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22:03:22

토트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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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
Tottenham
파일:5f4ad84b-d9ac-4670-a332-2d116ea7ac66.jpg
행정 구역 그레이터 런던 (해링게이)
국회의원
데이비드 래미
인구 129,237명(2011년)
시간대 UTC+0 (서머타임 준수)
토트넘 '''
[ 지도 펼치기 · 접기 ]
'''

1. 개요2. 이름에 관하여3. 역사4. 인구 통계5. 스포츠

[clearfix]

1. 개요

영국 런던 북부에 위치한 지역.

2. 이름에 관하여

표기법으로 '토트넘'과 '토튼햄' 표기가 공존하고 있지만[1], 음성언어를 중시하는 경향에 따라 현지 발음과 유사한 '토트넘' 표기가 우세를 점하고 있다.[2]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 역시 '토트넘'으로 표기할 것을 권장한다.

사실 이는 여타 영국계 성씨나 도시에 들어간 ‘ham’을 발음 및 표기할 때도 적용된다. Birmingham을 버밍햄이 아닌 버밍엄이라고 표기 및 발음하는 것, Beckham을 벡햄이라고 하지 않고 베컴이라고 표기 및 발음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3]

3. 역사

토트넘 지역에 인간이 거주한 것은 천년이 넘었다.

중세 토지조사서인 둠즈데이 북이 1086년에 편찬되었을 때, 이 지역의 장원에는 대략 70여 가구가 거주했다. 주로 장원의 영주 밑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었다.

토트넘이란 이름은 이 둠스데이 북에서 언급된 마을의 토타(Tota)라는 농부에서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토타의 마을('Tota's hamlet', 토타스 햄릿)이 '토트넘'으로 발전된 걸로 여겨진다. 참고로 당시 둠스데이 북에선 토트햄(Toteham)이라고 기록되었다.

1894년에, 토트넘은 준자치구가 되었고 1934년 9월 27일에는 자치구가 되었다. 1965년 4월 1일부터, 토트넘 자치구는 혼지, 우드 그린과 같이 해링게이 구를 형성했는데 행정구역상 런던에 편입된 것도 바로 이 시기며 1965년 행정구역 개편 전까지는 미들섹스 소속이었다.

리강은 토트넘 자치구와 월섬스토 간에 동쪽 경계였다. 또한 리강은 미들섹스와 에식스 사이의 옛 경계이자, 바이킹들의 지배를 받았던 데인로 지역의 서부 경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런던의 해링게이 구와 월섬포리스트 구 간 경계이다.

튜더 시대부터, 토트넘은 부유한 런던인들의 인기있는 휴양지가 되었다. 헨리 8세는 브루스궁을 방문하고 토트넘 숲지대에서 사냥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전원 지역인 토트넘은 또한 1653년에 발행된, 아이작 월턴의 저서 조어대전에 등장했다. 토트넘 지역은 이 지역의 많은 퀘이커 교도들과 학교들 (브루스궁에 있는 롤런드 힐의 학교를 포함)로 알려지게 되었다.) 토트넘은 1870년대까지 다소 전원적이고 중상층 계급들의 지역이었다.

1870년대 말에, 그레이트 이스턴 레일웨이는 새롭게 개장한 엔필드와 월섬스토 노선에 특별 노동자들의 기차와 요금을 도입시켰다. 토트넘의 저지대와 근교농원들은 그때부터 런던 시내로 저렴한 값에 통근하는 노동 계층들을 위한 값싼 거주지로 빠르게 변화되었다. 노동자들의 요금 정책은 상대적으로 일찍 토트넘이 런던 교외로 발전하는데 자극을 주었다.

1909년 1월 23일에 토트넘 폭력 사태라고 알려진 사건이 발생했다.

2011년 8월 6일 영국 폭동이 처음 시작된 곳이다.

사실 런던에서도 많이 변두리 지역이고 썩 잘 사는 동네는 아니다. 슬럼가가 몰려있고 치안이 좋지 않으며 축구 빼고는 볼거리가 전혀 없는 동네중 하나. 이 동네 축구팀의 회장 다니엘 레비가 허구헌날 '지역 부흥'을 외치며 선수단에 쓰는 돈을 아끼고 경기장이니 호텔이니를 짓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심지어 이 축구팀의 선수들도 치안 문제로 인해 대부분 옆동네 라이벌팀인 아스날 FC가 있는 곳에서 살고 있다. 축구를 보러 방문한 관광객이라면 너무 으슥한 곳은 피할 필요가 있다.

4. 인구 통계

다양한 인종들이 몰려있는 편으로, 특히 백인을 제외하면 아프리카 흑인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그리스인, 터키인, 소말리아인, 필리핀인, 베트남인, 짐바브웨인 등도 몰려있는 편이다.

2011년 영국의 인구 조사에서, 토트넘 선거구의 큰 비율을 차지하는 인종 구성이다.
  • 27.7% 게르만족 백인
  • 26.7% 흑인
  • 22.3% 영국계 백인
  • 12.6% 그외/혼혈
  • 10.7% 아시아인

5. 스포츠

이영표, 손흥민 선수가 뛰어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토트넘 홋스퍼 FC의 연고지이다. 구글에 토트넘만 쳐도 토트넘 지역보단 토트넘 홋스퍼가 제목인 글이 더 많이 뜰 정도로, 사실 토트넘이란 지역명이 알려지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구단이기도 하다. 2019년 개장한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역시 토트넘의 유명지이다.[4]

파일:Coles Park Stadium.jpg
콜스 파크 (Coles Park)

파일:화이트 하트 레인 커뮤니티 스포츠 센터.jpg
뉴 리버 스타디움 (New River Stadium)

토트넘 홋스퍼 FC 외에도, 토트넘에는 콜스 파크 구장을 사용하는 7부 리그[5]해링게이 버러 FC와 뉴 리버 스타디움이라고도 불리는 화이트 하트 레인 커뮤니티 스포츠 센터[6]를 구장으로 사용하는 10부 리그[7]파크 뷰 FC가 있다.


[1] 2020년대 초반 구글 기준 토트넘 207,000,000 / 토튼햄 161,000,000.[2] 2000년대 이영표 선수가 토트넘 홋스퍼에서 뛰던 시절만 해도 표기언어에서 따온 토튼햄 표기가 많이 쓰였다.[3] 이와 어긋나는 사례로는 레드 제플린의 드러머인 존 본햄이 있다. 이쪽도 마찬가지로 Bonham을 본햄이 아니라 보넘이라고 표기해야 하지만, ’본햄‘이라는 표기가 1970년대부터 국내에 자리잡았기에 이 표기가 정착되어 버렸다.[4] 실제로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건축 이후 토트넘이라는 도시의 지역가치가 상승했으며, 이는 토트넘 홋스퍼 FC의 회장인 다니엘 레비가 런던 개발국과 함께 주도한 지역 개발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실제 레비는 일부러 낙후된 지역을 골라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구장을 지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유는 그래야 주변 상권과 경제도 함께 살아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물론 안티들은 걍 땅값 싼 곳에 지어놓고 포장하는거라고 까기도 한다. 때문인지 짠돌이 이미지와 달리 의외로 레비 회장에 대한 토트넘 거주민들의 인식은 괜찮은 편이다.[5] 2021-22 시즌 기준.[6] 경기장은 우드 그린에 있지만, 구단 연고지는 토트넘이다.[7] 2021-22 시즌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