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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트 왕국 10대 군주 Teia | 테이아 | ||
제호 | 한국어 | 테이아 |
라틴어 | Teia | |
생몰 년도 | 미상 ~ 552년 또는 553년 | |
재위 기간 | 552년 ~ 552년 또는 55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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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고트 왕국의 10대이자 마지막 국왕. 동고트 왕국의 명군이자 명장이었던 토틸라가 타기나이 전투에서 전사한 뒤 동고트 병사들의 추대를 받고 왕위에 올랐지만, 얼마 못가서 나르세스와 맞서다 전사했다.2. 생애
테이아는 토틸라의 아들로, 552년 7월 1일 토틸라가 타기나이 전투에서 전사하자 병사들에 의해 방패 위로 올려지는 방식으로 새 국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살아남은 고트족을 모은 뒤, 인질로 잡혀있던 모든 원로원 의원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으며, 약 300명의 로마인 아이들 역시 학살했다. 그 후 파비아로 이동한 뒤 거기에 있는 모든 보물을 프랑크 왕국으로 보내 원군을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프랑크 왕국은 이에 호응하여 원군을 파견했지만, 나르세스가 그 전에 공세를 개시, 로마를 탈환한 후 552년 10월 캄파니아 지방의 쿠마이를 포위했다.테이아는 구원군을 이끌고 동로마군과 대치하여 2달 가까이 접전을 치렀지만 승리를 거두지 못하자 철수하기로 했다. 나르세스는 사전에 척후병들을 파견해 그들의 후퇴로를 알아냈고, 베수비오 화산 인근의 몬스 락타리우스에 군대를 매복시켰다가, 적이 지나가는 틈을 타 측면을 요격했다. 동고트 군대는 황급히 락타리오 산에 농성했고 나르세스는 포위망을 구축했다. 식량이 다 떨어진 동고트군은 말을 잡아먹으면서 버티다가 결국 더이상 버틸 수 없자 산에서 내려와 최후의 전투를 벌였다. 테이아는 직접 선두에서 돌격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전사했고 결국 동고트군은 항복했다. 이로서 동고트 왕국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자세한 것은 서로마 고토 수복 전쟁의 후반부를 살펴보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