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27 19:56:20

존 헤이스팅스(초대 헤이스팅스 남작)

성명 존 헤이스팅스
John Hastings
생몰년도 1262년 5월 6일 ~ 1313년 2월 28일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워릭셔 앨슬리
사망지 잉글랜드 왕국 코번트리
아버지 헨리 드 헤이스팅스
어머니 조안 드 캔틸루프
형제 에드먼드, 오드리, 로라, 조안
배우자 이자벨 드 발랑스, 이사벨라 르 디스펜서
자녀 엘리자베스, 조안, , 마거릿
직위 초대 헤이스팅스 남작, 에버게브니 영주.

1. 개요2. 생애3. 가족


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에서 활약했다.

2. 생애

1262년 5월 6일 잉글랜드 왕국 워릭셔 앨슬리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헨리 드 헤이스팅스제2차 남작 전쟁에서 시몽 드 몽포르 편에 섰고, 헤이스팅스 남작을 칭했지만 헨리 3세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어머니 조안 드 캔틸루프는 베드퍼드셔의 제3대 이튼 브레이 남작 윌리엄 3세 드 캔틸루프의 딸이다. 형제로 에드먼드[1], 오드라[2], 로라[3], 조안[4]이 있었다.

1269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중부 잉글랜드의 많은 영지를 물려받았고, 1273년 외삼촌이자 에버게이브니 남작 조지 드 콘텔로가 사망한 뒤 웨일스 변경에 있는 에버게이브니 영지를 물려받았다. 이후 그가 성인이 될 때까지 헨리 3세의 동생 콘월의 리처드와 리처드의 아들인 콘월의 에드먼드의 후견을 받았다. 또한 에드워드 1세는 존의 결혼을 주선할 권리를 그의 이복 형제인 초대 펨브로크 백작 기욤 드 발랑스에게 넘겼다. 1275년, 기욤은 존을 자신의 딸 이지벨과 결혼시켰고, 존은 이로써 왕실의 가까운 친척이 되었다.

1283년 성년으로 인정받았고, 1290년 처음으로 의회에 소환되었으며, 1295년부터 정기적으로 회의에 참석했고, 헤이스팅스 남작으로 공인되었다. 그 후 몇 년간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가스코뉴에서 왕을 수행했다. 여동생 오드라는 1285년에 웨일스의 통치자 중 한 사람인 리스 압 마레두드와 결혼했고, 존은 이들 부부에게 여러 개의 영지를 주었다. 그러나 2년 후 리스 압 마레두드가 반란을 일으켰고, 존의 가신 일부도 여기에 가담했다. 존은 에드워드 1세로부터 웨일스 내 영지로 가서 리스가 패배할 때까지 방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1291년 글로스터 백작 길버트 드 클레어와 헤리퍼드 백작 험프리 드 보훈 간의 분쟁 해결을 맡아 길버트 드 클레어의 보증인으로 참여했다.

1291년 스코틀랜드의 왕관를 놓고 경합한 14명의 왕위 주장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조모가 스코틀랜드 국왕 다비드 1세의 손자이자 헌팅던 백작인 데이비드의 셋째 딸 아이다인 것을 근거 삼아 왕위를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에이다의 두 언니의 후손인 존 발리올과 제5대 애넌데일 영주 로버트 브루스에 비해 정통성이 떨어진다는 걸 인지하고,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 왕국의 영지이므로 잉글랜드법에 따라 공동 상속인들에게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브루스는 분쟁이 존 발리올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걸 보고 존 헤이스팅스를 지지했지만, 왕위 계승자의 권리를 심사한 위원회는 존 헤이스팅스를 배제하기로 했다. 결국 존 발리올이 스코틀랜드 국왕이 되었다.

1296년, 에드워드 1세는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존 발리올을 응징하고 스코틀랜드를 병합하기 위한 전쟁을 단행했다. 그 후 존은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에 지속적으로 동원되었으며, 1300년 더럼 주교 앤서니 베크와 함께 칼라버록 성채를 공략했다. 1301년에는 교황 보니파시오 8세에게 스코틀랜드 문제에 더 이상 간섭하지 말고 에드워드 1세의 발목을 잡지 말라고 요구하는 영주들의 요청서에 서명했다. 1302년 12월, 에드워드 1세는 존을 가스코뉴의 왕실 부관이자 총독으로 선임했다.

1306년, 로버트 1세가 스코틀랜드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존은 잉글랜드로 돌아온 뒤 다시 스코틀랜드로 향했다. 그의 임무는 스코틀랜드 서해안에 해상 봉쇄를 구축하는 것이었고, 그의 주요 기지는 아란 섬이었다 . 1307년 2월, 제임스 더글러스로버트 보이드가 이끄는 반군이 아란 섬에 상륙해 원군, 무기, 보급품을 실은 영국 수송선을 탈취했다. 같은 해, 에드워드 1세는 로버트 1세의 지지자 중 한 명에게서 몰수한 토지와 멘티스 백작의 작위를 존에게 수여했다. 1308년 2월 25일, 그는 새 국왕 에드워드 2세대관식에 참석했다. 1309년 10월, 에드워드 2세를 따라 가스코뉴로 갔고, 다시 왕실 부관 겸 총독을 맡았다. 1310년에 다시 스코틀랜드로 가서 군사 활동을 수행했고, 1313년 2월 28일에 사망한 뒤 코번트리의 프란치스코회 교회에 안장되었다. 사후 아들 이 헤이스팅스 남작위를 물려받았다.

3. 가족

  • 이자벨 드 발랑스(? ~ 1305): 초대 펨브로크 백작 기욤 드 발랑스의 딸.
    • 엘리자베스: 초대 루틴의 그레이 남작 로저 그레이의 아내.
    • 조안: 윌리엄 드 헌팅필드의 아내.
    • (1286/1287 ~ 1325): 제2대 헤이스팅스 남작.
  • 이사벨라 르 디스펜서: 초대 윈체스터 백작 휴 르 디스펜서 더 엘더의 딸. 로저가 사망한 뒤 초대 몬테르머 남작 랄프 드 몬테르머와 재혼했다.
    • 마거릿: 초대 마틴 남작 윌리엄 마틴의 장남 에드먼드 마틴의 부인.


[1] 1262년 이후 ~ 1314, 인치마홈의 헤이스팅스 남작[2] 디허바르스 왕자 리스 압 마레두드와 초혼, 로베르 드 샹파뉴와 재혼.[3] 초대 라티머 남작 토머스 라티머의 부인.[4] 노팅엄 수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