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30 23:22:48

조희(전국시대)

1. 개요2. 생애3. 미디어 믹스

1. 개요

趙姬
생몰년도 미상

중국 전국시대의 인물. 진시황의 생모로, 최초의 황태후다.

2. 생애

본래 조나라의 상인인 여불위가 데리고 있었던 첩으로, 외모가 아름답고 춤을 잘 추었다. 조나라에 볼모로 와 있었던 진(秦)나라의 왕족 영이인과 여불위가 인연을 맺으면서 이인의 처가 되었다. 이인이 조나라를 탈출하고 진나라의 왕위를 이어 장양왕으로 즉위하면서 왕후가 되었고 4년 후 장양왕이 병으로 사망하여 아들 정(政)이 진왕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태후가 되었다.

그 태생은 확실하지 않으나, 비천한 출생은 아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여불위 열전>에서는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할 당시 볼모로 잡혀있다가 목숨이 위태로워진 이인이 여불위의 도움을 받아 달아났는데, 그때 조희와 그 아들 영정은 달아나지 못했으나 그녀가 조나라 부잣집의 딸이었기 때문에 몸을 숨길 수 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진시황은 훗날 천하를 통일하고 몸소 조나라의 한단으로 순행할 당시, 외가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무리들을 모두 죽여버렸다고 한다. 이처럼 나름 돈도 있고 그 가문에 대해 불만을 품은 무리들이 제법 있는 집안이었다면 후대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상당히 부유하고 힘있는 가문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참고로 조희가 조나라에 있었을 때 이미 여불위의 아이를 가졌고, 아들 정(政)이 실은 여불위의 자식이라는 설이 있다. 사마천이 《사기》를 편찬하면서 <여불위 열전>에 이와 관련된 일화를 실어 놓았다.[1] 다만 사마천은 임신과 출산 시기를 따져보면 정이 여불위의 자식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적어놓았다. 또한 <여불위 열전>에는 조희가 부잣집의 딸이라고 기록하였다.

아들이 즉위할 당시, 조태후는 아직 나이가 젊었던 것으로 보인다.[2] 혈기 왕성한 나이에 남편을 잃은 탓인지는 모르나 남자를 지나치게 밝혔었다고 한다. 이때 섭정으로서 국정을 좌우한 여불위는 간혹 조희와 통정했지만, 뒷감당이 힘들어지자 노애, 통칭 노대란 자를 환관으로 위장시켜 붙여주고 점괘를 조작한 후에 별궁인 옹성으로 보냈다고 한다. 역사서와 야사의 기록에 따르면, 노애는 성기에 수레바퀴를 끼우고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라서 함양의 부녀자가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했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조희와 노애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둘씩이나 태어나자, 열후로 봉해진 노애는 옛 수도 옹 땅으로 가서 살았다고 한다. 진왕은 성장하면서 둘의 관계를 눈치챘지만 묵인했다고 하는데, 노애는 자기 자식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진왕 정(政)에게 발각되어 노애와 그 아이들은 모두 죽게 되었다.[3] 이후 여불위는 승상에서 물러나야 했고 결국 자결했으며 진왕 정은 본격적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친정을 시작했다. 조희는 태후의 자리에 있었기에 참형은 면했지만 죽을 때까지 별궁에 유폐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얼마 지난 후에 신하들의 중재로 겨우 모자가 화해하며 조용히 지내다 죽음을 맞았다.[4]

본인이 엮인 스캔들이 워낙 전대미문의 일이라 사마천의 《사기》, 《전국책》 등 전국시대를 다루고 있는 모든 사서나 창작물에서 성욕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음녀라는 이미지로 굳었다.

