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Towers, CBE
1. 개요
영국의 전 사업가로, 일생동안 로버 그룹과 MG로버 그룹의 경영인으로 활동했다. (참고 자료 1/2/3/4)3등급 대영제국 훈장(CBE) 수훈자이다(1995년 6월 서훈명단(1995 Birthday Honours)).[1]
2. 생애 및 상세
1948년 3월 30일에 태어났으며, 1966년부터 영국 피터버러(Peterborough)의 퍼킨스 디젤(Perkins Diesel) 사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다가 엔지니어링 부서의 감독이 된 인물이다. 1988년까지 퍼킨스와 그 모회사인 매시 퍼거슨 트랙터(Massey Ferguson Tractors)에서 일했으며, 이후 그는 퍼킨스 디젤을 떠나 로버 그룹으로 이직해 엔지니어링 감독이 되었다. 이후 로버 그룹 휘하의 랜드로버로 파견되어 랜드로버에서의 노사관계를 개선하는 성과를 냈다. 특히 랜드로버에서의 파업을 수습한 것을 계기로 노동자와 경영진이 동등하게 일하는 수평적인 노사문화를 로버 그룹에 정착시켰다. 이후 제품개발감독, 제품공급책임자 등으로 승진하다가 1991년에 로버 그룹의 최고경영자로 취임했다.또한 존 타워스는 1979년부터 당시까지 꾸준히 이루어졌던 로버 그룹과 혼다의 기술제휴관계를 더욱 발전시킴으로서 일본의 "저스트 인 타임" 생산방식같이 일본 자동차업계의 주요 관행들을 도입하여 영국 공장의 생산성 항상 및 비용절감이라는 성과를 이루었고, 경영감독으로 일한 4년 동안 로버 그룹을 흑자전환하는 데 기여했다.#
타워스는 1994년에 BMW가 로버 그룹을 인수했을 당시에 경영감독으로 있었는데, BMW의 회장인 베른트 피셰츠리더가 로버의 자율 경영을 원했기 때문에 영국인 회장을 찾고 있었다. 때문에 BMW에서는 타워스의 뛰어난 사내 성적을 이유로 그를 회장으로 임명했고, 타워스는 수익성 확보를 위해 전임 회장인 조지 심슨(George Simpson)이 주도한 로버 그룹의 "고급화" 정책을 계승하여 이를 한 단계 더 밀어붙이고 회사 내부의 자부심을 되찾는 데 집중했다.[2] 그러나 타워스는 인수 직전에 혼다기연공업에 로버 그룹의 지분을 매각하려고 했을 정도로 새 모회사인 BMW보다는 혼다와의 기술제휴관계를 선호했던 탓에 1996년 4년에 회장 자리에서 사임, 6월에 이사를 그만두며 로버 그룹을 떠났다.[3]
타워스는 1996년 9월부터 엔지니어링 회사인 콘센트릭(Concentric)[4]으로 이직, 경영감독으로 일하다가 1999년에 피닉스 컨소시엄이라는 사모 펀드를 자신의 동료들인 피터 빌, 닉 스티븐슨, 존 에드워즈(Peter Beale, Nick Stephenson, John Edwards)와 같이 설립했다. 2000년 4월에 로버 그룹이 BMW에 의해 매각되자 이를 두고 존 몰튼(Jon Moulton)의 알케미 파트너스와 같이 경쟁했으며, MG와 로버 브랜드는 물론 기존 고용을 유지한다고 밝힌 타워스와 동료들이 로버 그룹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 이를 "MG로버 그룹"으로 개편해 운영했다. 본래 낙찰을 담당했던 영국 정부에서는 알케미 파트너스의 비전[5]을 보고 그쪽에게 낙찰하기로 했지만, 로버 그룹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이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자 피닉스에게 로버 그룹을 내 주었다.[6]
그렇게 로버 그룹을 손에 넣은 타워스와 동료들은 2000년 6월에 경영감독으로 케빈 하우(Kevin Howe)를 영입했으며, BMW로부터 받은 돈과 롱브릿지 공장, 그리고 기본의 MG와 로버 라인업을 가지고 수익을 내는 데 집중했다. 초창기에는 기존 차종들의 공격적인 가격할인을 통해 고객을 모으는 것을 시작으로 2005년에 출시할 것을 목표로 새로운 준중형차인 RDX60을 개발하는 동시에 외국 업체들과의 기술제휴를 꾸준히 추진했으며, 기존의 차들도 원가절감을 추진하거나 재정이 허락하는 한에서 다양한 변형들을 만들어 수익을 내고자 노력했다.
