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노동건 · 6 홍정운 · 7 공민현 · 8 주세종 · 11 김인균 · 13 이동원 · 16 김경환 · 23 강성윤 24 박진성 · 26 정우빈 · 27 임유석 · 32 김태현 · 36 박정인 · 37 이은재 · 40 유선우 41 안태윤 · 42 정진우 · 45 이한빈 · 55 김민우 · 66 이선호 C · 72 김민기 73 이준규 · 77 윤도영 · 80 김민수 · 81 김도윤 · 88 박준서 · 91 송창석 |
진경선 김성환 이선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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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선의 기타 정보 | ||||||||||||||||||||||||||||||||||||||||||
<colbgcolor=#007e6e><colcolor=#ffffff> 이름 | 진경선 陳慶先 | Jin Kyung-Sun | |||
출생 | 1980년 4월 10일 ([age(1980-04-10)]세)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8cm | |||
직업 | 축구 선수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코치 | |||
소속 | <colbgcolor=#007e6e><colcolor=#ffffff> 선수 | 부천 SK (2003)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 (2004~2005) 대구 FC (2006~2008) 전북 현대 모터스 (2009~2012) 강원 FC (2013) 경남 FC (2014~2017) | ||
감독 | 경남 FC (2017~2019 / 코치)[1] 부산 아이파크 (2020 / 코치) 대전 하나 시티즌 (2022 / 코치) 대전 하나 시티즌 B (2023 / 코치) 대전 하나 시티즌 B (2024 / 감독 대행) 대전 하나 시티즌 (2024 / 코치) 대전 하나 시티즌 B (2024~ / 감독 대행) | |||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7e6e><colcolor=#ffffff> 학력 | 화전초등학교 남서울중학교 문일고등학교 아주대학교 |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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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출신 코치.2. 선수 경력
2.1. 부천 SK, 울산현대미포조선
2003년 부천 SK에서 데뷔했으나 시즌 초반 4경기를 뛴 이후 팀의 성적 부진으로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 자신을 영입했던 트르판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이후 정해성 감독이 취임하면서 단 한 차례의 경기에도 뛰지 못했다.결국 2004년 내셔널리그의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로 이적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2.2. 대구 FC
2006년 박종환 감독이 이끌던 대구 FC로 이적하며 다시 K리그로 복귀했다.입단 첫 시즌에는 프로 데뷔골을 기록하는 등, 타 팀으로 이적한 송정현과 홍순학의 공백을 메우며 이름을 알렸으며, 이듬해 부임한 변병주 감독 밑에서 '총알 축구'라는 별명으로 대구가 화끈한 공격력을 보일 때, 하대성과 함께 중원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며 변병주호의 핵심 멤버로 중용되며 쉼 없이 공수를 오르내리며 대구FC의 허파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2008년에는 등번호를 12번에서 17번으로 옮기고 부주장에 선임됐다. 좌측 윙백과 중앙 미드필더를 오가며 리그와 리그컵, FA컵을 포함해 38경기에 출전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2.3. 전북 현대 모터스
2009년을 앞두고 같이 FA가 된 하대성과 함께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대구 FC와 전북 현대 모터스 간의 이적료 분쟁이 발생하였으나 원만하게 해결되며 팀에 합류했다.
사실 국가대표팀에 부름받던 하대성과는 다르게 겨울 동계 훈련부터 전북에 합류했었지만, 오피셜 발표만 늦은 것이다.
전북에서도 수비형 미드필더와 왼쪽 풀백 자리를 오가며 활약했다. 전북이 2009년과 2011년 K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공헌하였다. 그러나 중원에서는 김상식과 정훈에 밀렸고, 왼쪽에선 박원재에 밀리며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었고, 2012 시즌을 끝으로 전북과 계약이 만료되며 FA로 풀리게 됐다.
2.4. 강원 FC
2013년 1월 30일, 고향 팀인 강원 FC가 FA로 풀린 진경선의 영입을 공식 발표하였다.리그에서 35경기에 출전하며 프로 데뷔 이후 K리그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뛰며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였으나 팀의 강등을 막지 못하였다.
시즌 종료 후 강원과의 재계약에 실패하였고, 새롭게 각오를 다지며 다른 팀을 찾으려 했지만 강원을 나오는 과정에서 구단이 고액연봉자에 속했던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으면서 6개월을 무적 선수로 지내야 했으며, 당시 에이전트가 없었던 진경선은 직접 한국프로축구연맹에 계약해지 과정을 묻고 물어 잔여 연봉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자유계약선수 신분을 경우 획득했다.
강원이 너무 늦게 그를 풀어주는 바람에 새 팀을 찾기는 어려웠고 전반기를 의미없이 날렸고, 개인 훈련을 하면서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얼어버린 이적 시장은 노장급에 속하는 그를 외면했고, 은퇴하고 자신의 이름을 건 축구교실이라도 차려 보려고 먼저 그런 일을 하는 선배들에게 자문을 구할 정도였다고 한다.
2.5. 경남 FC
이후 중국 하얼빈에서 입단 제의가 있었고 수락을 하려던 무렵 조원희의 공백을 메울 적임자를 찾던 경남 FC의 눈에 띄게 되면서 경남에서도 입단 제의가 왔다.
적응이 힘든 중국보다는 한국에 남는 것이 더 괜찮지 않겠느냐는 아내 염선화 씨의 조언에 진경선은 경남 유니폼을 입었다.
