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12 00:14:43

존 와센버그

존 와센버그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fffff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등번호 31번}}}
팀 창단 와센버그
(1999~2000)
김동언
(2000~2002)
{{{#ffffff [[원주 DB 프로미|원주 삼보 엑써스]] 등번호 31번}}}
이흥섭
(1999~2000)
와센버그
(2000~2001)
해리 리브즈
(2001)
{{{#ffffff [[서울 SK 나이츠|서울 SK 나이츠]] 등번호 31번}}}
찰스 존스
(2002)
와센버그
(2002~2003)
이근석
(2003~2005)
}}} ||
미국의 전 농구선수
파일:20001109 존 와센버그 원주 삼보.jpg
<colbgcolor=#eeeeee,#191919> 존 와센버그
John Wassenbergh
출생 1974년 10월 5일 ([age(1974-10-05)]세)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91cm|체중 104kg
포지션 파워 포워드
학력 세인트 조지프 대학교 (졸업)
KBL 입단 1999-2000 시즌 부산 기아 대체선수
현역시절 등번호 31
소속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1999~2000)
원주 삼보 엑써스 (2000~2001)
서울 SK 나이츠 (2002~2003)

1. 개요2. KBL 이전3. KBL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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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직 농구선수이며 현역 시절 별명은 하얀 탱크. 강인한 체력과 빠른 스피드로 엄청난 득점력과 야투 성공률은 물론 매 경기 때마다 나온 득점력과 유려한 공격기술로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운동능력은 별로 없어서 덩크가 아예 없었고 움직임도 기민하지는 않아서 보는맛은 떨어졌지만 기본기가 출중하고 센스도 좋고 슛감도 좋고 성격도 모나지 않아서 KBL 소속팀 감독들이 딱 좋아하는 유형이었다.

2. KBL 이전

세인트 조지프 대를 졸업 후, 미국농구리그(USBL)의 포틀랜드 웨이브에서 평균 15.4점을 기록했고 이후 애틀랜틱시티 시걸스에서 활약했다.

3. KBL 시절

1999-2000 시즌 개막 직전 부상으로 퇴출된 디온 브라운의 대체 선수로 부산 기아에 합류하면서 정확한 골밑 플레이와 어시스트 능력으로 게임당 평균 23.3점을 기록해 득점 랭킹 3위에 오르기도 했다.

2000-2001 시즌 개막을 앞두고 원주 삼보의 디온 브라운이 암으로 투병중이었던 어머니를 간병한다는 이유[1]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버리자 2년 연속 대체 선수로 들어왔다. 급증한 턴오버와 좋지 않은 볼 핸들링 때문에 비판을 받았지만, 평균 22득점에 8.3리바운드, 5.7어시스트를 올리고 야투 성공률 69.8%로 역대 최고 기록을 자랑했다.

휴식기에 돌입했을 즈음, 2001년 9월 11일에 발생한 테러로 친구가 사망하는 아픔을 겪으며 국내 팀으로부터 대체 용병으로 러브콜을 받았다가 이를 거절한 뒤[2], 이듬해 2002-2003 시즌 중 무릎 부상으로 떠난 퀸튼 브룩스를 대신해 서울 SK 나이츠의 대체 용병 선수로 합류했지만 최하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1] 이는 명목상의 이유이고 실제로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2] 대표적으로 전주 KCC 이지스가 클라이트 엘리스의 대체 용병으로 영입하려고 했었는데 제런 콥으로 선회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