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焦山之戰, 1275년 7월 아술의 원나라 군대와 장세걸이 이끄는 남송의 군대가 벌인 전투이다.2. 전개 과정
2.1. 초기
1275년 2월 바얀이 이끄는 군대가 무호에서 재상 가사도의 군대를 격파한 이후 건강, 상주 등지를 함락시켰다. 이에 남송 조정은 장세걸을 보강군승선사(保康軍承宣使), 총도독부제군(總都督府諸軍)으로 임명하여 임안 외곽의 방어를 강화했다.2.2. 경과
장세걸은 삼군을 이끌고 북진하여 상주(常州)와 광덕군(廣德軍) 등지를 탈환하였으나 아타카이(阿塔海)에 의해 실패하여 금산(金山)에 이르렀다.그 뒤 장언(張彦)을 지휘하여 상주에서 군사를 이끌고 경구[1]로 향하게 하고, 요양주 이정지가 군사를 이끌고 과주[2]로 나가 세 갈래로 연합하여 원군과 결전을 벌이기로 약속했다.
기한 내에 장언과 이정지가 도착하지 않자, 장세걸은 평강도통 유사용, 지태주 손호신(孫虎臣)[3]과 함께 주사를 이끌고 고군분투하였다. 7월 1일 장세걸은 초산(焦山)[4]에 주둔하여 수군 전함 만여 척을 모아 열 척의 배를 한 척으로 삼아 쇠줄로 강을 연결하고, 초산 남북강을 가로지르며, 명령이 없으면 닻을 올리지 못하도록 규정하여 원군과 목숨을 걸고 싸웠다. 이후 형호행성 평장정사 아술은 과주 강변에 주둔하고, 우승상 아타카이와 참지정사 동문병이 이끄는 전함은 남안 서진도에 정박했다. 만호 장홍범은 1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배를 타고 서쪽으로 진사[5]를 공격하여 상류 강길을 통제했다. 그날, 아술은 여러 장수들과 함께 남안의 석공산[6]에 올라가 관찰한 결과, 송군의 전함이 운집하고 깃발이 강을 막고 있었지만, 그 함정은 철사로 연결되어 있어 이동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아쥬는 화공을 실시하여 양쪽 날개로 협공하고 수륙 병진 전법으로 송군의 방어를 돌파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후 아쥬는 강건하고 능숙한 군사 천 명을 선발하여 거함을 타고 병사들을 두 부대로 나누어 협공하였다. 동문병(董文炳)은 수군을 이끌고 남송군의 우익군을 공격하였고 만호 유국걸(劉國傑)[7]은 남송군의 좌익을 공격했으며, 장홍범은 순풍을 타고 남송군을 공격했다. 아쥬가 가운데 진격하여 불화살을 쏘아 불을 질렀다. 화염이 하늘을 뒤덮었고, 송나라 병사의 배가 움직이기 불편하여 전군은 물에 빠져 죽고 후군은 도망쳤다. 아쥬는 초산까지 추격하여 700척 이상의 황곡선을 노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