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09 20:12:33

정종주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종주
鄭瑽柱, 鄭琮柱
파일:정종주.jpg
<colbgcolor=#0047a0> 출생 1908년 11월 19일
경상남도 사천군 삼천포읍 이금리
사망 1992년 7월 21일
부산광역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정종주는 1908년 11월 19일 경상남도 사천군 삼천포읍 이금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7년 3월 사천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4월 경성에서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9년 8월 동맹휴교에 참여하였다가 퇴학당하였다. 그 후 귀향하여 농업에 종사하면서 사회과학 도서를 읽으며, 마을 주민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1929년 9월 삼천포에서 동지들과 함께 사회제도를 개혁할 목적으로 용산독서회(龍山讀書會)를 조직하고, 사회과학을 연구하며 야학회 활동을 하였다. 1931년 11월 삼천포보통학교 동맹휴교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독서회가 발각되어 12월 13일 관계자 10여 명이 붙잡혔다. 정종주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32년 5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아 약 4월여의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었다.

1934년 정종주는 삼천포에서 ‘농민운동그룹’을 조직하였다. 정종주는 실천투쟁으로 1934년 10월 초순부터 매일 1시간 정도 10여 명의 농민자제를 모아 야학을 열고 이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1938년 1월 4일부터 ‘농민운동그룹’ 관련자 150명이 검거되었고, 정종주는 1938년 9월 16일 동지 12명과 함께 구속되어 진주지청 검사국에 보내져 1939년 5월 4일 약 8개월 간의 예심을 마쳤다. 1939년 8월 30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출옥 후 부산으로 이주한 그는 그곳에서 조용히 지내다 1992년 7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정종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9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