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2-07 16:45:23

이호영(1899)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사옥(士玉)
본관 우봉 이씨[1]
출생 1899년 10월 9일[2]
충청북도 옥천군 이남일소면 문평리
(현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지정리)[3]
사망 1968년 10월 7일[4]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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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899년 10월 9일 충청북도 옥천군 이남일소면 문평리(현 옥천군 이원면 지정리)에서 아버지 이병기(李丙祈, 1865. 5. 10 ~ 1918. 12. 28)와 어머니 밀양 박씨(1862. 1. 20 ~ 1919. 11. 8) 박태희(朴泰熙)의 딸 사이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3월 허상기(許相基)는 상경했다가 우연히 경기도 경성부에서 3.1 운동을 목격하였고, 귀향한 뒤 육창주(陸昌柱)·김용이 등과 함께 3월 27일 이원면 장날에 거사를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했다.

그리고 3월 27일 거사 당일, 이호영은 시위에 참여하였는데, 주동자인 허상기와 육창주, 김용이 등이 헌병주재소에 연행되어 가자 군중들을 선동하여 주재소로 몰려가 연행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전개했다.

얼마 뒤 체포된 이호영은 1919년 5월 5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훼기,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은거하다가 1968년 10월 7일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호영에게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 의열공파(義烈公派) 26세 영(寧) 항렬.[2] 우봉이씨세보 지(智)권 573쪽에는 1900년 6월 14일생으로 등재되어 있다.[3] 우봉 이씨 집성촌이다.#[4] 우봉이씨세보 지(智)권 573쪽에는 1967년 9월 27일에 별세한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