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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카 제국 제3대 괴뢰황제 파울루 잉카 Paullu Inca | |
| <colbgcolor=#963655><colcolor=#fff,#fff> 출생 | 1518년 |
| 페루 우아라스 | |
| 사망 | 1550년 (향년 32세) |
| 페루 쿠스코 | |
| 재위 기간 | 제3대 괴뢰황제 |
| 1537년 ~ 1549년 (12년) | |
| 전임자 | 망코 잉카 유판키 |
| 후임자 | 없음(마지막 괴뢰황제) |
| 칭호 | 불명 |
| 부모 | 아버지: 우아이나 카팍 어머니: 불명 |
| 종교 | 잉카 종교 -> 로마 가톨릭 |
1. 개요
잉카 제국의 제8대 황제이자 제3대 괴뢰황제.선대 괴뢰황제였던 투팍 우알파와 망코 잉카 유판키의 뒤를 이어 스페인 제국에 의해 제3대 괴뢰황제로 즉위했다.
2. 생애
파울루 잉카는 우아이나 카팍의 아들로, 우아스카르, 아타우알파, 투팍 우알파, 망코 잉카 유판키의 이복형제이다.망코 잉카 유판키가 즉위한 직후에는, 파울루 잉카는 망코 잉카 유판키의 열성적인 지지자였다. 그랬기에 그는 망코 잉카 유판키가 1535년에 디에고 데 알마그로가 이끄는 스페인 원정대에게 숨겨진 보물들의 위치를 알려주라는 지시 또한 충실히 따랐다. 파울루 잉카는 이때 대사제와도 함께 동행하였는데, 원정대가 보물을 다 찾고 돌아오는 동안 대사제는 원정대에서 몰래 빠져나와 도망쳤다. 이후 망코 잉카가 스페인인들의 탄압에서 탈출하여 잉카 대군을 규합,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알마그로의 원정대가 쿠스코로 돌아온 이후, 망코 잉카는 쿠스코에 대한 대대적인 포위 공격을 하게 된다. 이 당시에 파울루 잉카는 스페인인들의 편을 들었으며, 나중에 망코 잉카가 포위전에 실패하고 후퇴하자 스페인인들에 의하여 새로운 황제에 오르게 된다.
그는 원정대를 도와 충실하게 남아메리카 지역 정복과 안정화 작업을 도왔고, 1539년에는 곤잘로 피사로를 도와 스페인에 반란하는 세력들을 완전히 축출했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그는 카를 5세에게 총독으로 임명받았고, 감사의 뜻을 표하는 편지도 함께 받았다. 1543년에는 가톨릭으로 개종하였으며, 1549년에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여 쿠스코에 있는 성당 지하실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