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7 19:46:36

파르브즈라반

파르브즈라반
Parvezravan
پرویز رافان
프로필
본명 <colbgcolor=#fff,#1f2023>키스라·파르브즈라반·콰라
이명 승리의 정령
번왕(藩王)
성별 남성
종족 인간
소속 [[수메르(원신)|
파일:원신_수메르_아이콘.png
]] 구라바드 왕국
언어별 표기 파일:미국 국기.svg Parvezravan
파일:중국 국기.svg [ruby(帕维兹拉万, ruby=Pàwéizīlāwàn)]
파일:일본 국기.svg パーヴェズラヴァン

1. 개요2. 설정3. 행적
3.1. 과거
3.1.1. 각종 기록들에서의 행적3.1.2. 진실
4. 여담5. 관련 문서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원신의 등장인물. 현 시점에서는 고인이다.

2. 설정

본명은 키스라(كيسرا). 고아였던 그는 고흐누스(ققنوس)[1]라는 거대한 새의 둥지에서 자라 '훌륭한 이름을 하사받은 자'라는 의미로 '키스라'라는 이름을 부여받았으며 번왕 오르마즈드 샤의 양자로 들어간다.

3. 행적

3.1. 과거

그는 아흔아홉개의 성벽과 고탑을 무너뜨리고 아흔아홉 명의 유목 부족 우두머리들을 쓰러뜨렸으며, 아흔아홉 명의 현자들을 황금 족쇄로 사로잡아 구라바드에 구금하는 등 정복활동을 벌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낙원 「발리·비자」가 모래폭풍에 휩싸이고 삼생 마신 중 하나[2]가 사망하고 백 년 동안 혼란이 이어져 후에 적왕 아흐마르와 초목의 현왕 룩카데바타가 백성들을 한 곳에 모으고 오아시스에 낙원을 재건했다. 이 때가 도금 번왕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묘사된다.
키스라의 업적으로 도금된 오르마즈드의 왕관이 점점 무거워지자 오르마즈드의 목뼈에 무리가 생겨 순금으로 도금된 사슬에 왕관을 묶어서 로비 중앙에 두게 된다. 그렇게 수많은 업적을 세운 파르브즈라반은 오르마즈드로부터 상을 받고 '파비즈'라는 이름을 부여받아 키스라·파비즈라 불리게 되었으며, 함께 딸 시린을 그의 아내로 맞게 했다.

오르마즈드가 급사한 후 사실상 인간들 중 가장 강력한 왕이 되었다. 그러나 "시린의 자식이 왕국에 흉조를 가지고 올 것이다"라는 선령의 예언을 맹신한 왕은 시린이 아들 시루이를 낳자 성년이 되자마자 바로 내쫓고 다시는 발을 들이지말라 명한다. 여기까지가 시린과 시루이의 이야기에 나온 묘사다.[3]

3.1.1. 각종 기록들에서의 행적

구라바드 기록과 투명 유적 기록에 파르브즈라반의 재위 시절에 일어난 사실들을 알아볼 수 있다.

파르브즈라반은 구라바드성의 노예와 하녀들을 징발했고 500명의 병사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정원을 건설했다. 문제가 발생할까봐 병사들과 노예들의 의식주와 취미를 나름 신경 쓴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노예를 위해 7일마다 무료 격투 공연을 벌이라고 명했고 대신 부유한 노예에게 값싼 천민을 고용해 노동을 분담하되 프로젝트 진행이 지연되거나 현장의 질서가 무너질 경우 노예의 노예, 그리고 노예의 주인까지 전부 두 배의 처벌을 받게 된다고 명시했다.[4]

그 후에는 여러 문제를 겪게 된다. 다섯 오아시스의 관개수로망 필터링 시스템이 고장나 황폐화되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던 중 지니 조각을 구조체에 넣는 것이 수리 기계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욱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오아시스의 수호자였던 대지니 페리지스는 대규모 수리에 대한 건의를 거절했으나 자신의 힘을 수로 정화에 사용할 수 있다고 발언했고 정황상 이때 기계에 봉인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구조체에 지니를 넣어서 투입시킨다. 이 과정에서, 오아시스 유지를 위해 인건비를 지불해가며 노동력을 굴리는 것 보단 지니 기계가 일하는 게 싸게 먹히니 아예 노예제를 통째로 폐지시켜 버리고 지니의 피가 흐르는 아내 시린을 착취해가며 지니 조각을 생산했다. 노예를 사용하는 사람은 가혹하게 처벌한 건 덤.

