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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네임드 관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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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2009년 하반기 : 신상털이의 시초2.2. 2010년 상반기 : 코프리카의 시작
2.2.1. 새벽반 :구제불능들의 집합소
2.3. 2010년 하반기 : 친목의 절정2.4. 2011년 상반기 : 종합병원
2.4.1. 코갤정보원 : 자기 부모님의 정보도 모르면서
2.5. 2011년 하반기 : 종말

1. 개요

인터넷 상에 우리보다 더한 병신이 있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이라면 승리한 병신이 되라고 했다.
- 2010년 타진요 원정 간 -
막장 갤러리와 견줄 만한 병신력을 가지고 있는 디시인사이드의 한 갤러리이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던 2008년 경부터 쓰레기 매립지로의 역할을 돈독히 해 왔다. 그 명맥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데, 사람들이 기억하는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의 모습은 흡사 일베저장소의 그것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다. 장애인들을 비롯한 소아성애자들, 관음증 및 허언증 환자들을 동시에 수용해 내면서도, 유저 간에 자신이 정상인임을 어필하려는 모습을 결코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코갤의 수많은 정신병자 중 한 명임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2. 역사

늘 모니터 앞에 밥상을 차리며 12시간, 혹은 그 이상을 의자에 앉아 코갤만 하는 인간들을 통칭 NPC라 불렀다.[1] 즉, NPC는 밥 먹는 시간과 똥 싸는 시간을 제하고는 항상 코갤에 상주하는 넷상의 노숙자들을 코갤러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법한 영어로 나타낸 표현이다. 이처럼 코갤은 당시의 NPC들, 즉 네임드 유저들이 써 내려 간 역사와 문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2.1. 2009년 하반기 : 신상털이의 시초

병신을 무찌를 수 있는 건 그보다 더한 병신밖에 없다.
- 병신들의 영원한 우상, Inside -
파일:2009_하반기_코갤러_명단.jpeg.jpg
인터넷 상의 각종 사건 및 사고가 들끓었던 2009년 중기, 아니나 다를까 최고의 병신력으로 응집된 코갤은 전성기를 맞았다. 코갤러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남에게 해가 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본인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익명성을 무기 삼아, 모니터를 방패 삼아 남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저질스러운 마녀사냥을 일삼았다. 하지만 코갤러들조차 혀를 내두르게 하는 각종 사건 및 사고들이 쇄도하던 2009년, 코갤러들은 이를 타도하겠답시고 남의 뒷조사를 해 대며 그것을 정의로 포장했다. 그들은 특유의 관음증 환자다운 음침한 행동양식을 보이며[2] 현실이나 인터넷 상에서 일어난 죄질이 높은 사건 및 사고를 그들 나름의 수사력을 통해 면밀히 조사했다. 수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코갤의 내부나 외부에 열심히 글을 퍼뜨리고 다니며 코갤러의 멍청함을 만천하에 알렸다.

2.2. 2010년 상반기 : 코프리카의 시작

남 잘 되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할복을 하겠다.
- 코프리카 원정대장, 주차왕김빠꾸 -
파일:2010_상반기_코갤러_명단.jpeg.jpg
당시 아프리카TV 유명 BJ들의 억대 수입에 대한 사회적 파장이 일어나며, 일부 여성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프리카TV에 투신하게 되었다. 인터넷 방송을 통해 돈을 버는 방법을 터득했던 일부의 그녀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아프리카TV의 생리체제를 이해했고, 이에 따라 아저씨들의 지갑을 여는 노하우를 터득했다. 이에 코갤러 주차왕김빠꾸는 남 잘 되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할복을 한다는 표어를 가진 네이버 카페[3]를 개설했고, 이로써 시작된 코프리카 원정대는 많은 루트와 방식으로 신입 여자 BJ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고착화된 방식은 매우 단순했다. 카페 게시판이나 코갤에 네임드 유저가 '몇 날 몇 시에 누구를 테러한다.'는 지령의 글을 올리면[4], 그걸 본 수많은 코갤러들은 오로지 흥미 본위로 그 글을 동네 방네 뿌리고 다녔던 것이다.[5] 당시 코갤의 아성에 휘둘려 분위기가 고조된 타갤러리[6]의 유저들이 그 지령에 자원입대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략 60% 가량의 정규군(코갤러), 40% 가량의 용병(야갤러, 와갤러 등)으로 이루어진 원정대가 편성되면, 다음팟을 관제탑 및 주둔지로 하여 아프리카TV의 불특정한 여자 BJ의 방울 폭격하는 형식으로 코프리카의 이름을 알렸다. 즉, 원정대장이 카페 게시판이나 코갤에 지령을 전파한 후 일련의 작용을 거쳐 대원이 편성되면, 원정대장은 다음팟에 방을 만든 후 대원들을 소집시킨다.[7] 이후 원정대장의 지휘에 따라 이 방 저 방을 쏘다니며 자신들의 열등감을 표출한다. 그런데 정작 테러 하러 들어간 BJ에게 홀려 별풍선을 쏘며 팬이 되는 경우가 절반이 넘었다. [8]

