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19:01:36

이젠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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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50><colcolor=#ffffff> 광둥 서던 타이거즈 No. 9
이젠롄
易建聯 | Yi Jianlian
출생 1984년[3] 10월 27일 ([age(1984-10-27)]세)
광둥성 장먼시 허산시
국적
[[중국|]][[틀:국기|]][[틀:국기|]]
신장 213cm (7' 0")[4]
체중 117kg (258 lbs)
윙 스팬 222cm (7' 3.25")
포지션 파워 포워드[5] / 센터
드래프트 2007 NBA 드래프트 1라운드 6순위
밀워키 벅스 지명
소속 광둥 서던 타이거즈 (2002~2007)
밀워키 벅스 (2007~2008)
뉴저지 네츠 (2008~2010)
워싱턴 위저즈 (2010~2011)
광둥 서던 타이거즈 (2011)
댈러스 매버릭스 (2012)
광둥 서던 타이거즈 (2012~2023)
등번호 9번 - 광둥
11번 - 중국 농구 국가대표팀
링크 파일:시나 웨이보 아이콘.svg 파일:틱톡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2.1.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나이 논란

[clearfix]

1. 개요

중국의 농구인으로 현역 중국 최상위권 농구 선수 중 한 명이자 NBA 시절 야오밍의 후계자로 주목 받았다. 야오밍을 제외하면 대개 신장이나 마케팅빨이었던 중국 출신 NBA(저우치, 쑨웨) 선수들과는 비교를 달리하는 기량을 보여주었다. 피지컬과 운동 능력 및 슛거리 등에서도 메리트가 있었으며, 부상 문제만 없었다면 NBA에서 뛰기에 손색이 없었던 선수.

2. 생애

광둥성 장먼시 허산시에서 프로 핸드볼 선수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중국 대표 후보로 선정된 적도 있었다 . 12살 때 농구를 시작해 13세의 나이에 193cm로 성장했다. 2002 년에 광둥 서던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 그해 뉴저지에서 열린 아디다스의 ABCD 캠프에 참가했다. 그의 이름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타임지의 2003년 8월 24일호에서 제목은 The Next Yao Ming이었다.

2.1. 선수 경력

2002년에 15살의 이젠롄은 CBA에 들어와 광둥 서던 타이거즈 팀에서 뛰었다 . 2004년에 그는 중국 농구 국가대표팀 에 선발되었다 . 2005년에는 CBA 역사상 가장 어린 MVP가 되었다. 2007년에는 NBA 드래프트에서 이젠롄은 밀워키 벅스에 의해 1라운드 6순위로 선발되었다. 이로서 왕즈즈, 야오밍, 멍크 바터에 이어 중국 선수로는 NBA에 네 번째로 데뷔했다. 뛰어난 골밑 활약에 득점력까지 갖춰 지난 해 12월 NBA '이달의 신인상'을 받기도 했던 그는 중국에서 야오밍에 버금갈 정도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왼 무릎을 다친 뒤 잔여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채 첫 NBA 시즌을 마감했고 결국 66경기에서 49차례 선발로 나와 평균 8.6득점에 5.2개 리바운드를 기록하는 성적표를 받았다. 그 이후 밀워키 벅스와 뉴저지 네츠의 트레이드가 성사되면서 이적하게 된다. 이젠롄은 평균 10.4득점, 6.2리바운드를 기록 중 이었지만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게 되고 그 이후로도 시즌 동안 내측 부측 인대, 입술, 발목등 여러 차례 부상을 입게 되어 점차 주전에서 제외되게 된다. 결국 워싱턴 위자드와 댈러스 매버릭스로 이적하지만 사실상의 가비지멤버가 되었고 결국 방출되었다.

