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0 19:53:18

티베트 불교/금강승(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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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2. 기원
2.1. 전통적 관점2.2. 현대적 관점
3. 특징4. 입문5. 계율6. 분류
6.1. 소작ㆍ행ㆍ요가 탄트라
6.1.1. 유상(有相)요가6.1.2. 무상(無相)요가
6.2. 무상(無上)요가 탄트라
6.2.1. 생기차제6.2.2. 원만차제
7. 금강승과 현대사회8. 과학적 연구
8.1. 툭담(thugs dam) 연구
8.1.1. 사후 의식의 연속과 툭담8.1.2. 툭담의 관찰 사례8.1.3. 연구 동향8.1.4. 연구 요약
9. 관련 영상

1.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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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제불(一切諸佛)의 위력(威力)의 총체이자
밀승의 가르침을 결집한 비밀주(秘密主) 금강수보살(Vajrapani)[1]

인도 불교의 최종단계라고 할 수 있는 밀교는 인도 뿐 아니라 티베트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동남아, 동북아 등 다른 아시아 지역들로 전래되었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법맥이 끊기지 않고 독자적인 밀교 종단이 유지되고 있는 불교 전통은 티베트 불교와 일본 불교 뿐이다. 일본에는 중기 밀교까지 전해진 반면 티베트에는 후기 밀교까지 전래되었다. 티베트 대장경에는 밀교부에 해당하는 방대한 경전들이 존재하며 또한 티베트 불교 종파별로도 각자의 독자적인 밀교 전승과 문헌을 갖고 있다.

인도-티베트에서 전래되는 후기 밀교의 형태를 다른 말로 금강승(金剛乘, vajrayana)이라고 한다. '금강'이라는 것은 매우 견고하고 단단한 것을 뜻한다. 방편과 지혜를 분리시키지 않고 합일시켜 단단하게 하기 때문에 금강승이라고 한다. 금강승은 방편승(方便乘, upayayana)이라고도 한다. 바라밀다승보다 많은 선교(善巧) 방편들을 구족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금강승을 과승(果乘, phalayana)이라고도 한다. 수행자가 과(果)로써 도(道)를 삼기 때문이다. 즉 수행의 결과인 불과(佛果)를 수행 방편으로 이용하여 수행자 자신을 밀교의 본존으로 관상하는 청정 인식을 갖게 한다. 금강승은 밀승(密乘, guhyayana)이라 칭하기도 한다. 반드시 엄격하게 비밀을 지키면서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밀교의 가르침과 수행은 비밀로 남아있어야 하며 밀교 수행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관정이나 금강승 수행에 대해서 남에게 알리거나 자랑해서는 안된다. 자칫 자기중심주의, 오만에 빠질 수 있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달라이라마의 밀교란 무엇인가》(설오 譯)

반야승(현교)의 정의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현교', '밀교'는 동아시아에서 유래한 용어이며 인도-티베트 불교에서는 주로 현교를 '반야승(혹은 바라밀승, 경승)' 밀교를 '금강승(혹은 진언승, 속승)'라고 일컫는다. 따라서 본 문서에서도 '밀교' 대신 '금강승'이란 용어로 표기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금강승보다 밀교가 훨씬 친숙한 용어이며 학계에서도 금강승과 밀교를 혼용하므로, '현교/반야(바라밀)승/바라밀승/경승'과 '밀교/금강승/(비밀)진언승/속승' 등을 경우에 따라 혼용하였다.

탄트라(Tantra, 續)라는 용어는 밀교 경전들에 근거한 수행 전통을 말한다. 탄트라라는 말의 본뜻 역시 연속(連續), 계속(繼續), 본속(本續), 밀주본속(密呪本續), 비밀본속(秘密本續)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티벳어로는 ‘규(rGyud)'라고 하는데, 이 역시 같은 의미이다. 탄트라의 내용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주로 관상(觀想)의 과정들, 의례절차, 상징들의 구체적인 묘사를 통한 깊은 철학적 의미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들을 활용한 수행을 통하여 의식을 전환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체계화되어 있다. 즉 ‘탄트라’는 모든 수행 양식과 관념들 그리고 다양한 상징물들과 함께 구전 전승되고 있는 의례 의식과 광범위한 경론들을 포괄하는 말이다.
최로덴,《티벳 불교의 향기》

불교의 만트라(mantra)는 다른 중생에 대한 자비심이나 명료한 사고와 같은 유익한 마음의 상태를 만들어내고 집중하도록 돕는 정교한 도구로 활용된다. 산스크리트어 만트라는 ‘마음’을 의미하는 어근 'man'과 '구제(救濟)하다, 건너가다’를 의미하는 접미사 'tra'로 이루어져 '마음을 구제하다'란 뜻을 갖고 있다. 여기서 '구제하다'란 일반적인 현현과 집착에서 구제한다는 뜻이다.

금강승은 반야승에서 미처 밝히지 못한 더욱 심오한 견해를 상세히 밝히고 있다. 금강승은 반야승의 번뇌 개념보다 더욱 미세한 수준의 번뇌들을 다루고 있으며, 부처의 사신(四身)[2]의 공덕에 대해서도 반야승에서 다루지 않는 사항을 설명한다. 가령 귀류논증 중관학파에서는 의식에 대해 설명할 때 전5식과 제6식의 존재에 대해서만 언급하지만, 밀교에서는 현교에서 언급하지 않는 미세한 소지장(所知障)들과 그것들을 소멸하는 도(道)인 미세한 의식들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단, 티베트 불교에서는 귀류논증 중관학파의 견해에 입각하여 금강승에서 언급하는 미세의식들이 제6식에 모두 포함된다고 보며, 유식학파처럼 제6식 외에 제7식, 제8식 등을 상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불교 수행에 있어 반야승 뿐 아니라 금강승 역시 필수불가결한 가르침이며, 반야승으로 십지보살까지의 과위를 얻는 것은 가능하지만 성불을 위해서는 반드시 금강승의 무상요가 딴뜨라를 성취해야 한다고 티베트 불교에서는 말한다.
  • 수행의 3가지 체계
    이승 삼승 소의 경전 수행

    소승 성문승·독각승 별해탈계 아함경 등 초기 경전 주로 자신의 번뇌를 없애는 수행

    대승 반야승(보살승) 보살계 반야경, 화엄경, 법화경 등 일체중생을 위해 보리심과 육바라밀 수행

    금강승(밀승) 금강승계 구햐싸마자(밀집금강), 차크라삼바라(승락금강), 야만따까(대위덕금강) 등 번뇌의 독을 약으로 삼는 수행

2. 기원

2.1. 전통적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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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강불(Vajradhara)과
84명의 마하싯다(mahasiddha)[3]
"귀담아 잘 들으십시오! 티베트의 선근자들이여!
비밀진언의 금강승이 출현하는 것은 희유한 일이니,
과거의 8억 4천만의 제불여래도 설하지 않았으며,
연등불께서 법륜을 굴리실 때도 설하지 않았으며,
미래에 오시는 제불여래들도 역시 설하지 않으니,
그 유정들이 밀교의 법 그릇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과거 겁초에 겁명(劫名)을 일체장엄이라 부르는 때,
현전왕불의 가르침에 밀법이 출현하였으며,
현재불인 석가세존의 교법에 밀교가 출현하였습니다.
다시 천만 겁을 지나 겁명을 꽃 장엄이라 부르는 때,
문수사리불이 출현하여 현재와 같은 시절이 도래할 때,
그 부처님께서 지금처럼 진언밀교를 선양하게 됩니다.
이 세 겁의 유정들이 밀교의 법기가 되기 때문이며,
이 세 겁이 아닌 시절에는 금강승이 출현하지 않습니다."
《뻬마 까탕(pad+ma bka' thang)》
《밀교의 성불 원리》(중암 譯)

전통적으로 금강승은 석가모니불의 보신불(報身佛)[4]인 지금강불(持金剛佛, Vajradhara)에 의해 설하여졌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강불은 오종성불(五種性佛)의 덕성을 하나로 모은 대보신불(大報身佛)로 밀교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부처이다. 금강승의 가르침은 무상유가의 법기(法器)로 알려진 업과지(業果地)[5]의 남섬부주 유정들을 위해서 단지 한 생애에서 성불할 수 있도록 최상의 근기를 대상으로 설한 비밀의 방편도(方便道)로 설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무상요가부 딴뜨라의 가르침은 대승 가운데 대승이며 최상승법으로 일컬어진다.

특히 이 비밀 금강승의 가르침이 남섬부주에 출현한 것은 오로지 석가모니불의 시대이며, 과거의 연등불이나 미래의 미륵불 때는 금강승의 가르침이 설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인간 수명이 100세에 불과한 오탁악세에 출현한 석가모니불의 교화 대상인 현세의 남섬부주 중생들이 금강승의 큰 연분(緣分)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오직 과거의 현전왕불(現前王佛), 현세의 석가모니불, 미래의 문수사리불[6]이란 세 분의 부처가 출현한 세 겁 때의 중생들만이 금강승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다. 그만큼 금강승과의 인연은 매우 희유한 인연이며 숙세의 매우 큰 선근 공덕 없이는 접할 수 없다고 한다.[7]
《밀교의 성불 원리》(중암 譯)
일반적으로 수트라(sutra)와 탄트라(tantra)는 그들 각자의 연기(nidana)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수트라의 역사는 진언승(mantrayana)의 역사와 분명히 다르다. 이들을 각각 별도로 논의하진 않겠다. 대체로 수트라와 탄트라는 장소, 시간, 스승에 따라 구분될 수 없다. 이것들이 어떻게 인간계에 전해질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탄트라들이 대승 수트라와 함께 동시에 전래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많은 심오한 요가 탄트라와 무상요가 탄트라들은 서로 다른 성취자 스승(siddhacarya)들에게 별도로 획득되면서 점차적으로 등장하였다. 예를 들어 슈리 사라하(Sri Saraha)는 《붓다카팔라(Buddhakapala)》를 얻었고, 루이빠(Luipa)는 《요기니삼차르야(Yoginisamcarya)》를 얻었고, 사로루하(Saroruha)는 《헤바즈라(Hevajra)》를 얻었고, 크리슈나차르야(Krsnacarya)는 《삼푸타틸라카(Samputatilaka)》을 얻었고, 라리따바즈라(Lalitavajra)는 《크리슈나야마리(Krsnayamari)》의 세 부분을 얻었고, 감비라바즈라(Gambhiravajra)는 《바즈라므르따(Vajramrta)》를 얻었고, 쿠쿠리빠(Kukuripa)는 《마하마야(Mahamaya)》를 얻었고, 피토빠(Pitopa)는 《칼라차크라(Kalacakra)》를 얻었다. [...]

진언승의 기원은 그것들의 주석서(sastra)에 근거하고, 또한 해당 전승들에서 본래부터 전해지는 설명들을 종합하여 이해해야 한다.

누가 성스러운 땅(aryadesa)의 성취자(siddha)들에 대해 완벽히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나가르주나(Nagarjuna) 시기에 따라(Tara) 진언 전승의 성취자들만 5천명에 이르렀다고 알려져 있다. 다리까빠(Darikapa)와 크리슈나차르야의 제자들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므로 진언승의 기원은 [그렇게] 이해되어야 한다.
《인도 불교사(rgya gar chos 'byung)》
《Taranatha's History Of Buddhism In India》

17세기 티베트의 학자이자 역사가였던 따라나타(Tāranātha)는 《인도 불교사(rgya gar chos 'byung)》에서 탄트라의 기원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였다. 그는 수트라(현교 경전)의 역사와 탄트라(밀교 경전)의 역사는 서로 별개인 것으로 구분되지만, 대부분의 탄트라와 대승 수트라는 동시에 함께 전래되었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다만 탄트라 중에서도 더욱 심오한 내용을 다루는 요가 탄트라나 무상요가 탄트라는 인간계에 전해질 때 각기 다른 밀교 스승들에게 전해지며 점차적으로 등장했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특정 전승의 문헌에만 의거하여 전체 탄트라의 기원과 역사를 일률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비판하였다. 그는 수많은 탄트라 전승들의 기원에 대하여 각각의 탄트라에 관한 주석서들과 해당 전승들 안에서 전해지는 설명들에 근거하여 각 탄트라의 기원을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2.2. 현대적 관점

탄트리즘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설이 제기되었지만 여전히 탄트리즘의 기원은 분명치 않다. 과연 현 시점에서 탄트리즘의 기원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원을 통해 탄트리즘의 성격을 규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계속되었다.

불교 탄트라와 힌두 탄트라의 기원에 대한 주장들은 대개 한 쪽이 다른 쪽에 의존하였다는 ‘차용 모델(borrowing model)’과 두 탄트라 이면에 공통적인 근원이 존재한다는 ‘기층 모델(substratum model)’의 두 양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불교 탄트라와 힌두 탄트라, 특히 요기니 탄트라들과 샤이바 탄트라들의 공통적인 토대로 일종의 ‘종교적 기층’이 존재한다는 가설은 20세기의 많은 저명한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어 왔다.

'종교적 기층'이란 아리안족의 인도 아(亞)대륙 진출 이전부터 존재하던 토착 부족의 종교와 문화를 의미한다. 비(非) 아리안계 토착 부족들은 아리안 족의 진출 이후에도 주변부에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존속하였다. 이들 부족들의 문화에 담긴 여신(女神) 숭배와 주술적 요소가 점차 아리안 족의 베다(Veda) 전통에 유입되었고 그 결과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에 탄트리즘이 형성되었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이 가설은 1980년대 후반부터 옥스퍼드대의 알렉시스 샌더슨(Alexis Sanderson)에 의해 도전받았다. 샌더슨은 ‘종교적 기층’이라는 것이 결코 지각되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추론되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데에 의문을 품었다. 샌더슨은 우리가 탄트라로서 지각하는 것은 항상 샤이바 탄트라, 바이슈나바 탄트라, 불교 탄트라 등 구체적인 전통에 속하는 탄트라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종교적 기층’ 가설은 불교 탄트라와 힌두 탄트라, 특히 요기니 틸트라들과 샤이바 탄트라들의 많은 공통점들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전혀 설득력을 결여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샌더슨은 비록 요기니 탄트라들이 다양한 의례 등 그 기원에 있어서 샤이바 탄트라들을 상당히 모방했지만, 요기니 탄트라들은 불교의 탄트라로서 샤이바 탄트라들을 배척하며 훌륭하게 기능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용현, 《요기니 딴뜨라들의 기원에 대한 논쟁》

일련의 논의에 대해 세이포트 루엑(D. Seyfort Ruegg)은 자신의 이론에서 오해될 소지가 있었던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논문을 추가적으로 발표했다. 그는 종교적 '기저 모델(substratum model)'을 보충하기 위해 '차용 모델(borrowing model)'이라는 용어를 사용 했고, 샌더슨의 지적에 대해 '종교적 기저'라는 개념이 각 전통들 사이의 '차용'을 배제하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반대로 '차용'되었다는 사실은 이들 전통 사이에 일정한 '공유'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논했다.

이러한 논의들을 종합한 프란체스코 스페라(Francesco Sferra)는 루엑이 추가적으로 제시한 해석학적 모델에 대한 설명에 관해 "샤이바 전통에 기반해 불교가 발전했다"고 말할 때에는 이를 가능하게 한 환경이나 조건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하며, 그런 맥락에서는 분명 '종교적 기저'라는 이해가 필요하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샌더슨의 지적이 '기저 모델' 자체를 거부했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반론했던 루엑의 반응은 오해에 기인하며, 이는 구체적인 전거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견이므로 이들 모두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힌두와 불교 탄트라들의 관계성 연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논한다.

스페라는 "어떤 전통이 다른 전통의 특정 요소를 차용했다는 증거를 발견했을 때, 그 선후의 관계 정립 혹은 확정이 가능하다면, 이들 전통의 저변에 또 다른 하위층을 상정하는 '기저 모델'과 같은 해설은 불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반대로, "텍스트가 부분적으로 다른 전통에서 전승, 차용된 경우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해당 전통의 편집자들에 의해 공유된 전통들이 동일한 문화적 환경 속에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의 구제론적 체계에는 공통점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도 가정해야 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따라서 "이러한 영향 관계는 상호적이므로, 이들이 공유한 '기저'라는 것을 접근 불가능하다거나 감춰진 것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스페라는 지적한다. 왜냐하면 종교적 믿음이란 그 자체로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도의 구제론적 신앙 체계는 명상 기술, 의례, 가르침의 형태를 통해서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방정란, 《텍스트 비교연구 방법론 고찰 _딴뜨라 문헌의 불이(不二)와 공성(空性)에 대한 평행 구문 분석을 통하여_》

3. 특징

대비(大悲)하신 스승께 예경하고 귀의합니다. 늘 지켜주소서.