2.2.1. 새벽반 :구제불능들의 집합소

우리가 직업을 가졌더라면 새벽반은 없었을 것이다.
- 낯과 밤을 바꾸는 자, 고카추 -
파일:새벽반.jpeg.jpg
신상털이와 코프리카를 통해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던 코갤을 동시에 침체기로 접어들게 만드는 구제불능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른바 새벽반이라 하여, 글자 그대로 대부분의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 자고 있을 새벽에 코갤을 함으로써 한 층 더 차별화된 병신력을 선보인 이들이다. 하지만 초기의 포부와는 다르게 매우 한시적으로 운용되었고, 이에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질 뻔하였으나 코정원의 등장으로 겨우 명을 이었다.

2.3. 2010년 하반기 : 친목의 절정

여러분, 저 여자입니다.
- 쓰레기더미에 핀 장미꽃 한 송이, 고화질녀 -
파일:2010_하반기_코갤러_명단.jpeg.jpg
코갤을 영원한 파멸의 길로 인도한 사람들이다. 2010년 상반기, 심하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몇몇 유저들의 친목 행위가 일어났다. 처음엔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는 코갤러들답게 누가 먼저 다가가지 않는 이상 서로 친구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서서히 자신의 외모를 숨긴 채 타인과 대화할 수 있게 하는 익명성을 방패 삼아 앞뒤 안 가리고 점점 더 친목질을 하게 된다. 결국엔 갤러리에 상주하는 코갤러들 중 대부분의 인원이 친목질만 하게 된다. 즉 모니터를 방패 삼아 자신을 위장하며, 키 185cm에 원빈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명문대생이라는 뇌내허상을 코갤이라는 쓰레기장에 투영하게 되면서 갤러리엔 영원한 좆목질만 남게 된 것이다.[9] 이들은 프리스타일 풋볼을 같이 하며 지냈다. 2010년 12월 25일, 대부분의 NPC들은 크리스마스에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내느라 갤러리에 접속하지 못한 척하며 원래라면 갤러리를 했을 시간에 프리스타일 풋볼을 함으로써 일부러 갤러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코갤러 아존쉬 역시 그 날 프리스타일 풋볼에 접속했다. 그런데 평소에 같이 게임을 하던 코갤러 10명 중 8명이 오후 2시 경에 접속해 있었다는 것을 스크린샷을 통해 폭로했다.[10] 이 안타까운 사건을 기리며 매년 12월 25일을 프리스타일 풋볼의 날로 지정했다. 이렇듯 소수 네임드 유저들이 즐기던 프리스타일 풋볼은 뉴비들의 꿈의 게임이 되었다. 이에 뉴비들은 몇 주간의 구걸 끝에 인간 네임드 유저들과 같이 게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이 시점을 전환점으로 하여 코갤은 영원한 좆목질의 터로 변질되었다.

2.4. 2011년 상반기 : 종합병원

코갤 접겠습니다.
- 돌연 사라져 버린 폐기물들의 리더, 깔짝중 -
파일:2011_상반기_코갤러_명단.jpeg.jpg
이후 코갤은 40%의 잠재적 성범죄자들, 30%의 소아성애자들, 20%의 관음증 환자들, 10%의 자아분열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로 득실거렸으며, 95% 이상의 코갤러들은 모두 자신이 하는 거짓말을 자신조차 믿어 버리는 정신병적 증세를 가지고 있는 허언증 환자들이었다. 이러한 종합병원적인 상황 속에서 더 이상 코미디 프로그램에 관한 주제, 아니면 적어도 전성기에 누렸던 신상털이와 코프리카에 대한 열정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결국 코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데나 쓰이는 일종의 조건 만남 사이트가 되어 버렸다. 이 사람들은 예전의 코갤의 악명과 활동력을 찾으려는 노력은 눈꼽만큼도 없었고, 이에 수많은 네임드 유저들은 하나 둘 코갤을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코갤이라는 메타포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 같았으나, 악몽은 다시 시작되었다.

