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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 1920 뉴욕시 | 테레사 웰드 | 8회 | 1921 필라델피아 | 테레사 웰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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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회 | 1928 뉴헤이븐 | 메리벨 빈슨 | 16회 | 1929 뉴욕시 | 메리벨 빈슨 | |
17회 | 1930 프로비던스 | 메리벨 빈슨 | 18회 | 1931 보스턴 | 메리벨 빈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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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회 | 1944 미니애폴리스 | 그레천 메릴 | 32회 | 1945 뉴욕시 | 그레천 메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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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5295b><colcolor=#ffffff> 토냐 하딩 Tonya Harding | |
이름 | 토냐 막센 하딩 Tonya Maxene Harding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생 | 1970년 11월 12일 ([age(1970-11-12)]세) |
오리건 주 포틀랜드 | |
학력 | 밀워키고등학교 (중퇴)[1] |
종목 | 피겨 스케이팅 → 복싱, 격투기 |
신체 | 155cm |
가족 | 前 배우자 제프 길룰리[2](1990~1993) 前 배우자 마이클 스미스(1995~1996) 現 배우자 조셉 프라이스(2010~) 아들 고든 프라이스[3]([age(2011-02-19)]세)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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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세계에서 두번째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여자 선수이다. 토냐 하딩 습격 사건의 가해자로 유명하다.2. 선수 경력
3살 때부터 다이앤 롤린슨 코치에게 스케이트를 배웠으며 1986년 전미선수권 대회에서 6위를 기록했다.2.1. 1986-87 시즌
1986 올림픽 페스티벌에서 3위, 1986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2위, 1987 전미선수권에서 5위를 기록했다.2.2. 1987-88 시즌
1987 NHK 트로피에서 3위, 1988 전미선수권에서는 작년과 동일하게 5위를 기록했다.2.3. 1988-89 시즌
1989년부터 도디 티치먼 코치에게 배우기 시작했으며 1989 전미선수권에서 3위를 차지했다.2.4. 1989-90 시즌
1989 스케이트 아메리카와 1989 나치온스 컵에서 우승함으로서 1990 전미선수권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독감과 천식으로 인해 프리 스케이팅을 잘 타지 못했으며 최종 7위에 그쳤다. 이때까지 하딩은 프리 스케이팅에서 강했으며 대체로 컴펄서리에서 약한 편이었다.[4]2.5. 1990-91 시즌
1990 올림픽 페스티벌에서 2위, 1990 NHK 트로피에서 2위를 했다.1991 전미선수권 | 1991 세계선수권 |
이후 국제대회인 1991 세계선수권에서 트리플 악셀을 다시 한 번 성공시켰다. 크리스티 야마구치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고 동메달을 딴 낸시 케리건과 함께 세계선수권 여자 싱글 포디움을 휩쓸었다. 1991년은 하딩에게 짧다면 짧은 전성기였다.
2.6. 1991-92 시즌
1991 스케이트 아메리카 대회에서 우승과 함께 3개의 기록을 남겼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최초의 여자 선수
- 단일 대회에서 2개의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최초의 여자 선수
- 트리플 악셀 컴비네이션(3A+2T)을 최초로 성공한 여자 선수
그러나 이러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하딩은 1991년 이후 다시는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지 못하였다. 따라서 하딩의 성적은 점점 하락하기 시작했다.
1992 전미선수권 |
1992년 3월 1일, 하딩은 티치먼에게 즉석에서 해고당했고 어린 시절 코치인 다이앤 롤린슨에게 돌아갔다. 1992 세계선수권에서는 6위를 기록했다.
2.7. 1992-93 시즌
1992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4위를 차지했다.1993 전미선수권 |
2.8. 1993-94 시즌
1993 스케이트 아메리카 3위, 1993 NHK 트로피 4위를 기록했다.1994 전미선수권 |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프리 스케이팅 경기 도중 갑자기 울면서 심판에게 스케이트 끈이 풀려서 다시 묶고 하고 싶다고 어필하였고, 심판들이 이를 받아들여 다시 처음부터 재경기를 했다. 그러나 트리플 악셀을 싱글로 처리하며, 좋지 못한 점수를 받아 최종 8위에 그쳤다. 한편 금메달은 옥사나 바이울이 차지했고 낸시 케리건은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재판을 통해 하딩은 미국 빙상 연맹에서 영구제명되었다.
3. 은퇴 이후
USFSA 출전 금지에도 불구하고 이후 프로 무대에 올라 1999년 ESPN 프로 스케이팅 챔피언십에서 2위를 차지했다.2000년대 초 하딩은 프로 복서로 전향했고, 그녀의 삶은 수많은 영화, 다큐멘터리, 책, 그리고 학문의 주제가 되어왔다. 2014년, 하딩의 인생과 스케이팅 커리어에 관한 두 편의 TV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고, 이는 스티븐 로저스 감독, 마고 로비 주연의 영화 아이, 토냐(2017)가 제작된 영감으로 작용했다. 2018년에는 ‘댄싱 위드 더 스타’ 시즌 26에 출전해 3위에 올랐다.[6] 2019년에는 ‘미국 최악의 요리사: 셀레브리티 에디션’ 시즌 16에서 우승했다.