1. 밀교란 어떤 것인가? 성불(成佛)함에 매우 신속하다. 최상이다(최고의 방편도方便道이다). [현교와 달리] 구족(具足)하지 못함이 없는 방편도(완전한 방편도)이다.

2. 왜 밀교를 배워야 하는가? 성불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밀교에 의지하지 않으면 다른 방편으로는 불가하기 때문이다.

3. 밀교에는 다른 것에는 없는 특장점이 무엇이 있는가? 불제자(佛弟子)의 궁극적인 성취목표는 원만성불圓滿成佛(=구경각究竟覺)이다. 성불에는 색신(色身)과 법신(法身) 두 가지가 있다. 이러한 점은 현밀(顯密)이 같다.

3-1. 그러나 [밀교 외에는] 법신의 단편적인 원인은 존재하나 궁극적인 법신의 원인이 없다. 법신을 성취함에는 소지장(所知障)을 없애야 한다. [소지장을 없애기 위해서는] 공성을 인식함으로써 소멸시켜야 함에는 현밀이 같다. [차이점은] 최종적인 소지장과 그것의 대치법(對治法)[8]의 궁극은 현교에 없기 때문이다. 명(明)ㆍ증(增)ㆍ득(得) 3가지의 이현(二顯)의 착란[9]의 측면과 명ㆍ증ㆍ득 3가지에 존재하는 무명(無明) 등의 번뇌의 습기(習氣)이니 그러한 소지장은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교에는] 승의광명(don gyi 'od gsal, 勝義光明)[10]이 없기 때문이다. 원심(gnyug sems, 原心)으로써 공성을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현교에서는 방편과 지혜의 쌍수(雙修)를 설명하지만 지혜와 방편의 합일(合一)은 설명하지 않는다.[11]그러므로 현교에서 설명하는 그 대치법은 밀교에서 설명하는 대치법에 비해서 훨씬 위력이 작다.

명ㆍ증ㆍ득 3가지의 미세한 소지장을 제거함에 명ㆍ증ㆍ득 3가지의 인식보다도 훨씬 미세한 원심을 현현해야만 한다. 그에 관해서 밀교의 경우에는 승의광명을 설명하지만 원심을 현현하기 위해서는 명ㆍ증ㆍ득 3가지를 강력하게(인위적으로) 막아야만 한다. 명ㆍ증ㆍ득 3가지를 막아서 원심을 현현하는 방편은 현교는 차치하더라도 하부 밀교 3종[12]에도 없다. 그러므로 성문ㆍ독각승과 반야승만으로는 성불할 수가 없을 뿐 아니라 하부 밀교의 도(道)만을 통해서는 성불의 경지로 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불하려면 반드시 무상(無上)밀교에 들어가야 한다.

3-2. 색신의 원인의 부분적인 것은 있지만, 색신의 직접적인 원인은 [현교에] 없다. 요익중생(饒益衆生)을 완성하게 하는 주체는 색신이다. 그것의 동류(同類)의 원인으로서 환신(sgyu lus, 幻身)이 필요하다. 환신은 원심이 구유연(俱有緣)[13]의 역할을 하고 원풍(gnyug rlung, 原風)이 근취인(近取因)[14]으로서 [작용하여] 발생해야만 하는데,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현교는] 환신이 없으므로 무수한 여러 대겁(大劫)의 공덕을 짧은 기간에 고행(苦行)하지 않고 쌓을 수가 없다. 현교에는 환신이 없기 때문이다.

3-3. 닦음의 토대(기基 혹은 근根)는 생(生), 사(死), 중음(中陰) 3가지이고 닦는 도(道)는 3신(三身)을 도(道)로 가져오는 3가지 유가행(yogācāra, 瑜伽行)으로써 유사한 모습으로 수습(修習)한다. 닦음의 결과는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의 3신이다. 이러한 닦음의 토대, 과(果)를 현교에서도 설명은 하지만 그 방법을 아예 설명하지 않는다. 토대의 양상과 도의 양상과 과의 양상 3가지 모두가 온전하고 구족하게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교의 공성, 밀교의 공성에는 차이가 없다. 현밀 2가지 모두 목표인 공성에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공성을 인식하는 주체인 식(識)에는 차이가 있다. 현교와 밀교는 소지장에 관해서도 차이점이 있다. 현교에서는 염오(染汚)의 주된 것으로 소지장을 설명하지만 매우 미세한 소지장은 설명하지 않는다. [현교도] 주된 대상은 설명하지만 [밀교는] 인식주체의 최고를 설하기 때문이다. 현교는 주요 장애를 설명하지만 밀교는 최상의 대치법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가장 미세한 소지장은 밀교로써 소멸할 수 있을 뿐, 현교로는 불가하다.

그렇다면 현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라고 하면 청정한 4가지 과위(果位)를 현재부터 수습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로써 현밀을 구분한다(청정4과淸淨四果를 현재시점부터 수습할 수 있다면 밀교이고 수습할 수 없다면 현교이다).

4. 그렇다면 청정4과는 무엇인가? 부처의 (1) 청정한 처소(處所), (2) 청정한 몸, (3) 청정한 소유물/향유물 (4) 청정한 행(行)이다. […]

5. 그렇다면 3사(三士)의 도차제(道次第)[15]를 잘 배워서 이 3가지를 배워야 한다.

6. 그렇다면 밀교를 수습하는 사람은 어떠해야만 하는가? 현생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윤회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이기심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니 3사의 도의 차제에 마음을 잘 익혀서 토대로 삼아야 한다. "중생을 위해서 구경각불(究竟覺佛)의 경지를 속히 얻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밀법을 배워야 한다"라는 밀교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노력하고자 해야 한다. 밀교의 보살은 현교의 보살보다도 백배, 천배로 근기가 예리하고, 공덕이 더욱 커야 하고, 윤회에 대한 집착을 버림이 커야 하고, 중생에 대한 대비심(大悲心) 등이 커야 하는 등의 자격이 필요하다.

어째서 밀교 수행자는 몸을 본존(本尊)으로 관(觀)하고, 마음을 법신으로 관하고, 부처의 몸의 다양한 모습으로 여실(如實)하게 수습하며 보궁(寶宮)을 수습하는 등 부처의 처소와 소유물, 권속(眷屬)의 원만함을 수습하는가?

밀교의 유가행자는 부처의 행을 지금부터 실로 행하는 것 등에는 필요성이 있다. 부처의 행에 익숙해진다. 그 행위의 습기를 만든다. 이를 통하여 부처의 원만한 원인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편은 성문ㆍ독각에는 말할 것도 없고 반야승에도 없다.
게셰 텐진 남카, 《밀교란 무엇인가》[16](자홍 譯)

겔룩의 창시자인 쫑카빠는 "공성에 대한 견해, 모든 유정(有情)들을 위해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자 발심(發心)하는 의도(보리심), 육바라밀의 수행에 있어 반야승과 금강승 양자는 차이가 없다." 하고 말하였다.

반야승과 금강승은 공성(空性)이라는 견해를 지향하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금강승에서 말하는 공성이라는 것도 결국 반야승에서 말하는 공성을 말하는 것이지 더 심오한 공성을 말한다거나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반야승과 금강승의 공통된 수행도는 곧 보리심이다. 진정한 보리심이 마음 속에 자리 잡을 때 비로소 금강승에 입문할 수 있다. 보리심을 갖춰야 금강승에 박학다식하고 금강승의 수행을 겸비한 자격을 갖춘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금강승을 수행할 수 있다.

반야승과 금강승 사이에 의도/동기인 보리심과 행위인 육바라밀에 있어서는 차이가 전혀 없다. 또한 반야승에서 말하는 부처의 과위와 금강승에서 말하는 부처의 과위 역시 차이가 없다.

그러나 부처의 과위에 이르기 위한 방편과 도(道)에 있어서는 반야승과 금강승의 차이가 있다. 부처의 과위, 즉 불과(佛果)라는 것은 법신(法身)과 색신(色身)이라는 두 가지 양상으로 구성된다. 반야승과 금강승 모두 법신과 색신 개념을 소개하지만 법신과 색신을 이루는 궁극적이고 미세한 차원의 방법들은 금강승의 무상요가 탄트라에만 소개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불을 위해서는 반야승 뿐 아니라 반드시 금강승의 무상요가 탄트라를 수습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17]

법신을 이루기 위해 소지장을 제거해야 하는 것 정도는 반야승에서도 언급하지만 미세한 소지장들과 그것들의 대치법인 승의광명같은 미세한 의식을 활용하여 공성을 인식하는 법에 대해서는 오직 금강승의 무상요가 탄트라에서만 언급된다.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한 색신을 이루기 위해[18] 무량한 공덕을 신속히 쌓을 수 있는 환신을 성취하는 방법도 무상요가 탄트라에서만 언급된다.

지혜와 방편을 동시에 수습하는 합일(合一)도 반야승이 아닌 금강승에서만 가능하다. 본존 차크라를 인지하여 무자성(無自性)을 깨닫는 지혜는 두 자량(資糧)을 한꺼번에 쌓기 때문에 실집(實執)에 대한 강력한 해독이 된다. 본존 차크라를 인지하기 때문에 색신을 성취하게 하는 공덕자량을 쌓고 무자성을 지각하기 때문에 법신을 성취하게 하는 지혜자량을 쌓는다. 이 두 가지가 한 토대에 동시에 모이기 때문에 현교의 도와 달리 매우 강력하다. 그렇기 때문에 번뇌에 대한 강력한 해독이 된다.

또한 반야승과 달리 금강승은 수행의 결과인 (1) 정토(淨土) (2) 불신(佛身) (3) 재산 (4) 행업(行業) 같은 청정한 부처의 4가지 과위를 수행 과정의 방편으로 삼는 것이 가능하다. 수행자 스스로를 본존으로 인식하고 주위 환경을 만달라의 보궁으로 인식하는 등 부처의 행(行)을 (아직 부처가 아닌) 수행자일 때의 현재 시점에서부터 실천하여 습기로 남게 하여 부처의 원만한 원인을 성취하는 것이 금강승만의 특징이다.

보리도차제의 삼사도(三士道)를 마음에 잘 익혀 토대로 삼고, 반야승 수행자에 비해 지혜, 자비, 공덕, 근기의 예리함 등이 훨씬 뛰어나며, 마음 동기인 출리심(出離心), 대비심, 보리심도 더욱 크고 강렬한 수행자가 금강승에 입문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반야승의 보살과 금강승의 보살 모두 보리심을 일으켰지만, 금강승 보살의 보리심이 더욱 강력하기 때문에 자연히 중생을 신속히 구제하고자 더욱 빠르게 불과를 얻을 수 있는 밀법을 추구하고 노력하게 된다.

요약하면 밀교는 뛰어난 네 가지 방편으로써 현교와 구분된다. 견해에 미혹되지 않는 것, 뛰어난 방편의 다양함, 고행(苦行)없이 속히 보리를 성취함, 뛰어난 제자의 근기 등의 측면에서 구별이 된다.
■ 사공심(སྟོང་པ་བཞིའི་སེམས།, 四空心): 죽음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마음의 4단계

죽음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마음의 4단계(4공심)는 분별의 작동이 완전히 사라지고 거두어질 때까지 점차적으로 발생한다. 마음의 4단계 각각은 다음과 같다.

(1) 명심(སྣང་བ་དཀཪ་ལམ་པའི་སེམས།, 明心)
: 흰 빛을 비추는 마음. 이것이 일어나는 시기는 전(前) 80 자성분별심이 사라지고 후(後) 자성분별심이 나타나기 전이며, 그의 현상은 청정한 가을 하늘에 달빛이 빛나는 것과 같이 텅 빈 상태에서 희뿌연 빛이 현현하며 이외에는 어떠한 이현(གཉིས་སྣང་།, 二現)이 없다.

(2) 증심(མཆེད་པ་དམར་ལམ་པའི་སེམས།, 增心)
: 붉은 빛을 비추는 마음. 이것이 일어나는 시기는 전 80 자성분별심이 사라지고 후 자성분별심이 나타나기 전이며, 그의 현상은 청정한 가을 하늘에 햇빛이 빛나는 것과 같이 텅 빈 상태에서 불그스름한 빛이 현현하며 이외에는 어떠한 이현도 없다.

(3) 득심(ཉེར་ཐོབ་ནག་ལམ་པའི་སེམས།, 得心)
: 어두운 마음. 이것이 일어나는 시기는 전 80자성분별심이 사라지고 후 자성분별심이 나타나기 전이며, 그의 현상은 청정한 가을 하늘에 완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 현현하고, 이외에는 어떠한 이현도 없다.

(4) 일체가 공한 마음(ཐམས་ཅད་སྟོང་པའི་སེམས།)
: 이것이 일어나는 시기는 득심이 거두어진 후이며, 그의 현상은 외부 장애인 흰, 붉은, 검은 세 가지 현현과 내부 장애인 명ㆍ증ㆍ득심 세 가지에서 벗어나 마치 새벽의 청정한 하늘이 있는 그대로 맑게 드러나듯 공함이 현현하고, 그 외 어떠한 거친 이현도 없다. 이는 견도(見道)에서 공(空)이 나타나는 것과 동일하다. 죽음의 광명(འཆི་བ་འོད་གསལ།), 근본법신(གཞིའི་ཆོས་སྐུ)이라고도 한다. 이때 현현하는 공함, 공성이 곧 근본자성신(根本自性身, གཞིའི་ངོ་བོ་ཉིད་སྐུ།)이다.
불교 과학 철학 총서 편집위원회, 《물질세계(불교 과학 철학 총서 1)》(게쎼 텐진 남카 譯)

4. 입문

현교는 부처의 과위를 이루는데 삼아승지겁이 걸리는 반면 밀승을 수행하면 단기간 내에 자량(資糧)[19]을 쌓아 짧게는 한 생에도 불과(佛果)를 얻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티벳망명정부 총리를 역임한 삼동(zam gdong) 린뽀체는 2018년 방한법회에서 현교와 밀교를 도보와 고속철도에 비유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때 도보보다 고속철도가 훨씬 빠르지만 둘 중 어떤 수단을 이용하더라도 거쳐가는 경로는 같다. 마찬가지로 밀교도 현교보다 짧은 기간에 성불할 수 있지만 중간 과정을 생략함 없이 자량도에서부터 무학도까지 5도(五道)를 거쳐 가야 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밀교는 단기간에 성불할 수 있는 수승한 가르침이지만 아무나 밀교를 수행할 수는 없다. 밀교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 이미 현교의 수행차제를 두루 섭렵하여 근기가 성숙된 자여야 한다. 또한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 아닌 오직 불과(佛果)라는 결과물만을 탐하거나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수승하다고 자만하여 밀교 수행에 접근하여서는 안 된다. 더불어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탈을 염원하는 출리심, 다른 중생을 위하는 자비심과 중생을 위해 최상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보리심이 투철하고 공성을 바르게 이해한 사람이어야 한다. 달라이 라마는 "오늘날 사람들이 금강승(밀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차제(次弟)에 따른 수행과 보리심의 획득, 공성에 대한 이해 없이 금강승 수행을 하는 것은 외도(外道)의 수행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수행의 결과도 얻을 수 없다." 라고 강조하였다.

밀교를 수행하는 토대는 보리심과 공성을 인식하는 지혜뿐이다. 보리심은 밀교에 들어가는 입문이며, 밀교 수행시 만달라의 궁전을 세우거나 거기에 본존을 초대하여 공양 올리는 등의 사부밀교 수행과 특히 무상요가의 생기차제를 수습하는 등 모든 것이 공성에 심일경성(cittaikāgratā, 心一境性)함으로써[20] 발생해야 하고 수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원만차제의 도를 수행하는 모든 것이 오직 공성을 인식하는 지혜만을 토대로 삼고 행해야 한다.

