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3-16 00:11:28

일본 군도/패용법

일본 군도의 패용법.

1. 육군
1.1. 구형도대(舊型刀帶)1.2. 신형도대(新型刀帶)1.3. 실용성
2. 해군
2.1. 실용성2.2. 관련 항목

1. 육군

일본메이지 유신을 하고 처음으로 창설한 근대적 육군은 프러시아와 프랑스를 모방한 군대로써 만들어졌다. 이때 제정된 군도는 당연히 유럽 세이버였으며 일본군의 도대 또한 유럽에서 사용되던 세이버 벨트 중 1점 고정방식이었다. 1점 고정방식이란 칼집에 패용 고리가 1개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소드벨트에도 1개의 슬링만이 내려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방식은 세이버에서 흔했던 2점 고정방식보다는 안정성이 떨어지지만 보병장교들에게 있어서는 어차피 칼을 늘어트리지 않고 허리춤의 갈고리에 패용 고리를 끼워 다니므로 굳이 가죽 슬링이 2개씩이나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 이유에서 만들어진 것이 1점 고정방식인데, 유럽과 일본해군이 거의 2점 고정식을 선호한 데 비해, 일본 육군기병에 이르기까지 1점 고정식을 선호했다.

육군 도대는 구군도용과 신군도용이 존재한다. 구군도용은 구형도대라고 불리며 신군도용은 신형도대로 불리며 구군도용은 보병용과 기병용, 그리고 장교용과 부사관용으로 다시 나눠진다.

1.1. 구형도대(舊型刀帶)

구형도대에서 기병용과 보병용의 차이는 도대에서 내려오는 슬링, 일본에선 구루멧토라고 불리는 부분의 차이에 있다. 기병용은 쇠사슬로 만들어진 금속제이며, 일반육군용 슬링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기병용은 2척, 즉 60.6cm정도로 슬링이 길며, 보병용은 1척2촌, 즉 36.4cm정도의 길이이다. 모두 땅에서 돌아다닐 때 편하게 차기 위해 슬링 위쪽에는 갈고리가 있어서, 여기에 패용 고리를 걸고 다닌다. 그러나 실제로는 쇠사슬 버젼을 보병장교나 부사관이 구해다 쓰기도 했다. 슬링은 헤지거나 끟어지기 쉬워서 탈착이 자유롭게 되어 있었다. 슬링의 길이도 실제로는 제식과 차이가 많은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더 길기도 하고 더 짧기도 했으며, 보병장교의 가죽 슬링이라도 긴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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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 슬링. 사진은 신군도와 95식장교승마구에 적용된 모습. 구형/신형 도대를 가리지 않고 쓰였으며, 쇠사슬의 바리에이션도 많다.

보병장교용은 가죽 슬링이며, 장교용은 겉은 검은 가죽으로, 위관용은 내부를 청색 내피로 처리했으며, 영관/장성급은 내부를 적색 내피로 처리했다. 쇠사슬 슬링을 보병 장교나 부사관이 구해서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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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관/장성용.

쇼와 7년에는 철도 제2연대 공병장교의 연구를 통해 슬링의 길이 조절까지 자유롭게 가능한 도대가 시제품으로 개발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곧 신군도로 넘어갔기에 실제로 보급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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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신형도대(新型刀帶)

신형도대(新型刀帶)의 경우 근본적인 점은 구형도대와 달라진 점은 없었다. 방식은 물론 벨트의 제식도 같았으나, 기존의 장교용 도대를 정도대(正刀帶)라 하여 정복에 착용하는 예식용으로 규정하고, 실전에서는 보다 실용적으로 만들어진 약도대(略刀帶)가 등장하여 장교들에게 폭넓게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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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용 약도대는 제식물품은 아니었으므로 재질도 다양했는데 가죽을 사용하여 잘 만든 것부터 실용적인 캔버스 천으로 만든 것 등 다양했다. 사진의 제품들은 상당히 잘 만들어진 편으로써 실제로는 훨씬 단순한 것들도 많았다. 98식 군의의 바지에 차며 칼의 무게로 흘러내리는 것을 막고자 상당히 폭이 넓은 편인데, 하복을 입었을 때에는 드러나지만 동복을 입었을 때에는 야상에 가려 약도대가 드러나지 않으며, 칼을 차면 야상 뒤의 갈라진 틈으로 칼이 나와 벨트는 보이지 않으면서 칼만 보일 수 있게 패용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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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관용.

부사관용의 경우 처음부터 상의 위에 장착하도록 되어 있으며, 그 형태도 단순한 가죽제의 실용적인 물건이다. 그 외에는 장교용과 특징은 같다. 부사관의 경우 부사관용 도대를 사용하지 않고 일반 벨트에 금속제의 히노마루칸(日本陸軍日の丸環)을 끼워 거기에 슬링을 끼우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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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노마루칸의 사용 사례. 벨트에 붙은 철제부품이 히노마루칸인데, 중간에 뚫린 구멍이 일장기처럼 보여 히노마루(일장기)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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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13~14년경으로 추정되는 일본군 오장(하사)의 사진. 부사관용 도대가 아닌 일반 벨트에 슬링을 끼운 것이며 슬링도 정체를 알 수 없다. 별다른 금속 후크는 사용하지 않고 벨트를 그대로 98식군도의 패용고리에 끼운 것이 특징. 도소(刀緒:Sword knot)는 가죽제의 부사관용. 원래 부사관은 32년식 부사관도 혹은 95식 부사관도를 사용해야 하지만 이 때에는 장교용의 94식과 98식을 부사관이 구입하여 소장하는 경우가 일부 있었다고 한다. 부사관용 94/98식은 칼집이 목제라는 소문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1.3. 실용성