2.4.1. 코갤정보원 : 자기 부모님의 정보도 모르면서

어디까지나 흥미 위주, 재미 위주, 그리고 하나의 헤프닝이죠, 사건 자체가.
-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코정원의 수장, 네거티 자폐 -
파일:123F9F384D281D343E.jpeg.jpg
코갤정보원의 등장은 망해 가던 코갤이 다시 원동력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신상털이와 코프리카에 대한 열정이 식어 가는 것은 고사하고 코갤의 존폐 자체가 걱정되던 시기에 네거티 자폐라는 인간이 등장했다. 닉네임에 걸맞는 행동을 하는 듯해 보였지만, 뒤에선 혼자 영웅적인 행동을 많이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11] 이처럼 혜성처럼 등장한[12] 네거티 자폐는 신상털이와 코프리카를 동시에 부흥시키기 위해 이 둘을 총망라 할 수 있는 일종의 사령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코갤정보원을 발족했다. 초창기에는 정보력의 대가 새벽반 멤버가 참모 역할을 맡았고[13], 원정대장으로 활동했던 주차왕김빠꾸가 중간 지휘를 맡았다. 이후에도 100%에 수렴하는 코갤러가 코갤정보원의 모든 행동에 합세했기 때문에 세간에 알려진 코갤정보원은 코갤 그 자체라고 봐야 한다.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는 코갤정보원은 세간의 이목을 끌었으며 이에 들뜬 네거티 자폐는 SBS의 시사매거진 2580이성영이라는 가명으로 출연하는 기념을 토했는데, 코갤의 무차별적 신상털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표창원 당시 경찰대학 교수의 질문에 아래와 같이 답했다. 어디까지나 흥미 위주, 재미 위주. 그리고 하나의 '헤프닝이죠, 사건 자체가."[14] 이처럼 병신력 하나로 종횡무진하던 네거티 자폐는 외부로부터의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급기야 여호성 사건이 일어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었다. 네거티 자폐를 비롯한 코갤정보원 멤버들은 자기 부모님의 나이, 생신은 모르면서 남의 신상은 잘 털고 다녔다. 이를 본 수많은 뉴비 코갤 유저들과 타갤러리 유저들은, '그 정보력으로 자기 부모님이 좋아하는 음식 알아내서 직접 차려 드리면 좋을 것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2.5. 2011년 하반기 : 종말

내가 코갤러다!
- 아름답고 찬란했던 그들, 코갤러 -
파일:역대_코갤러_명단.jpg
2011년 하반기 이후로 코갤은 종말을 맞이했다. 이를 안타까워한 코갤러들은 한 때 날렸던 코갤의 아성과 악명을 기념하고, 지금까지 보여 왔던 병신력과 좆목질을 영원히 기억할 것을 다짐하며 그간의 네임드 유저들을 기려 역대 코갤러 명단이라는 묘비명의 공동묘지를 건축했다.[15] 본적지를 잃어버린 코갤러들은 각개전투의 행보를 보였다. 대부분은 개척지인 일베로 거처를 옮겼고, 나머지는 야갤로 도망쳤다.

[1] 스마트폰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던 2010년 대 초반에는 디시를 컴퓨터로 했다.[2] 예를 들어 왕따 가해자에 대해, 해당 사건과는 전혀 관계 없는 사족까지 드러내고 다녔다.[3] 카페 이름이 '우리보다 병신 같은 것들을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이다. 물론 1주일이 안 되어 네이버 운영진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다.[4] 좌표를 뿌린다는 표현의 시초이다.[5] 식물 갤러리에 뿌리는 놈들도 존재했다.[6] 전파의 우선순위는 국내 야구 갤러리, 와우 갤러리, 스타크래프트 갤러리 순서였고, 필요 시 잡갤러리에도 뿌렸다.[7] 아프리카TV에 원정대를 모으면 운영자가 귀신 같이 찾아 내서 방을 30초만에 폭파한다.[8] 이에 주차왕김빠꾸는 대원들에게 "내가 별창을 털라고 했지 빨라고 했냐?"라고 말했다고 한다.[9] 심지어 일부는 전화번호 교환까지 했다.[10] 친구 목록에 있는 코갤러 10명 중 8명이 접속해 있는 사진[11] 와갤러의 전혀 근거 없는 증언이다.[12] 2010년도에도 가끔씩 똥글을 올리긴 했었다.[13] 디시나 여타 커뮤니티 사이트의 구린내 나는 사건 및 사고들을 귀신 같이 긁어 모아 네거티 자폐에게 갖다 바쳤다.[14] 1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도, "헤프닝이죠, 사건 자체가."라는 말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15] 명단에 있는 사람 중, 아주 가끔이지만 아직까지도 코갤에 출몰하는 전설적인 인물들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