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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비쥔

진벽군에서 넘어옴
파일:수감된진벽군.jpg
왕징웨이 정권 중앙감찰위원, 중앙정치위원
영어 이름 Becky Chen
정체 陳璧君
간체 陈璧君
한국식 독음 진벽군
영문 Chen Bijun
빙여(冰如)
출생 1891년 11월 5일
해협식민지 페낭
사망 1959년 6월 17일 (향년 67세)
중화인민공화국 상하이시
국적 대영제국 파일:영국 국기.svg
중화민국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중화민국 파일:대만 국기.svg
왕징웨이 정권 파일:왕징웨이 정권 국기.svg
중화민국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파일:중국 국기.svg
학력 소학교 졸업
직업 정치가

1. 개요2. 생애3. 매체에서4.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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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의 정치인, 혁명가. 왕징웨이의 아내로 젊어서부터 혁명활동에 참여했으며 쑹칭링, 허샹닝 등과 함께 민국의 핵심적인 여성 정치인 중 한명이었으나 일본 제국에 투항하여 한간의 길을 걸었다.

2. 생애

1891년, 영국령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화교 부호인 진군기와 광동성 번우현 사람인 위월랑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영어 이름은 베키였다. 진군기의 집안은 상당히 개명된 집안으로 천비쥔은 소학교를 다녀 15세에 졸업했으며 1907년 중국 동맹회 말레이시아 분회가 설립되자 어머니 위월랑을 설득하여 같이 동맹회에 가입하였다. 1908년, 혁명가 왕징웨이가 활동자금을 모으기 위해 동남아시아를 돌아다닐 때 천비쥔은 왕징웨이와 만나게 되었는데 당시에 민국에서 손꼽히는 미남자로 명성이 자자했던 왕징웨이에게 단숨에 반하고 말았다. 천비쥔은 왕징웨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으나 왕징웨이는 거절하였다. 당시 왕징웨이는 싱가포르에 체류하면서 일본과 영국령 홍콩을 오가며 순친왕 재풍을 암살할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천비쥔은 왕징웨이를 일본까지 쫓아갔으며 자신의 유학비용까지 왕징웨이에게 내주면서 자신도 혁명에 동참시켜달라고 요구했고 왕징웨이는 이를 거절하였으나 결국 그녀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그녀를 동료로 합류시켰다.

1909년 여름, 왕징웨이는 도쿄에서 황복생, 여중실, 방군영 등 7명과 함께 순친왕 암살단을 조직하여 쑨원, 후한민에게 자신들이 순친왕 암살을 기도할 것임을 밝히고 1910년 1월 중국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미리 중국에 가 있던 황복생, 단무신 등과 함께 수진사진관을 개업하여 아지트로 삼고 순친왕이 자주 다니는 다리인 은정교에 폭탄을 설치하여 날려버릴 계획을 꾸몄다. 하지만 3월, 폭탄을 설치하는 것을 행인에게 들키는 바람에 경찰들의 수사가 시작되었고 4월 16일, 왕징웨이, 황복생, 나세훈 세 사람이 체포되었다. 천비쥔은 달아나는데 성공하였다. 천비쥔은 옥졸을 매수하여 왕징웨이의 감옥생활을 보살폈고 그런 천비쥔의 정성에 감동한 왕징웨이는 1911년 신해혁명이 발생하여 감옥에서 석방된 후 천비쥔가 1912년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이후 국민당의 화교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굉장히 도도하고 자존심 강한 성격으로 쑹아이링, 쑹칭링, 쑹메이링 자매와 경쟁을 벌였다.

1922년 영풍함 사건이 일어났을때 천중밍랴오중카이를 체포하자 허샹닝에게 감옥을 폭파하고 랴오중카이를 구출하자고 주장했고 1924년 국민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열리자 중앙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1925년 중산함 사건의 계기롤 본의 아니게 제공하였는데 수차례 장제스의 집으로 전화하여 꼬치꼬치 그의 행보를 캐물었던 것이었다. 장제스와 그의 부인 천제루, 그리고 장제스의 비서였던 천리푸 등은 도도한 천비쥔이 다급하게 계속 전화하는 것을 수상하게 여기게 되었고 이는 중산함 사건의 폭발에 일조하게 된다. 국민혁명의 성공 이후 국민당 중앙감찰위원에 선출되었다.