이후 2016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 입단하면서 다시 NBA에 복귀하는가 싶었지만 섬머리그만 뛰고 방출 요청으로 중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3.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 때는 환상적인 피지컬과 운동 능력을 자랑하는 스트레치 빅맨이었다. 맨발 210cm를 넘기는 신장에 훌륭한 윙스팬[6], 전성기 때는 평균적인 NBA 7푸터들을 가볍게 상회하는 엄청난 운동 능력까지 있었기에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그야말로 탈 아시안 급이었다.[7] 거기에 포지션 대비 준수한 점퍼와 넓은 슛거리, 좋은 리바운드와 협동 수비력이 장점.

단점은 빅맨으로서 파워가 다소 부족하여 NBA 레벨에선 대인수비에 약점을 보였고, 야투의 기복이 심한 편임에도 골밑에서 몸비비기를 싫어해 점퍼로 일관하는 성향이 강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NBA에선 커리어 통틀어 단 한 시즌도 ts%가 0.5를 넘어본 적이 없는데, 빅맨이 야투율도 아니고 ts%가 0.4 후반대에 그친다는 건 득점 효율이 상당히 저조하다는 말이 된다. 뉴저지 네츠에서 경기당 30분 이상을 뛰며 평균 12득점 7.2리바운드라는 준수한 볼륨을 뽑아낸 3년차 시절에도 이 낮은 효율만큼은 그대로였을 정도.

야오밍 이후 아시아권에선 최고의 재능으로 통했고 실제로 NBA에서도 어느 정도는 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더딘 발전과 잦은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그래도 센터치고 기동성과 슈팅 레인지가 준수해서 10~20년대 NBA 트렌드라면 좀 더 수요가 있었을만한 선수이며, 사실 트렌드를 떠나서 가진 재능 자체는 NBA에서 자리잡는데 모자람이 없었다고 평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일단 파워는 좀 딸려도 사이즈와 운동 능력은 케빈 가넷에 버금갈 정도인데다[8], 팔도 길고 슈팅터치도 매우 부드러운 7푸터라면 어디가 됐던 자리는 잡을 수 있다. 때문에 부상으로 퇴출될 당시만 해도 마음 독하게 먹고 재활했다면 충분히 부활 가능성이 있었고, 그의 나이와 중국에 돌아가 보인 활약을 보면 전망이 어두운 것도 아니었다.

즉, NBA에서 유의미한 출전시간을 받지 못한 쑨웨저우치 등에 비하면, 이젠롄은 적어도 건강하다는 전제 하에는 NBA 팀들이 로스터에 두고 써볼만한 실력 자체는 분명히 갖추고 있는 선수였다. 그러나 이젠롄은 NBA에서 커리어를 끝까지 이어가는 데에 큰 미련은 없었던 걸로 보인다. 일단 그는 야오밍을 제외한 다른 중국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영어를 배우는데 적극적이지 않았고,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으며 개인적으로 친한 동료도 딱히 없었다.[9] 게다가 안그래도 타국생활 자체가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NBA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건 더더욱 힘겨운 일이다. 그러니 이렇게 고생하면서 그저그런 NBA 롤플레이어 중 하나로 남느니 차라리 중국에서 CBA의 황제로 살아가는 것도 합리적이지 못 한 선택은 아니다. 때문에 이젠롄이 NBA 적응에 실패한 이유는 재능 부족이 아닌 내구성 부족, 그리고 본인에게 NBA에서 악착같이 버틸 의사가 없었다는 점에 있다고 평가하는 팬들이 많다.

4. 나이 논란

정리하자면 원래 84년생으로 등록되었다가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때부터 87년생으로 등록, NBA에 드래프트될 때도 이렇게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84년생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이젠롄이 NBA 진출을 모색할 당시 87년생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2004년부터 사실은 84년생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어왔다. 실제로 중국 측에서 최초의 이젠롄의 나이를 밝힐 때는 88년생이라고 했으나 이후 87년생으로 정정되기도 했다.

최초의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그가 드래프트 유망주로 이름을 널리 알리던 2006년, 2004년 중국 국가대표팀 명단에 그의 생일이 1984년 10월 27일인 것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부터였다. 중국 측에서는 '오타인 것 같다'라고 부인했으나, 2006년에 이젠롄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미국 대표팀이었던 셰인 베티에에게 자신이 24세(최소 82년생)이라고 밝혔다는 보도가 휴스턴 크로니클에 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이젠롄과 베티에 둘 다 이를 부인하면서 이 보도는 묻혔다.

