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안톤 샬 Anton Schall |
생년월일 | 1907년 6월 22일 |
사망년월일 | 1947년 8월 10일 |
국적 | 오스트리아 |
출신지 | 빈 |
포지션 | 인사이드 레프트 포워드, 풀백 |
신체조건[1] | 170cm / 72kg |
등번호 | -[2] |
소속팀 | SK 아드미라 빈 (1925~1941) |
감독 | FC 바젤 (1946~1947) |
국가대표 | 28경기 27골 (오스트리아 / 1927~1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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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의 전 축구인.2. 생애[3]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샬은 유스 시절에 레오볼다우어 SC와 예들러스도르프에서 뛰었고 1925년부터 SK 아드미라 빈에서 활약하였다.18살에 맞이한 데뷔 시즌부터 샬은 단 10경기에 출전했음에도 7골을 득점하여 가능성을 보이다 못해 넘치게 증명했고, 이듬해에는 득점왕에 오름과 동시에 팀을 오스트리아 1부 리그에서 우승시켰다.
샬은 3년 연속 득점왕을 포함하여 총 5회의 오스트리아 1부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는데[4] 샬이 득점 페이스를 쌓아나가던 이 시기에 소속팀 아드미라 빈은 우승 3회, 준우승 3회의 성적을 거두며 당시 오스트리아 내 최강팀으로 군림했다.
샬의 최고의 순간으로 꼽히는 경기는 1933-34년의 ÖFB-컵 결승전이었다. 샬은 라피트 빈을 상대로 전반 24분부터 28분까지 단 5분 만에 해트 트릭을 달성했고 아드미라 빈은 라피트 빈을 8대0으로 학살하며 손쉽게 컵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샬은 16년 동안 아드미라 빈에서 리그 경기에서 234골(295경기 출전), 통산 303골(365경기 출전)의 기록을 남겼다.
2.1.2. 국가대표팀
샬은 1927년부터 1934년까지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으며,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였던 아돌프 포글과의 호흡이 특히 유명했다.1931년부터 1933년까지 16번의 대표팀 경기에서 20골을 넣으며 절정의 골 감각을 과시했으며[5], 이 때 독일, 스위스를 상대로 2회의 해트 트릭과 헝가리, 벨기에를 상대로 2회의 4골 경기를 펼쳤다.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출전했고, 프랑스와의 시합에서 넣은 1골이 그의 대표팀 커리어에서 마지막 득점이었다.
샬은 28회의 대표팀 경기에서 27골을 넣었고 지금도 역대 오스트리아 대표팀 내 통산 득점 순위에서 6위에 위치해 있다. 물론 오스트리아 대표팀 통산 득점 10위 안의 공격수 중 경기 당 득점으로 따지면 넘사벽급으로 1위이다.[6]
2.2. 감독 생활
샬은 1946년부터 FC 바젤의 감독직을 맡았다. 하지만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선수 생활을 마친 후 샬이 희귀 심장병으로 고생했다는 것이었다.샬은 바젤을 이끌고 부임 첫 해부터 스위스 컵 우승을 이끌어내며 감독으로도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했다. 그러나 1947년 8월 10일. 샬은 축구 경기장에서 운동을 하다 갑자기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40세였다. 후임 감독은 팀의 주장이었던 에른스트 후프슈미트가 맡았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다재다능한 왼발 잡이 공격수. 빠르면서도 기술이 좋은 데다 훌륭한 마무리 능력에 공격 지능도 뛰어나서 클럽과 대표팀 경기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골을 넣었으며 당시 분더팀에서 마티아스 신델라 다음 급의 위상을 자랑했다.선수 생활 말기에는 수비수로 활약이 가능할 정도로 수비 기술도 좋았다.
4. 수상
4.1. 클럽[7]
- 오스트리아 1부 리그 우승 7회: 1926-27, 1927-28, 1931-32, 1933-34, 1935-36, 1936-37
- 가울리가 오스트마르크 우승 1회: 1938-39
- ÖFB-컵 우승 3회: 1927-28, 1931-32, 1933-34
- 오스트리아 1부 리그 준우승 1회: 1928-29, 1929-30, 1930-31, 1934-35
- 독일 축구 챔피언십 준우승 1회: 1938-39
- ÖFB-컵 준우승 1회: 1931–32
- 미트로파 컵 준우승 1회: 1934
4.2. 국가대표
- 중유럽 컵 우승 1회: 1931-32
4.3. 개인
- 오스트리아 1부 리그 득점왕 5회: 1926-27, 1927-28, 1928-29, 1930-31, 1931-32
4.4. 감독
- 스위스 컵 우승 1회: 1946–47(FC 바젤)
[1] 신체조건에 대한 자료가 많지는 않지만 165cm, 175cm로 다양하다.[2]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3] 출처: 위키피디아, 11v11[4] 이 전성기 때 샬의 경기당득점은 1이 넘었다.[5] 분더팀의 에이스였던 마티아스 신델라는 같은 시기 13골을 기록하였다.[6] 참고로 같은 조건 내에서 경기 당 득점 2위는 60년대에 주로 활약한 에리히 호프로 0.76(37경기 28골)이다.[7] 샬은 SK 아드미라 빈 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