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洵錫
1. 개요
차순석(車洵錫)은 한국 최초의 여자 약사이다. 1924년 조선 약학교를 졸업하고 약사가 되었다.2. 생애
차순석의 집안은 비교적 개방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차순석 자신이 매우 능동적이었고, 독립심이 강했다. 또한, 그녀의 아버지는 여성 교육에 관심이 있어 그녀는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평양에서 태어난 차순석은 숭의여학교에 입학하였다가 1921년 졸업하였다. 그녀는 상급반이 되었을 때 여성 계몽 동아리인 결백대(潔白隊)를 결성하여 여성 계몽 운동을 벌였다. 대여섯 명의 회원과 함께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를 비롯하여 멀리 경상도까지 가서 여성도 배워야 한다는 취지의 강연을 하였다. 3.1 운동이 일어난 직후여서 그녀의 강연은 큰 호응을 얻었으며, 가락지를 비롯한 패물을 내놓아 학교를 세우자는 이들도 있었다. 숭의여학교 측에서도 처음에는 반대하였으나 나중에는 그녀의 활동을 인정하였다.
1922년 조선 약학교에 입학한다. 차순석이 조선 약학교에 입학한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선 이미 있던 여약사 양성소는 일본인이 세운 학교라서 가지 않았다고 한다. 둘째로는 결백대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좀 더 넓은 안목을 가지고 활동을 하려면 그녀 자신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학이 아닌 약학을 선택한 까닭은 의학과는 달리 약학은 여성에게 미개척 분야였기 때문이다.
입학 당시 여자는 3명이었는데, 1명은 죽고, 1명은 만주로 간 뒤 소식이 없어 졸업할 때는 그녀 혼자였다고 한다. 반면 서울대약대동창회명부에는 그녀를 비롯하여 김순복, 김려운, 홍택수가 여자 졸업생으로서 있었다. 한편 1924년 3월 23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 "1924년 3월 22일 조선약학교 졸업식에서 김순복, 차순석, 김려운 등 3인이 조선 여성 최초의 약학졸업생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약학교를 졸업한 뒤 여자들만 근무하던 동대문 병원에서 2년간 보냈다. 그 뒤 함흥 제2병원과 동대문 병원에서 잠시 근무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7년간 더 약학 공부를 하였으나 개업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여성 계몽 운동을 계속하였고, 청중을 끌기 위해 성악가 윤심덕을 초청하기도 했다.
3. 상세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약학교(藥學校)가 설립된 것은 1918년으로서 조선약학강습소를 조선약학교(서울대 약대 전신)로 개칭하여 1920년 5월 첫 졸업생을 냈다. 이때 조선사람은 이호벽(李浩璧)외 10명 뿐이었고 모두 일본사람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24년 우리나라 여자로서 최초로 차순석(車純錫)이 조선약학교를 졸업하여 최초의 여약사가 되었다. 평양이 고향인 차순석은 숭의학교에 들어가서 결백대를 조직하여 항일운동 겸 여성계몽운동을 전개하여 여성도 배워야 한다는 내용으로 평안도, 황해도, 경상도 등 각지역을 순회 강연하기도 하였다. 1921년 숭의여학교를 졸업한 차순석은 경제적으로 독립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의학과 약학부문 중 여성의 미개척분야인 약학을 택하여 조선약학교에 여성으로서 최초로 입학했다. 조선약학교는 1931년 경성약학전문학교로 승격하였고 그때까지 조선사람 졸업생은 모두 131명이었으나 여학생은 16명만 배출했을 뿐이었다. 졸업이후 차순석은 동대문병원(현재 이화여자대학교부속병원)에서 2년간 근무를 한 후 함흥 제2병원에서 근무하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7년간 더 약학공부를 했으나 약국은 개설하지 않았다. 1930년 이전에는 조선인, 일본일을 막론하고 약국은 몇 군데 없었고 여성이 약국을 개설하기는 해방이후의 일이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시스템
한국사데이터베이스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