출팀 껠상(Tsultrim Kelsang) 오오타니대 교수와 마사키 아키라(正木 晃)는 출팀 깰상, 마사키 아키라,《티벳밀교》(차상엽 譯)에서 밀교 수행 이전에 현교 수행을 마치는 것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겔룩의 경우 20여년 간의 현교 수행을 제대로 마친 사람만이 아무리 젊어도 30대에서 40대 정도에 밀교에 입문한다. 현교가 결여된 밀교만으로는 자칫 체험지상주의에 빠져 자신의 체험만을 절대화하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석가모니가 수행을 시작하였을 때도 각지의 스승을 찾아다녔지만 모든 스승들이 저차원의 경지에 있었음에도 그것을 고차원의 경지라고 굳게 믿어 석가모니를 낙담시켰다고 불전은 전하고 있다.

또한 밀교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격을 갖춘 법맥스승으로부터 관정(灌頂, Skt. abhiṣeka, Wyl. dbang)구전(口傳, Skt. āgama, Wyl. lung), 구결(口訣, Skt. upadeśa, Wyl. khrid)을 받아야 한다. 관정은 왕이 즉위할 때 왕의 머리에 사해(四海)의 물을 부어주는 의식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의식을 통하여 밀교에 입문하려는 사람은 스승으로부터 밀교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 관정은 금강지불로부터 스승까지 전승이 끊임없이 이어져 와야 한다. 스승이 스승 자신의 스승에게서 관정을 완벽하게 잘 받아 성취기도(gnyan pa)를 의식대로 함으로써 본존의 가피를 받아야 한다. 그러한 스승 앞에서 관정의 법맥을 받는 것이다. 또한 스승의 구전을 통해 수행법을 전수받고, 수행법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인 구결 역시 함께 전수받는다. 밀교 수행을 성취하려면 현교에서 요구하는 수준보다 더욱 큰 스승에 대한 신심(信心)이 필요하다. 관정을 주는 스승을 본존의 현현으로 믿어야 하고, 만일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면 관정이 성립되지 않는다.

관정(Abhiṣeka)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허가관정(許可灌頂, rjes snang)이고 다른 하나는 관정(灌頂, dbang)이다. 허가관정은 말 그대로 본존에 대한 간략한 성취법이나 명상을 허가받는 관정이다. 일반적인 관정이 궁극적으로 본존의 과위를 성취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허가관정은 본존의 공덕을 이어받아 단기간에 가피를 얻는 목적이 크다. 허가관정은 2~3일 간 열리는 관정에 비해 의식이 훨씬 간소하며 관정을 받고 지켜야 할 싸마야계와 수행 의무[21]의 부담도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따라서 허가관정은 대중적으로 많이 전수되고, 한국에서 열리는 티베트 불교의 관정법회 대부분도 허가관정에 해당한다. 허가관정을 통해 밀법과 본존에 인연을 맺으며 보리심의 종자를 심고 단시간에 많은 죄업과 장애를 소멸할 수 있다. 또한 관정을 주는 아사리(阿闍梨, ācārya)[22]와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는다. #

5. 계율

금강승의 계율은 싸마야(Skt. samaya, Tib. dam tshig, 三昧耶)라고 한다. 금강승의 수행에서 계율을 지키는 것은 지극히 중요하여 마치 목숨과도 같이 지켜야하며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수행의 성취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관정은 먼저 싸마야계를 받고 이를 지킬 것을 맹세한 사람에게만 수여된다. 싸마야계와 관련하여 까담 전승의 창시자 아띠샤(Atisha)는 "(아띠샤 본인의 삶 중에서) 비구계는 조금도 어김이 없이 지켰고 보살계는 간혹 지키지 못했지만, 싸마야계를 어긴 것은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과 같이 많다."고 말하였다. 아띠샤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금강승 수행자는 소승의 별해탈계, 반야승의 보살계와 금강승의 싸마야계까지 모두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 중 금강승의 싸마야계는 다른 계에 비해 매우 엄격하고 지키기 힘든 계율이라고 할 수 있다.

소승, 반야승, 금강승의 계율들을 총칭하여 삼율의(Skt. trisaṃvara, Tib. sdom gsum, 三律儀)라고 한다. 서로 다른 교리적 배경 하에 제정된 계율들을 모순 없이 조화롭게 수지(受持)하기 위하여 인도와 티베트에서는 삼율의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삼율의에 관한 티베트의 대표적인 논서로는 사꺄 빤디따 꾼가 걜첸(sa skya paN+Di ta kun dga' rgyal mtshan)의 《삼율의분별론(sdom gsum rab dbye)》, 응아리 뺀첸 뻬마 왕걜(mnga' ris paN chen padma dbang rgyal) 의 《삼율의결정론(sdom gsum rnam nges)》 등이 있다. 쫑카빠 또한 별해탈계, 보살계, 싸마야계 각각에 관한 세 종류의 주석을 남겼다.

밀교를 수행하려면 기본적으로 삼보에 귀의한 불자여야 하므로 삼귀의계를 수지해야 한다. 별해탈계의 경우 만약 출가자라면 당연히 출가계를 수지하지만, 재가자라면 밀교를 수행하기 위해 출가하여 출가계를 받을 필요는 없고 재가오계를 수지하면 된다. 또한 밀법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한 대승법이므로 밀법을 수행하려면 반드시 보리심을 발하고 보살계를 받아야 한다. 싸마야계의 경우 끄리야, 짜르야 탄트라의 싸마야계는 계목들이 보살계와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요가, 무상요가 탄트라의 싸마야계는 14근본타죄와 8조타죄 등 다른 계율과 구별되는 계목들이 존재한다.

별해탈계는 해로운 언행을 버리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보살계는 이기적인 말, 이기적인 행위,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싸마야계는 미세한 마음의 장애를 제거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별해탈계는 신체적인 행위와 말로 하는 행위에 중점을 둔다면, 보살계와 싸마야계는 그보다 내적인 의도, 심리를 강조한다. 별해탈계-보살계-싸마야계 순으로 갈수록 더욱 미세한 수준의 마음의 장애를 다루기 때문에 각 계율들을 별해탈계부터 순서대로 수지해야하며, 별해탈계는 보살계를 지키는 바탕이 되고, 보살계는 싸마야계를 지키는 바탕이 된다.
가레스 스파험, 《불교 윤리 1(초기불교 전통에서 서구의 모더니즘 불교까지)》<제12장 탄트라 윤리>(이동수 譯)
제14대 달라이 라마, 툽텐 최된, 《달라이 라마의 불교 강의》(주민황 譯)
정수함(자홍), 《『삼율의결정론』에 나타난 진언율의 및 삼율의 통합사상》
Kun-dga'-rgyal-mtshan (Sa-skya Paṇḍita.),《A Clear Differentiation of the Three Codes: Essential Distinctions Among the Individual Liberation, Great Vehicle, and Tantric Systems》
Pema Wangyi Gyalpo, 《Perfect Conduct: Ascertaining the Three Vows》
Je Tsongkhapa, 《Tantric Ethics: An Explanation of the Precepts for Buddhist Vajrayana Practice》
1. 스승에 대한 불경과 비방
2. 가르침에 대한 경시
3. 금강형제(金剛兄弟)에 대한 비난
4. 중생에 대한 자비심의 방기(放棄)
5. 원(願), 입(入) 보리심의 방기
6. 현교ㆍ밀교에 대한 비방
7. 미성숙자에게 밀법을 설함
8. 자신의 오온(五蘊)에 대한 경시(학대, 훼손 등)
9. 공성을 부정함
10. 스승과 가르침을 해치는 자와 친근함
11. 공성의 견해를 억념(憶念)하지 않음
12. 밀법에 대한 신심(信心)을 파괴함
13. 서약에 의지하지 않음
14. 여성을 멸시함
《14 근본 타죄》

일반적으로 무상요가 탄트라의 싸마야계는 14근본타죄(rtsa ltung bcu bzhi, 十四根本墮罪)와 8조타죄(sbom po brgyad, 八粗墮罪)로 분류된다. 14근본타죄에는 칼라차크라 탄트라를 포함하여 모든 무상요가 탄트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14근본타죄와 칼라차크라 탄트라에만 적용되는 14근본타죄가 있다. 전자의 항목들은 상술한 바와 같다.

싸마야계를 어기는 것은 금강지옥에 떨어지는 원인이 된다. 조타죄를 어기는 것조차 비구계를 지키지 못한 것보다 18배나 무거운 과보를 낳는다고 한다. 역으로 별다른 수행 없이 싸마야계만 잘 지켜도 18생 안에 지금강불의 과위를 성취할 수 있다는 가르침도 전해진다. 그만큼 싸마야계의 의의가 크기 때문에 싸마야계를 받은 후에는 이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강조된다.

싸마야계의 항목들에 대해 설명하였지만, 싸마야계는 별해탈계와 마찬가지로 우선 계를 받아 계를 지킬 자격을 얻은 다음 지켜야 할 계목에 대해 학습하며 알아가는 계율이므로 수계(授戒) 전에 계목들을 미리 알 필요가 없다. 이와 달리 보살계는 지켜야 할 계목을 미리 알고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비로소 보살계를 받게 된다.

6. 분류

티베트의 신역(新譯, gsar ma) 전통에서는 딴뜨라 문헌을 소작부 혹은 사부(所作部 혹은 事部, kriya tantra), 행부(行部, charya tantra), 유가부(瑜伽部, yoga tantra), 무상유가부(無上瑜伽部, anuttarayoga tantra)4부 딴뜨라로 분류하였다. 4부는 수행의례나 방법 면에서 차이가 있다. 소작부는 외적인 의례를 수행의 중심으로 삼고, 행부는 외적인 의례와 내적인 수행을 함께 중시하며, 유가부는 오직 내적인 수행만을 중시한다. 무상유가부의 가르침은 인도 후기 밀교에 해당하며 비교하여 설명할 것이 없다.

네 탄트라의 수행은 상응하는 근기를 가진 수행자에 근거하여 나눈 것이지,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나눈 것이 아니다.《삼부다속(Saṃpuṭatantra)》에서 "웃는 것, 보는 것, 만지는 것, 둘이 서로 껴안는 것. 이 네 가지는 벌레의 방식으로 사부밀교를 설한다"라고 말했다. 나무에서 생겨난 결과인 벌레가 자신을 낳은 원인인 나무를 먹어 치움으로써 원인인 나무가 없어지게 됨과 같이 (욕망을 일으키는 대상을) 보는 것, 웃음, 포옹, 합일의 욕망으로 인해 생긴 쾌락을 공성을 깨닫는 지혜로 발생시켜, 이러한 쾌락과 공성의 지혜를 합일함으로써 자신을 생기게 하는 욕망 등의 번뇌를 소멸시키는 것이 밀교의 특징이다.[23] 밀교에서 말하는 4차제라는 것은 번뇌를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느냐 그 능력 여하에 따라서 설한 것이다. 밀교의 제자에 대해 낮음, 중간, 좋음, 최고의 종성(種性) 네 가지로 설하였고, 이에 네 종성을 따라서 사부밀교를 건립한 것이다.

소작부, 행부, 요가부 같은 하위 3부 딴뜨라와 무상요가부 같은 상위 딴뜨라 모두 성불(成佛)하는 법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또한 하위 딴뜨라의 본존들과 상위 딴뜨라의 본존들 모두 붓다의 법신(法身), 공덕, 행위 면에서 서로 차이가 없고 동일하다. 다만 수행법의 심오한 정도에 따라서 4부 딴뜨라가 구분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위 3부 딴뜨라에는 무상요가 딴뜨라의 생기차제, 원만차제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무상요가 딴뜨라는 방편 부(父) 딴뜨라, 반야 모(母) 딴뜨라, 부ㆍ모 양 딴뜨라의 쌍입(雙入)을 설한 불이(不二) 딴뜨라로 나뉜다. 부계 딴뜨라는 붓다의 색신(色身)의 원인이 되는 환신(幻身, Skt. māyādeha, Tib. sgyu lus)을 강조하며, 모계 딴뜨라는 붓다의 법신(法身)의 원인이 되는 정광명(淨光明, Skt. prabhāsvaratā, Tib. 'od gsal)을 강조한다. 불이 딴뜨라는 부계 딴뜨라와 모계 딴뜨라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다. 방편 부 딴뜨라에 속하는 경전은 《비밀집회 딴뜨라(Guhyasamaja tantra)》와 《야만따까 딴뜨라(Yamantaka tantra)》[24]가 대표적이며, 반야 모 딴뜨라는 《헤바즈라 딴뜨라(Hevajra tantra)》[25], 《챠크라삼바라 딴뜨라(Chakrasamvara tantra)》 등이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불이 딴뜨라에 속하는 경전은 《깔라챠크라 딴뜨라(Kalachakra tantra)》가 대표적이다.

구역(舊譯, rnying ma) 전통에서는 현교와 밀교를 9개 승으로 구분한 독자적인 9부승(九部乘) 체계를 갖추었다. 9부승은 크게 외(外), 내(內), 밀(密) 삼승으로 구분된다. 외승(外乘)은 곧 경승(經乘, sutrayana)(=현교)에 해당하고 내승과 밀승은 속승(續乘, tantrayana)(=밀교)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 외승(外乘)은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을 가리킨다. 성문승, 연각승은 근본승이며 보살승은 대승에 해당한다. 그리고 내승(內乘)혹은 외전(外傳) 딴뜨라는 사부(所作部 혹은 事部, kriya tantra), 행부(行部, charya tantra), 유가부(瑜伽部, yoga tantra)로 구성된다. 내승의 가르침은 브라만의 베다(Veda) 전통처럼 의례와 외적 청정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밀승(密乘) 혹은 내전(內傳) 딴뜨라는 마하 요가(maha yoga), 아누 요가(anu yoga), 아띠 요가(ati yoga, 혹은 maha ati yoga)로 구성된다. 마하, 아누, 아띠 요가는 신역(新譯)의 무상유가부에 해당한다. 마하 요가는 생기차제, 아누 요가는 기맥명점 수행, 아띠 요가는 원만차제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9부승의 최상위에 위치한 아띠 요가는 바로 닝마 고유의 가장 심오한 가르침인 족첸(rdzogs chen)이다. 밀승의 가르침은 모든 현상을 청정하고 평등한 진여(眞如)로 전환시키는 강력한 방편들이다.

참고로 4부 딴뜨라 분류는 불교 4대 학파 분류와 무관하다. 인도와 티베트에서 딴뜨라는 소승 학파가 아닌 대승의 유식학파 혹은 중관학파의 관점에서 해석되었다.[26] 특히 티베트 불교에서는 주로 불교 4대 학파 중 최상위 견해라 여겨지는 귀류논증 중관학파의 관점에 의거하여 4부 딴뜨라를 해석하고 수행한다. 본격적으로 금강승을 배우기 전 강원에서 4대 학파의 견해를 학습하며, 이 때 하위 학파의 견해를 바탕으로 상위 학파의 견해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교학적 위계에 따른 학습을 통해 최종적으로 귀류논증 중관학파에 대한 견해가 확립된다. 이러한 강원의 학습과정은 딴뜨라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상적 토대를 마련하는 예비적 성격도 있다.

끄리야, 짜르야, 요가 딴뜨라 같은 하위 딴뜨라에서도 무상요가 딴뜨라와 마찬가지로 공성의 인식을 수행의 핵심 요소로 삼으며, 이 때 소승 학파처럼 오직 인무아(人無我)만 인정하는 방식으로 인식하는 경우는-가정이야 해볼 수 있겠지만-실질적으로 인도-티베트 불교 전통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애초에 소승 학파는 딴뜨라를 포함한 대승 경전들을 불설(佛說)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승 경전을 불설로 인정하는 순간 자종(自宗)의 견해와 수행 체계가 불완전한 것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딴뜨라에서의 공성이 인무아뿐만 아니라 법무아(法無我)까지 포괄하는 대승 학파에서의 공성임은 공성 만뜨라(mantra)[27]-"옴 스와바와 슛다 사르와 다르마 스와바와 슛도 항(oṃ svabhāva-śuddhāḥ sarva-dharmāḥ svabhāva-śuddho 'ham)"-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하위 딴뜨라나 상위 딴뜨라 공히 본존을 생기(生起)하기 전 공성을 인식할 때 공성 만뜨라를 염송하곤 하는데, 만뜨라 앞부분의 '스와바와 슛다 사르와 다르마'는 '일체법의 자성청정(自性淸淨)함, 공(空)함', 즉 법무아를 의미하며 '스와바와 슛도 항'은 '나의 자성청정함, 공함', 즉 인무아를 의미한다.

