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04:13:34

최갑순



파일:최갑순.jpg
성명 최갑순(崔甲順)
생몰 1898년 5월 11일 ~ 1990년 11월 22일
출생지 함경남도 정평군 정평면 연흥리
사망지 홍콩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최갑순은 1898년 5월 11일 함경남도 정평군 정평면 연흥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독립운동가 송세호(宋世浩)의 부인으로, 1919년 4월 김원경(金元慶)·김희열(金熙烈)·김희옥(金熙玉) 등과 함께 비밀결사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大朝鮮獨立愛國婦人會)를 조직하고 부회장에 선임되어 활동을 주도했다. 애국부인회는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며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여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활동을 폈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총무 이병철(李秉澈)의 주선으로 그해 6월 오현주(吳玄洲)·오현관(吳玄觀)·이정숙(李貞淑), 장선희 등이 조직한 혈성단애국부인회(血誠團愛國婦人會)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를 결성했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총재는 오현관, 회장은 오현주가 맡았으며, 최갑순은 부회장에 선임되었다.

이후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기독교회·학교·병원 등을 이용해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면서 회원들의 회비와 수예품 판매를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수합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했다. 또한 1919년 9월 김마리아, 황에스더를 중심으로 결사부(決死部)·적십자부(赤十字部)를 신설하는 등 항일독립전쟁에 대비한 체제로 조직을 전환하고 본부와 지부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내 연통부(聯通府)와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 대한총지부(大韓總支部)의 활동을 대행했다. 그리고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힘써 6천원의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송금했다.

이후 그녀는 신간회의 자매단체로서 1927년 결성된 근우회(槿友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1930년 12월 18일 근우회 중앙위원 확대회의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여성의 지위 향상과 항일독립운동에 힘썼다. 해방 후에는 홍콩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다 1990년 11월 2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최갑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1년에 그녀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