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16 02:55:13

코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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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부르크
Co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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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코부르크의 위치
행정
국가 독일 파일:독일 국기.svg
시간대 (UTC+1/+2)
바이에른
오버프랑켄
인문환경
면적 48.30km²
인구 42,139명(2023년 12월)
인구밀도 870명/km²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정치
시장 도미니크 사우에르타이그(Dominik Sauerteig)


1. 개요2. 역사3. 랜드마크4. 여담

1. 개요

독일 바이에른 주 북부의 오버프랑켄 현에 위치한 도시로 1918년 이전까지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의 수도였다.

2. 역사

코부르크는 1056년 망명한 폴란드 왕비 로타링기아의 리체차가 쾰른의 대주교인 안노에게 코부르크를 증여하면서 처음 언급되었다. 1331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루트비히 4세는 코부르크에 도시의 권리와 자체 관활권을 부여하였다. 원래는 헨넨베르크 가문의 소유였으나 마이센 백작, 프리드리히 3세와 헨넨베르크의 카테리나의 결혼으로 베틴 가문으로 넘어갔다. 1430년 후스파가 코부르크 일부를 약탈했지만 시는 공격당하지 않았다.

이렇게 평범한 도시였던 코부르크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작센의 선제후들이 마르틴 루터종교개혁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코부르크에서 시작했으며 당시 작센의 선제후인 요한 폰 작센은 마르틴 루터의 신변을 우려하여 그를 코부르크에 위치한 요새에 보내기도 했다. 마르틴 루터는 코부르크의 요새에서 성경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였다. 1596년 영지를 분할 상속하면서 코부르크는 작센코부르크 공국의 수도가 되었다. 일국의 수도가 되니 당연히 대규모의 재개발이 이루어졌고 이 때의 도시 풍경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19세기 동안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은 결혼을 통해 벨기에, 불가리아, 포르투갈, 영국의 왕실과 관계를 맺었다. 이로 인해 공작 가문은 상당히 모호한 뒷마당 공국의 통치자에서 유럽 정치에 영향력 있는 역할을 하는 가문으로 변모했다. 이 때 빅토리아 여왕과 결혼한 사람이 에른스트 1세의 차남인 앨버트 공이었다. 또한 벨기에의 초대 왕인 레오폴드 1세도 이 공작 가문의 사람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남편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코부르크를 6번이나 방문하였다.[1] 하지만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11월 혁명이 일어나 독일의 모든 왕공족은 폐위가 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섰다.

코부르크는 예전부터 독일 민족주의 운동의 중심지였고 1922년 부터 국가 사회주의의 거점이 되었다. 결국 1929년 초 나치당이 독일 도시 중 시의회 의석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 도시이고 아돌프 히틀러에게 명예시민권을 수여하는 최초의 도시가 되었다. 1930년대 말에는 독일 최초의 국가사회주의 도시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의 다른 도시들은 동독에 포함되었지만 코부르크만은 서독에 남게 되었다.

3. 랜드마크

코부르크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아 수많은 역사적인 건물을 소유하고 있어 독일에서 인기있는 관광지이다.
  • 코부르크 요새 (Veste Coburg) : 10세기 경 만들어진 요새로 한 때 코부르크 공작의 별장이자 사냥터이기도 했다. 마르틴 루터가 아우구스부르크 화의 동안 안전을 위해 보낸 곳이기도 하다. 또한 내부에는 코부르크 공작의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 모리츠 교회 (Morizkirche) : 13세기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으로 코부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 코부르크 주립극장 (Landestheater Coburg) : 480개 좌석이 위치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극장으로 에른스트 2세가 문화 예술을 진흥시키기 위해 지었다.
  • 성 십자가 교회 (Heilig-Kreuz-Kirche) : 1407년 지어진 교회로 주둔지 근처에 막사가 있어서 튀링겐 95연대의 주둔지 교회이기도 했다.
  • 에렌부르크 성 (Schloss Ehrenburg) : 1547년에 지어진 신고딕양식의 건물로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의 거주지였다. 현재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가문이 소유한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유럽 대륙 최초의 수세식 변기가 설치된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엘리베이터도 설치가 되었는데 이는 빅토리아 여왕이 코부르크를 방문하자 설치한 것이다.
  • 코부르크 주립 도서관 (Landesbibliothek Coburg) : 50만권에 달하는 책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으로 코부르크를 통치했던 공작과 그 친척들이 수집한 역사 서적 컬렉션을 보관하고 있다.
  • 뷔르글라스 성 (Bürglaß-Schlösschen) : 18세기 지어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강제로 폐위당한 불가리아의 차르 페르디난트 1세가 30년 동안 머문 거주지이기도 하다.
  • 칼렌버그 성 (Schloss Callenberg) : 시내 중심가에서 북서쪽으로 6km 떨어진 우거진 숲에 위치한 성으로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의 여름 휴양지로 사냥을 위한 사냥터와 농장 그리고 동물원이 있었다. 현재는 독일 사격 박물관이 들어섰다.
  • 카시미리아눔 (Casimirianum) : 1605년에 세워진 학교로 현재 언어 및 인문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 장미 정원 (Rosengarten) : 코부르크에서 가장 큰 공원으로 1929년에 독일 장미쇼가 열리기도 했다.

4. 여담

  • 독일 재통일 이전에 미군이 많이 주둔한 결과, 코부르크와 그 주변 지역에는 여전히 미국인과 미국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 브라질 외에서 열리는 가장 큰 삼바 축제는 코부르크에서 열리며 축제 기간에는 매년 20만명이 찾아온다.
  • 핫도그용 소시지로 잘 알려진 프랑크푸르터는 17세기 후반 코부르크에 살던 정육점 주인 요한 게오르게너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 코부르크는 코부르거 브라트부어스트(Coburger Bratwurst)라는 전통 소시지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쓰는 소고기 대신 송아지 고기를 쓰며 자작나무 숯(Birkenholz)을 사용해 숯불에서 직접 굽는 방식으로 조리한다.
  • 오스트리아의 음악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1887년 코부르크의 시민이 된 것을 기념해서 3년 마다 요한 슈트라우스 음악의 날이라는 축제를 연다. 참고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코부르크에 온 이유는 가톨릭은 이혼을 사실상 금지하기 때문에 이혼과 재혼을 위해 개신교로 개종하고 독일 시민권을 따서 이혼 수속을 밟기 위해서다. 재혼 결혼식을 올린 후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다시는 코부르크를 방문하지 않았다.

[1] 빅토리아 여왕은 코부르크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