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12:22

임재범/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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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치 복장 논란2. 작곡 여부 논란3. 표절 논란4. 대마초 흡입?5. 엔지니어 폭행 진실 공방6. 정준하 폭행 공방7. 허언증 논란

1. 나치 복장 논란

2011년 6월 26일 콘서트에서 나치스 제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당시 임재범은 나치 군복을 벗어던지고 반전(反戰) 메시지를 담은 곡 '패러덤'을 불렀는데, 이걸 보면 나치를 비판하려고 역으로 나치 복장을 입었다고 볼 수 있다. '패러덤'은 1990년 임재범이 활동했던 록그룹 '아시아나'의 곡으로 핵전쟁에 의해 파괴된 지구의 인간들이 지하도시에 사는 비극을 표현한 반전 노래다.

임재범의 이 사건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보이는 측에선 하나, 이런 퍼포먼스는 그 의도가 뭐가 되었던지 간에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다는 측면에서 서양에서도 자칫 논란의 여지가 있을법한 내용이었다는 점과 둘, 설사 나치즘을 비판하려는 의도이더라도 목적을 전달하기에 부족한 퍼포먼스를 펼쳤기에 문제가 있다는 점, 셋, 끝까지 모자는 벗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한편, 임재범에 대해 옹호적인 의견은 나치 복장을 할 때 부른 곡이 'PARADOM'이라는 반전, 평화를 주제로 임재범, 김도균이 공동 작곡한 곡이며[1] 반압제의 메시지가 담긴 곡이었다는 점과, 콘서트 순서에 이 곡이 애초부터 포함되어 있었다는, 즉 해당 퍼포먼스가 "즉흥적 방어"같은 것이 아니라 연출된 '반전/반압제'퍼포먼스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임재범 측의 해명이 설득력 있다고 주장한다.

일단 소속사는 "나치 찬양이 아니라 로커로서 자유에 대한 갈망의 표시였다"라고 해명했다. 임재범 측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나치는 죽었다, 자유다라는 의미의 퍼포먼스라고 밝혔다. 임재범측의 공식반응.

이를 두고 당시 문화평론가 진중권과 작곡가 김형석이 트위터로 열띤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진중권은 트위터를 통해 "그건 윤리적 비난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미학적 비평의 대상. 그냥 '몰취향'이라고 하면 됩니다, 임재범은 문제가 될 걸 알았겠지요. 그래서 윤리적 논란을 피해갈 명분을 미리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런 촌스런 도덕적 변명까지 내세워 가면서까지 굳이 그런 짓을 하고 싶어하는 그 미감이 후진 거죠'' 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김형석은 "진중권님의 글을 보면 네오나치즘 스킨헤드의 공연에서 느낀 것은 아마도 공포일거다. 그런데 공연에서 그런 공포가 있었나?"라며 "한 개인이 느낀 감상을 전체에 대입하려 하시는지요. 그것이 바로 진(중권)님이 비판하는 전체주의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예술은 미학적 수준을 만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지 않냐. 님은 현재 신념을 가지고 거침없는 사회비판을 하며 투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저는 그 투쟁을 존중하고 지지한다. 그런데 님이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는 인정하지 않는 것은 똑같은 광기 아니냐"고 꼬집었다. 김형석, 진중권에 “표현의 자유 인정 안하는 것은 똑같은 광기”

덧붙여 "논란예상, 피해갈 윤리적 명분, 촌스런 도덕적 변명, 후진 미감 다 좋은데 내가 보기에는 그냥 아무 계산없이 그 무대에 어울리는 소재를 가지고 퍼포먼스를 한 것 뿐인거 같은데요?"라고 반박했다. 이어 "그냥 음악에 맞는 퍼포먼스를 한걸 가지고, 그것도 공연에서. 정치적이고 계산적이라며 윤리를 들먹이며 미감의 수준을 운운하기 전에 가서 공연 보시고 릴렉스 하시길"이라고 덧붙였다.

