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4 13:01:51

파스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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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피드족 초대 군주
Fastida | 파스티다
제호 한국어 파스티다
라틴어 Fastida
생몰 년도 미상
재위 기간 250년대?


1. 개요2.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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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역사 기록에 전해지는 게피드족 첫번째 군주.

2. 행적

라틴어 이름 파스티다(Fastida)는 "고정된", "확고한", "안전한"을 의미하는 게르만조어 "* fastuz"에서 유래했다. 요르다네스의 《게티카》(Getica)에 따르면, 게피드족은 본래 고트족과 함께 스칸자(Scandza)[1]에서 살다가 비스툴라 강어귀에 있는 섬으로 이주했다. 이후 고트족은 계속 남하했지만, 게피드족은 섬에 남았고, 그들이 거주하는 섬은 '게페도이우스(Gepedoius: 게피드족의 초원)'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파스티다가 섬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게피드족을 이끌고 남하했다.

파스티다가 이끄는 게피드족은 부르군트족을 거의 완전히 몰살시키고 다른 수많은 부족들을 정복한 뒤 '가파른 산맥 인근'에서 고트족과 맞닥뜨렸다. 파스티다는 게피드족이 그동안 확보한 영토가 가파른 산맥과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오래 거주하기 힘들다고 여기고, 고트족의 왕 오스트로고타(Ostrogotha)에게 토지를 달라고 요청했다. 오스트로고타가 이를 거절하자, 게피드족은 갈티스 시 인근 아우차 강변에서 고트족과 맞붙었다. 양군은 어둠이 내릴 때까지 싸우다가 게피드족이 패배를 인정하고 자기들의 땅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소련의 중세 연구가 엘레나 체슬라보브나 스크르진스카야(1894 ~ 1981)는 부르군트족이 게피드족에게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요르다네스의 기록은 부르군트족이 이후의 기록에도 계속 나오는 걸 볼 때 분명한 오류이며, "다른 수많은 부족" 중에서는 비스툴라 강과 카르파티아 산맥 기슭에 살았던 베네티족이 있었다고 봤다. 그리고 게피드족과 고트족의 전투는 250년대에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291년 트리어에서 거행된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11번째 추도사에 따르면, 게피드족은 반달족과 연합해 타이팔리족과 일부 고트족 동맹과 격돌했고, 다른 고트족은 테르빙기족, 알레만니의 지원을 받은 부르군트족을 격파했다고 한다. 헝가리 역사가 이슈트반 보나(Istvan Bona, 1930 ~ 2001)는 막시미아누스의 추도사에 언급된 전투는 290년경 다키아 지방에서 벌어졌다며, 요르다네스가 언급한 파스티다와 고트족이 맞붙은 전투와 동일시했다. 반면에, 고고학자 쿠르트 호렌트(Kurt Horent)는 248년 이후 카르파티아 산맥 동쪽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거라고 추정한다. 월터 폴은 전투가 248년에서 291년 사이에 벌어졌음에 틀림없다고 추정하며, 카르파티아 산맥 내부 또는 외부에서 벌어졌을 거라고 본다.


[1] 요르다네스는 머나먼 북방의 거대한 섬이라고 묘사했다.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스칸디나비아반도를 일컫는 것으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