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13:31:40

존 T. 톰슨

존 탈리아페로 톰슨
John Taliaferro Thompson
파일:1000126915.jpg
출생 1860년 12월 31일
미국 켄터키주 뉴포트
사망 1940년 6월 21일 (향년 79세)
미국 뉴욕주 그레이트넥
복무 미합중국 육군
최종 계급 미국 육군 준장
복무 기간 1882~1914
1917~1918
학력 인디애나 대학교중퇴
미국육군사관학교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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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2. 생애

켄터키주 뉴포트에서 육군 대령인 아버지와 이탈리아계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인디애나 대학교에 진학했으나 1년뒤 중퇴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1882년 포병 소위로 임관해 2포병연대에서 복무하다가 미 육군 조병창에서 복무했다.

미국-스페인 전쟁당시 중령으로 진급했고 윌리엄 R. 섀프터 휘하의 쿠바 원정군에 군수참모로 참전해 18, 000톤에 이르는 탄약을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쿠바까지 사고없이 안전하게 수송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존 L. 파크너 소속 부대의 기관총 부대장으로 산후안 언덕 전투의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육군 조병창으로 복귀해 주력화기 스프링필드 M1903를 개량하고 존 브라우닝이 만든 권총을 제식화기로 받아들여 M1911으로 제식명을 붙였다. 또한 무기 실험을 하기위해 가축과 사람의 시신을 모았다.

1914년 전역했고 레밍턴 암즈의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되었다. 당시 1차 세계 대전 시기여서 연합국을 돕기위해 펜실베이니아 체스터에서 당시 세계 최대규모의 무기 공장을 설립하고 영국군의 리엔필드, 러시아의 모신나강을 생산했다.

또한 레밍턴 암즈에서 오토 오드넌스 컴퍼니로 소속을 옮겼다. 1916년 참호전을 대비해 45구경을 연사로 뿌리는 신무기를 만들었는데 Annihilator'와 'Persuader인데 1917년 톰슨이 군에 복귀하며 지속적인 개량이 중단되며 당시에는 주목받지는 못했다. 군에 복귀후 준장으로 진급해 육군 조병창의 수장이 되었다.

전후 퇴역해 다시 기관단총 개발에 몰두하다가 1921년 기존의 프로토타입을 개량한 M1921 톰슨 기관단총(Thompson Submachine Gun M1921)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당시는 종전 직후 군축기인 데다 육군부는 자동소총을 더 필요로 하고 있었기에 정식 군납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오토 오드넌스 사는 .45 ACP 탄의 위력과 사거리를 강화시킨 .45 레밍턴–톰슨이라는 탄을 사용하고, 수평 핸드가드, 양각대, 기존 총열보다 더 긴 14인치 총열을 장착한 M1923을 개발하여 M1918 브라우닝과 경쟁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M1921만이 엉뚱하게도 무장 강도로 골머리를 앓던 연방 체신청이 집배원의 호신용 무기로 400정을 시험 구매하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1928년 대공황으로 인해 오토 오드넌스의 수장에서 사퇴했다.

하지만 마피아들이 대량으로 구매하며 주목을 받기시작했고 이후 미군도 제식화기로 채용해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주력 기관단총으로 명성을 떨쳤다. 1940년 사망했고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