1935년 왕징웨이 저격 사건이 벌어지자 총에 맞아 쓰러진 왕징웨이를 직접 병원에 옮겼으며 장제스를 배후로 여겨 장제스에게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다. 이후 열린 국민당 5기 1중전회에서 중앙정치위원에 선출되었다. 왕징웨이가 독일로 치료를 받기 위해 유럽 외유를 떠나자 중국에 남아 왕징웨이의 측근들과 함께 중국의 정치 현황에 대해 상세한 보고를 계속 올렸다. 1936년 2차 양광사변이 일어나자 왕징웨이로부터 이들과 인간적 관계를 가지는 것은 좋으나 정치적 관계를 가지는 것은 안된다는 지시를 받고 천지탕, 리쭝런의 거병을 지지하지 않았다. 이때 장제스의 양광사변 진압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왕징웨이에게 전달했으며 12월 서안 사건이 벌어지자 황급히 왕징웨이를 귀국시켜 일을 도모하려 했으나 서안 사건이 평화적으로 해결되면서 헛된 일이 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저조구락부의 일원으로 일본과의 화평을 주장했고 전황이 악화되자 메이쓰핑 등과 함께 왕징웨이 공작에 호응할 것을 주장했다. 왕징웨이는 이 문제에 대해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했으나 가오쭝우의 주장에 따르면 영부인이 되고 싶던 천비쥔이 왕징웨이에게 결단을 내릴 것을 다그쳐 결국 왕징웨이는 일본에 투항, 왕징웨이 정권의 주석으로 옹립된다. 그녀 자신도 괴뢰정부의 중앙감찰위원, 중앙정치위원 등의 요직을 맡았으며 1940년 12월, 열린 괴뢰 국민당 3중전회에서 동아연맹운동중국총회 설립이 결정되자 상무이사로 선출되었다. 유약한 왕징웨이와 달리 성격이 불같고 과단성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왕징웨이 정권을 서태후 정권이라고 비웃었다. 천비쥔은 공관파라고 불리는 왕징웨이의 친위파벌을 지휘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으며 일본 측이 천비쥔을 배제하려 하자 왕징웨이는 "천비쥔을 나의 아내로서 보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를 혁명의 공로자로서 바라보지 않으면 곤란한다. 나는 혁명의 옛 동지로서, 천 여사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라고 아내를 두둔하고 나설 정도였다.

왕징웨이 장례식 영상. 아내 천비쥔은 장례식 영상에서 1분 19초부터 나온다.

1944년, 왕징웨이가 골수암으로 사망하자 남편이 죽은 나고야 제국대학 병원 정원에 남편을 기리는 홍매 세 그루를 심었다. 일본이 패망한 후 1945년 10월 10일, 광저우에서 국부군에게 체포되었고 1946년 4월 15일 오후 2시에 강소고등법원에서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녀의 재판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몰렸는데 천비쥔은 광동성장에 동생 진요조를 임명하여 충칭 정부에 물자공급을 차단한 죄, 괴뢰군을 양성한 죄, 화남에서 괴뢰정부의 첩보활동을 주재한 죄, 일본군 특무 사카이와 야자키와 내통한 죄로 기소되었다. 천비쥔은 당시 당뇨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놀라운 기세로 검찰관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그녀의 우렁찬 답변에 객석에서 박수가 연이어 터져나와 청원경찰들은 군중을 제지하기 바빴고 천비쥔은 자신과 왕징웨이의 행동의 정당성에 대해 검찰관과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천비쥔은 자신의 행동은 정당한 것이었으며 죽일 필요가 있으면 자기 혼자를 죽이고 자신의 밑에서 일한 사람들을 관대하게 처분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법정은 4월 22일, 천비쥔의 유죄를 인정하고 그녀에게 종신형, 전재산 몰수, 공민권 박탈을 선고하였다.

천비쥔의 장녀인 왕문성은 어머니를 위해 항소하였으나 5월 20일, 최고법원은 항소를 기각하였다. 종신형이 선고된 후 천비쥔은 강소성 쑤저우 사자구 강소 제3감옥에 복역하였다. 쑹메이링이 한번 면회를 갔으나 천비쥔은 욕설을 퍼부으며 면회를 거부했다. 천궁보가 사형장에 끌려갈때 울부짖으면서 남은 가족을 반드시 보살피겠다고 약속하였다. 국공내전에서 국민정부가 패배한 후 그녀가 수감되어 있던 강소 제3감옥도 1949년 4월 27일, 공산군의 손에 들어갔다. 공산당은 천비쥔의 신병을 인수했으나, 석방하지 않았고, 8월에 상하이 감옥으로 이감시켰다. 공산정부는 체포된 한간들이나 국민당 고관 포로에게 하던 대로 천비쥔에게 과거 과오에 대한 반성문 및 공개 자아 비판을 요구했으나, 천비쥔은 전혀 자신이 반역죄를 저질렀다고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97킬로그램의 거구였던 옥중생활 후 천비쥔은 50킬로그램으로 몸무게가 주는 등 급격히 쇠약해졌다. 결국 천비쥔은 1959년 6월 17일, 상하이의 감옥에서 옥사했다. 자식이 모두 중국을 떠났기 때문에 며느리의 동생이 시신을 인수해서 화장했다.

3. 매체에서

파일:동방전장진벽군.jpg
2016년에 제작된 중국 사극 동방전장(东方战场)에서 중국 배우 강홍파(姜宏波)가 분했다.

4. 참고문헌

  • 왕징웨이 연구, 배경한, 일조각.
  • 장제스 평전, 조너선 펜비, 민음사.
  • 중국, 대만 친일파재판사, 마스이 야스이치, 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