공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본존으로 생기할 수 없다. 범부중생으로서의 신(身)ㆍ구(口)ㆍ의(意) 삼문(三門)이 실재한다는 분별을 여의고 본래 자성청정함/공함을 지각하는 바탕에서 본존으로 생기해야 한다. 공성의 인식을 통해 범부의 현현과 취착을 제거하였으므로 수행자 자신을 본존으로 생기하는 것이 가능하며, 따라서 이는 범부와 부처를 혼동하는 전도(顚倒)된 인식이 아니다. 물론 공성을 인식하는 수준에 따라 수행의 성취가 달라질 수는 있다. 공성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금강승 수행을 할 경우, 가피(加被)를 얻거나 신통(神通)이 생길 수는 있어도 본질적으로 비(非)불교도의 수행과 크게 다를 바 없어진다.

또한 귀류논증 중관학파의 관점에서 볼 때, 소승학파에서 자립논증 중관학파까지의 하위 학파들은 공성에 대한 견해가 불완전하므로 역시 이들 하위 학파들의 견해에 따라 금강승 수행을 할 경우 완벽한 성취를 이룰 수 없다. 물론 공성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취의 차이가 크다. 따라서 금강승 수행자는 본인의 역량껏 최선을 다해 보리심과 공성에 대해 배우고 사유하고 명상할 필요가 있다.

6.1. 소작ㆍ행ㆍ요가 탄트라

봄으로써 생기는 욕망만을 수행도로 실천할 수 있고 이보다 더욱 거친 욕망을 수행할 수 없는 제자의 근기에 맞게 욕망의 수행도를 설한 밀교는 소작 탄트라이다. 소작 탄트라는 상(相)을 수반하는 요가인 유상요가(Skt. sanimittayoga, Tib. mtshan bcas kyi rnal 'byor, 有相瑜伽)와 상을 수반하지 않는 요가인 무상요가(Skt. animittayoga, Tib. mtshan med kyi rnal 'byor, 無相瑜伽) 두 가지가 있다. 유상요가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는 염송의식에 의지하는 선정(禪定), 둘째는 염송의식에 의지하지 않은 선정이다.

행 탄트라와 요가 탄트라는 일반적인 내용이 소작 탄트라와 비슷하다. 4부 탄트라 분류에 대한 이하의 설명은 게셰 텐진 남카가 쫑카빠의《비밀도차제대론(sngags rim chen mo)》 등 밀교 경론에 의거하여 작성한 《밀교 교리의 이론적 배경》을 참고한 것이다.

6.1.1. 유상(有相)요가

1. 염송(念誦)의식에 의지하는 선정
염송의식에 의지하는 선정에는 만트라/진언을 염송하면서 의식을 거행하는 수행이 있고 또 하나는 만트라/진언을 염송하기는 하나 마음만으로 수행함으로써 선정을 얻는 수행이 있다. 염송의식에 의지하는 선정에는 예비수행과 본수행, 마지막 수행이 있다. 예비수행을 시작할 때 먼저 장소를 깨끗이 청소하고 몸을 청결히 닦으며 공양을 올리고 귀의를 하고 보리심을 일으키는 과정들이 있다. 자기 자신을 수호하는 의식과 공양물을 가피하는 것 등을 예비단계라고 한다. 예비단계가 끝나면 본수행에 들어간다. 본수행에는 자생(自生)과 전방생기(前方生起) 두 가지가 있다.

1-1. 자생(自生)
자생의 '자'는 '자신', '생'은 '생기다'라는 뜻으로 자기 자신을 본존의 모습으로 생기(生起)시키는 관상법(觀想法)이다. 자생에는 6신(六神)이라는 요소가 있다. 6신은 승의신(勝義神), 성신(聲神), 구신(句神), 색신(色神), 수인신(手印神), 상신(相神)이다. 이 여섯 가지 신으로써 본존을 생기시켜야 한다. 소작 탄트라에서 반드시 이상의 6가지 의식에 의지해서 수행해야 한다. 만약 이 여섯 가지 의식이 완벽하지 않다면 그것은 밀교 '자생'의 올바른 수행법이라 할 수 없다. 소작 탄트라를 수행하거나 공부하는 부분에 있어서 6신이 갖추어져 있는지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본존을 생기함에 앞서 먼저 윤회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해야겠다는 큰 자비를 일으킨다. 그런 대비심으로부터 보리심을 일으켜야 한다. 대비심을 일으켰을 때 '일체중생을 구제해야 하는데 이들을 구제할 능력이 지금 나에게 없다. 일체중생을 구제할 능력을 갖춘 자는 바로 부처이니 일체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를 이루어야겠다.'고 마음을 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보리심이다. 이것은 속제(俗諦)의 보리심과 진제(眞諦)의 보리심 두 가지 중 속제보리심에 해당한다. 그 다음에 진제보리심을 일으켜야 한다. 진제보리심은 공성을 인식하는 지혜를 말한다. 속제보리심은 대비심으로 인하여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으로 그 목표는 깨달음이지만, 속제보리심만으로는 일체지(一切智)의 부처의 경지에 올라갈 수 없으므로 진제보리심으로 공성에 대한 지혜를 일으켜야 한다.

그러므로 나 자신과 제법(諸法)이 공(空)함을 관(觀)하거나 또는 나 자신과 명상의 대상인 본존을 공성으로 관하고, 공한 가운데 나 자신과 본존이 물과 우유가 하나로 섞여있는 것처럼 둘이 아니라고 관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공한 가운데 나 자신이 본존으로 생기하게 하는 토대이다. 이것이 바로 6신 가운데 '승의신'이다. 요약하면 나 자신과 본존을 분리되지 않은 공성으로 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승의신이다. 공한 가운데서 본존을 관해야 하는 것이지 공하지 않으면 절대 본존생기가 성립될 수 없다. 생기차제나 원만차제 또는 밀교의 네 단계 수행에서도 공한 가운데서 하지 않고 자생 관상하는 방식은 어디에서도 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성에 대한 견해를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28]

1-2. 전방생기(前方生起)
전방생기란 수행자의 눈 앞(전방)에 본존불을 생기하는 것이다. 수행을 하는 장소가 어디이건 앞에 성스러운 본존을 생기하는 것이다. 먼저 6신 수행에 근거해 이미 자기 자신을 본존으로 생기하였고, 그런 후 앞에 본존을 생기시키는 준비를 한다. 먼저 본존을 모시는 장소인 천상의 궁전을 관상하고, 본존을 초청하고, 본존에 공양을 올리며 찬탄하고, 자신의 악업을 참회하고 다시는 악업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명상한다. 이러한 절차를 전승되는 의궤문에 따라 여법하게 진행해야 한다. 특히 자비심을 일으키는 정도에 따라 수행의 힘도 달라진다.

2. 염송의식에 의지하지 않는 선정
염송 의식에 의지하지 않는 선정 수행에는 두 가지가 있다. 불에 머무는 선정과 소리에 머무는 선정, 두 가지이다.
2-1. 불(火)에 머무는 선정
불에 머무는 선정은 자생불(自生佛)의 가슴 속에 밝은 불 하나가 생기고, 다시 그 불 안에 진언이 떠있는 것을 관상하는 것이다. 이 때 염송은 하지 않는다. 불 안에서 진언의 본성은 마음이고 형태가 진언이기에, 그것에 집중하는 것을 불에 머무는 선정이라고 한다.

2-2. 소리에 머무는 선정
두 번째는 소리에 머무는 선정이다. 본성은 마음이지만 형태로는 진언의 소리이다. 그 소리에 집중하며 관상한다. 이상의 두 가지를 염송 의식에 의지하지 않는 선정이라고 한다.

6.1.2. 무상(無相)요가

무상요가는 소리를 관상하는 중에 소리마저 사라지고 다른 어떠한 대상도 없이 오직 공성만을 관상하는 것이다. 소리에 머무는 선정을 통해 지(samatha, 止)를 성취하고, 공성을 관상하는 무상(無相)의 수행을 통해 관(vipasyana, 觀)을 성취한다. 지의 단계까지는 5도(五道) 중에서 자량도(資糧道)에 해당하며, 무상 선정에 들어가서 공성을 지각하는 관을 성취하게 되면 가행도(加行道)에 오르게 된다.

다시 말해, 소리에 머무는 명상을 할 때 집중의 힘에 의해 경안(praśrabdhi, 輕安)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때 지를 성취한다. 마지막 무상요가에서는 공성을 관찰하고 그 집중하는 힘에 의해 경안이 생겨나는데, 이 때 공성에 대해 관찰하고 분석하여 경안이 생기게 되면 마침내 관을 성취한다고 한다.

밀교에서는 지관을 성취하는 법에 대해 별도로 설하지 않았는데, 이는 수행자 스스로가 본존이 되는 아만심(我慢心)[29]으로써 본존을 관상하거나 혹은 진언을 관상할 때, 혹은 공성을 관할 때 그 안에 지관을 수습(修習)하는 방법이 이미 모두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밀교의 특별한 점은 현교와 달리 지와 관을 합일(合一)하여 동시에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존을 관상하면서 공덕자량을 쌓고, 공성을 현현함으로써 지혜자량이 쌓이게 된다. 두 가지를 같이 짓고 같이 성취한다.

육신으로 자생을 관상하는 것은 부처의 몸을 성취하는 원인이 되고, 염송하는 의식은 부처의 소리를 성취하는 원인이 된다. 불(火)에 머무는 선정, 소리에 머무는 선정, 소리를 떠난 선정은 각각 부처의 마음을 성취하는 선정이다. 이렇게 부처의 신(身)ㆍ구(口)ㆍ의(意) 삼신(三身)을 성취한다.

6.2. 무상(無上)요가 탄트라

인도-티베트 불교의 관점에 따르면 성불하기 위해서는 소승법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반드시 대승법을 배워야 한다. 대승에도 반야승과 밀승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밀승의 관점에 따르면 밀승에 의지하지 않고 반야승만으로 인해 성불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성불하기 위해서는 결국 반드시 밀교를 배우고 수행해야 한다. 밀승에도 네 단계가 있는데 무상요가에 의지하지 않고 소작ㆍ행ㆍ요가 등 하부 밀교를 배우는 것만으로 성불할 수 없기 때문에 성불하기 위해 무상요가를 배우고 수행 실천해야 한다.

속히 보리(bodhi, 菩提)를 구하려면 밀승에 입문해야 한다. 반야승의 도(道)로 인해 성불하려면 삼무량겁(三無量劫)의 매우 오랜 시간을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밀승의 도에 입문하면 한 생에 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 한 생에 성불하는 것이 밀교의 특성인 까닭이다. 이 또한 하위 3부밀교의 입장에서 한 생에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무상요가에서 한 생에 성불할 수 있다고 설한 것이 다르다. 4부 밀교 전부 한 생에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하부 밀교에서는 본존요가로 인해 '수명의 자재(自在)'를 성취하여 무량겁(無量劫) 동안 살 수 있게 되어 그 기간 동안 도를 닦아서 성불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상요가에 따르면, (일반적인 현생 인류의 수명에 해당하는) 말겁(末劫)의 짧은 한 생에 성불하기 위해선 반드시 무상요가에 입문해야 한다.

성불(成佛)이면 모든 장애를 멸(滅)한 상태여야 하며 밀승의 도를 의지하지 않으면 반야승에서 설한 어떠한 도로도 제거하지 못하는 장애가 있는 까닭에 성불을 위해 반드시 밀승의 도에 의지해야 한다. 금강승의 특징 문단에서 이미 서술했듯이, 명증득상(明增得相) 이현(二現)의 착란과 그의 습기(習氣)는 밀승의 도를 의지하지 않으면 소멸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소멸하기 위해 생득본심生得本心(=원심原心)을 일으켜 이로써 공성을 현량(現量)으로 지각케 한다. 본심을 일으키는 것은 업(業)으로 인해 일으키거나 수습(修習)하는 힘으로 일으키는 두 가지가 있다. 업력(業力)으로 생기는 것은 죽음 등의 순간에 일체중생에게 노력없이 생기므로 만일 이로써 장애를 제거할 수 있다면 중생들이 노력없이 성불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업력으로 생긴 본심을 이용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수습의 힘으로 본심을 일으키는 것에 희망을 가져야 한다. 수습의 힘으로 본심을 일으키는 것 또한 무상요가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그 방편을 어디에서도 설하지 않았다.

무상요가에서 구경각(究竟覺) 내지 금강지불(Skt. vajradhara, Tib. rdo rje ‘chang, 金剛持佛)[30]의 과위(果位)를 성취하는 도(道)생기차제(Skt. utpattikrama, Tib. bskyed rim, 生起次第)와 원만차제(Skt. utpannakrama, Tib. rdzogs rim, 圓滿次第) 2가지로 구성된다. 생기차제는 법신(法身)ㆍ보신(報身)ㆍ화신(化身) 삼신(三身)의 요가를 마음으로 가설(假設)하여[31] 수습하는 차제이고, 원만차제는 풍(rlung, 風)에 의지해서 몸에 초점을 둔 특별한 방편을 유가행으로 수습하는 차제이다. 생기차제는 원만차제를 수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무상요가를 통해 성불하려면 반드시 두 차제를 순서대로 모두 수습해야 한다. 생기차제와 원만차제를 간단히 요약하면, 생기차제는 본존 요가를 통해 공성을 수습하는 것이고 원만차제는 풍(風)의 요가를 통해 공성을 수습하는 것으로서 둘 다 '공성 수습'이라고 할 수 있다.[32]
■ 법신(法身)과 색신(色身)의 원인에 대한 현밀(顯密)의 관점 비교: 현교의 도(道)만으로 성불이 불가능한 이유

무상요가의 원만차제에서는 풍(風)의 요가(rlung gyi rnal 'byor)에 의지하여 원풍(gnyug rlung, 原風)과 원심(gnyug sems, 原心)을 발현시킨다. 원풍과 원심을 발현시키는 이유는 풍 중에서 가장 미세한 풍이고 마음 중에서 가장 미세한 마음이므로 가장 강력하기 때문이다.[33]

매우 강력하므로 원심으로 공성을 지각하여 번뇌장(煩惱障), 소지장(所知障) 등의 장애에 강력하게 대치(對治)할 수 있고 원풍으로 색신의 원인인 환신(Skt. māyādeha, Tib. sgyu lus, 幻身)을 생기(生起)하여 수 겁 동안 쌓아야 하는 공덕자량을 환신으로 찰나에 성취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원심이 법신을 매우 빠르게 성취 가능하고, 원풍이 색신을 매우 빠르게 성취 가능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현교에서도 법신의 인(因)과 색신의 인을 설명한다. 근(根)ㆍ도(道)ㆍ과(果) 3가지 양상에 대한 설명은 현교 전통에도 있다. 이에 관해 유식학파와 중관학파에서 각 학파의 견해에 따라 설명하였다.

예를 들어서 현교에서도 법신의 원인을 설명하지만 밀교의 관점에서 볼 때 원심과 같은 미세한 인식이 아닌 조대(粗大)한 인식이므로 미세한 소지장을 대치할 수 없어 법신의 근취인(近取因)이 될 수 없다. 이에 관해서는 금강승의 특징 문단과 본 문단에서 이미 상술한 바 있다.

또한 현교에서는 색신의 근취인으로서 의생신(Skt. manomayakāya, Tib. yid kyi rang bzhin gyi lus, 意生身/意成身)을 말한다. 의생신은 식(識)을 자성(自性)으로 하는 몸, 식이 본질인 몸이다. 이를 무루신(Skt. anāsravakāya, Tib. zag med kyi lus, 無漏身)이라고도 한다. 가행도(加行道)의 세제일법(世第一法)까지는 업과 번뇌에 의한 몸이다. 업과 번뇌에 의한 몸이 의생신/무루신으로 변화하는 유루(有漏)적인 본질의 변화는 보살십지 중 제1지=초지(初地)부터 성취한다. 세제일법의 대(大)부터 초지에 이르면 업과 번뇌에 의한 몸이 전변(轉變)해서 의생신/무루신이 된다. 의생신/무루신은 무루업(無漏業)과 무명(無明)의 습기(習氣)로 인해 성취되는데, 무명의 습기는 소지장을 가리키므로 현교의 견해에 따르면 의생신/무루신은 소지장의 결과이다.

