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 1898년 5월 19일 |
평안남도 숙천군 평리면 사산리[1][2] (現 평안남도 숙천군 사산리) | |
사망 | 미상 |
본관 | 진주 이씨(晉州 李氏) |
서훈 |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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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1898년 5월 19일 평안남도 숙천군 평리면 사산리(現 숙천군 사산리)에서 태어났다.그는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인 평원군 서해면 사산리에서 동지들과 함께 면사무소 등사기를 이용하여 독립선언문을 다량 등사하여 마을 사람들의 궐기를 권장하며 배포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3월 29일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으며, 그해 9월 4일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소위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상고가 기각되고 징역 1년 6개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중국 만주로 망명하여 봉천성 유하현(柳河縣)[3]에 학교를 설립하고 항일투사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였다.
8.15 광복 후 귀국하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거주했다고 하나 이후 행적 및 최후에 대해선 자료가 미비하여 알 수 없다.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