예술에 대한 개개인이 느끼는 차이를 전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게 김형석의 주장이다. 김형석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라"며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김형석은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임재범 씨 공연을 봤는데 록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한 메타포(은유) 무대였을 뿐"이라며 "임재범 씨는 무대에서 군복을 벗어던져 오히려 나치즘에 대한 반어적인 퍼포먼스를 했다. 방송도 아닌 공연장에서 한 일종의 이벤트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것은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문화평론가 김헌석도 "임재범의 의도는 나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전체주의, 획일성, 부자유에 대한 탈출 갈망을 의미한 것이다"라며 논란에 목소리를 보탰다. 임재범 나치 옷 입었다고 나치즘 찬양?<김헌식 칼럼>무조건적인 문제화, 예술을 죽인다 "임재범의 의도는 나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전체주의, 획일성, 부자유에 대한 탈출 갈망을 의미한 것이다. 나치장교의 복장을 입고 나온 임재범의 퍼포먼스는 나치즘과 관련성이 없다. 임재범은 분명 나치복장을 통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나치 복장은 차용 이미지에 불과하다. 문제는 주제의식이다. 예술은 그것이 더 중요하다." 라는 입장.

2. 작곡 여부 논란

첫 번째 발단은 2010년대 초 나는 가수다에서 임재범의 노래를 선곡한 박완규가 고해를 선택하면서 임재범에게 조언을 들으러 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 고해의 "그녀"는 사실 절대자다.[2][3]
  • 앨범은 내야겠는데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방황하다가 20분 만에 곡을 썼다. 방송 이후 고해의 공동 작곡자로 알려진 송재준(a.k.a. 캡틴퓨쳐)[4]이 나가수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 장문의 글을 남기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송재준에 의하면 본래 고해는 자신이 1년 전에 작곡한 곡이며, 이후 자신이 미국에 간 사이에, 임재범의 소속사에서 이 곡을 공동작곡으로 저작권 등재 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데 임재범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는 것. 그런데 임재범이 나가수에 나와서 고해가 전적으로 자신이 뚝딱 만들어낸 곡이라고 말해서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고해는 작사 채정은, 작곡 송재준, 임재범으로 등록되어 있다.

이에 관해 당시 음반 제작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가 입장을 밝혔다. ‘고해’ 음반 제작 담당자 “송재준이 거짓말 하고 있다”

작사가 채정은은 "임재범 난 치는데 송재준 먹 갈았다"라고 비유했다.

임재범의 ‘고해’ 작곡 논란에 대한 입장

임재범 측은 27일 “‘고해’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은데 본인은 그냥 두라는 입장이다. 더 이상 논란을 크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이번 논란은 MBC와 송재준 작곡가 사이의 문제지 임재범과는 무관할 수도 있다. 허나 이 관계자는 “하지만 매니지먼트사 입장에서 정확히 짚고 넘어갈 건 있다고 본다”며 송재준의 주장 중 두 가지를 짚었다. 당시 앨범 제작에 스태프로도 참여했던 이 관계자는 “당시 앨범은 12곡 전체가 송재준 씨와 공동 작곡이다. 당시 임재범 씨가 악보를 그릴 줄 몰라 송재준 씨가 채보를 했고 그 작업을 공동 작곡으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재준의 ‘임재범 씨가 공동 작곡으로 해줄 것을 요구했다’는 주장은 지나치다는 것.

두 번째로 ‘고해’가 1년 전 송재준이 만든 곡이라는 주장에 대해 “사랑, 전쟁, 평화라는 앨범 콘셉트를 미리 만들고 송재준 씨가 투입됐다. 곡을 만들고 녹음까지 걸린 시간 자체가 매우 짧다. 급하게 만든 앨범이다”며 “'고해'가 1년 전에 이미 써놓은 곡이라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임재범 측은 “송재준 작곡가가 방송을 보고 자신의 공이 전혀 인정되지 않았던 것이 불쾌할 수 있다고 충분히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그 외에도 밴드 시나위 데뷔곡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이병문 버전이 초판이라는 몇몇 기사가 있어 임재범이 작곡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신대철의 인터뷰집 뛰는 개가 행복하다 등에서 신대철 본인이 직접 여러 차례에 걸쳐 임재범이 시나위 1집 초판 버전에 참여했다는걸 밝히고 있다.

