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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고려시대의 정변 | }}}}}}}}} |
1. 개요
1217년(고려 고종 4년), 개경에 사는 승려들이 일으킨 반란.2. 배경
당시 승려들은 계속된 노동과 전쟁으로 고통받으며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게다가 몽골의 공격을 받아 거란 유민이 고려로 쳐들어오자, 최충헌 무신정권은 승려들로 이루어진 승군(僧軍)을 만들어 전쟁터에 밀어넣는다. 이에 참다못한 승려들은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3. 전개 및 진압
개경에 위치한 흥왕사, 홍원사, 경복사, 왕륜사 등 여러 사찰의 승려들은 고려의 실권자인 최충헌을 제거하기로 하고, 적에게 쫓기는 척하며 개경 성 안으로 들어갔다.먼저 최충헌에게 아부하면서 그의 측근인 낭장 김덕명의 집을 부수고, 다음으로 최충헌의 집을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최충헌은 이를 눈치채고 자신이 거느리던 사병을 보내 승군을 진압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약 800명의 승려가 목숨을 잃었으며, 난을 진압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