차고 돌아다닐 때는 그나마 낫지만 뛸때는 심하게 덜렁거려 겨드랑이를 누르고 다리 사이로 끼어 엎어지게도 만든다. 덕택에 뛰거나 할 때에는 칼집이 덜렁거리지 않도록 왼손으로 잡고 있어야만 했다. 조선 환도처럼 무게중심이 딱 맞는 곳에 패용 고리를 위치시키면 되겠지만 실물로 남아있는 것들 대부분은 패용 고리가 칼집 입구 가까이에 위치했으며, 사진도 패용했을 경우 칼이 거의 수직으로 서서 칼자루 끝이 겨드랑이에 닿을 정도. 원래 소드벨트란 칼을 덜 불편하게 운반하면서도 유사시 뽑기 쉽도록 만드는 것이지만, 1점 고정 방식은 그냥 손으로 들지 않고 돌아다닌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칼을 뽑으면 생각보다 안 불편하다.

2. 해군

일본해군은 영국해군을 롤모델로 하여 만들어졌는데, 영국해군의 전통에 따라 도대도 전통적인 2점식 세이버 벨트로 채용하였다. 신군도가 채용된 이후에서도 이 2점식 세이버 벨트는 그대로 유지되었는데 다만 호칭이 기존의 장검(長劍)에서 군도(軍刀)로, 도대도 기존의 호칭인 정검대(正劍帶) 혹은 검대(劍帶)에서 도대(刀帶)로 변경된 것 정도였다. 장교용과 부사관용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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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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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관용.

함상생활을 하고 대포를 쏘는 해군의 특성상 해군도대의 사용비율 자체도 적었지만 실제 도대를 차고 칼을 찬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군도가 아니라 해군단검을 차는 정도였다. 게다가 구식 세이버도 제식에서 해제시키지 않고 그대로 유지시켰다. 해군의 신군도인 해군태도형(海軍太刀型)이 실전 요구에 의해서 등장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해군육전대(해병대)의 상륙전에서의 요구 때문이지 해군 자체의 요구에 의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실제 도대와 군도의 사용은 해군육전대가 가장 많이 했다.

2.1. 실용성

특징도 유럽식 2점 벨트 그대로인데, 소드 슬링이 길어서 늘어트리면 칼이 질질 끌리고, 평소에 돌아다닐 때에는 앞의 갈고리에 칼의 첫번째 패용 고리를 걸어서 땅에 안 끌리게 했다.

육군용이 간략화되었다고는 하나 실제적으로 칼을 차고 돌아다니거나, 발도시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걸이대에 불과했다면, 이 해군용은 갈고리에 걸고서도 뛸 때 훨씬 덜 불편하고, 발도도 생각보다 잘 된다. 상식적으로는 2번째 슬링은 필요없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역할을 하기는 하는 것 같다. 다만 1932년 상해사변 당시, 일본 해군육전대는 앞 갈고리에 패용 고리를 걸 경우 앞으로 튀어나온 손잡이가 길어서 불편하다는 이유로 손잡이를 뒤로 가게 찰 수 있는[1] 육군의 도대(刀帶)를 부러워했다고 하며, 이런 이유 때문에 해군도특주품 중에는 아예 2번째 패용 고리를 삭제한 커스텀모델도 존재한다.[2]

2.2. 관련 항목


일본군도(日本軍刀)

구군도(旧軍刀)

신군도(新軍刀)

공업도/실용군도(工業刀/室用軍刀)
  • 무라타도(村田刀) - 총기설계자 무라타 소장이 제조한 칼날
  • 만철도/흥아일심도(滿鐵刀/興亞一心刀) - 남만주철도공사에서 제조한 칼날
  • 미카사도(三笠刀) - 전함 미카사의 파괴된 포신으로 만든 칼날
  • 조병도(造兵刀) - 육군조병창에서 생산된 칼날
  • 진무도(振武刀) - 금속공학을 통한 타바드강(鋼)으로 만들어진 칼날
  • 군수도(群水刀) - 군마수전사의 사장인 미야구치 타케히데가 만든 칼날
  • 스테인리스도(耐錆鋼刀) -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칼날
일본군도를 사용하는 검술
*토야마류(戶山流居合/軍刀の操法)
*나카무라류(中村流八方切り抜刀道)

[1] 원래 2점식 벨트와 앞쪽 갈고리에 패용고리를 거는 것은 손잡이가 짧은 세이버에서 유래된 패용법이니만큼 손잡이가 28cm에 달하는 일본군도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착용해보면 팔을 툭툭 치고 무기에 걸리는 등 매우 나쁜 경향이 있다. 자루를 뒤로 가게 걸려고 해도 2번째 슬링 때문에 그러지도 못한다.[2] 어디까지나 극히 일부 사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