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26 20:03:15

조제프 갈리에니

<colbgcolor=#002395><colcolor=#fff> 프랑스 제112대 전쟁장관
조제프 갈리에니
Joseph Gallieni
파일:1000121772.jpg
본명 조제프 시몽 갈리에니
Joseph Simon Gallieni
출생 1849년 4월 24일
프랑스 제2제국 생베아
사망 1916년 5월 27일 (향년 67세)
프랑스 제3공화국 베르사유
학력 생시르 사관학교
묘소 생라파엘 묘지
군사 경력
복무 기간 프랑스 육군
1870년 ~ 1819년
최종 계급 원수[1]
주요 참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재임 기간 초대 마다가스카르 총독
1897년 8월 6일 ~ 1905년 5월 11일
112대 전쟁장관
1915년 10월 29일 ~ 1916년 5월 16일

1. 개요2. 생애

1. 개요

프랑스의 군인.

2. 생애

생베아에서 롬바르디아 출신 프랑스군 장교였던 가스탕 마리 갈리에니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870년 생시르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임관했다. 보불전쟁 당시 바제유 전투에서 청색사단 제3해병연대 소속으로 전투를 치렀으나 부상을 입고 포로로 잡혔다. 수감 중 독일어를 공부했으며 석방이후 레위니옹에서 복무했다. 1년 뒤 중위로 진급했다.

1877년 아프리카 탐험대에 참가했다. 세네갈부대원들과 함께 다카르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탐험하고 거점을 설치했다. 1883년 마르티니크에 배치되었으며 세네갈 식민지로 이동해 갈리에니 요새를 증축하고 원주민들의 반란을 가혹하게 진압했다. 귀국 후 대령으로 진급했으며 통킹으로 파견되어 제3경보병연대장으로 해적들과 전투를 치렀다.

1896년 준장으로 진급하고 마다가스카르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전임자보다 더 강경하게 통치했으며 마다가스카르 성인 1인당 50일의 강제 부역을 부과했다. 1896년 이 것을 반대해 봉기를 일으키자 진압하고 주동자인 라치마왕가 왕자, 내무부장관 라베잔드리나 라이난드리아만판드리를 체포하고 단심재판에서 사형을 판결짓고 원주민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공개총살형에 처했다. 이후 라나발로나 3세를 강제 폐위시켜 마다가스카르 왕국의 통치를 종식시켰다. 프랑스식 교육과 체제를 들여왔고 노예해방까지 시켰으나 이에 반발하는 세력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1899년 소장으로 진급했다.

1905년 귀국 후 제14군단장으로 임명되었고 1911년 식민지방위자문위원회장으로 임명되었다. 1914년 전역했으나 1차대전이 발발하고 현역으로 복귀했다. 빅토르콩스탕 미셸의 후임으로 파리 총독이 되었고 파리 택시를 징발해 병력들을 수송하며 미셸 조제프 모누리가 이끄는 제6군으로 보냈다. 이 병력들은 제1차 마른 전투의 주축이 되어 독일군을 저지하는데 공을 세웠다.

1915년 전쟁장관에 임명되었으나 조제프 조프르와 갈등을 빚었고 베르됭 전투 당시 조프르의 실책을 폭로했다. 이에 장관직에서 해임되었고 지병인 전립선암으로 인해 사망했다. 1921년 원수로 추서되었다.


[1] 1921년 사후 추서. 생전 계급은 소장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