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체스트미르 파첼 (Čestmir Patzel) |
생년월일 | 1914년 12월 2일 |
사망년월일 | 2004년 3월 8일 |
국적 | [[체코| ]][[틀:국기| ]][[틀:국기| ]]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하바르조비체 |
포지션 | 골키퍼 |
신체조건 | 불명 |
소속팀 | 테플리체르 FK (1932-1939) 1. SV 예나 (1939-1942) 오펜바허 키커스 (1942-1948) |
국가대표 | 4경기 (1934-1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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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1]
1.1. 선수 생활
1.1.1. 클럽
파첼은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독일인이다. 독일식 이름은 에렌프리트 파첼(Ehrenfried Patzel).DFK 하바르조비체(Chabařovice)[2]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처음에는 공격수였지만 골키퍼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17살에 체코슬로바키아의 독일인 클럽이었던 테플리체르 FK(Teplitzer)로 팀을 옮긴 파첼은 18살에 팀의 주전 골키퍼 자리를 꿰찼고 1932년부터 1936년까지 테플리체르는 체코슬로바키아 1부리그에 소속되었다. 이들의 최고 성적은 1933-34 시즌의 4위였다.
하지만 뮌헨 협약 이후에 테플리체르는 독일 리그쪽으로 편입되었고 파첼은 1939년에 1. SV 예나로 이적했다. 1942년에 파첼은 다시 오펜바허 키커스로 팀을 옮겼고 키커스에서 1948년까지 뛰었다. 파첼은 부상으로 은퇴했다.
은퇴 이후에는 독일 축구 연맹 소속 심판으로 활동했다.
1.1.2. 국가대표팀
파첼은 1934년부터 1935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으로 총 4경기에 출전했다. 하지만 대표팀에는 당시 유럽 최고급 골키퍼이자 주장이었던 프란티셰크 플라니치카가 버티고 있어서 파첼의 역할은 주로 플라니치카의 백업이었다.파첼은 만 19살의 나이로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플라니치카에 밀려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파첼은 이 해 9월 2일에 열린 유고슬라비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처음으로 대표팀에서 장갑을 꼈고 체코슬로바키아는 3대1로 승리했다. 그는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으로 3경기에 더 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