4. 평가
3A+2T | 3Lz |
사실 토냐 하딩의 경우 불명예스러운 은퇴 이후 각종 미디어에 의해 선수로서의 기량이 과대평가 된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녀의 특기로 알려진 트리플 악셀은 사실상 선수생활 중 한 시즌만 건재했으며, 가장 중요한 올림픽 무대에서는 아예 싱글링을 하며 성공시키지 못했다. 자국의 라이벌이었던 낸시 캐리건이 결국 더 좋은 성적을 거둔 이유 역시 캐리건이 비록 트리플 악셀 만큼은 아니더라도 당시로는 고난이도였던 트리플 토룹 - 트리플 토룹과 같은 연속 점프를 깔끔하게 성공했고 점프 성공률 역시 더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당시 구채점제 하에서 기술점수와 거의 동등한 비중을 차지했던 예술점수 면에서 토냐 하딩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빠른 스케이팅과 시원시원한 수행은 그녀의 장점이었으나 다소 거친 스케이팅과 눈에 띄는 장점이 없는 비점프 요소와 안무 표현이 단점이었다. 심지어 1994년 올림픽 프리에서도 자국 해설진이 "토냐는 예술점수보다는 기술점수에서 우위를 가져가야 한다"며 애둘러 지적했을 정도이다. 결론적으로 불안정한 컨시와 아쉬운 예술적 표현력로 인해 상위권에는 무난하게 들어갈지언정 '챔피언'의 대우를 받기에는 다소 부족했던 선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5. 기록
- 이토 미도리에 이어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두번째 여자 선수
-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최초의 미국 여자 선수
- 쇼트 프로그램에서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최초의 여자 선수
- 단일 대회에서 2개의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최초의 여자 선수
- 트리플 악셀 컴비네이션(3A+2T)을 최초로 성공
6. 커리어
세계선수권 | ||
은메달 | 1991 뮌헨 | 여자 싱글 |
국제대회 | |||||||||
대회 | 85–86 | 86–87 | 87–88 | 88–89 | 89–90 | 90–91 | 91–92 | 92–93 | 93–94 |
올림픽 | 4th | 8th | |||||||
세계선수권 | 2nd | 6th | WD | ||||||
스케이트 캐나다 | 4th | ||||||||
나치온스 컵 | 1st | ||||||||
모스크바 뉴스 | 1st | ||||||||
NHK 트로피 | 3rd | 2nd | 4th | ||||||
스케이트 아메리카 | 2nd | 1st | 1st | 3rd | |||||
국내대회 | |||||||||
전미선수권 | 6th | 5th | 5th | 3rd | 7th | 1st | 3rd | 4th | |
미국 올림픽 페스티벌 | 5th | 3rd | 2nd | ||||||
WD=기권 |
7. 기타
- 불우한 가정사를 지녔는데, 언니가 매춘을 할 정도로 가난한 러시아계 가정에서 태어나 비싼 피겨 스케이팅을 배울 돈이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하딩을 뒷바라지했는데, 경제적 여유가 없어 하딩의 의상을 직접 바느질해야 했다. 하딩은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자동차 정비법을 배우기도 했다. 부모님은 하딩이 16살 때 이혼했다. 어머니의 학대도 심각했는데, 후원자 중에서는 토냐의 어머니가 토냐를 때리고 욕하는 모습을 보고 후원을 그만둔 사례도 있었다. 이 당시 코치들은 유능한 제자를 키우는 재미로 자원 봉사를 했고, 스케이트화나 의상을 저렴하게 공급할 공급자들과 재정 후원자들을 찾아야 했다. 훈련할 빙상장을 찾기도 어려웠다.
- 어릴 때부터 성격이 거칠고 반항적인 편으로 말썽을 적지 않게 일으켰다. 훗날 토냐 하딩의 각종 추문을 조사한 고향 지역 언론인은 토냐 하딩이 싸이코패스라고 단정할 정도였다. 또한 기본적인 경기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올림픽에서 경기 직전에 도착하여 컨디션 확보에 실패한다든가, 경기 도중 스케이트 끈이 풀려 중간에 끈을 묶은 후 다시 재경기를 치르는 등 다른 선수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문제를 자주 겪었다.
- 그녀의 결혼 생활도 문제가 되었다. 훗날 토냐 하딩 습격 사건의 주범인 前 남편 제프 길로리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명령을 얻어냈는데, 길로리가 다시 접근하자 거부하지 못하고 같이 살기도 했다.
- 파워풀한 스케이터로 아이스 링크 가까이에 있는 관객은 얼굴에 바람이 확 불어 오기 때문에 이 선수의 힘을 체감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선수들보다 한층 어려운 기술들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힘의 바탕인 근육질의 다리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8. 사건 사고
자세한 내용은 토냐 하딩 습격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9. 관련 문서
[1] 운동에 집중하기 위해 2학년 때 고등학교를 그만뒀으며 1988년 일반 교육 개발(GED) 자격증을 취득했다.[2] 토냐 하딩 습격 사건의 범인 중 한 명이다.[3] 성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세번째 남편인 조셉 프라이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4] 이 시즌 이후로 컴펄서리가 대회에서 폐지되었다.[5] 대회가 끝나고 미 연방 안전청 징계 위원회는 낸시 케리건에 대한 습격 사건 조사에 따라 1994년 6월에 기록을 박탈시켰다. 당시 2위는 미셸 콴, 3위는 니콜 보벡, 4위는 일레인 자약이었지만 이들의 순위는 올라가지 않았다.[6] 댄싱 위드 더 스타 시즌 26 우승자는 전직 피겨 스케이팅 선수인 아담 리폰이, 2위는 NFL 코너백인 조시 노먼이 차지하였다.[7] 위 3A+2T 움짤만 봐도 축이 심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