밀교에서는 쌍입(Skt. yuganaddha, Tib. zung 'jug, 雙入), 즉 두 가지의 결합이라하여 몸과 마음을 하나의 본질로 본다. 상술한 바와 같이 현교에서도 의생신을 설하므로 몸과 마음이 하나의 본질임은 현교에서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밀교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정말 그러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약 현교의 견해처럼 의생신이 색신의 근취인이고 몸과 마음이 하나의 본질이라면, 밀교에서의 10지(十地)의 승의광명(don gyi 'od gsal, 勝義光明)과 현교에서의 의생신이 하나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의 본질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의생신은 소지장의 과(果)이고, 승의광명은 소지장의 대치법(對治法)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의생신은 소단(所斷), 즉 버려야 하는 대상이고 승의광명은 그것의 능단(能斷), 즉 버리는 주체이다. 의생신과 승의광명 두 가지가 상호간에 해침을 받는 대상과 해치는 주체(능해能害-소해所害)이기 때문에 능해와 소해가 하나의 본질이 된다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밀교의 관점에서 볼 때 현교의 견해만으로는 색신의 근취인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6.2.1. 생기차제

생기차제(Skt. utpattikrama, Tib. bskyed rim, 生起次第)란 심오함(zab)과 명료함/밝음(gsal)이 둘이 아닌(不二) 본존 요가(yi dam gyi rnal 'byor)에 의지하여, 삼신을[34] 도(道)로 가져오는 유가행(sku gsum lam 'khyer)을 통해 근(根)인 중생의 신구의(身口意) 삼문(Skt. tridvāra, Tib. sgo gsum, 三門)을 과(果)인 붓다의 신구의 삼신(Skt. trikāya, Tib. sku gsum, 三身)으로 변화시키는 차제이다.[35] 이를 통해 붓다의 삼신이 될 수 있는 특별한 가능성/습기(習氣)를 만든다.

또한 자량을 쌓고 장애를 제거함으로써 금강승 수행자를 원만차제의 도를 수습할 수 있는 법기(法器)로 성숙시키는 예비과정이기도 하다. 쫑카빠는 특히 원만차제에 앞서 생기차제를 성취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함을 강조하였다.

생기차제는 원만차제와 달리 수습하는 힘으로 풍(風)이 중맥(Skt. avadhūtī, Tib. rtsa dbu ma, 中脈)에 입(入), 주(住), 흡수됨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생(生)과 사(死), 중(中)의 현상과[36] 상응하게 마음으로 가설(假設)하여 수습하는 요가이다.[37] 닦아야 할 대상인 생, 사, 중과 같은 현상을 삼신의 요가로 마음이 가설하여 수습하는 차제이기 때문에 생기차제라고 한다.

생기차제에서는 닦아야 할 대상은 생, 사, 중 세 가지이며, 닦는 도는 삼(三) 요가이며, 닦은 결과는 부처의 법신, 보신, 화신 삼신이다. 일반적으로 공통된 장애인 번뇌장과 소지장에 대한 주장은 반야승과 같으며, 생기차제에서 소멸해야 하는 특별한 장애란 용속탐착(庸俗耽着)과 용속감각(庸俗感覺)으로 용속탐착은 번뇌장이고 용속감각은 소지장이다.

생기차제에는 본존의 아만(我慢)과 현현(顯現)을[38] 수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생기차제의 소멸대상은 일반적 현현과 인식이고, 이것을 멸하기 위해 본존의 아만과 본존의 현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현할 때는 분석명상(Skt. vicārabhāvanā, Tib. dpyad sgom)을 주로 하고 아만을 일으킬 때는 집중명상(Skt. sthāpyabhāvanā, Tib. 'jog sgom)을 주로 한다.

생기차제는 (1) 최초가행(dang po sbyor ba), (2) 만다라들의 수승(殊勝)한 왕(王)(dkyil 'khor rgyal mchog), (3) 행위들의 수승한 왕(las rgyal mchog)으로 구성되는데, 특히 최초가행 중 죽음을 법신의 수행도로 가져옴('chi ba chos sku'i lam 'khyer), 중음을 보신의 수행도로 가져옴(bar do longs sku'i lam 'khyer), 재생을 화신의 수행도로 가져옴(skye ba sprul sku'i lam 'khyer) 등의 유가행을 통해 죽음, 중음, 재생을 수습하여 붓다의 삼신을 성취하는 것이 생기차제의 핵심이다.

죽음을 수습한다는 것은 과거의 죽음이나 현재의 죽음을 닦는 것이 아니다. 미래에 업과 번뇌에 의해서 원치 않아도 오는 죽음, 앞으로 겪을 죽음, 앞으로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미래의 죽음을 수습하는 것이다. 수행도를 수습함으로써 그것을 막아야 한다. 단, 무상요가 탄트라에서 정의하는 죽음은 일반적인 의학적 사망(clinical death)과는 다르다. 신체를 구성하는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 4대(四大)가 차례로 흡수되기 시작하여 마지막 풍대(風大)가 흡수되는 시점이 대략 의학적 사망 시점과 상응한다. 그러나 무상요가에서는 4대의 흡수 이후 명(明)ㆍ증(增)ㆍ득(得)의 현현을 거쳐 마지막 죽음광명('chi ba 'od gsal)이 현현하는 순간을 진정한 죽음이라고 정의하며, 그 순간까지 의식은 시신에서 분리되지 않고 시신 내부에 머물러 있다고 여겨진다.

죽음을 막는 방법은 공성을 수습해서 막는다. 수다원, 사다함 등 성문도에서도 공성을 수습하고, 보살도에서도 공성을 수습하지만 밀교의 공성 수습에서 다른 점은 죽음의 모습과 상응하여 공성을 관(觀)한다는 것이다. 범부중생이라면 반드시 죽어야 한다. 죽으면 반드시 중음을 성취하게 되고, 중음을 성취하면 반드시 생하게 된다. 반면 밀교를 수행하는 자는 공성을 수습하여 죽음의 발생을 막는다. 즉 공성에 등지(等持)로써 선정삼매에 들어가서 죽음을 막는다. 죽음을 막으면 중음은 자연히 차단되고, 중음이 차단되니 더이상 생도 받지 않는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불과(佛果)를 성취한다.

그러나 생기차제 시점에서 죽음, 중음, 생을 막아서 그 토대 위에서 불과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기차제의 때에는 죽음, 중음, 생을 간접적으로 차단할 뿐이고 실질적으로 직접 차단하는 것은 원만차제에서 하는 것이다. 단, 원만차제의 때에 죽음, 중음, 생을 막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반드시 생기차제의 시점에서 수행도를 수습해야 한다.

6.2.2. 원만차제

원만차제(Skt. utpannakrama, Tib. rdzogs rim, 圓滿次第)는 도차제(람림)의 마음을 수습한 자이면서 생기차제의 마음이 완전히 성숙한 자가 풍(Skt. prāṇa, Tib. rlung, 風)에 의지해서 몸에 초점을 둔 특별한 방편을 유가행으로 수습하여 미세한 몸인 원풍(gnyug rlung, 原風)과 미세한 의식인 원심(gnyug sems, 原心) 2가지를 현현시키고, 원풍을 통해 광대한 공덕을 쌓고 원심을 통해 공성(空性)에 등인지(Skt. samādhā, Tib. mnyam par gzhag pa, 等引至)로 들어가서 소지장을 대치하는 차제이다. 원심은 법신의 이숙(vipāka, 異熟)이 되고 원풍은 색신의 이숙이 되어 붓다의 법신과 색신을 동시에 신속하게 성취시킨다.

무상요가 탄트라에 의하면 인간의 신체에는 72,000개의 맥(Skt. nāḍi, Tib. rtsa, 脈)이 있고 그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중맥(Skt. avadhūtī, Tib. rtsa dbu ma, 中脈)과 좌맥(Skt. lalanā, Tib. rtsa rkyang ma, 左脈), 우맥(Skt. rasanā, Tib. rtsa ro ma, 右脈) 세 가지의 맥이 있다. 인체 가운데 중맥이 있고 그 양쪽에 좌ㆍ우맥이 있는데 무상요가 탄트라에서는 중맥과 좌ㆍ우 양맥, 그리고 중맥의 명점(Skt. bindu or tilaka, Tib. thig le, 明點)에 대한 복잡한 양상을 말하고 있다. 보통 사람의 경우에는 중맥을 통해서 풍이 흐르지 않고 좌ㆍ우맥을 통해 풍이 흐르는데 이는 중맥에 많은 매듭(rtsa mdud)이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39] 중맥을 막고 있는 매듭들을 모두 풂으로써 좌ㆍ우맥으로 흐르는 풍이 중맥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 원만차제 수행이다.

거칠고 미세한 생기차제를 원만성취한 다음 수습으로 인해 풍이 중맥에 입(入), 주(住), 흡수 세 가지를 함으로써 구생대락지(俱生大樂智)가 생기면 생기차제에서 원만차제 단계로 진입한 것이다. 원만차제에서는 맥, 풍, 명점을 핵심으로 삼는다. 맥, 풍, 명점 세 가지는 마음으로 가설(假設)함에 의존하지 않고 처음부터 몸에 원만하게 가지기 때문에 '원만'이라고 하고, 이 세 가지를 핵심으로 삼아 수습해야 하기 때문에 '차제'라고 한다.

즉 무상요가의 원만차제는 풍이 중맥에 입, 주, 흡수함으로써 생긴 유학(有學)요가라는 뜻이다. 여기에 신원리, 어원리, 심원리, 환신, 광명, 쌍입 여섯 가지 차제가 있다.[40]

1. 신원리
현교에서 수행자의 몸은 범부의 몸이다. 밀교에서는 범부의 몸을 버리고 본존의 몸으로 관(觀)해야 하기 때문에 "몸을 떠난다"는 의미로 신원리(Skt. kāyaviveka, Tib. lus dben, 身遠離)라고 한다. 몸을 공(空)으로 인식하여 정화(淨化)하고, 공한 가운데 본존을 생기(生起)시킨다. 이 때 몸은 붓다의 색신, 마음은 붓다의 법신으로 관하는데, 이처럼 본존의 불신(佛身)으로 관하는 것이 신원리이다.[41]

중맥에는 심장 부위 중맥의 가운데 하나, 심장 부위 중맥의 위 아래 하나씩, 중맥 위 아래 양 끝 하나씩 매듭이 총 5개가 있다. 신원리를 수습할 때, 중맥의 위 아래 양 끝의 매듭은 이미 풀어진 상태이다. 중맥 위 아래 양 끝의 매듭이 풀리지 않으면 생기차제에 그칠 뿐 원만차제로 진입할 수 없다. 풍이 응축되어서 중맥 위 아래 양 끝의 매듭이 풀리고 그 안에 풍이 들어가면 대락(Skt. mahāsukha, Tib. bde ba chen po, 大樂)이 생긴다. 그 특별한 대락으로 공성을 수습하면 원만차제라고 한다. 중맥의 위 아래 양 끝의 매듭이 풀리기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생기차제일 뿐이지 원만차제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신원리를 수습하는 것은 어원리를 수습하기 위함이다. 먼저 중맥 위 아래 양 끝의 매듭들을 풀어야, 이어서 심장 부위 중맥의 위 아래 매듭들을 푸는 어원리를 수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어원리
어원리(Skt. vākviveka, Tib. ngag dben, 語遠離)는 말[語]의 뿌리가 되는 풍이 호흡할 때 의미없이 범속(凡俗)하게 왕래하는 것을 막고, 진언의 음절("옴 아 훙(Oṃ āḥ hūṃ)" 등)로 변화시켜서 풍을 다스리는 것이 어원리이다. 범속하게 되는 것을 막기 때문에 "떠난다(원리遠離)"라고 한다.

호흡은 들숨, 머묾(머금음), 날숨 3단계로 나뉜다. 호흡을 하는 소리 자체에 "옴 아 훙"의 소리가 내포되어 있다. 숨을 들이쉴 때가 "옴", 숨을 머금을 때가 "아", 숨을 내쉴 때가 "훙"이다. 이 소리들을 일심(一心)으로 집중해서 관하는 것을 어원리, 금강염송(Skt. vajrajāpa, Tib. rdo rje bzlas pa, 金剛念誦), 혹은 명진(Skt. prāṇāyāma, Tib. srog tshol, 命進)[42]이라고 한다. 명진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이것이다.

심장 부위 중맥의 위 아래 매듭이 풀리고 심장 부위 중맥 가운데의 매듭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가 어원리에 해당한다. 어원리를 수습하는 이유는 심원리를 이루기 위해서이다. 심원리는 심장 부위 중맥 가운데의 매듭이 모두 풀린 상태이므로, 어원리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서 심장 부위 중맥의 위 아래 매듭을 풀어 심장 부위 중맥 가운데의 매듭을 풀고자 수행하는 도이다. 심장 부위 중맥 가운데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먼저 심장 부위 중맥 위 아래의 매듭을 풀어야 하기 때문에 심원리 이전에 어원리를 수습해야 한다.

3. 심원리
심장 부위 중맥의 매듭이 완전히 풀어져서 편재하는 풍의 일부가 심장 부위 중맥의 안으로 흡수되고, 그에 의해서 본래적 지혜(=대락大樂)을 일으키고, 그것으로써 공성을 인식하는 분별심을 일으키는데 이 분별심을 심원리(Skt. cittaviveka, Tib. sems dben, 心遠離)라고 한다. 심원리에는 다시 (1) 일반적인 심원리와 (2) 궁극적인 예시(비유)광명 2가지가 있다. 심장 부위 중맥의 매듭이 완전히 풀어져서 풍이 남김없이 모두 흡수되면 심원리의 궁극적인 예시광명이 현현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먼저 일반적인 심원리가 선행해야 한다.  

매듭은 모두 풀어졌지만 아직 풍을 다 흡수하지 못해 최종적으로 풍이 모두 흡수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수습이 필요한 상태가 일반적인 심원리이다. 이와 달리 궁극적인 예시광명은 매듭도 다 풀어졌고 풍도 모두 다 흡수가 된 상태이다.

4. 환신
환신(Skt. māyādeha, Tib. sgyu lus, 幻身)이란 본질은 원풍(gnyug rlung, 原風)이지만 그 형상은 본존의 몸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을 "도(道)의 색신(色身)(lam gyi gzugs sku)”이라고도 명명한다. 환신은 부처의 색신의 근취인(近取因)이기도 하다. 환신처럼 색신과 동류(同類)인 특별한 원인이 필요한 이유는 이숙(異熟)의 4대(四大)의 거친 몸(=오취온五取蘊/중생신衆生身)으로는 부처의 색신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신은 심원리와 승의광명의 사이에 있어야만 한다. 심원리로는 번뇌장과 소지장에 직접적인 대치(對治)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원리는 공성을 인식하는 것이므로 지혜자량은 갖추었으나, 공덕자량이 부족하므로 번뇌장과 소지장을 직접 대치할 수 없다. 번뇌장과 소지장을 직접 대치하는 승의광명을 일으킴에 있어 매우 광대한 공덕자량이 필요하다. 따라서 심원리와 승의광명 사이에 환신을 성취함으로써 신속하게 광대한 공덕을 쌓아 마침내 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모두 갖추게 된다. 두 자량을 통해 승의광명을 일으켜 번뇌장과 소지장을 직접 대치하고, 그것들을 신속하게 제거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는다.

5. 광명
승의광명(don gyi 'od gsal, 勝義光明)은 광명(Skt. prabhāsvara, Tib. od 'gsal, 光明)에 의해 공성을 현량(現量)으로 직접 지각하는 것이다. 승의광명은 승리자(=금강지불)에 선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2가지 장애(번뇌장, 소지장)을 소멸시키는 도이기 때문이다. 

