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부처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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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 ||||
클럽 | ||||
26대 | 49대 |
테리 부처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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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축구감독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테리 부처 Terry Butcher | |
본명 | 테리 이언 부처 Terry Ian Butcher | |
출생 | 1958년 12월 28일 ([age(1958-12-28)]세) 싱가포르 식민지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93cm | |
직업 | 축구선수(수비수[1] / 은퇴) 축구감독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입스위치 타운 FC (1976~1986) 레인저스 FC (1986~1990) 코번트리 시티 FC (1990~1992) 선덜랜드 AFC (1992~1993) 클라이드뱅크 FC (1993) |
감독 | 코번트리 시티 FC (1990~1992 / 선수 겸 감독) 선덜랜드 AFC (1992~1993 / 선수 겸 감독) 머더웰 FC (2002~2006) 시드니 FC (2006~2007) 브렌트포드 FC (2007) 스코틀랜드 대표팀 (2008~2009 / 수석 코치) 인버네스 CT (2009~2013) 히버니언 FC (2013~2014) 뉴포트 카운티 AFC (2013) 필리핀 대표팀 (2018) 광저우 R&F (2019 / 수비 코치) 입스위치 타운 FC (2020~2021 / 스태프) | |
국가대표 | 77경기 3골 (잉글랜드 / 1980~1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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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이자 축구감독.1980년대 잉글랜드를 대표했던 수비수로, 몸을 사라지 않는 투지와 강력한 피지컬이 장점인 파이터형 센터백으로 이름을 날렸다.
2. 클럽 경력
2.1. 경력 초기
영국 해군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싱가포르에서 태어난 그는 노리치 시티 유스팀에 입단할 기회가 있었으나 마다하고 3주간의 트라이얼 끝에 자신이 서포트했던 팀인 입스위치 타운에 입단한다.2.2. 입스위치 타운 FC
2년간 유스팀에서 보낸 뒤 1978년 4월 15일, 에버튼을 상대로 퍼스트 디비전 데뷔전을 가졌고 8시즌 동안 특유의 리더십과 투지, 그리고 뛰어난 공중볼 능력 등으로 클럽 최고의 센터백으로 활약했다.
1981년에는 바비 롭슨의 지휘 하에 UEFA 컵 우승을 달성했고, 리그에서도 거의 우승에 근접했었으나 빌라에게 밀려 아쉽게도 리그 타이틀을 거머쥐는데는 실패했다.
1985년과 1986년 2시즌 연속으로 입스위치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나 1985-86 시즌을 끝으로 입스위치는 강등을 맞이하고 만다.
2.3. 레인저스 FC
대표팀에서 주축 수비수로 활약하던 부처는 소속팀의 강등으로 이적을 모색했고, 1986년에 당시 레인저스 감독이었던 그레이엄 수네스의 부름을 받아 72만 파운드에 팀에 합류한다. 그리고 주장으로서 4시즌 동안 3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스코티시 리그 컵 우승을 이끈다.
1987년, 그는 맨유의 제의를 받았고 구체적인 이적료까지 제시되는 등 계약이 거의 임박했었으나 11월에 에버딘전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이적은 무산이 되었다. 결국 예기치 못한 부처의 부상으로 인해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은 급하게 타겟을 선회해야했고 노리치에서 뛰던 스티브 브루스를 영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1990년 9월, 던디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경기에서 그는 부진한 경기력으로 2골 실점에 일조했고 결국 이 경기가 레인저스 소속으로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11월, 리즈가 그에게 접근했고 클럽과 계약을 앞두고 있었으나 코번트리 시티가 선수 겸 감독직을 제안하게 된다. 결국 부처는 코번트리를 선택한다.
2.4. 코번트리 시티
그는 코번트리 플레잉 코치로 입단한 뒤 첫 경기가 공교롭게도 영입 직전까지 갔던 리즈 유나이티드전이었다. 11월 24일, 홈에서 치러진 리즈전에 나섰고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부처는 당해시즌 6경기 출전으로 마쳤으며 팀은 16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부처는 감독직에 집중하기 위해 1990-91 시즌을 끝으로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두번째 시즌에는 루턴 타운 5:0으로 격파하고 디펜딩 리그 챔피언인 아스날을 원정에서 2:1로 이겼으며, 지역 라이벌인 빌라를 1:0으로 꺾는 등 9월 말까지 리그 6위에 랭크하며 쾌조의 스타트를 선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전력을 가진 팀들이 항상 그렇듯 시즌이 진행될 수록 순위는 내려갔고 11월 말에는 13위까지 추락하며 DTD를 시전한다. 또한 1992년 새해에 치러진 토트넘과의 홈경기에서 1:2로 패하면서 강등권과 불과 승점 6점 차이밖에 안 되는 15위에 위치하게 됐고 이제는 강등을 걱정해야할 처지가 되고 만다.