비록 계약기간은 6개월이었지만, 잘 해내서 경남을 클래식에 잔류시키면 계약 연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부푼 희망도 있었다고 한다.
진경선이 팀에 빠르게 녹아들면서 합류할 때만 하더라도 전반기 2승밖에 거두지 못한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8월 들어 경남은 조금씩 살아났다. 상주, FC 서울, 포항과의 3연전에서 2승 1무를 기록하며 리그 순위를 9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였다.
특히 FC 서울전에서 보인 강력한 중거리슛으로 상승세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6개월 동안 총 25경기에 출장해 1골 1도움을 기록하는 분투에도 경남은 정규리그 막판에 연패를 당하며 분위기가 침체되어버렸고 리그 11위를 기록, 광주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면서 진경선은 2년 연속 소속팀의 강등을 경험하게 되었다.
적지 않은 나이와 연봉 등의 문제로 재계약이 어려울 것으로 보였으나, 재계약에 성공한 데 이어 2015시즌 경남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강원 FC와의 24라운드 경기에서 이우혁의 거친 태클에 부상으로 교체되었는데, 발목 뼈 골절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고, 적지않은 나이를 감안할 때, 경남과의 재계약이 어렵지 않겠냐는 시선도 있었는데 우려와 달리 2016년 현재에도 경남 소속으로 꾸준한 출장을 이어가고 있다.
2017년에는 팀의 플레잉 코치로 활동하였으며, 시즌 종료 후 은퇴하였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경남 FC의 코치로 부임해 김종부 감독을 보좌하였다.2019시즌 중반 이영익 수석 코치가 고질병인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고자 선수단 관리에서 이탈하면서 선수단 관리와 훈련 및 커뮤니케이션을 책임졌다고 하며, 특히 상반기 경남이 감독과 선수단과의 소통 부재가 문제로 떠오르면서 선수단과 소통을 중점적으로 맡았다고 한다.
하지만 경남이 2부 리그로 강등되면서 김종부 감독과 같이 시즌 종료 후 경남을 떠나 2020년 부산 아이파크의 코치로 부임했으나 부산 역시 2부 리그로 강등 당하면서 1년 만에 부산을 떠났다.
2022년 이민성 감독의 부름을 받고 대전 하나 시티즌의 코치로 부임했으며 이민성 감독을 잘 보좌하며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다.
2023년에는 B팀 코치로 보직을 변경해 김경량 감독을 보좌했다.
2024시즌을 앞두고 B팀 감독이 공석이 되자, 시즌 초반 감독대행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팀이 부진을 겪자 4월 들어 내부 인사 개편의 일환으로 기존 1군 수비 코치 배효성과 보직을 바꿔 1군 수비 코치로 돌아왔지만, 시즌 중반 이민성 감독이 물러나고 황선홍 감독이 새로 부임하자 다시 B팀 지도로 보직을 변경했다.
4. 플레이 스타일
강한 체력과 함께 넓은 활동량을 가지고 있어 공격시에는 폭발적인 오버래핑, 수비 시에는 끝까지 따라붙는 근성을 보여주는 선수였으며, 왼쪽 풀백의 위치에서 뛰던 진경선이지만 전북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종종 기용되었다.현대 축구는 4-4-2 포메이션을 추구하며, 4-4-2 포메이션에서 첫번째 4에 해당하는 수비수 네명. 즉, 플랫4는 양쪽에 측면 수비수를 두는 형태인데, 이 측면 수비수는 공격시엔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와 크로스를 올리는 현대 축구에선 빼 놓을 수 없는 공격자원이며, 이러한 역할을 진경선이 잘해내주었다.[2]
왼쪽 윙백으로써 많은 활동량과 빠른 스피드, 그리고 지치지 않는 체력을 바탕으로 투박한 플레이에 능한 선수였다.
다만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는 예전과 같은 스피드를 찾아보기 어려워졌으나 넓은 시야로 롱패스를 연결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5. 여담
- 젊은 나이에 탈모가 상당 부분 진행되어 대표적인 노안 선수로 정평이 나있으며 그로 인해 선수들 사이에서는 플레잉 코치라고 불렸다고 한다.
- 전북 현대 시절에는 별명이 전북의 아르연 로벤이었다고 한다.[3]
- 계속되는 탈모로 인해 하도 신경이 쓰였는지 결국 모발이식 수술을 받고 모발을 어느 정도 회복시켰다.
- 선수와 지도자로서 K리그에서 2부 리그 강등을 상당히 많이 경험해 봤는데 강원, 경남 선수로 두번, 경남, 부산 코치로 두 번, 통합 4번의 강등을 경험해 봤다.
- 2014년 당시 경남의 구단주였던 홍준표가 구단 해체 검토를 선언한 것에 대해 경남에는 정말 재능있는 젊은 선수가 많다. 만약 그들이 (해체로) 갈 곳이 없어진다면 정말 안타까울 것 같다. 송수영, 이창민 등 실력이 있는 신인급 후배들이 걱정된다. 경남과 계약이 자동적으로 종료되는 내 입장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그저 속이 탈 뿐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친해졌던 젊은 프런트 직원들도 눈에 밟힌다."라고 인터뷰에서 언급하며 답답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 2014시즌 경남의 감독 대행이었던 브란코 바비치의 소극적이고 수비적이었던 전술에 대해서도 답답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 신상은이 과거 에스코트 키즈를 했을 때 처음 손을 잡은 선수라고 한다. 사실 에닝요 손을 잡으려고 했는데, 진경선이 먼저 손을 잡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신상은이 울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