승의광명에는 4가지 분류가 있다. (1) 번뇌장을 직접 대치하는 승의광명, (2) 번뇌장을 제거하는 승의광명, (3) 소지장을 직접 대치하는 승의광명, (4) 소지장을 제거하는 승의광명이 그것이다.

현교에서 성문, 독각, 10지(제1지~제10지)의 보살들은 번뇌장과 소지장의 견소단(見所斷)과 수소단(修所斷)을 각각 대치하여 제거한다.[43] 반면 밀교에서는 번뇌장과 소지장을 견소단과 수소단으로 분리하지 않고 모든 거칠고 미세한 번뇌장과 모든 거칠고 미세한 소지장을 일시에 직접 대치하여 제거한다.

6. 쌍입
무학쌍입(無學雙入)(=금강지불)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먼저 유학쌍입(有學雙入)을 성취해야 한다. 쌍입(Skt. yuganaddha, Tib. zung 'jug, 雙入)이라는 것은 의청정(意淸淨)인 승의광명과 신청정(身淸淨)인 환신, 이 두 가지가 하나의 본질로 결합된 것을 말한다.

7. 금강승과 현대사회

현대에 이르러 티베트 불교가 서구에 전파되면서 금강승의 폐쇄성과 서구인들의 금강승에 대한 환상과 편견,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해 금강승은 많은 오해를 사기도 했다.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티베트 불교 지도자들은 금강승을 비밀로 하여 오해와 폐단을 초래하는 것보다 금강승에 대해 대중에게 올바로 설명해주는 것이 더욱 이로움을 주리라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티베트 불교 관련 강연, 대중서적 등에서 금강승ㅡ심지어 무상요가 탄트라에 대해서도ㅡ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칼라차크라 관정법회 같은 대규모 관정법회에는 많게는 수십만이 넘는 전세계 대중들이 참가한다. 또한 IT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는 공간과 자원의 제약을 뛰어넘어 인터넷을 통해서도 전세계인들이 비대면으로 관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비대면으로 관정, 구전, 수계 등을 주는 것에 대해 티베트 불교계 내부에서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화상 회의 기술의 보급과 COVID-19의 대유행으로 이제는 확고하게 자리잡은 전법(傳法) 수단이 되었다. 대면ㆍ비대면을 막론하고 관정, 구전, 수계 등의 전법이 성립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법을 전하겠다는 설법자(說法者)의 의도와 그 법을 받겠다는 청법자(聽法者)의 의도이다.

금강승의 대중화로 인해 금강승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많이 불식되었지만, 한편으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칭 금강승/밀교 스승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는 역효과 또한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금강승이 과거보다 대중화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금강승은 자격과 근기를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비밀로 남아있어야 하며 만약 이러한 금기를 무시하고 함부로 법을 듣고 설할 경우 설한 자와 듣는 자 모두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티베트 불교도들이 금강승을 대하는 태도는 다소 양가적(兩價的)인데, 금강승이 대승에서도 가장 최상승이고 만나기 어려운 희유(希有)한 법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대부분 엄격한 서약과 금기를 감수하고서라도 기회가 있을 때 금강승과 인연을 맺고 금강승법을 전수받으려하지만, 한편으로 금강승과 관련해서는 항상 신중해질 필요가 있으며 아무하고나 사제(師弟)의 인연을 맺고 관정과 가르침 등을 받아선 안된다는 사실 또한 재차 환기시키곤 한다.

금강승의 대중화로 인한 또다른 폐해는 현교 수행에 대한 경시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무상요가 탄트라, 마하무드라, 족첸 같은 최상승법에만 관심을 갖고 현교 수행을 소홀히 하면서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처럼 기초 없는 수행을 하는 경우가 흔해졌다. 만약 무상요가 탄트라, 마하무드라, 족첸 같은 최상승 수행은 쉽고 수월한데 람림, 로종 같은 현교 수행은 어렵고 부담이 된다면 이는 단지 수행 차제(次第)의 선후가 뒤바뀐 채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대부분의 티베트 불교 스승들은 금강승 수행에 앞서 람림(lam rim), 땐림(bstan rim), 로종(blo sbyong), 온드로(ngon dro)[44]같은 이익은 많고 위험은 적은 현밀(顯密) 공통의 수행들을 먼저 권장하는 편이다.

이 밖에도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인해 금강승 관련 자료, 이미지 등이 지나치게 노출되는 것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풍조에는 금강승 수행자를 자처하는 이들도 일조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SNS에 본존, 만달라, 의궤문, 만트라, 법구(法具) 등 금강승과 관련된 소재를 게시하며 금강승을 독특하고 이색적인 문화의 일종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금강승 수행을 비밀로 하지 않고 타인에게 함부로 공개하는 것은 싸마야계를 어기는 행위이며, 수행자의 에고(ego)/아집(我執)을 강화하고 금강승의 근기가 되지 않은 자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행위란 것을 이미 싸마야계에서는 경고한 바 있다. 금강승 수행자는 자신의 스승이나 받은 관정, 하고 있는 수행 등에 대해 불필요하게 드러내서는 안되며, 티베트의 진실한 성취자들 중에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금강승 수행자인지 밝히지 않은 채 은밀하게 수행한 경우가 적지 않다.
당신이 스스로를 금강승의 제자라고 생각하거나 믿는다면ㅡ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자신을 금강승 수행자라고 생각하는 한ㅡ이 심오한 전통을 보호하는 것은 당신의 책임이 됩니다. 금강승(Vajrayana)에서는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금강승은 비밀리에 수행하도록 고안되었기 때문에 "비밀진언승(Guhyamantrayana)"이라고 불립니다. 숨길 것이 있어서 비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에고(ego)가 수행에 가져올 수 있는 함정과 타죄(墮罪)으로부터 수행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수행자들은 "영적 물질주의(spiritual materialism)"에 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의 수행은 그들의 마음을 길들이고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에고를 치장하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느껴지게 하거나 자신이 "쿨한" 사회적 부족의 일부라고 느끼게 하기 위한 또다른 패션 표현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수행하면 금강승의 가르침은 쓸모없는 것보다 더 나빠집니다.

또한, 금강승의 가르침은 적절한 가르침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는 측면에서 "숨겨져 있습니다". 이는 마치 외국어 같습니다. 일부 이미지와 상징은 초심자에게 이상하거나 심지어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으므로, 그것들이 새로운 수행자들을 방해하여 혹시나 일반적인 불교의 도(道)와 특별한 금강승의 도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갖지 않도록 숨겨 두는 것이 대체로 권장됩니다.

특히 소셜 미디어에 게시할 때 본인의 읽는 즐거움을 위해 게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대상으로 게시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그들은 아마도 미친 사진들(crazy photos)에 대한 당신의 즐거움이나 당신이 스승(guru)이라고 부르는 특정 인물에 대한 기이한 숭배와 환상에 대해서 공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당혹감을 피하고 다르마 수행을 보호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법과 심오한 금강승 전통을 보호하는 법에 대하여 저의 동료인 이른바 금강승 제자들에게 드리는 몇 가지 제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금강승의 비밀을 유지하십시오(여기에는 스승, 수행, 탄트라 이미지, 받은 관정, 참가한 가르침 등에 대한 비밀이 포함됩니다).

• 탄트라 이미지를 게시하지 마십시오. 도발적인 탄트라 이미지(예: 팔이 여러 개인 본존, 동물 머리를 가진 본존, 합일존, 분노존의 이미지)를 게시하는 것이 당신을 중요한 인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그것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 만트라와 종자자(Skt. bīja, Tib. yi ge, 種子字)를 게시하지 마세요. 기분 개선과 자기계발의 보조 수단으로 만트라와 종자자를 페이스북에 게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화장이나 이발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 당신이 받은 관정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세요. 당신이 주말에 받은 금강승 관정 사진들이 페이스북의 고양이 사진 옆에 게시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고양이를 네팔로 보내 관정을 받게 해야 합니다. 스승의 허가를 받지 않은 이상, 금강승 관정, 가르침 또는 만트라에 대한 사진, 비디오 또는 오디오 녹음을 게시하지 마십시오.

• 당신이 받았을 수도 있는 심오하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족첸"이나 "마하무드라" 같은 단어를 입에 담는 것을 유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심오한 지침을 받았다면 그 지침을 따르고 혼자만 간직하는 것이 좋습니다.

(2) 영적 물질주의의 유혹에 굴복하지 말고 에고를 위해 다르마를 사용하지 마십시오(당신의 구루, 이해, 수행 등에 대해 과시하지 마십시오. 마찬가지로 다른 수행자나 가르침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 마십시오).

• 자신의 경험과 이른바 성취(siddhi)를 공유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성취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 가치있다고 생각한다면 망상을 강화하느라 바빴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수행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은 수행의 일부가 아닙니다. 진실하고 겸손해지도록 노력하세요. 부처님, 유니콘, 무지개에 대한 환상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아무도 당신의 명상 경험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당신이 자기기만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한다면, 계속해서 다시 생각해보세요.

• 당신의 스승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스승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생각하더라도, 당신 스스로에 대한 헌신을 유지하는 것이 아마도 당신에게 더 나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불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사이비 종교에 가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스승이 다른 스승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당신의 평등심과 청정 인식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 소위 지혜를 공유하려고 시도하지 마십시오. 심오한 가르침을 받는 것이 그것을 선포할 자격을 준다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당신의 무지를 드러낼 것입니다. 붓다나 스승의 인용문을 "공유"하기 전에, 그들이 정말로 그 말을 했는지, 그리고 청중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 불교와 비(非)불교 사상을 혼동하지 마십시오. 무지개와 구체(球體, orb)에 대해 아무리 영감을 받았더라도, 세상의 종말에 대해 아무리 확신하더라도 자신의 환상/특이성을 불교와 혼합하지 마십시오.

• 다른 사람을 존중하십시오. 테라와다(Theravada)와 대승(Mahayana)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금강승도 없을 것입니다. 테라와다와 대승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것은 금강승 수행자들에게 완전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다른 불교도를 공격하는 것이 불교를 향상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불교를 위해 도움이 되도록 다른 불교도 대신 자신의 에고와 편견을 겨냥하십시오.

• 불화를 일으키지 마십시오: 문제와 분쟁 대신 온라인 채팅을 통해 승가 공동체에 조화를 가져오는 사람이 되십시오.

• 항상 자신의 동기를 염두에 두십시오. 온라인에서 "미친 지혜(ye shes 'chol ba, "crazy wisdom")" 짓을 보이려고 시도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선한 마음을 갖도록 격려하십시오. 자비심으로 무언가를 게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먼저 자신이 해를 끼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십시오. 무언가를 게시하고 싶은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을 때마다 그것을 읽는 사람과 다르마에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세요.
Dzongsar Jamyang Khyentse Rinpoche, 《Social Media Guidelines for So-Called Vajrayana Practitioners》#

8. 과학적 연구

8.1. 툭담(thugs dam) 연구

8.1.1. 사후 의식의 연속과 툭담

John D. Dunne, 《Between Life and Death: Understanding Tukdam》
툭담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Tukdam: Between Worlds》(2022) 트레일러 # [45]

불교에서는 생명체가 색(色, 물질), 수(受, 느낌), 상(想, 인식), 행(行, 의지), 식(識, 의식)이라는 오온(五蘊, 다섯 가지 무더기)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이 중 색온은 물질이고 수, 상, 행, 식은 의식 혹은 정신에 해당한다. 생명체가 죽음에 이르게 되면 색온, 수온, 상온, 행온 및 식온의 거친 부분은 소멸된다. 이는 뇌의 일부가 손상되거나 뇌사에 이르는 경우 기억이나 자의식이 훼손당하는 기존의 과학적 연구 사실과 일치한다. 의식과 상호작용하는 물질적 조건이 제한되면서 의식의 기능에도 제한이 생기는 것이다.

금강승의 견해에 따르면,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식온의 가장 미세한 부분, 즉 초(超)미세의식은 초미세물질과 본질은 하나이지만 분별식(分別識)으로는 다르게 인식되는 관계[ngo bo gcig la ldog pa tha dad, 體性一 返體異]를 가지며 사후에도 연속된 흐름[相續]을 이룬다. 이러한 초미세의식의 흐름이ㅡ태생(胎生)의 경우ㅡ자궁 속의 수정란과 합쳐지면서 환생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달라이 라마, U.C. 산타바바라 강연《마음의 본성》1부 2부 3부

사후에도 존재하는 미세의식과 관련된 사례로 티베트 불교의 툭담(ཐུགས་དམ་, thugs dam, tukdam/thukdam)이라고 하는 사후의 특수한 명상을 들 수 있다. 티베트어로 "툭(thugs)"은 마음이나 의식, "담(dam)"은 삼매(samādhi)나 명상 상태를 의미한다. 툭담에 든 고승들은 심정지로 의학적 사망(clinical death)이 선고된 이후에도 수 일 혹은 수 주에 걸쳐 시신이 부패하거나 시반(屍斑), 사후경직(rigor mortis)이 발생하지 않고 생전처럼 시신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심장 부근에서 따뜻한 체온을 유지한다.

생전에 높은 수행의 경지에 이른 고승들은 바르도(bar do)[46]라는 죽음과 환생 사이의 과도기에 초미세의식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깊은 명상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수행자 뿐만 아니라 모든 의식을 가진 생명체는 사후 정광명(淨光明, ‘od gsal)이라는 초미세의식 상태를 경험하지만 일반적으로 매우 짧은 한 순간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에 불과한데 반해, 고도로 숙련된 명상 수행자는 초미세의식 상태에 수 일에서 수 주까지 머무를 수 있다. 이 때의 의식 상태를 활용하여 공성(空性)에 대한 지관쌍운(止觀雙運)을 수행하면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전해진다.

툭담 현상은 상술한 금강승의 무상요가 탄트라와 관련이 있다. 인도와 티베트에서 전해지는 밀교 경전에서는 바르도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의 활동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관련된 국내 서적으로는 《달라이 라마, 죽음을 말하다》, 《밀교의 성불 원리》, 《티베트의 지혜(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 사자의 서(개정 완역)》, 《티벳 사자의 여행 안내서》, 《바르도 성취법》 등이 있다. 각각의 문헌에 따라 설명에 크고 작은 차이들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일명 "티베트 사자의 서"로 잘 알려진 《바르도 퇴돌 첸모(bar do thos grol chen mo)》는 14세기 닝마 수행자인 까르마 링빠(kar ma gling pa)에 의해 발견된 뗄마(gter ma, 寶藏) 문헌으로, 주로 닝마와 연관된 전승에서 인정되는 가르침이며 티베트 불교의 모든 종파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가르침은 아니다.

