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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고려시대의 정변 | }}}}}}}}} |
1. 개요
1차 개경승도의 난은 1174년에 개경의 승려들이 일으킨 난이다.2. 원인
무신 정권을 잡고 있던 이의방 형제의 가혹한 횡포가 원인이였다. 이에 난이 일어나게 된다.3. 1차 봉기
귀법사의 승려 100여 명이 그들을 죽이려 개성 북문을 침범했다. 그러나 이의방은 군사 1,000여 명을 동원해 승려들을 공격했고, 수십 명을 죽인 뒤 나머지를 해산시켰다.4. 2차 봉기
개성의 여러 사찰, 특히 귀법사, 중광사, 홍호사, 홍화사 등의 승려 2,000여 명은 이의방을 제거하기 위해 다시 개성 동문에 집결했다. 하지만 성문이 닫혀 있어 성 밖의 민가에 불을 지르며 강제로 문을 열려고 했고, 결국 숭인문을 태우고 성안으로 진입했다.이의방은 급히 군사를 모집해 성문을 지키게 하고, 승려 100여 명을 죽였다. 뿐만 아니라, 중광사, 홍호사, 귀법사, 용흥사, 묘지사, 복흥사 등 여러 사찰에 군사를 보내 불을 지르고 재산과 물건을 빼앗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다시 승려들의 반격을 받아 많은 군사를 잃었으나, 결국 승려들의 난을 진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