3. 미디어 믹스

  • 동아일보 편집국장, 주간논설 출신 김성한의 소설 '진시황제'에선 상당히 흥미로운 인물로 등장한다. 조희가 아니라 주희로 나오는데 원래 명문가 주씨 집안의 딸로, 희씨 집안에 시집을 가지만 남편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스스로 파혼하고 나가버린다. 이에 친정에서 난리가 나서 미친년이라고 드잡이를 해서 희씨 집안에 다시 버리고 오지만 희씨 집안에선 조부대까지만 해도 소금이나 굽던 상것들이 건방지다고 소박을 내버린다. 이후 가는 곳마다 미모 때문에 남자들이 꼬여서 질투에 미친 여자들에게 매를 맞고, 결국 술집 창기로 취직하게 되는데 여불위가 그 외모에 혹해서 많은 돈을 주고 자신의 아내로 삼는다. 그런데 영이인도 주희에게 홀딱 반해서 원하는 것은 뭐든지 주겠다는 여불위에게 주희를 요구한다. 이에 여불위는 주인의 아내와 야반도주하는 건 들었어도 마누라를 면전에서 요구하는 것은 처음 봤다고 분노로 미쳐 날뛰지만, 진정하고 주희의 의사를 묻는다. 여불위는 주희가 자신과 떨어지지 않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새초롬하게 한번 생각해보겠다고 하는 걸 보고 또 질투와 분노에 주희보고 네 마음대로 하라고 편지를 남기고 집을 떠나버린다.
    주희는 여불위와 영이인을 비교해서 여불위가 독수리라면 영이인은 수탉이나 될까말까하는 변변찮은 소인배라고 판단했지만, 어쨌거나 이 수탉은 왕족이니 도박을 하려면 영이인이 낫다고 여겨 영이인을 선택한다. 하지만 여불위가 이를 먼저 간파하고 그녀를 먼저 차버리자 주희는 또 그걸 보고 감히 네가 먼저 날 차냐고 분노해서 방에서 눈물을 쏟고, 여불위로부터 "나으리 뜻대로 하소서"라는 편지를 받은 영이인이 좋다고 나타난 걸 보고 자기 여자 뺏기면서 나으리라고 존칭하는 여불위에게 또 이를 간다.(...) 그리고 지금까지 말도 섞어본 적이 없는 영이인이 초면에 어서 가자고 자신에게 명령하자 이 쥐새끼 같은 놈이 얻다대고 명령질이냐고 쏘아봐서 깨갱한 영이인이 주희를 모셔간다.(...) 주희가 진나라 왕실에 시집갔다는 소문이 퍼지자 집안망신 시켰다고 난리치던 친정 식구들이 몰려와서 경사라고 아부하는 걸 보고 흡족해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나라 안에선 주희가 희씨 집안에서 정조를 지킨 것으로 소문이 나서 묘한 동정의 대상이 되었고, 이후 여불위의 아내가 되자 외국인에게 팔리지 않겠다고 울고불고 비는 주희를 배불뚝이 술집주인이 억지로 팔아치운 것이라는 괴소문이 또 퍼지면서 흥분한 조나라 사람들이 술집주인을 몰매를 놔서 다리를 부러뜨린다. 하지만 영이인에게 시집가게 되자 진나라 놈에게 시집간 진갈보라고 길거리에서 폭도들의 습격을 당해서 죽기 직전까지 가지만 진나라 왕실 며느리 죽이면 진나라 군대가 쳐들어온다는 경비병들의 일갈에 겨우 목숨만 건진다. 주희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언젠간 조나라 것들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하는데 주희를 치료하기 위해 방문한 의원으로부터 진시황을 임신했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이후 진시황을 낳지만 한단 공방전에서 조나라의 멸망이 가까워오자 영이인과 여불위만 달아나고 친정에 숨게 된다. 진나라 군이 포위한 상황에선 하인들이 잘 지켜주었지만 진나라가 패퇴하자 진나라도 곧 망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여 하인들의 배신으로 온 집안이 조리돌림당하고 주씨 집안 사람들은 독을 먹고 죽는다. 평원군은 백성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그냥 내버려두려 했으나 진나라는 내년이나 내후년이면 회복될 것인데 명분을 줄 수 없다는 염파가 반발하여 주희도 죽기 직전에 직접 주씨 집안 저택에 당도하여 주희와 진시황 모자를 살린다.
  • 2001년년 드라마 심진기에 등장한다. 영정을 민가에서 키워지도록 했다. 진나라 귀국후에도 여불위가 남들 시선을 의식해 조희를 멀리했고 외로워진 조희는 진나라 왕궁 통령인 노애와 가까워졌고 임신했다. 노애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노애가 영정의 병사들에게 살해당하자 조희도 비녀로 자결했다. 2018년 리메이크작에도 등장한다. 영정이 아기일 때 조나라 최고 권신의 아기와 바꿔치기했다.
  • 2017년 중국드라마 진시려인명월심에 짧게 등장한다. 역사대로 한심하게 표현된다.
  • 2019년 중국드라마 호란전에선 오근언이 조희 역을 맡았다. 조나라 어사의 딸로 등장한다. 노애와의 아이들은 전쟁고아들을 거둔 것이 잘못 소문난 것으로 표현된다.
  • 2020년 중국드라마 대진제국4에선 주주가 조희 역을 맡았다.

3.1. 킹덤(만화)

파일:rrrsewew.png 파일:srtjdfj.png
과거 현재
공식능력치
시기 미모 모성 에로도
가이드북2 95 5 100

하라 야스히사만화 킹덤에서는 17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데, 성우는 츠보이 코노미.

위의 기믹답게 굉장히 음란하게 묘사된다.[5] 남근이 없는 환관조차 그녀가 포도와 비슷한 과일을 빨아먹는 모습을 보고는 침을 삼키며 성욕을 느낄 정도. 뛰어난 것은 외모만이 아니라 다양한 술수로 정의 진영에 혼란을 줬다. 처음에는 가짜 옥새를 만들어 진시황의 관심을 끌고 여불위에게 맞설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나, 사실 이는 과거 자신과 연인 사이였던 여불위의 관심을 얻기 위한 술책이었고, 이후에는 틈이 날 때마다 여불위와 검열삭제를 즐긴다.[6] 여불위와는 오래된 악연으로 여불위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조희를 배신했다. 이후 조나라에 방치되었고 진나라에 원한을 품고있는 조나라인들에 의해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이 시간들은 조희를 완전히 망가뜨려놓는데, 친아들인 정에 대한 모성도 잃을 정도.