8.1.2. 툭담의 관찰 사례

툭담은 비단 티베트, 몽골과 같은 춥고 건조한 지역 뿐 아니라 인도, 대만 등 고온다습한 지역에서도 발생하는 현상이다. 거의 매년 세계 각지에서 툭담 사례들이 관찰되고 있다. 아래는 그러한 사례들 중 일부를 소개한 것이다.
  • 티베트 불교권 지역인 몽골의 경우 지난 50여 년간 수십 차례의 툭담 사례 보고가 있었다.[47]
  • 1981년 미국 일리노이주 자이언(Zion)에 위치한 병원에서 제16대 까르마빠(Karmapa) 랑중 릭뻬 도제(Rangjung Rigpe Dorje)가 3일 간 툭담 상태를 유지하였다. 당시 까르마빠의 주치의였던 미첼 레비(Mitchell Levy) 브라운대 의대 교수와 라눌포 산체즈(Ranulfo Sanchez) 종양전문의 등이 까르마빠가 보인 툭담 현상을 관찰하였다.[48]
  • 1984년 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의 스승이자 제97대 간덴 티빠(Ganden Tripa)였던 제6대 링 린포체(Ling Rinpoche)가 13일 동안 툭담 상태를 유지하였다.#
  • 2012년 3월 네팔 카트만두에서 텐가 린포체(Tenga Rinpoche)가 앉아서 명상하는 자세로 3일 이상 툭담 상태를 유지하였다.[49]
  • 2017년 대만에서 제8대 도종 린포체(Dorzong Rinpoche)가 3주 가까이 툭담 상태를 유지하였다.[50]
  • 2020년 5월 인도 카르나타카주 소재 간덴 장쩨(Gaden Jangtse) 사원에서 사망한 게셰 롭상 체링(Geshe Lobsang Tsering)이 20일 이상 툭담 상태를 유지하였다.#
  • 2020년 7월 대만에서 게셰 잠빠 갸초(Geshe Jampa Gyatso)가 28일 간 툭담 상태를 유지하여 국립 대만중앙연구원(台灣中央研究院) 소속 과학자들이 혈중 산소 포화도와 맥박, 뇌파 등을 조사한 바 있다.[51]
  • 2020년 11월 21일 인도 카르나타카주 소재 간덴 장쩨 사원에서 사망한 게셰 뗀빠 다르게(Geshe Tenpa Dhargyal)가 20여 일 동안 툭담 상태를 유지하여[52] 관련 데이터가 수집되었고 미국과 러시아의 과학자들에게 공유되었다. 더불어 또다른 툭담 사례가 데뿡 로셀링(Drepung Loseling) 사원에서 발견되어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2020년 12월 25일 미국, 러시아, 인도-티베트 연구팀의 화상회의가 열리기도 하였다. #
  • 2021년 3월 인도 다람살라에서 겔롱 응악람빠 겐뒨 체링(Gelong Ngagrampa Gendun Tsering)이 37일 간 툭담 상태를 유지하였다.#

8.1.3. 연구 동향

2021년 제14대 달라이 라마와 러시아 과학자들의 툭담과 명상의 과학적 연구에 관한 대담
《How to Study Meditation by Scientific Methods》 (1)
(한글 자막 있음)
(2)편 (3)편 (4)편 (5)편
2022년 제14대 달라이 라마와 미국 과학자들의 의식과 툭담, 사회 윤리, AI 윤리 등에 관한 대담
《Interdependence, Ethics, and Social Networks - Mind & Life Conversation - Day 2》
(약 20:00 지점부터 툭담 언급)

툭담 현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리차드 데이비슨(Richard Davidson) 위스콘신-메디슨대 교수 #, 시바또슬라브 메베데브(Svyatoslav Medvedev)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교수 # # 등이 툭담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착수한 바 있다. 데이비슨이 이끄는 위스콘신-메디슨대 건강한 마음 센터(Center for Healty Minds) 연구팀과 메베데브가 이끄는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와 모스크바 국립대 연구팀은 2019년 인도 고아(Goa)에서 회동을 갖고 서로의 연구 경험을 공유하며 향후 공동연구를 진행하기로 합의하였다. 미국과 러시아의 연구진들은 인도 현지의 서양의학과 티베트 전통의학을 전공한 의료진들, 그리고 연구에 필요한 훈련을 받은 젊은 승려들과 함께 협력하여 데이터를 수집하며 신경과학, 법의학, 법인류학, 생리학, 병리학, 티베트 전통의학, 불교학 등이 연계된 학제간 융합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툭담 현상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조사는 1995년 인도 다람살라에서 열린 마음과 생명 연구소(Mind & Life Institute) 대담 행사에서 신경과학자 리차드 데이비슨과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Tenzin Gyatso)의 대화 중에 시작되었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스승이자 제97대 간덴 티빠(Ganden tripa: 티베트 불교 겔룩 종파의 종정)인 캽제 용진 링 린포체(Kyabje Yongzin Ling Rinpoche, 1903~1983)가 '툭담'이라는 상태에 머문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툭담을 죽음의 순간에 달성되는 명상 상태로 묘사했는데, 툭담 상태에서 수행자는 마음의 본성에 대한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고 죽음 이후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생리적 과정의 정상적인 일정이 지연되는 것을 보여준다.

링 린포체는 13일 동안 툭담 상태에 머물렀고, 초기 분해 징후가 나타난 13일 이전까지 다람살라의 습한 아열대 기후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툭담 상태가 풀리면 의식이 몸을 떠나고 임종 시 정광명('od gsal, 淨光明)에 대한 명상이 멈춘다고 한다.

툭담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재개되면서 2006년 툭담 사례를 평가하기 위한 열화상(thermal imaging) 선행 작업이 시작됐다. 열화상 촬영을 한 이유는 툭담의 주요 징후 중 하나가 심장 부위 주변에 남아있는 온기이기 때문이다. 티베트 불교 전통에 따르면, 툭담 기간 동안 미세의식은 심장 부위에 남아 있으면서 의식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툭담 프로젝트는 달라이 라마 사무국, 멘치캉(Men-Tsee-Khang: 티베트 전통 의학 및 천문학 연구소), 델렉(Delek) 병원, 위스콘신-메디슨대의 건강한 마음 센터와의 협력 하에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주요 연구자는 CHM의 리차드 데이비슨과 달라이 라마의 주치의 두 명, 즉 티베트 전통의학 의사인 체왕 땀딘(Tsewang Tamdin)과 생의학 개인 주치의인 체탄 도르지 사두창(Tsetan Dorji Sadutshang)으로 구성되었다. 2007년 CHM은 툭담 사례에 대한 공식적인 뇌 기록과 정신생리학적 평가를 시작하기 위해 인도에 장비를 설치했다.

첫 번째 데이터 수집 시도는 2008년 9월 제100대 간덴 티빠인 롭상 니마 린포체(Lobsang Nyima Rinpoche)가 사망하면서 이루어졌으며, 그는 18일 동안 툭담 상태에 머물렀다. 연구 목표는 EEG와 EKG를 통해 각각 뇌간이나 심장 활동이 남아 있는지 또는 열화상, 산소측정 등을 통해 생물학적 활동의 기타 생리학적 징후가 존재하는지 평가하는 것이었다.

롭상 니마 린포체의 툭담 사례와 환생자 선정에 관한 민족지학(ethnography)적 설명은 당시 멘치캉의 임상 연구 책임자이자 툭담 연구팀 구성원으로 현장 조사를 이끌었던 텐진 남둘(Tenzin Namdul)의 박사 논문(2019)을 참조하면 된다. 텐진 남둘은 해당 주제로 에모리대에서 의료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 연구팀은 사후 툭담 상태에 잠재적으로 진입하기 이전의 기준 데이터를 얻기 위해, 숙련된 상급 수행자들이 살아있는 건강한 통제변인으로 포함되도록 연구 프로토콜을 재설계했다. 그 당시 툭담 상태 진입을 관상(觀想)하는 금강승의 명상 수행들은 아직 조사 대상이 아니었고, 단지 집중 상태에 머무는 것에 대한 정신생리학적 측정만 평가되었다. 선행 연구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시행되었고, 프로토콜은 2012년에 공식화되었으며,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연구팀은 23개 사례를 평가하였다.

평가 지표는 EEG(auditory brainstem response/mismatch negativity/resting state), EKG, 혈중 산소 포화도, 산소 소모량, 이산화탄소 생성량, 피부 온도, 주위 환경 온도 및 습도, 영상 및 사진 기록, 열화상, 의료 및 명상수행 기왕력 등이었다.

현장팀은 멘치캉의 티베트 전통의학 의사, 델렉 병원의 생의학 교육을 받은 티베트 출신 의사, 주관 사원의 승려, CHM의 신경과학 및 인류학 연구자들로 구성되었다. 평가 사례들 중 13례는 《Frontiers in Psychology》에서 출판된 null finding을 설명하는 첫 번째 논문에 기술되었다.[53]

당시 조사 및 현장팀 교육의 초기 우선순위는 신경생리학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혈중 산소 포화도, 이산화탄소 생성[54](비강 캐뉼라 캡노그래피(nasal cannula capnography)를 통해 측정) 및 열화상에 초점을 맞춘 말초 생물학(peripheral biology)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이미지와 비디오 기록을 통한 초기 법의학적 평가도 개발되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이자 버클리대 인류학 박사 후보생인 도나휴 콜먼(Donagh Coleman)이 딜런 로트(Dylan Lott)가 이끄는 CHM 프로젝트에 합류하여 툭담 사례를 촬영했다. 다큐멘터리에서 콜먼은 살아있는 건강한 수행자 사례와 툭담 사례를 기록하기 위한 현장팀의 노력과 그 현상을 조사하는 두 가지 지적 전통의[55] 도전을 기록했다. 다큐멘터리 《Tukdam: Between Worlds》의 장편 버전은 2023년에 개봉되었다.[56]

2020년 11월 달라이 라마는 툭담 연구팀에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의 인간 두뇌 연구소(IHB RAS) 및 모스크바 국립대학의 신경과학자, 생리학자들과 협력할 것을 요청했다.

러시아 연구팀은 티베트 불교 승려 출신의 현장 연구자를 모집했는데, 그 중 일부는 에모리대에서 과학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러시아팀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주요 훈련이 진행된 "신경과학의 중도적 접근(Middle-Way Approach in Neuroscience)"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승려 출신 현장 연구자들에게 추가적인 신경과학적 방법을 교육했다. 그들은 툭담과 명상 분야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바일라쿠뻬(Bylakuppe) 소재 따쉴훈뽀(Tashi Lhunpo) 사원, 문곳(Mundgod) 소재 데뿡 고망(Drepung Gomang) 사원 및 다람살라(Dharamsala) 소재 규뙤(Gyutö) 사원 근처에 세 개의 러시아 연구 센터를 열었다. 이 연구 센터는 이제 공동 협력에도 사용된다.

러시아팀에는 팀원 중 러시아 출신 병리학자가 있었고 CHM은 팀원 중 일부로 법인류학자를 모집했다. 학제간 연구팀은 관찰된 신체적 징후에 기여할 수 있는 생물학적 및 신경 메커니즘뿐만 아니라 툭담의 생리학적 상관관계를 보다 포괄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함께 조사를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주로 법의학적 측정에 중점을 두었다.

러시아팀은 또한 툭담 수행자들의 제자들과의 생애사(life history) 인터뷰 및 살아있는 건강한 수행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를 통해 툭담 상태로의 잠재적 진입을 촉진하는 수행을 탐색하려고 노력했다. 러시아팀은 초기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Center for Healthy Minds, 《History of The Tukdam Project》

8.1.4. 연구 요약

다음은 툭담 관련 출판물 목록이다. 이 중 일부는 요약된 내용을 별도로 후술하였다.
■ Thompson (2014)

에반 톰슨(Evan Thompson)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교수는 2014년 발간한 에반 톰슨,《각성, 꿈 그리고 존재》(이성동, 이은영 譯)에서 툭담에 관한 연구자들의 의견 일부를 소개하였다. 톰슨은 뉴질랜드, 네팔, 인도,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보고된 툭담 사례들과 툭담에 관한 티베트 불교의 전통적 견해를 소개하였다. 툭담에 관하여 톰슨은 온도, 습도, 사체의 산소 노출, 장내 미생물 등의 조건에 따라 사체부패가 지연될 수 있으며, 사후경직 역시 일반적으로 사망 후 36시간 내외 시점에 해경되어 연화되기 시작하므로 관찰 시점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톰슨은 톰슨 본인이 참여한 위스콘신-메디슨대의 '건강한 마음 탐구 센터(Center for Investigating Healthy Minds)'에서 열린 소모임에서의 대담을 소개하였다. 그 소모임은 세포 대사와 가사(假死)상태 전문 분자생물학자, 코마(coma)와 뇌사(腦死) 전문 뇌과학자, 법인류학자, 사체분해병리학자, 티베트 명상 전문가, 티베트 전통의학자들이 모여 툭담을 조사하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개최되었다.

모임에서 법병리학자 빈센트 트란치다(Vincent Tranchida)와 법인류학자 다니엘 웨스코트(Daniel Wescott)는 리처드 데이비슨 연구팀이 그 당시까지 조사한 4건의 툭담 사례에서 보이는 분명한 부패 지연 현상은 일정한 조건이 주어진다면 그다지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흥미로운 한 가지 가능성은 티베트 불교의 명상 수행자들이 깊은 명상 상태에 이르면 호흡이 관찰되지 않는 일종의 정지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제기되었다. 가사상태 분석 전문가인 분자생물학자 마크 로스(Mark Roth)는 명상을 통해 산소요구량을 줄여 대사활동을 늦추거나 심지어 멈출 수도 있지 않은지 의문을 제기했다.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가장 좋은 방법은 생전에 명상을 통해 대사활동을 지연시킬 수 있는지 관찰하는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나서 수행자의 죽음과 분해과정을 비수행자의 것과 다른지 연구해보는 것이다.

톰슨은 사체의 장기 부패지연 현상이 사후 의식이 보존된다는 믿음을 확인시키는 결정적 근거가 되기에는 불충분하지만, 과거에 존재했던 의식이 사후 신체에도 영향을 주는 사례일 수 있다고 해석하였다. 때문에 톰슨은 마음이 죽음의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 생물학적으로 죽음을 완전히 이해하는데 과학과 티베트 불교의 상호협력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았다.
■ Lott et al. (2021)

2021년 1월 CHM 소속 인류학자 딜런 로트(Dylan Lott)와 신경과학자 리처드 데이비슨(Richard Davidson)을 비롯한 미국, 인도-티베트 연구팀에 의해 《No Detectable Electroencephalographic Activity After Clinical Declaration of Death Among Tibetan Buddhist Meditators in Apparent Tukdam, a Putative Postmortem Meditation State》라는 제목의 논문이 출간되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결론적으로 툭담 상태의 관찰 대상에게서 별다른 뇌파(Electroencephalogram, EEG) 변화를 감지할 수 없었다.

로트 등은 뇌간(Brain stem)이 모든 장기의 활동을 통합하고 인체의 항상성을 유지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대상에게 청각 자극을 준 후 음전위부정합(Mismatch Negativity, MMN)과 청각뇌간반응(Auditory Brainstem Response, ABR)을 측정하여 툭담 상태에서의 의식 활동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가설을 설정하였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2013년에서 2019년까지 살아있는 티베트인 14례와 사후 툭담상태에 해당하는 13례에게 청각 자극을 준 후 두피에 부착된 전극을 통해 MMN과 ABR을 측정하여 각각 비교해보았다. 측정 결과 살아있는 14례의 건강 기초선(Healthy baseline)은 통상적인 MMN과 ABR의 파형(waveform)을 보였으나 툭담 상태의 13례에게서는 식별할 만한 파형 변화를 찾을 수 없었다.[57]

로트 등은 두피에 부착된 전극으로 감지하기에는 뇌파가 너무 미미하거나, 현장에서 쓰인 측정 장치의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또한 만일 의식의 활동이 사후 부패 지연 현상의 조정자(mediator)가 아니라면, 다른 생체 메커니즘이 작용하였을 수도 있다고 추측하였다. 두 경우(의식 활동 또는 의식 활동 외의 생체 메커니즘) 모두에서 관찰 대상의 라이프 스타일, 의료 기록, 수행 경력, 혈액ㆍ타액ㆍ생체 조직 등을 추가로 조사한다면 또다른 메커니즘을 밝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고 예상하였다. 툭담과 관련된 의미 있는 과학적 데이터를 얻을 수는 없었지만, 로트 등은 본 연구가 툭담 연구의 시초이며 툭담 현상의 실증적인 지위를 단정지으려는 의도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2016년 《사백론》 법문에서 "사망 시 먼저 몸을 이루는 지, 수, 화, 풍 4대(大)가 흡수된 후 백색, 적색, 흑색의 환영을 거처 금강승에서 말하는 제4공(空), 정광명이 발현된다. 뇌파 발생이나 혈액 순환은 풍대(風大)가 흡수될 때 완전히 멈추므로 정광명의 상태에서는 뇌파를 관찰할 수 없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즉 달라이 라마의 설명에 따르면 금강승에서 말하는 툭담 상태, 혹은 정광명의 의식 수준에서는 이미 조대(粗大)한 물질 수준에서의 신체적 활동이 완전히 중단되고 매우 미세한 의식과 매우 미세한 물질만이 활동하므로 뇌파 관측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로트 등이 툭담 상태에서의 뇌파 변화를 감지할 수 없었던 것은, 의식을 뇌의 산물로 보는 기존의 과학적 관점 뿐 아니라 불교적 관점에서도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
■ Tidwell et al. (2024)

CHM 소속 연구자 토니 티드웰(Tawni Tidwell)과 미국, 러시아, 인도-티베트 연구팀은 2024년 《Delayed decompositional changes in indoor settings among Tibetan monastic communities in India: A case report》라는 제목의 사례 연구를 발표했다. 이들은 툭담 연구 중 사후 분해 및 부패 변화 지연이 관찰된 2례의 기록을 통해 법의학 및 법인류학 분야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사후경과시간(post-mortem interval, PMI)의 정확한 측정에 기여하고자 했다.

