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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쿠라 강 수난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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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倉川水難事故

1. 개요2. 사고 경위3. 논란4. 사고 이후5. 여담6. 관련 문서

1. 개요

1999년 일본에서 발생한 수난사고. 어린이를 포함해 총 13명이나 되는 사망자가 발생한 참사였으나 당시 조난자들의 안이한 안전 의식과 무개념한 언동 때문에 사고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큰 비난을 받았던 사건이다.

2. 사고 경위

1999년 8월 13일 가나가와현 아시가라카미군에 위치한 쿠로쿠라 강에는 요코하마시의 한 폐기물 처리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과 자녀 6명을 포함한 가족들, 직원의 약혼자와 친구들 등 총 25명이 단체로 캠핑을 하러 와 있었다. 이들은 오전 7시쯤 야마키타정 인근 쿠로쿠라 강변에 도착, 오전 10시경에 얕아진 물을 건너 강 한가운데 자리한 모래톱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시작했다.

그런데 오후 3시경부터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3시 30분경 인근 쿠로쿠라 관리소 측에서 캠핑객들에게 피난 권고 방송을 내보냈다. 대부분의 캠핑객들은 관리소의 권고에 따라 하나둘씩 물가를 떠나기 시작했으나, 이 단체 캠핑족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 피난 권고를 무시하고 캠핑을 계속했다. 이윽고 오후 4시에 접어들면서 가나가와현 전역에 호우주의보가 발령될 정도로 비가 거세게 쏟아졌고, 오후 7시경 일행들 중 당일치기 일정으로 참가했던 4명은 곧바로 캠핑장을 떠나 귀가했다.

오후 7시 30분경 빗줄기가 한층 더 거세어졌고, 쿠로쿠라 댐 쪽에서 방류 예고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통상 방류 예고 사이렌은 10분간 울리게 되어 있으나, 이 날은 30분에 걸쳐 사이렌이 울렸고, 강 둔치에서 텐트를 치고 남아 있었던 일부 캠핑객들은 평소보다 더 길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감지하고 텐트를 남겨둔 채 하나둘씩 철수하기 시작했다. 댐 관리 직원들은 순찰을 돌면서 모래톱에 있던 캠핑족들에게 재차 직접 피난을 권했으나 이들은 이를 거부하고 캠핑을 강행했으며, 인근에 거주하는 지역 주민들도 피하라고 권했으나 이들은 오히려 피난을 권하는 주민들을 비웃으면서 그대로 모래톱에 눌러 앉았다.

한편 쿠로쿠라 댐은 원래 강 하류에 위치한 쿠로쿠라 제 1수력발전소의 발전용수 취수 시설로 건설된 댐으로, 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일본 하천법상 기준인 15미터에 미치지 못하는 높이였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댐이 아니라 로 간주되는 곳이었다. 또한 이 쿠로쿠라 댐은 발전용으로 건설된 소규모 댐이라 저수 용량이 기본적으로 매우 낮고 홍수에 대비한 수량 조절 기능 자체가 없어 홍수 발생시 신속하게 물을 방류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상황인 만큼 댐 관리소 측에서는 더 이상은 위험하다고 판단, 경찰을 통해 철수 명령을 내려줄 것을 요청하고자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곧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댐 관리 직원들이 캠핑족들에게 피난을 권고하러 가려 했지만, 물가와 모래톱 사이는 그 사이에 물이 크게 불어나 직접 갈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 일행 중 3명은 뒤늦게나마 피난 권고를 따라 자신들의 차량으로 피했고 나머지 일행에게도 피난을 권했지만 이들은 이마저도 듣지 않았다.

오후 10시 45분경 경찰이 다시 피난을 권고했으나 이들은 오히려 경찰이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느냐며 폭언을 퍼붓고 욕설을 하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보였다. 심지어 이들은 당시 술에 취해 있었고, 그 중에서도 경찰관에게 폭언을 했던 남성은 얼마나 만취했던지 발음마저 부정확한 상태였다고 한다.[1] 이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자 경찰도 더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물이 비교적 얕은 오른쪽 강 기슭으로 신속하게 피난하라는 구두 지시만 남긴 채 그대로 철수해 버렸다.