파일:뛰는 개가 행복하다.png
신대철: 어느 날 갑자기 (임재범이) "나 내일 군대 가" 그러고는 진짜 가더라니까. 1집이 그때 상종가를 쳐 가지고 잘 나갈 때라, 어딜 가든 돈이잖아. 그러니까 킹레코드에서 난리가 났지. "야, 대타 찾아 와." 그래가지고 이병문이라고 내 친구를 대타로 해서 다시 녹음한 거야. 서너 곡인가 녹음을 다시 해서 음반을 냈어.

그래서 1집이 두 가지 버전이 있어. 사람들이 가끔 물어봐. 1집에 이병문이라는 분이 노래하는 게 있던데 그게 뭐냐고... 여튼 노래만 다시 녹음해서 급조한 앨범이 하나 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았지. 또 한편으론 병문이 아버지가 음악하는 선배야. 걔 아버지랑 우리 아버지랑 잘 알아. 그래서 나중에 병문이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한테 "이런 사기꾼 같은 새끼를 봤나" 그랬다고. "애를 데려다 썼으면 2집까지는 갔어야지, 이것들이" 그러면서. (왜냐하면) 2집에서는 김종서가 불렀잖아.(웃음) 뛰는 개가 행복하다

임재범이 초판에 참여했다는 또 다른 기사.
임재범은 록월드를 우연히 들른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만나보러 작정하고 찾아왔던 것 같아요. 잘은 모르지만 임재범도 시나위 이전에는 밴드 경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다섯명이서 연습하고 있는데 86년 1월에 킹레코드서부터 레코딩 제의가 들어왔어요. 회사측에서는 우리에게 창작곡이 있냐고 물어봤었는데 사실 준비된 곡은 별로 없었지만 무조건 있다고 그랬죠. 그리고 그때부터 곡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요즘처럼 녹음을 많이 하는 것은 상상하지 못할 때여서 말도 안되게 빨리 곡을 만들게 되었는데 1주일, 그리고 녹음하는데 3일 걸려 시나위 1집을 만들었습니다.

3. 표절 논란

1집의 히트곡 이 밤이 지나면은 작곡가 신재홍의 곡인데, 폴 영의 'Everytime you go away'[5]를 표절했다며 1993년 공연윤리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표절 판정을 받았다.[6] 이후 임재범 1집은 앨범 판매 금지, 방송 금지 처분을 받았다. 다만 이후에도 라이브 많이 하는거 보면 해결은 된 모양.

신재홍으로선 그야말로 흑역사지만 일각에선 이의 제기도 있다. 이 곡에서 트럼펫 연주를 담당한 미국 네임드 뮤지션 데이빗 스펜서(David Spencer)는 표절 논란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 밤이 지나면'을 자신의 수업 시간에도 잘 쓰여진 팝 곡의 예제로 늘 쓰는데, 이 곡이 표절 판정을 받았다는 말을 전해 듣고 "What !!!!???? That's ridiculous!", "I really don't see the problem, though. The music is not in anyway like the other. He should fight it." ("뭐라구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곡은 폴 영의 곡과 어느 부분과도 전혀 비슷하지 않습니다. 그(신재홍)는 맞서 싸워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정 궁금하면 직접 들어보고 비교 판단해보자. 확실히 전체 곡이 다 비슷한건 아니긴 하다. 어찌됐든 이후 금지가 풀렸고 신재홍은 나중에 임재범과 2집, 4집도 같이 작업했다.

그런데 음저협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보면 여전히 이 곡의 작곡자는 신재홍으로 단독 표기되어 있다. 링크. 참고로 공연윤리위원회의 폐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실제 표절곡은 원래 작곡가의 이름으로 표기되는데, 룰라의 천상유애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4. 대마초 흡입?