결정적으로 2007년에 중국판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가 이젠롄이 97년도에 중학생이었음을 보여주는 서류가 있다고 보도했다. 97년 10월 20일 작성된 이 서류에는 이젠롄이 1984년 10월 27일생이라고 나와있다. 당연하지만 만약 그가 87년 10월생이 맞다면 10세였을 97년 10월에 중학생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6년/중학교 3년/고등학교 3년이며 한국과 달리 9월에 새학기를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젠롄이 84년 10월생이라면 저 서류가 작성된 97-98학년도에 13세였을 것이고 이는 딱 중학생 나이이다.

이 점 때문에 대체적으로 해외에서는 이젠롄이 84년생이 맞다고 보고 있다. 중국 측에서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는데, 이는 당연히 자신들이 거짓말을 했다고 인정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앞선 보도를 부인했던 중국과 이젠롄 측은 이 보도에 대해선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에선 유망주들의 나이를 깎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2006년 당시 CBA(Chinese Basketball Association)은 '나이 속이기에 대한 전쟁(war against the age fraud)'을 선포하고 유망주들의 상세한 서류 제출을 요구하고, 골격을 검사해 자세한 나이를 밝혀내는 장비까지 도입한 바 있다.


[1] FIBA 아시아 컵 MVP[2] FIBA 아시아 컵 MVP[3] 원래 87년생이라고 알려졌으나 84년생이라고 봐야한다. 자세한 사항은 후술.[4] 맨발 기준 213cm / 착화 신장 216cm (7' 1")[5] 국제 무대나 아시아에서는 센터로도 많이 뛰었지만 NBA에선 파워포워드로 주로 뛰었다. Play by play 데이터를 보면 루키 시즌엔 97%, 그 이후부터는 90, 81, 45, 88%의 출장 시간을 파워포워드로 출장했으며 4년차에 (당시 미숙한 플레이를 일삼았던 자베일 맥기가 주전 센터였을 정도로) 골밑이 빈약한 워싱턴에서 뛸때만 센터로 조금 더 많이(55%) 뛰었다. NBA 기준으론 파워포워드, 아시아 무대 기준으로 센터라고 볼 수 있다.[6] 신체 비율 자체도 흑인 선수들과 유사했다. 리우 올림픽 당시 나이키 광고에 미국 대표팀 케빈 듀란트와 나란히 출연한 사진을 보면 신체비율이 케빈 듀란트와 비슷하다.[7] 드래프트 당시 신체검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드래프트 당시 공식 수치를 찾기는 힘들지만, 윙스팬이 7피트 3.5인치에 최대 점프력 38인치, 체지방률이 4% 미만이라고 알려져있다. 비유하면 케빈 가넷과 비슷한 키에 윙스팬은 0.5인치 짧고, 블레이크 그리핀보다 점프력이 높다는 얘기. 공식적으로 발표된 수치가 아니니 다소 과장이 있을 수 있지만 (특히 점프력) 육안으로 봐도 그의 운동능력은 엄청났다.[8] 물론 가넷은 이젠롄과 달리 힘도 매우 강한 선수였지만 이건 가넷이 타고나길 장사였기 때문이고, 원래 가넷이나 이젠롄같은 탄력과 어질리티를 가진 선수라면 그만큼 매끈한 체형인 경우가 많아 파워는 약한 게 일반적이다.[9] 프로는 기본적으로 실력이 가장 중요하다지만 다른 동료들과 전혀 교류가 없고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면 팀 케미스트리에서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야오밍과 이젠롄의 차이 중 하나가 이것인데, 야오밍은 영어를 적극적으로 배워 꽤나 유창하게 구사한데다 성격이 유머러스하고 입담도 상당해서 의사소통이 원활했다.