그리고 다음날인 8월 14일 오전 5시 30분경 비는 한층 더 거세어졌고, 전날 가나가와현 전역에 발령된 호우주의보는 호우경보로 격상되었다. 약 30분 후인 오전 6시경 전날 피난했던 3명이 위험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 모래톱에 있던 일행에게 다시 피난을 권했지만 이미 술에 취한데다 잠을 자고 있었던 터라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나마 이 당시는 아직 수심이 무릎 높이 정도까지로 비교적 얕았기 때문에 도보로 강을 건널 수 있었으나, 6시 30분경이 되자 새벽부터 내린 호우로 인해 더 이상 물을 담아둘 수가 없게 된 쿠로쿠라 댐에서는 본격적으로 방류가 시작되었다.

오전 7시 30분경 다시 경찰이 캠핑족들에게 피난을 권했으나 이들은 또 이를 무시하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오전 8시경 태풍이 접근함에 따라 본격적인 폭풍우가 몰아치자, 먼저 피난했던 3명이 소방서에 구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불과 30분 후 쿠로쿠라 강의 수위는 평상시보다 무려 85cm나 상승하여 거의 1m에 근접했고, 결국 캠핑족들이 텐트를 쳤던 모래톱은 그대로 수몰되고 말았다. 텐트 등이 전부 쓸려간 상황에서 모래톱에 발이 묶인 캠핑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서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전술되었듯 수위가 거의 1m 이상까지 치솟은데다 물살도 급류로 바뀐 탓에 자력으로 모래톱에서 탈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오전 9시경 아시카가 소방조합본부 소속 구조대와 경찰서의 증원 인력이 속속 도착했다. 문제는 이 지역에는 당시 수상구조대가 없었던데다, 사고 당시는 하필 오본 연휴가 겹친 시기여서 휴가 중인 인력이 많아 동원 가능한 인원도 부족했다. 이후 사고 소식을 접한 언론사 취재진들도 현장에 모여 사고 상황을 중계하기 시작했다. 구조 헬기 출동을 요청했으나 강풍과 짙은 안개로 2차 피해의 위험이 있어 헬기 출동이 불가능했고, 사다리차를 이용한 구조 방법도 제안되었으나 안정성 문제로 이 또한 무산되었다. 또한 맞은편 강기슭에서 구명 로프를 발사했지만 유목과 수압 때문에 로프가 미처 닿지 못하는 등 여러 악조건이 겹치면서 구조 작업은 난항을 빚고 있었다.

한편 경찰의 요청으로 쿠로쿠라 댐은 방류를 일시 중지했으나, 전술되었듯 자체 저수 능력이 빈약한 발전용 댐인지라 저수 용량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결국 붕괴 위험으로 인해 쿠로쿠라 댐은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방류를 재개, 오전 11시 30분경에는 쿠로쿠라 강의 수위가 2m까지 치솟았다. 결국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모래톱에 남아 있던 캠핑족들은 그대로 급류에 쓸려가고 말았으며, 성인 3명과 어린이 1명은 반대편 기슭 쪽으로 밀려가 겨우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2] 하지만 나머지 일행들은 그대로 하류까지 떠내려갔고, 오후 12시경부터 육상자위대 소속 구조대까지 합류하여 강 하류의 단자와 호수에서 실종자 수색을 실시한 결과 생존자 4명과 사망자 2명이 발견되었다.

8월 16일에도 경찰과 소방서, 자위대에 의한 실종자 수색은 계속되었다. 또한 이 날은 지자체와 인근 지역 주민들까지 가세했는데, 당시 단자와 호수에 댐 방류로 떠내려온 유목 등이 워낙 많았던지라 수색이 곤란했던 점이 맞물려 전원을 발견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자위대의 수색 종료를 앞둔 8월 29일이 되어서야 마지막 실종자였던 1세 유아가 발견되었고, 성인 9명, 어린이 4명으로 총 13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3. 논란