1993년 3월 대마초 흡입으로 SBS의 블랙 리스트에 오른 바 있다.[7]# 다만 대마초 흡연은 90년대에 상당히 큰 이슈였기에, 임재범 대마초 흡연이라는 직접적인 기사가 당연히 있을법한데, 상기된 SBS 기사 외엔 없다. 출연 정지도 빠르게 풀린 점을 보면 SBS가 약간 오해한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당시 임재범은 방송 출연 자체를 거의 안하고 두문불출하던 시절이라[8] 이런 제재가 큰 의의도 없긴 했다.

5. 엔지니어 폭행 진실 공방

예당엔터테인먼트 산하 케이블 회사 엔지니어 김모 씨가 2011년 8월 20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지난달(7월) 29일 임재범과 두 경호원에게 집단으로 맞았다"며 세 명을 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임재범과 엔지니어 간의 다툼의 발단은 서로의 업무 방해 때문이었다. 자신이 담당하는 프로그램 업무를 보던 엔지니어가 옆 녹음실에 있던 임재범에게 "방해가 되니 소리를 줄여달라"고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임재범이 "예의가 없다" 라는 등 폭언을 해서 결국 시비가 붙었다고.

예당엔터테인먼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임재범에게 경호원이 붙은 이유는 여러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부득이하게 경호원을 붙였고, 경호원 측은 자신들이 강하게 나가야 임재범이 나서지 않기 때문에 고압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은 인정했지만 폭행은 전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고 예당 관계자는 냉정을 되찾은 임재범이 엔지니어와 인간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화해했고 같이 밥먹고 배드민턴까지 쳤다며 한 달 후에 고소당한 것에 모두 당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참고로 기사에 따르면 고소인은 3번이나 말을 번복했다고 하는데, 어쨌거나 결국 김모 씨가 고소를 취하해서 일단락되며 무엇이 실상인지는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

6. 정준하 폭행 공방

"정준하, 임재범에게 따귀 맞았다." 2012년 2월에 정준하가 'TV 조선 토크쇼 노코멘트'에 출연하여 자신이 20대 초반일 때, 당시 친분이 있던 임재범을 당구장에서[9] 발견하고 아직도 여기 있냐고 말을 건넸다가 옥상에 끌려가서 따귀를 맞았다고 밝혀 논란이 되었다. 이후 다른 방송에서도 조금씩 언급했었는데, 김구라가 'TV 조선 궁금한 토크쇼 호박씨'에서 "정준하가 따귀를 맞은 후, 열받는 마음에 주먹을 올리려는 순간 임재범이 사랑한다며 껴안았고, 그에 더 서러워서 울었다."라고 뒷이야기풀기도 했다.

방송 전 후로 해당 썰이 퍼져나가자, 임재범과 실제 친분이 있는 H2O의 보컬 김준원이 자신이 경험한 것과는 얘기가 좀 다르다며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요점은 방송 홍보 때문에 임재범을 너무 끌어들이는 것 같은데, 자신이 경험한 바에 의하면 당시 임재범과 정준하는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라 초면이었고, 장소도 당구장이 아닌 많은 예술가들이 쉬러 오던 까페였는데 포켓볼 당구대가 있어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임재범 역시 당시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심신이 지쳐있을때라 까페에 쉬러 자주 왔는데 어느 날 당시 무명이었던 막내 탁재훈이 이휘재 매니저로 방송 몇번 나왔던 정준하를 데리고 와 인사를 시켰고, 당시 어리기도 하고 주변 파악이 덜 된 정준하는 자기가 보기에도 많이 깐족거렸다고 한다. 그러다 자긴 잠시 나가 일을 보고 있었는데 그 사단이 난거라고. 탁재훈이 말려달라 해서 가보니 실제 건물 옥상에서 정준하가 차렷 자세로 서서 임재범의 훈계를 듣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나저러나 정준하는 예능에서도 당하고 현실에서도 당했다.

