태클을 통해 볼을 탈취하여 동료들로 하여금 중원을 장악하도록 하는 스타일의 선수를 웬만해서는 한명씩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에라는 비슷한 클래스의 팀들과의 경쟁에서 이러한 우위를 한가지라도 만들어 줄 수 있는, 벵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슈퍼 퀄리티의 선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약점은 비에라의 이적 이후 아스널이 구단 재정 문제로 인한 지지부진한 영입 등의 문제와 겹쳐 아스널이 오랫동안 트로피와 연을 맺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다.


[1] 이 당시 맨유의 로이 킨과의 라이벌리는 유명했다.[2] 벵거에게 있어 선수들의 피지컬은 전술상 이점을 갖고 + 짱짱한 피지컬로 무장한 무리뉴의 첼시에 항상 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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