그 중에서 2001년에 출범한 MG의 신차 라인업은 성공적이었지만, 그 외의 계획들은 온갖 변수로 인해 대다수가 실패로 남았다. 게다가 MG로버 그룹은 연금 등을 이유로 돈을 빼돌린다는 의혹을 사기 시작했고, MG 브랜드를 내세운 대규모의 모터스포츠 참여처럼 회사의 돈이 줄줄 세어나가는 부문도 적잖게 있었다. 결국 MG로버 그룹은 정부에 의해 2005년 4월에 파산했으며, 존 타워스를 비롯한 경영진 4인방은 2017년까지 기업 경영을 금지당했다.(#)
그 이후의 행방은 불명이지만, 타워스를 비롯한 MG로버 그룹의 경영진 4인방은 자금횡령 의혹을 부정하는 입장을 꾸준히 보여 왔다. 한편, MG로버 그룹은 중국의 난징자동차로 인수되었다가, 난징자동차가 상하이자동차로 넘어감에 따라 MG 모터와 로위(Roewe)라는 이름으로 상하이자동차 산하에 있다.
[1] 종종 "대영제국 훈작사"라고 번역되고는 하지만 이는 오역이다. 훈작사는 기사(knight)의 일본식 번역어로, 경칭 "Sir"(경)가 붙게 되는 "하급 기사"(Knight Bachelor)에 이를 적용하여 "최하위 훈작사"라는 말이 종종 쓰인다. 그러나 Knight Bachelor는 다른 훈장들과는 달리 엄밀하게는 작위 개념에 해당하는 별개의 서훈이다. 3등급 이하는 자동으로 하급 기사로 서임되지 않는 반면, 1등급과 2등급은 수여시 기사 작위로 함께 서임되므로, 미묘하지만 하급 기사로 서임되는 것이 좀 더 격이 높은 서훈이다. 따라서 서훈 분류상으로도 한 단계 아래의 서훈인 3등급 훈장만 받은 사람을 훈작사로 서술한다면 기사보다 CBE가 높은 훈격인 것처럼 인식되는 오류가 생긴다.[2] 마침 로버 브랜드가 본래부터 고급 브랜드였기도 했고, 1980년대부터 로버 브랜드를 내세워 수익성에 집중하자는 "양보다는 질" 정책을 이전 모회사인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Ae)가 밀어주면서 어느 정도 실적이 나오자 이러한 전략을 이어갔다. 다만 1990년대 중후반 로버 그룹의 차들, 가령 2세대 로버 400이나 3세대 200같은 차들은 수익성 확보를 위해 한 체급 윗급에 달할 정도로 가격대를 높게 잡으면서 1990년대 중순 로버 그룹의 고급화 정책은 이전만큼의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3] BBC의 로버 그룹 다큐멘터리 "When Rover Met BMW"의 최종화에서도 타워스가 로버 그룹의 회장직을 사임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소개되었으며, 본인도 후반부 인터뷰를 통해 회사 환경이 달라졌음을 언급했다. 베른트 피셰츠리더는 BMW의 당시 사장 볼프강 라이츨레를 임시 회장으로 앉혔으나 영국인 CEO가 로버 그룹을 이끄는 것을 선호했고, 라이츨레의 후임으로 BMW 오토바이 부문을 담당해온 독일인이되 피셰츠리더 본인처럼 영국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많으면서 실적이 뛰어났던 발터 하셀쿠스(Walter Hasselkus)를 임명했다. 로버 그룹의 공식 발표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사임했다고 밝혔으며, 전문가들은 로버 그룹의 적자전환같은 실적부진으로 인해 BMW와 로버 그룹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신호로 분석했다.##[4] 당시 디젤 펌프와 자동차용 플라스틱 부속들을 공급하던 부품회사로, 1998년에는 콘센트릭의 매수를 이끌기도 했다.##[5] 로버 브랜드를 폐기하고 인력의 80%를 감축한 뒤 MG F 스포츠카와 로버 75 세단같이 부가가치가 높은 차에 집중하자는 것이 골자로, 연간 5만대를 생산하되 해고된 인력들에게 명당 수만 파운드의 보상을 하기로 계획했었다. 알케미 파트너스에서는 2000년 초반에 "MG 브랜드에 집중할 것이며, 최신 알루미늄 기술을 적용한 스포츠카를 도입해 자동차 애호가들에게 어필할 것"이라고 언론에 발표한 바도 있었다.[6] 이때까지만 해도 존 타워스는 로버 그룹의 직원들로부터 "백기사"로 불리면서 수많은 칭송을 받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