13명이나 되는 인원이 사망한 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간에서는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컸는데, 안전불감증도 그렇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들의 무개념한 언동이었다. 이들은 애초에 강이나 계곡 물가에서 텐트를 쳐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3] 수 차례 거듭 피난 권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했다. 심지어 술에 취한 상태였다고는 해도 피난을 권하는 경찰관에게 이상하리만치 거부반응을 보인 것도 모자라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며 폭언과 욕설까지 퍼부었고, 생존자 중에는 구조대에게 감사의 인사는 커녕 되레 막말을 하는[4] 추태를 부리는 모습이 방송국 카메라에 찍혀 고스란히 전파를 타면서 전국적으로 큰 비난을 받았다. 게다가 당시 구조 및 수색작업에 소요된 비용 중 쿠로쿠라 강이 위치한 야마키타정 측에서 부담한 비용이 4800만엔, 카나가와 현경에서 소요된 비용은 인건비만으로도 무려 약 1억엔을 웃도는 액수였고 이 비용이 공공비용, 즉 세금에서 고스란히 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컸다. 오죽했으면 사고 당시 상황이 알려진 뒤 일본 인터넷상에서는 'DQN의 급류타기(DQNの川流れ[5])' 등 피해자들을 조롱하는 표현까지 생겨났을 정도였다.

한편 피해자들에 대한 비난 여론과는 별개로 사고를 보도했던 언론들 중 일부 와이드 쇼 프로그램에서는 사고 경위 및 피해자들의 문제점과 자기책임을 지적하는 한편 피해자들에 대한 시청자 의견을 소개하는 내용을 방영했는데, 이 때 피해자들이 급류에 쓸려가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반복적으로 내보냈기 때문에 논란이 있었다. 비록 사고 자체는 전적으로 피해자들의 책임이 크기는 하나, 엄연히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인데 사고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반복 송출하는 것이 과연 도의적으로 옳은가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었고, 결국 방송국 측에서는 사고 영상 송출을 자제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4. 사고 이후

이 사고를 계기로 건설성 하천국(現 국토교통성 수자원관리·국토보전국)에서는 '위험이 내재된 하천의 자연성을 고려한 하천 이용 및 안전 확보 방법에 관한 연구회'가 열렸고, 사고가 일어난 가나가와현을 필두로 각 지자체에서도 하천 이용 및 안전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또한 사고 당시 철수권고가 강력하지 못했던 점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구조대의 정비 및 훈련 부족을 지적하는 의견도 나왔다. 당시 사고 현장 관할이었던 아시가라카미 소방본부는 구조 체계를 적절히 갖출 정도의 조직 규모가 아니었기 때문에, 2001년 4월 1일자로 인근 미나미아시가라 소방본부와 조직 통합이 이루어져 아시가라 통합 소방본부가 발족되었다.[6]

5. 여담

해당 사고 1년 전, 대한민국에서는 103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실종된 지리산 폭우 참사가 일어나, 폭우가 쏟아질 때는 계곡이 매우 위험한 장소임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6. 관련 문서


[1] 안 그래도 비가 오기 시작했을 때부터 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피난 권고를 비웃었던데다 술까지 들어간 상태였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거부반응을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2] 이 때 아이를 안고 있던 한 남성은 자신이 물에 쓸려가기 전에 강가 쪽으로 아이를 던졌고, 마침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이 아이를 받아내서 구조할 수 있었다.[3] 계곡 문서에도 언급되어 있고 해마다 잊을 만하면 사고 소식이 들려오는 데서도 알 수 있지만, 일단 비가 오기 시작하면 물이 불어나는 것은 정말로 순식간이기 때문에 강가나 계곡 물가에서는 텐트를 치지 말아야 하며, 최대한 빨리 높은 곳으로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4] 급류에 쓸려가는 와중에도 자신들의 잘못으로 고립된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구조대에게 '애들이 있는데 빨리 안 구하고 뭐하느냐', '헬기를 띄워라'라는 등 고압적으로 굴었다는 점에서 더 크게 비난을 받았다.[5] 원래 川流れ는 '강물에 떠내려가다', '강에 빠져 죽다'라는 의미[6] 이후 아시가라 소방본부는 2013년 오다와라시 소방본부에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