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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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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코잔 성채

1. 개요

튀르키예어 Kozan
아르메니아어 Քոզան

터키 남부의 도시. 메르신에서 동북쪽으로 60km, 오스마니예에서 서북쪽으로 50km 떨어진 타우루스산맥 기슭의 분지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13만 명으로, 쿠르초바 (킬리키아) 평원의 북부 거점 도시이다. 옛 지명은 시스 (Սիս / Sis)로,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의 수도로서 12-14세기에 걸쳐 번영했다. 하지만 1266년, 1277년, 1375년 맘루크 왕조의 침공으로 쇠퇴했고 결정적으로 1915-21년간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의 일환으로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추방되며 인구가 감소했다. 현 지명은 17-19세기 일대의 데레베이 (호족)이던 코자노을루 가문에서 유래되었다. 20세기 들어 코잔은 오렌지 등의 농산물 집산지이자 서북쪽 공단을 지닌 도시로서 성장했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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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기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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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잔 성채

이미 히타이트 시대부터 마을이 있었다. 로마 제국 시기 플리비아스 혹은 플라비오폴리스라 불렸고, 킬리키아 세쿤다 속주에 편성되었다. 당시 도시는 성벽이 둘러져 있지 않았다. 동로마 제국 시기 시시온 (Σίσιον )이라 불렸고, 704년 우마이야 왕조가 포위했으나 동로마 군의 구원으로 격퇴되었다. 850년대에는 압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 무타와킬이 점령해 동로마 시기 성벽을 재건했다. 다만 962년 니키포로스 2세가 점령해 다시 동로마 령이 되었고, 1113년에는 아르메니아계 루펜 가문의 토로스 1세가 차지해 재차 요새화했다.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 (루펜 왕조) 하에서 시시온은 시스 혹은 시수 (Սիս)라 불렸고, 1186년 레본 1세가 수도로 삼았다.[1]

2.1.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의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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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잔 성채

1193년 10월, 레본 1세는 안티오크 공국의 보에몽 3세를 바그라스 성채로 초대한 후 체포해 시스로 보내 감금했다. 이에 1193년 3월, 예루살렘 왕국의 앙리 1세가 무력 시위 후 시스로 향해 레본 1세와 협상했다. 그 결과, 레본 1세는 안티오크 영유권을 포기하고 보에몽 3세가 킬리키아 및 바그라스 영유권 주장을 멈추는 대가로 사돈을 맺은 후 풀어주었다. 레본 1세와 헤툼 1세 시기에 성채가 증축되었고 거친 석회암반 위에 성벽, 성탑, 지하 창고, 저수조, 궁전, 주택, 정원, 성당 등이 세워져 대도시로 성장했다.

헤툼 1세는 또한 성채의 동남쪽 기슭에 성 소피아 바실리카를 건설했다. 1212년 시스를 방문한 튜튼 기사단원 빌브란트는 완공된 성당을 묘사했다. 시스의 건축물들은 동일 규격의 돌들을 쌓아올리는 아르메니아 석축 양식으로 지어졌고, 성벽이나 성문의 일부는 동로마 및 맘루크 시기의 것이다. 성채 동남쪽 암반에는 성 소피아 바실리카 외에도 성 게오르기 성당, 예배당 (카라 킬리세) 등이 세워져 종교 단지가 되었다. 13세기의 시스는 성벽 둘레만 3km에 달하여 킬리키아 최대 성채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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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잔 성채의 성벽

1224년 말에는 레본 1세의 고명딸인 자벨 여왕의 남편 필리프 (보에몽 4세의 아들)가 섭정인 램프론의 콘스탄티노스에게 납치되어 시스 인근에 갇혔다가 이듬해 독살당한다. 1241년 자벨 여왕은 시스에 병원을 세웠다. 1266년 여름, 하마 태수 알 만수르가 이끄는 맘루크 왕조 군이 시스를 함락했다. 알 만수르는 시스에 주둔하며 2주간 도시를 철저히 약탈했고, 아다나와 타르수스 등지를 침탈한 칼라운과 함께 4만의 아르메니아인 포로 및 막대한 제물과 함께 회군했다. 헤툼 1세가 일 칸국군과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이후 시스는 재건되었다. 1268년 5월, 술탄 바이바르스는 안티오크를 함락한 후 포로로 잡은 안티오크 공국의 대원수 시몽 망셀을 그의 뜻에 따라 시스로 보내주었다.

1275년 3월에 바이바르스는 기습적으로 시스를 점령했다. 다만 바위산의 시타델은 함락하지 못했지만 그는 시가지를 완전히 파괴하고, 이둘 피트르 (라마단 종식제) 예배를 드린 후 철수했다. 1292년 맘루크 술탄 알 아슈라프 칼릴이 흐롬클라 (룸칼레)를 함락한 후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총대주교좌 역시 시스로 이전되었다. 1294년에는 라틴 가톨릭 주교구가 설치되었다. 1369년 맘루크 군이 3번째로 시스를 함락했지만 아르메니아 군의 반격으로 철수했다. 1375년 4월, 맘루크 군이 시스를 함락하고 시가지에 방화했다. 도시 중앙의 성당에도 땔감 넣어 불을 질렀고, 왕릉들도 파괴했다. 그 후 맘루크 군은 레본 5세를 포함한 왕실 및 귀족들을 사로잡아 카이로로 개선했다. 이로써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은 멸망했고, 시스는 쇠퇴해 중소 도시가 되었다.

2.2. 오스만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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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8년에 세워진 울루 자미 (대사원)

시스 함락 이후로도 아르메니아 인들이 덜 파괴된 폐허에 터를 잡고 거주했다. 1441년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총대주교좌는 시스에서 아르메니아 본토의 에치미아진으로 이전되었다. 1516년 일대는 오스만 제국 령이 되었고, 시스는 아다나 산작 산하의 카자 (읍)이 되었다. 오스만 당국은 데브시르메를 실시했지만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했고, 1564년에는 일부가 코스탄티니예까지 가서 징집된 소년들을 병영에서 납치해 데려오기도 했다.

오스만 제국이 유럽 전선에 집중하며 지방 통제력을 잃어가던 1689년, 튀르크계 코자노을루 가문이 시스의 데레베이 (세습 영주)가 되어 2세기 가까이 지배했다. 그러면서 지명은 가문명에서 유래된 코잔으로 공식화되었다. 점차 고도의 자치권을 추구하게 된 코자노을루 가문은 크림전쟁 당시 조정의 징집을 거부하며 마찰을 일으켰고, 결국 1865년 여름 추쿠로바 (킬리키아) 지방의 중앙 집권을 회복하기 위해 창설된 부대인 프르카 이슬라히예가 코잔을 점령하며 도시는 조정의 직접 지배하에 놓였다.

2.3. 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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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근대 시기 아르메니아인 부호의 저택 코잔에서 추방되는 아르메니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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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의 코잔 스케치

1900년 무렵 코잔의 인구는 약 8천이었고, 그중 5천 6백이 아르메니아인이었다. 1915년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당시 아르메니아 주민들은 추방되었고, 이들은 1919년 3월 프랑스 군이 진주한 후 돌아와 역으로 튀르크 무슬림들을 공격해 일부를 학살하며 보복했다. 다만 1920년 6월에 프랑스 군이 철수하자 튀르크 민병대가 장악했고, 1921년에 남아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은 모두 시리아 방면으로 추방되었다. 공화국 설립 후 코잔은 1923-26년간 동명의 주의 주도였다.

3. 코잔 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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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왕으로서의 대관식은 타르수스에서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