결국 토트넘전이 끝나고 5일 뒤인 1월 6일, 부처는 감독직에서 경질됐다.
2.5. 이후
1992년 8월, 그는 FA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한 뒤 새롭게 개편된 2부리그 디비전 원의 창립 멤버인 선덜랜드와 선수로서 계약을 채결한다.시즌 중반 감독이 경질된 뒤 부처는 플레잉 코치로 전환했고 잔류 자리를 확보하며 무사히 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1993-94 시즌에는 초반부터 실망스러운 출발 후 11월 26일에 경질되었다.
이후 스코틀랜드 하부리그 팀인 클라이드뱅크에서 3경기를 뛰고
3. 국가대표 경력
1980년, 입스위치 소속이던 그는 그의 경기력을 인상깊게 본 론 그린우드 대표팀 감독에 의해 처음으로 A대표팀에 소집된다. 그리고 5월 31일, 당시 21살이던 부처는 호주와의 친선경기를 통해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2년 뒤 스페인에서 개최된 월드컵 참가 엔트리에 포함됐으며 선수단에서 가장 어린 선수였다. 이후 대표팀의 주축 센터백으로 활약했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멕시코 월드컵에서 그는 삼사자 군단의 후방을 든든히 지키며 팀의 8강 진출을 기여했으나 마라도나를 필두로 한 아르헨티나에게
1988년에 서독에서 치러진 유로 대회에서는 앞서 전술했던 다리 부상으로 불참했고, 이에 바비 롭슨 감독은 경험이 일천했던 마크 라이트와 토니 애덤스를 센터백 조합으로 써야했다. 결국 수비진의 핵심이자 리더였던 부처의 부재로 대표팀은 본선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빠르게 광탈하고 만다.
1989년 9월 6일, 그는 스톡홀름에서 열린 스웨덴과의 중요한 월드컵 예선경기에서 경기 초반에 이마에 깊은 상처를 입고 만다. 출혈은 심했으나 교체를 거부하고 머리에 붕대를 감으며 필드로 복귀한다. 포지션 특성상 헤더가 불가피한 탓에 그의 붕대는 점점 핏빛으로 물들었으나
부처의 투혼이 빛을 발휘했는지 대표팀은 월드컵에 진출했으며 본선 무대에서도 팀의 백5 시스템에서 키맨으로 활약하며 4강 진출에 일조한다. 비록 4강에서 서독에게 패하며 결승 진출은 무산됐지만 대회 기간 그의 활약은 인상적이었고 월드컵 이후 대표팀에서 은퇴한다.
4. 지도자 경력
1990년 11월 15일, 레인저스를 떠난 뒤 코번트리 시티에 플레잉 코치로 합류하면서 지도자 커리어는 시작된다. 당시 나이는 32살로 풋볼 리그에서 최연소 감독이였다.
코번트리는 과거 짧았던 80년대 중후반의 영광을 뒤로 하고 부진에 늪에 빠지고 있었으며 다시 한번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부활을 노렸으나 부처의 역량으로는 목표를 실현시키기 어려웠다. 결국 1992년 1월 6일, 13개월간의 짧은 임기끝에 해고된다.
1993년 2월, 선덜랜드에서 선수로 뛰던 그는 감독의 경질로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그는 1992-93 시즌에 잔류를 달성했지만 다음 시즌에는 불안한 출발을 보인 끝에 연말에 경질되었다.
2001년 10월, 오랜 공백기를 거쳐 스코틀랜드의 머더웰의 수석코치직에 임명된다. 1년 뒤 감독직으로 승격했고 팀의 재정난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안정된 지도력을 선보이며 언론과 팬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또한 2005년에는 스코틀랜드 리그 컵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아쉽게도 레인저스에게 분전 끝에 1:5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머더웰을 떠난 뒤 4년동안 시드니 FC, 브렌트포드, 스코틀랜드 대표팀의 수석코치직을 역임했다.