이후에는 노애와 거하게 만리장성을 쌓았고 노애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으면서 태원 일대에 노애의 나라라는 뜻의 '애국'을 세우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으키며, 막대한 자금과 조고의 책략에 따라 건국 준비를 진행하던 도중에 여불위가 찾아온다. 여불위에게 이젠 조금의 애정도 남아있지 않다고 원망을 토해내지만, 여불위가 "그래도 난 여전히 널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자(406화) 혼란을 느낀다.

초나라의 지령을 받은 호력이 진나라 내부 분열을 위해 움직이는 본심을 숨기고 대신들을 매수해 거병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하고 아들 두 명을 인질로 잡으면서 조희의 사생아 둘을 인질로 잡아 함양을 기습하거나 태후(조희), 노애, 두 사람 사이의 자식의 목을 보내면 된다는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하자 결국 정의 가관의식(성인식)에 맞춰 거병하기로 하고 함양에 입성, 정과 대면한다. 그 사이, 조희가 가짜 옥새로 위조한 명령서의 도움으로 애국 군대는 함곡관을 통과.

그러나 성인식의 분위기가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달리 긴장된 모습이라곤 없이 흥겨움뿐인 것을 보고는 진나라 조정은 자신의 사생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걸 알아채고, 자신이 여불위의 계략에 빠져 섣부른 짓을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다만, 그녀 또한 여불위의 예상을 깨기 위해 원래 병력보다 많은 3만의 대군[7]을 보낸 터라서 거기에 모든 걸 걸기로 한다.

그리고 결국 역사대로 애국 반란은 진압되고 노애가 거열형에 처해지게 되자 대놓고 자신이 주동자라고 외치며 제발 아이들만은 살려달라고 절까지 하면서 애원하지만 반란의 불씨는 남길 수 없다는 정의 대답에 분노하여 정을 죽이려 하다가 향에게 대성일갈을 듣는다. 이후 탑에 유폐된 모습으로 다시 한번 등장한다(437화).[8] 조나라와의 흑양 공방전과 진왕 - 제왕의 회담이 끝난 이후 여불위의 실각과 함께 태후가 함양으로 돌아왔다는 짤막한 설명이 나온다(496화).

3.2.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파일:조온_조희.png

고대무장으로 등장. 병종은 군악대계고 성우는 장예나이다. 성능면에서 평가는 좋지 않은 편. 조희는 나오는데 노애는 나오지 않아 아쉽다는 평가가 많다.

[1] 실제 《사기》에는 "姫自匿有身, 至大期時, 生子政." 이라고 적혀 있다. 해석하자면 "大期(대기, 출산의 때 다른 말로 만삭)에 이르러(至) 아들 정(子政)을 낳았다(生)".[2] 20세 정도에 아들을 낳았다고 가정하더라도 30대 초중반의 나이이다. 과거엔 출생 시기가 더 빨랐던 것을 감안하면 아직 20대였을 가능성도 있다. 출산 이후 12년이 지난 이후이니 상식적으로 30세 전후가 가장 유력하다.[3] 고우영 십팔사략에서는 진왕 정이 자신의 씨다른 두 동생을 죽이는 모습을 묘사하는데, 그 모습이 꽤나 흠좀무하다. 진왕 정은 병사들을 시켜서 어린 두 아이들을 보자기에 넣고서는, 그 보자기를 병사들이 사정없이 몽둥이로 두들기게 만들었다. 셀 수 없는 몽둥이질을 맞은 보자기는 형태가 괴상하게 일그러졌고, 그 보자기에서 피가 흘러나왔다.[4] 진왕 정은 이 사건 때문에 조 태후한테 오만 정이 떨어져서 오히려 할머니인 화양태후(안국군의 아내이자 장양왕을 양자로 삼아 왕위에 올린 그 인물)와 매우 돈독한 사이였다고.[5] 딱히 19금도 아니고 서비스신도 없는 데다가 등장인물의 9할 이상이 남캐인 만화에서 가장 상의탈의를 많이 한 캐릭터이기도 하다.[6] 이게 어느 정도냐면, 간통한다는 소문이 퍼져서 여불위가 안 찾아오자 직접 밤에 찾아가 여불위를 한순간 식은 땀을 흘리게 할 정도.[7] 본래 병력 1만에, 과거 진나라에 합병당해 원한을 품고 있던 융적의 군대 1만, 사정을 모르고 가짜 옥새에 속아서 징발된 1만의 잡병이 추가되었다.[8] 이때 정이 찾아와 노애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은 따로 외딴 시골에 숨어 살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그토록 비뚤어졌던 관계이지만 최후에 나름 배려해준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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