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임지순(任志淳) |
출생 | 1951년 |
경상남도 부산시 (現 부산광역시) | |
학력 |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이학부 (물리학 / 학사)[1] UC 버클리 대학원 (물리학 / 석사·박사) |
현직 |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 |
약력 | AT&T 벨 연구소 연구원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천문학부 석좌교수 포항공과대학교 물리학과 석학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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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물리학자, 교수이다.2. 생애
1951년 부산에서 출생, 서울에서 성장했다. 1970학년도 대학입학 예비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하고, 경기고등학교 수석 졸업에 이어 서울대학교에 전체 수석으로 합격했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에서 포스트닥 과정을 마치고 벨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지냈다.1986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여 2009년 석좌교수가 되었고, 정년을 1년 앞두고 포항공과대학교의 석학교수로 자리를 옮겼다.[2] 포항공대에서는 2023년 이후에 정년 만료 이후 현재는 울산대 물리학과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
경기고 재학 시절에 3선 개헌 반대시위를 준비하다 정학을 당했고, 후일 경실련 창립 멤버일 정도로 사회운동에도 관심이 깊었다. 탄소반도체 특허에 대한 기술을 98년 LG반도체(현 하이닉스)에 무상으로 양도한 것도 이 같은 사회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2000년대 이후의 인터뷰에서 보기 드문 균형감각과 소신이 엿보이기도 했는데, 광우병/천안함 괴담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정부 입장에 동의하지만 동시에 정부도 소통이 부족했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
3. 업적
나노 소재 기술(1mm의 10억분의 1수준에서 물체를 만드는 초미세술) 분야에서 한국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탄소나노튜브를 다발로 묶으면 반도체가 된다는 사실을 1996년 처음으로 밝혀내고 그 응용에 힘쓰고 있다.또 1979년에 발표한 고체에너지 논문으로 계산재료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한국 물리학자로는 최초로 2011년 미국과학학술원(NAS) 외국인 종신회원으로 추대됐다.
4. 여담
- 당시 동기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전국의 수재가 다 모이는 경기고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등이어서 대입시험을 치르기 전에도 서울 인문계고 위 아래 5개 학년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 당시 예비고사는 자격고사였고 서울대는 본고사 성적만으로 선발했는데, 550점 만점의 본고사에서 410점을 받아 법과대학 수석 360, 상과대학 수석 360점, 공과대학 수석 368점보다 무려 50점 가까이 높았다. 여담으로 당시 법과대학 수석이 양창수다.
5. 수상
- 2023 삼성호암상
- 2012 에쓰-오일 과학문화재단 선도과학자 펠로십
- 2009 제5회 아시아전산재료과학총회 총회상
- 2007 미국 물리학회 석학회원
- 2007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 2007 포스코 청암상 과학상
- 2004 제18회 인촌상 자연과학부문
- 1999 제5회 운경상 산업기술부문
- 1996 한국과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