2009년 1월 27일, 스코틀랜드 대표팀의 수석코치로 일하던 부처는 인버네스 CT와 18개월간 계약하며 수석코치직에 부임했다. 첫 시즌은 강등을 피하지 못했고 2부리그에서 맞이한 두번째 시즌에도 출발은 좋지 않았으나 얼마안가 상황을 반전시키며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그 결과 1시즌만에 1부리그로 다시 복귀시키는데 성공한다.
1부리그에서도 그의 지도력은 여전했고 2010-11 시즌에는 상위 스플릿 진출에 한단계 모자란 7위로 마무리했으며 2012-13 시즌에는 4위를 달성했다. 그 결과 시즌을 마친 뒤 PFA 스코틀랜드 올해의 감독 후보 4인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2013년 11월, 그는 히버니언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그러나 인버네스 시절만큼 히버니언에서는 그의 지도력을 빛을 발휘하지 못했고 점점 그의 능력에 의문을 가지는 팬들이 많아졌다. 이에 대해 버처는 직접 팬들에게 사과했으나 여전히 팀의 행보는 좋지 못했고 강등권으로 추락한다. 결국 승강 플레이오프에 직면하게 된 팀은 해밀턴 아카데미컬 FC에게 패하며 스코티시 챔피언십으로 강등당하고 만다. PFA 스코틀랜드 올해의 감독 후보에 노미네이트까지 됐던 그가 불과 1년만에 팀을 강등시킨 최악의 감독으로 위상이 추락하고 만 것이다. 당연하게도 강등 직후 부처는 해고된다.
2014년 4월 30일, 부처는 EFL 리그 투의 뉴포트 카운티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그러나 10경기동안 단 5점 획득에 그치는 부진끝에 10월 1일, 경질된다.
2018년 6월 14일, 4년간 야인으로 지내던 그는 필리핀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는 2019년 초에 있을 AFC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을 이끌 예정이었지만 8월 2일, 그는 감독직을 맡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필리핀 대표팀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9년 7월 26일, 중국 슈퍼 리그 소속 광저우 R&F에 수비코치로 부임했다. 팀의 누수되는 수비를 막기 위해 영입됐다고 한다. 그리고 잔여 시즌을 마친 뒤 팀을 떠났다.
2020년 2월, 친정팀 입스위치 타운에 스태프로 합류했다. 주로 아카데미에서 일하지만 1군 관련 업무도 본다고. 1년 뒤인 2021년 7월에 팀을 떠났다.
5. 수상 경력
5.1. 선수
5.1.1. 클럽
- 입스위치 타운 FC (1976~1986)
- UEFA 컵: 1980-81
- 레인저스 FC (1986~1990)
-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 1986–87, 1988–89, 1989–90
- 스코티시 리그컵: 1986–87, 1988–89
5.1.2. 개인
- 입스위치 타운 올해의 선수: 1984–85, 1985–86
- 레인저스 명예의 전당: 2000
- 입스위치 타운 명예의 전당: 2010
- 스코틀랜드 풋볼 명예의 전당: 2011
- 잉글리시 풋볼 명예의 전당: 2021
5.2. 감독
5.2.1. 클럽
- 인버네스 CT (2009~2013)
- 스코티시 퍼스트 디비전: 2009-10
5.2.2. 개인
-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이달의 감독: 2013년 8월
분류
- 1958년 출생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잉글랜드의 축구 감독
- 입스위치 타운 FC/은퇴, 이적
- 레인저스 FC/은퇴, 이적
- 코번트리 시티 FC/은퇴, 이적
- 선덜랜드 AFC/은퇴, 이적
- 코번트리 시티 FC/역대 감독
- 선덜랜드 AFC/역대 감독
- 머더웰 FC/역대 감독
- 시드니 FC/역대 감독
- 브렌트포드 FC/역대 감독
- 인버네스 캘리도니언 시슬 FC/역대 감독
- 히버니언 FC/역대 감독
- 뉴포트 카운티 AFC/역대 감독
-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잉글랜드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참가 선수
-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참가 선수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