7. 허언증 논란

예능 토크쇼 승승장구에서 임재범은 본인이 무술 56단이라 함부로 일반인을 때리면 큰일 나니 때리지 않는다는 식의 주장을 했는데, 당연하지만 무술 56단은 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농담 아니었어? 아무리 무술 실력이 좋아도 태권도, 유도, 합기도 등 대부분의 무술에서는 수련 기간이 쌓이지 않으면 승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선수들조차 2~3단인 경우가 많다. 5단씩 10개 종목 단증이 있어야 겨우 50단이 되는데 이러려면 매일 하루 종일 무술 도장 몇개씩 다니기를 수십년을 해야 가능하다.

이에 10일 오후 방송된 KBS '연예가중계'와 가진 인터뷰에서 임재범은 무술이 56단이라는 소문에 대해 "36계 줄행랑 포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무술 단수 56단이라는 건 36계 줄행랑 포함해서다. 나머지 20단 중에서도 명예로 받은 것 10단은 빼야 한다. 남은 10단도 장기, 바둑을 다 포함한 단수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과장이 섞인, 농담성 멘트였다고 해명을 했으나 일부 네티즌들은 이 주장에도 또 반론을 제기했다. 명예 단증을 받았다는데 그럼 명예 단증을 준 기관은 어디고 어떤 무술을 했으며 그래서 36계 줄행랑이나 명예 단증 빼면 몇 단이냐는 제대로 된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임재범의 소속사 예당에서는 임재범은 공식적인 단증이 하나도 없으며 명예 단증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하였다.# 사실 이건 논란이 되는게 좀 아이러니한게, 애초에 예능에서 웃기려고 한 소리다. 다만 임재범이 당시 분위기에 취했는지 일종의 허세를 부리다 농담이라는 말을 안해서 일이 커진 셈.


[1] 작사도 임재범, 김도균이 정한 주제에 영어 가사 도움을 받아 작사한 것이다. 임재범은 반전 평화를 주제로 한 곡을 다수 작곡하고 작사했다. 아시아나의 Soldiers Came은 광주 혁명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어 음반에 최근까지 실리지 못했다. 5집의 '사람과 사람들', '총을 내려라'도 임재범이 작사 작곡한 반전, 평화를 주제로 한 곡.[2] 임재범 3집은 '사랑, 전쟁, 평화'를 콘셉트로 임재범이 주도한 기획앨범으로 당시 전곡이 공동 작곡으로 돼 있다. 또한 3집 전곡이 임재범이 편곡자로 한국 저작권 협회에 등재되어 있다. 3집의 영어 가사는 박정현이 도와주었고 작사자 채정은이 한국어 노래의 가사를 임재범이 원하는 내용으로 다듬은 듯.[3] 만약 그렇다면 내용이 좀 이상해진다. 그녀가 절대자인데 그녀를 사랑한다는걸 절대자 앞에서 고해하는 모순적 내용이 되어 버리기 때문. 게다가 이럴 경우 작곡 뿐 아니라 작사까지 임재범이 했다는 말인데 고해의 작사자는 채정은이다. 또한 채정은이 임재범이 원하는 식으로 가사를 수정했다면 임재범이 공동 작사자라는 말인데 임재범은 공동 작사자로도 올라가 있지 않다.[4] 캡틴퓨쳐 명의로 90년대에 가수 활동을 했었다. 가수 활동을 그만둔 뒤로는 작곡에 전념한 듯.[5] 사실은 Hall & Oates가 1980년 먼저 발표한 원곡을 폴 영이 1985년 다른 버전으로 부른 것이다.[6] 참고.[7] SBS는 KBS나 MBC 처럼 공식적인 방송출연정지 제도가 없다.[8] 1991년 솔로 1집을 내놓고 1997년 가서야 2집을 내놓는다.[9] 후술되어있듯 실은 당구장이 아니라 까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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