일반적으로 사망 날짜를 알 수 없는 많은 법의학 사례와 달리, 본 연구는 사후경과시간이 알려진 상태에서 시작하여 외부 검사 측정(온도, 피부 탄력도 및 피부색 변화), 사진 및 비디오 촬영을 통해 시간에 따른 분해 변화를 점진적으로 평가했다. 이 작업은 향후 연구를 위한 가설을 제안하기 위해 문서화된 생물학적 매개변수와 함께 잘 설명된 사례를 제공하려 했다. 현장팀 구성원은 기후 및 생태학적 요인의 가변성이 사례마다 다를 수 있는 환경에서, 사후체온하강(algor mortis), 사후강직(rigor mortis), 시반(livor mortis)과 관련된 모든 분해 변화뿐만 아니라 피부색 및 조직 무결성(tissue integrity)의 점진적인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했다.

두 사례는 습한 아열대열대 몬순 쾨펜-가이거(Köppen-Geiger) 분류 기후대에서 각각 31일(사후경과시간[PMI] 38) 및 19일(PMI 27) 동안 추적되었으며, 관찰된 분해 및 부패 변화 지연은 기대되는 변화 속도 및 예상되는 의학적 사망 후 실내 투과성 환경 내에서 발생하는 생물학적 변화군과 상충되었다. 이러한 사후변성학(taphonomy)적 맥락에서, 본 연구는 또한 일부 개인이 약화된 분해 변화를 보이는 것으로 인식되는 폐쇄된 하위 모집단에서 사후경과시간을 설명하고 기록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뤘다. 본 연구는 PMI 기간의 초기 단계에 대한 이해에 기여하고 PMI 추정치의 정확성을 보다 광범위하게 향상시킬 수 있는 요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그간 충분히 연구되지 않고 과소 대표되었던 지역, 기후 및 문화적 맥락을 다루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9. 관련 영상

게셰 텐진 남카,《밀교 개론(1): 밀교란 무엇인가? 왜 밀교를 공부하고 수행하는가? 밀교의 뛰어난 점은?》
밀교 개론(2) 밀교 개론(3)
게셰 소남 걜첸, 《인도에서 티베트로 전해온 밀교의 체계》1강

[1] 상부: (左) 붓다 (右) 금강살타보살.[2] 자성신(自性身), 법신, 보신, 화신[3] 지금강불의 짙은 푸른색은 허공같이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의미하고, 금강저와 금강령의 교차는 지혜와 방편의 합일을 의미한다. 84명의 마하싯다는 고대 인도의 대표적인 밀교 대성취자들이다.[4] 대승 불교의 불신론(佛身論)에 따르면 석가모니불은 교화 대상인 중생의 근기를 따라 화현한 화신불(化身佛)이다.[5] 업을 짓고 쌓는 힘이 왕성하고 쉽게 성숙해서, 생의 전반에 쌓은 업이 생의 후반에 익는 땅을 말한다.[6] 문수보살의 성불 후 불호(佛號)[7] 석가모니불 외에도 현겁의 부처 중 몇 명이 추가로 금강승을 가르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가령 겔룩에서는 현겁의 11번째 부처로 성불할 겔룩의 창시자 쫑카빠와 현겁의 마지막 부처인 누지불(樓至佛) 또한 금강승을 가르칠 것으로 예상한다. 쫑카빠는 자신이 부처가 아닌 시기에도 이미 금강승을 선양한 바 있고, 누지불은 현겁의 나머지 999명의 부처가 한 사업들을 모두 행할 부처로 예언된 바 있기 때문이다.[8] 대치(pratipaksa, 對治)는 선법(善法)으로 번뇌를 끊는 것을 가리키며 대치법은 대치하는 방법 또는 수단을 가리킨다.[9] 부처와 달리 중생에게는 승의제와 세속제를 각각 별개의 현현으로 인식하는 착란이 있음을 의미한다.[10] 원심이 공성을 현량(現量)으로 직접 지각하면 그 때의 원심이 승의광명이 된다.[11] 현교에서는 지혜와 방편을 번갈아 수습하며 둘이 상호 영향을 주는 쌍수(雙修)만을 언급하지만 밀교에서는 지혜와 방편을 동시에 수습하는 합일(合一)이 가능하다.[12] 소작, 행, 요가 탄트라.[13] 부수적인 원인.[14] 주된 원인.[15] 《람림》의 삼사도를 가리킨다.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 불교/람림(보리도차제) 참조.[16] 대중에게 공개 가능한 수준의 기본적인 밀교 교리를 바탕으로 밀교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지어진 글이다.[17] 밀교에서 등장하는 미세한 소지장이나 그것의 대치법인 미세의식 등의 개념은 단순히 추가된 개념 정도가 아니라 만약 생략될 경우 논리적 결함을 일으킬 수 있는 개념들이다. 그러나 현교 경론에서는 간략히 언급만 되거나 생략되어 있다. 때문에 밀교의 개념들은 불필요한 '옥상옥(屋上屋)'이 아니라 수행 체계의 정합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개념들이라고 볼 수 있다.[18] 일부 학자들은 부처의 일체지(一切智)나 색신을 부처에 대한 신격화의 일환이라고 폄훼하기도 하지만, 경론에서는 더 위대해지거나 숭배받기 위함이 아닌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한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수단이라고 그 존재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그것들을 성취하는 수행도에 대해서도 상세히 가르치고 있다.[19] 보리(菩提)와 열반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선근공덕 (善根功德)[20] 공성에 집중하는 삼매를 이루어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인 공성이 물에 물을 타듯 둘이 아닌 상태가 됨을 의미한다.[21] 예를 들어 진언을 하루에 몇 번 외우거나 사다나(sadhana: 본존 성취 의궤)를 하루에 몇 번 수행해야 된다는 식으로 관정을 준 아사리가 제자에게 수행 의무를 줄 때가 있다. 만일 이때 수행을 하기로 발원하고 스승에게 약속했다면 이를 꼭 준수해야 한다.[22] 불교 교단의 스승의 총칭[23] 현교 경전인《화엄경》<입법계품>의 바수밀다(vasumitra, 婆須蜜多) 일화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봄, 말함, 손잡음, 포옹, 입맞춤 등의 쾌락을 지혜로 전환하여 번뇌를 소멸시키는 전식득지(轉識得智)의 과정이 등장한다.[24] 통상적으로 야만따까 딴뜨라는 부속(父續)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겔룩에서는 부속과 모속(母續)의 핵심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을 야만따까 딴뜨라의 특징 중 하나로 본다.[25] 헤바즈라 딴뜨라를 중시하는 싸꺄에서는 헤바즈라 딴뜨라를 부속과 모속의 핵심을 모두 갖춘 불이 딴뜨라로 본다.[26] 남방 상좌부 전승에도 호주(護呪)에 해당하는 빠릿따(paritta) 게송이나 소위 "상좌부 밀교(Esoteric/Tantric Theravada)"로 일컬어지는 보란 깜맛타나(Borān kammaṭṭhāna) 전승 등이 존재하지만 4부 딴뜨라 분류와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다.[27]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신구의(身口意)로 지은 삼업(三業)을 정화하는 '정삼업진언(淨三業眞言)'으로 알려져 있다. 동아시아에서 공성 진언이 업을 정화하는 진언으로 개변(改變)된 이유는, 한역(漢譯) 밀교 의궤들에서 나타나듯 공성 진언이 참회와 밀접한 관련을 갖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인도-티베트 불교에서도 참회와 정화가 공성에 대한 인식과 관련이 있다. 참회의 경우 주된 조건인 사대치력(四對治力)과 함께 보조적인 조건으로서 공성에 대한 인식이 수반된다. 불선업(不善業)의 주체, 대상, 행위 세 가지의 자성(自性)이 공(空)하고 명언(名言)으로 가설(假設)될 뿐이지만(=삼륜청정三輪淸淨/삼륜체공三輪體空/삼륜무상三輪無相), 인과(因果)의 작용은 분명함을 관(觀)함으로 인(因)하여 사대치력으로 참회하는 것이 참회 중에서도 출세간(出世間)의 참회이다.[28] 정석적으로는 먼저 현교에 해당하는 불교 4대 학파의 견해를 단계별로 학습하고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요의(了義)의 견해로 인정받는 귀류논증 중관학파의 견해를 숙달한 다음, 비로소 밀교에 입문하여 귀류논증 중관학파의 공성에 대한 견해를 토대로 소작ㆍ행ㆍ요가ㆍ무상요가 탄트라 등의 4부 탄트라를 배우고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29] 밀교에서는 수행의 결과를 수행의 방편으로 삼아 수행 과정 중에 수행자 스스로를 본존으로 관상하는데, 이러한 인식을 밀교에서 '아만', '불만(佛慢)'이라고 표현하며 현교에서 말하는 번뇌로서의 아만과는 의미가 다르다.[30] 금강승에서 부처를 가리키는 특별한 명칭이다.[31] 통속적인 표현으로는 관상(觀想)이나 심상화(心像化)라고 하기도 한다.[32] 자랑도부터 무학도까지의 오도는 모두 공성 인식을 통해 나아가게 되며, 성불을 위해 오도를 차례대로 거쳐야 하는 것은 현교와 밀교의 차이가 없다. 다만 현교는 성불까지 삼무량겁의 시간이 걸리지만 밀교는 짧게는 한 생 안에도 성불이 가능하므로 신속함과 완만함의 차이가 있다.[33] 비유하자면 물리학에서 핵분열이나 핵융합처럼 미세한 입자 수준에서의 반응이 강력한 에너지를 일으키는 것처럼, 밀교에서도 의식과 물질이 미세한 수준에 이를수록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본다(어디까지나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일 뿐 물리학의 핵분열, 핵융합이 밀교의 개념과 직접적으로 상응한다는 뜻은 아니다).[34] 여기서 삼신(三身)은 신구의 삼신이 아니라 법신(法身)ㆍ보신(報身)ㆍ화신(化身) 삼신을 가리킨다.[35] 중생의 신구의는 업을 짓고 그 업의 과보를 받는 일종의 출입구와 같기에 '문(dvāra, 門)'이라고 하지만, 부처의 신구의는 더이상 업을 짓지도, 그 업의 과보를 받지도 않으므로 '불신(佛身)'을 뜻하는 '신(kāya, 身)'이라고 표현한다.[36] 불교에서는 죽음ㆍ중음(中陰)ㆍ재생(再生) 내지 사유(死有)ㆍ중유(中有)ㆍ생유(生有)라는 3단계의 과정으로 죽음과 환생의 과정을 설명한다. 생기차제에서는 이 세 단계의 과정과 상응한 요가를 통해 각각의 단계를 붓다의 법신, 보신, 화신을 이루는 도(道)로 전환한다.[37] 원만차제처럼 신체 에너지의 일종인 풍을 직접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심상화(心像化)를 위주로 명상하는 것을 의미한다.[38] 여기서 '본존의 아만'이란 현교에서 말하는 번뇌로서의 아만이 아니라, 밀교에서 수행의 결과를 수행의 도로 활용하여 수행자 스스로를 본존으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본존의 현현'이란 수행자 스스로를 본존의 모습으로 생기(生起)하는 것을 의미한다.[39] 여기서 '매듭'은 실제 매듭처럼 묶여져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마치 대나무의 마디처럼 특정 부분에서 막혀있음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이다. 좌ㆍ우맥이 중맥을 휘감는 부분에 중맥의 매듭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40] 《구햐싸마자 탄트라(Guhyasamaja tantra)》에 관한 나가르주나의 주석서인 《오차제(Skt. pañcakrama, Tib. rim pa lnga pa, 五次第)》에서는 원만차제의 구성을 오차제(五次第)로 설명하는데, 첫번째 차제는 다시 신원리와 어원리 둘로 나뉘어지므로 사실상 육차제(六次第)에 해당한다.[41] 신원리는 본존의 몸으로 생기한다는 점에서 생기차제 수행과 유사하지만, 풍을 중맥 안으로 가져온다는 점에서 원만차제로 분류된다. 일각에서는 신원리가 부분적으로 생기차제에 해당된다는 주장도 있다.[42] 'prāṇāyāma'는 금강승의 요가 외에 다른 요가행법에서도 공통적으로 쓰이는 개념으로, '요가호흡', '호흡조절' 등으로 번역된다. '명진(命進)'은 '명(srog, 命)의 노력/정진/힘씀(tshol)'이란 뜻의 티베트어역을 그대로 한역한 것이다. 여기서 '명', 즉 '명근(Skt. jīvitendriya, Tib. srog gi dbang po, 命根)'은 유정(有情)의 수명을 가리킨다. 또한 '명'은 'prāṇāyāma'의 앞부분 어근에 해당하는 '풍(Skt. prāṇa, Tib. rlung, 風)'과도 의미가 상통한다. 불교 경전에서 명은 호흡이고, 호흡은 풍의 한 종류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43] 엄밀히 말해 성문승, 독각승은 번뇌장의 견소단과 수소단만을 각각 대치하여 제거할 뿐이다. 부처의 일체지를 이루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인 소지장은 보살승만의 제거대상이며 성문승, 독각승의 제거대상은 아니다.[44] 금강승의 본수행에 앞선 예비수행. 현교에 해당하는 외가행(外加行)과 밀교에 해당하는 내가행(內加行)으로 구성된다. 외가행은 인간 생의 소중함, 무상(無常)과 죽음, 업(業)의 정확성, 윤회의 고통에 대한 사유로 구성된다. 그리고 내가행은 귀의와 보리심 수행, 금강살타 참회수행, 만달라 공양, 구루 요가 등으로 구성되며 기본적으로 외가행과 내가행 각각을 100,000회 이상 달성해야 한다. 닝마, 까규의 경우 금강승 입문자는 온드로 수행을 거의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45] 다큐 시청 및 다운로드는 Journeyman Pictures 사이트에서 유료로 가능하고, 일부 국가에서는 아마존 비디오, 애플 TV, 구글 플레이 등의 OTT 플랫폼에서도 시청 가능하다. ※ 본 다큐에서 시신 영상 및 이미지가 등장하니 시청에 주의할 것.[46] 바르도는 '둘(do) 사이(bar)'라는 뜻으로, 특정한 두 시점 사이의 기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비단 중유(中有, antarā-bhava)뿐 아니라 생유(生有), 본유(本有), 사유(死有) 등 사유(四有) 각각을 지칭할 때도 쓰인다. 사유 외에도 전승에 따라 여섯 개의 바르도 등 바르도를 구분하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다.[47] 관련 기사 링크(※시신 사진 주의) #1 #2 #3 #4 #5[48] 미첼 레비와 라눌포 산체즈의 관련 인터뷰가 다큐《Tukdam: Between Worlds》에 수록되었다.# 이외에도 둘은 다수의 매체에서 제16대 까르마빠가 임종시 보여준 툭담 현상을 언급한 바 있다.[49] 관련 링크(※시신 사진 주의)#[50] 촉니(Tsoknyi) 린뽀체가 도종 린뽀체의 시신 상태를 설명하는 영상(※시신 영상 주의) #[51] 관련 기사 링크. #1 #2 #3 #4 #5[52] 관련 기사 링크. #1 #2 #3 #4[53] 'null finding'이란 통계적 가설 검정 절차의 결과가 실험 변인들 사이에 관계가 없거나 유의미한 관계가 없음을 나타내는 상황을 의미한다. 'null result'라고도 한다.[54] 본문에는 'consumption'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production'의 오기(誤記)로 보인다.[55] 티베트 불교 및 의학 전통과 유럽ㆍ미국의 생물의학 및 과학 전통[56] 다큐 시청 및 다운로드는 Journeyman Pictures 사이트에서 유료로 가능하고, 일부 국가에서는 아마존 비디오, 애플 TV, 구글 플레이 등의 OTT 플랫폼에서도 시청 가능하다. ※ 본 다큐에서 시신 영상 및 이미지가 등장하니 시청에 주의할 것.[57] 13례의 툭담 사례 중 6례의 측정 결과는 과도한 전기 간섭과 불완전한 프로토콜로 인해 분석에서 제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