또 다른 문제로 반역의 조짐이 보였다. 「황동 가면」과 그의 추종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는데, 이때 파르브즈라반은 적왕에 대한 신앙심이 옅어졌는지 신전과 조각상이 오랫동안 수리되지 않았고 신관들은 오아시스가 황폐해지고 이단인 황동 가면이 날뛰는 것도 신앙심이 없어져서라고 지적했다. 대신관이 기도를 따로 올렸지만 적왕은 응답하지 않았고 왕후인 시린도 더 이상 국가의 정사를 돌보지 않고 있어 그녀가 요물 왕후라는 소문도 돌기 시작했다. 민중들은 황동 가면의 세력을 더욱 반겼고 신관들을 포함한 귀족세력들은 이들을 반란 세력으로 지정해 경계하고 있었다. 또한, 노예제의 성급했던 폐지는 이전까지 노예제도로 먹고 살았던 노예들과 고용인들이 대거 실업자/범죄자 신세가 되자 황동 가면 세력 쪽에 가담해 반동 인물이 훨씬 더 불어나게 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5]

결국 대반란이 일어났고 반란이 일어난지 13일이 되던 때 황동 가면을 쓴 추종자들이 신상을 파괴하고 파르브즈라반의 조각상까지 전부 쓰러뜨렸다. 구조체들이 이들을 진압해도 숫자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신전도 불에 타고 대신관은 붙잡혀 버렸다. 이 상황에서 기병장군 히베루가 파르브즈라반이 내리는 최후의 왕명을 받든다.

3.1.2. 진실

사실 파르브즈라반은 릴루페르의 아들이다. 자신의 반려였던 오르마즈드의 폭정을 보고 실망한 릴루페르는 자식까지 동원해 삼족을 멸하기로 결심하고 딸 시린과 아들 키스라·파르브즈라반을 이용해 구라바드를 멸망의 길로 빠뜨렸다. 그 과정에서 파르브즈라반에게 지니의 부서진 영혼을 부릴 수 있는 기계까지 꿈을 통해 만드는 방법을 전해주었고 파르브즈라반도 선왕 오르마즈드처럼 폭정을 일삼았다. 결국 황동 가면에 의해 폐위되고 마는데 그 황동 가면의 정체는 시린의 아들 시루이다. 즉, 아들에 의해 폐위된 셈.

이후 왕위에 오른 시루이는 이 3대에 걸친 비극에 괴로워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종의 균열에 빠져 사망, 그 균열에서부터 모래 폭풍이 시작되어 구라바드는 멸망하게 되며, 릴루페르는 진상을 꿰뚫어본 아흐마르의 벌을 받아 영혼이 7개로 나뉘고 현자들에게 각각 나누어 숨기게 했다.

4. 여담

  • 시린과 파르브즈라반 둘 다 릴루페르의 자식이니 왕후인 시린은 아내이자 누이였던 셈이다. 정확히는 친누나. 릴루페르가 마지막 기억을 되찾고 여행자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파르브즈라반이 자신의 누이를 협박해 지성 없는 지니를 더 많이 만들게 했다'고 직접 언급했다.

5. 관련 문서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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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르시아어로 불사조라는 뜻이다. 그리스어 κύκνος는 백조라는 뜻인데 그리스어로부터 유래된 것이다.[2] 육성 아이템 태양같은 권위의 꿈에서 '하지만 꽃의 주인이 태양마저 가린 모래 폭풍에 목숨을 잃은 후, 근심 없던 황금의 낙원도 죽음 속에 파묻히게 되었다.'라는 묘사로 보아 정황상 이때 화신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3] 시루이가 유배된 곳이 바로 비경인 적색 사막의 문턱이다.[4] 여기서 네푸마트라는 이름의 지혜로운 자가 언급되는데 그는 각종 사유를 들어 자주 휴가를 내다가 25일째 되던 날에 파르브즈라반은 아흐마르를 무시하는 놈이 틀림없다며 또 휴가를 내면 구라바드성에서 쫓아낼 거라고 벼르고 있었다. 26일째에 네푸마트가 도망치고 다음 날 4명이 바위에 깔리는 사고가 발생하고 점괘 결과도 불길하게 나와 시공이 중단되었다. 두번째 기록에는 에타라는 하녀가 등장하는데 네푸마트와 마찬가지로 각종 사유를 들어 휴가를 내다가 26일째 직물 문야을 설계할 다른 이를 추천했고 27일째 황사에 사레가 들렸다고 휴가를 냈다. 세번째 기록에서도 이름은 없지만 계속 휴가를 낸 정황이 있는 것으로 보아 파르브즈라반의 시공 계획은 일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5] 이는 파르브즈라반의 행동이 자유의 신 바르바토스의 이념과 정반대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바르바토스는 드발린에게 '자유의 신에게 명받은 자유도 진정한 자유라 할 수 있을까?'라며 자신의 권속과 몬드 시민들이 스스로 자유를 쟁취하길 원했다. 반면 하드라마베스 사막의 고대 오아시스 기록에는 '...그들을 풀어주어야만 이 잔인한 「자유」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쓰여있다. 이는 파르브즈라반의 명령으로 내려진 자유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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